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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팔라완의 타본동굴(Tabon Caves)과 인류학자 로버트 폭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팔라완의 타본동굴(Tabon Caves)과 인류학자 로버트 폭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5일 필리핀 팔라완의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차로 3~4시간 정도 달리면 퀘존(Quezon)이란 곳에 갈 수 있다. 팔라완의 퀘손(퀘존)에는 관광지가 많지는 않지만, 매우 유명한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필리핀 문명의 요람 이라고 불리는 타본동굴 이다. 로버트 B. 폭스 Robert Bradford Fox 1918~1985 필리핀 국립 박물관에서 일했던 인류학자 중 로버트 폭스라는 이가 있다. 그는 1958년부터 필리핀 국립 박물관 발굴팀과 함께 필리핀 내 유적지 발굴에 주력했는데, 1960년대에는 특히 팔라완 지역의 유적지 발굴에 힘썼다. 그가 발견한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1962년 5월에 발굴된 타본 동굴(Tabon Caves)이다. 타본 동굴에서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머리뼈와 턱뼈가 발견된 것이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이지만, 47,000년 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타본 동굴 일대의 집중 탐사에 들어가게 된 로버트 폭스는 타본원인(Tabon Man)의 뼛조각과 함께 석기 도구와 토기 등 각종 문화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초기 인류가 집단 주거를 하였음을 밝혀냈다. Quezon Memorial Shrine 필리핀 문명의 요람, 팔라완 타본 동굴 Tabon Caves 타본 동굴은 4만 7천 년에 살았던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이 나온 동굴로 한때 필리핀 최초 인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던 곳 이다. 타본 동굴이라고 하면 하나의 커다란 동굴을 연상하게 되지만, 실제 타본 동굴은 2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석기 도구와 사후 세계로 떠나는 사망자의 얼굴이 섬세하게 묘사된 매장용 항아리가 발굴 되면서 '필리핀 문명의 요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타본 원인(Tabon Man)의 유골은 그 뒤 2007년 칼라오 동굴(Callao Cave)에서 6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칼라오 원인(Callao man)이 발견되면서 '필리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간의 뼈'란 타이틀을 뺏겼지만, 그렇다고 그 신비로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 지역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동굴 중 일부는 일반에게 공개하기도 한다. 타본 동굴의 이름은 이 지역 내 사는 타본 새(Philippine megapode)의 이름에서 따왔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유적지: 67,000년 전 호빗과 같은 인류가 살았던 곳, 칼라오 동굴(Callao Cave) 기원전 47,000년 전 타본 원인의 생활 모습을 묘사한 디오라마 - 마닐라 마카티에 있는 야얄라 뮤지엄 소장품 아이가 석기 도구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때 벌써 로프 등과 같은 도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he Tabon Cave Complex and all of Lipuun · newscientist: Stone tools in Filipino cave were used to make ropes 40,000 years ago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생: 필리핀 구인구직 채용공고 사이트 - 2018년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생: 필리핀 구인구직 채용공고 사이트 - 2018년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8년 1월 30일 필리핀 가정부 구인공고 · 필리핀 생활 중 필리핀 사람을 운전기사나 가정부를 구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필리핀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을 때 어디에 채용공고를 올리면 될까? · 필리핀에서는 어떤 구인·구직 사이트에 모집공고를 올리면 가장 효과적일까? 필리핀 생활 중 가정부가 어떻게 가정부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주변에서 소개를 받으라는 것이다. 소개를 통해 가정부를 구하는 것이 신원도 확실하고, 일솜씨도 믿을 만하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돌봐주는 유모나 입주 가정부를 구하면서 아무나 데려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 조언이 맞는 이야기임은 틀림없지만, 이 조언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주변의 소개를 통한 방법은 주변에 소개할만한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필리핀에 갓 이사를 해와서 주변에 아는 이가 전혀 없다면 소개로 누군가를 채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식당이나 소매점에서 직원을 구한다면 가게 앞에 '직원 구함'이라고 적어놓는 방법도 있지만, 이 방법 역시 쉬운 방법은 아니다. 필리핀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소개 받을 길이 없다면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인·구직 일자리 정보 사이트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다. 2018년 현재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취업 포털 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 잡스트리트(JobStreet) 딱히 큰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트이다. 사이트 규모도 크고 구인 혹은 구직 정보가 다른 어떤 사이트보다 많은 편이다. - 사이트 바로가기 : www.jobstreet.com.ph ■ 페이스북 (Facebook) 혹 필리핀에서 식당이나 호텔, 한인슈퍼 등을 운영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면 페이스북의 채용공고 기능을 통해 직원 모집 공고를 내는 것도 의외로 좋은 방법이 된다. 약간의 비용을 주고 유료 광고를 하면 더욱 효과적인데, 페이스북에서 구인 광고를 할 때는 타겟 설정을 최대한 세밀하게 하는 것이 좋다. 직원을 구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상세 정보를 기재한 뒤 구인 광고를 내면 된다. ■ 워크어브로드(Workabroad) 워크어브로드는 해외근로자(Overseas Filipino Workers: OFW)가 되기를 원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이다. 국가별 혹은 직종별, 경력별로 검색이 가능하다. - 사이트 바로가기 : https://www.workabroad.ph/index.php ■ 온라인잡스(Onlinejobs) 온라인잡스에서도 직종별 혹은 연봉별로 이력서 검색을 할 수 있다. 대신 사이트의 다양한 기능을 쓰기 위해서는 유료로 전환하여 월간 비용을 내야만 한다. - 사이트 바로가기 : https://www.onlinejobs.ph ■ 헬퍼초이스 가사도우미를 구한다면 가정부(Domestic Helper)를 위한 에이전시 사이트도 있다. https://www.helperchoice.com/ph/domestic-helpers https://www.maidprovider.ph http://maidinthephilippines.net ■ 기타 구인·구직 사이트 - manpower.com.ph - http://www.jobsdb.com - https://www.bestjobs.ph - https://kr.linkedin.com - https://www.jobfinderph.com - Jobrapido.com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본인 경험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98년,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 - 제2차 에드사 혁명으로 물러난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98년,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 - 제2차 에드사 혁명으로 물러난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6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제13대 대통령,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조셉 에스트라다 조지프 에스트라다 · 본명: 조셉 에헤르시토 에스트라다(Joseph Ejercito Estrada) · 1937년 4월 19일 출생~ (2024년 현재 87세) · 필리핀 제13대 대통령 · 대통령 재임 기간: 1998년 6월 30일~ 2001년 1월 20일(2년 204일) - 인기 영화배우 출신 정치인 - 2차 피플 파워 혁명(제2차 EDSA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함 - 뇌물 및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아로요 대통령에게 사면받음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에랍(Erap)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어린 시절 1937년 4월 19일, 마닐라의 톤도(Tondo)에서 호세 마르셀로 에헤르시토(Jose Marcelo Ejercito)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톤도라고 하면 빈민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는 집은 꽤 부유했다. 모두가 그를 톤도 출신으로 기억했지만, 그는 톤도를 떠나 산후안 시티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0살 때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1957년부터 1989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대략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주로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역할을 맡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무척 인기를 끌었다. 생의 대부분을 호세 마르셀로 에헤르시토라는 본명보다 영화배우 시절 만들었던 예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이 사람은 바로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조셉 에랍 에스트라다(Joseph "Erap" Estrada) 이다.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는 대학중퇴의 학력이지만 산후안 시티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영화배우가 어떻게 시장까지 자리에 오를까 싶지만, 필리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정치역량보다 개인적인 인기나 출신 지역 등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조셉 에스트라다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에랍(Erap)이란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유명인이었다. 에랍은 친구를 의미하는 타갈로그어 파레(pare)의 철자를 거꾸로 한 것이다. 조셉 에스트라다는 1969년부터 1986년까지 산후안 시티의 시장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그는 필리핀에서는 최초로 컴퓨터를 통해 재산세를 납부토록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87년 조셉 에스트라다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고, 1992년 대선 때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9대 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대선이 치러졌을 때, 높은 지명도와 인기를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에랍'이란 뜻의 '에랍 파라 사 마히랍(Erap para sa mahirap)'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에 출마했다. 이 대선에서 조셉 에스트라다는 영화 출연 당시의 이미지를 이용해 서민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결국 필리핀 13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39.86%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조셉 에스트라다는 "마닐라 빈민가에서 태어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 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달랐다. 영화 속 정의로운 이미지를 잔뜩 어필하며 필리핀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조셉 에스트라다는 결코 빈민의 대변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조셉 에스트라다가 내세웠던 서민을 위한 공약들은 그저 공약에서 끝난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의 집권 후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대통령의 자질이 의심되는 행동들도 문제였다. 측근들에게 베푼 특혜에 대한 소문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의 행동은 끊임없이 입방아에 올랐는데 하룻밤에 100만 달러까지 잃을 수 있는 마작을 했다거나 혼외자가 8명이나 된다는 등의 이야기에서부터 여배우와의 염문설까지 실로 다양한 소문에 휩싸였다. 배우 시절의 지저분한 사생활까지 드러나면서 조셉 에스트라다의 인기는 점점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 10월, 조셉 에스트라다 가 수백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곧 조셉 에스트라다의 뇌물 및 불법 정치 자금 수수에 대한 의회에서의 탄핵 절차가 시작되었다. 결국 2021년 1월 17일 일어난 2차 피플 파워 혁명(제2차 EDSA 혁명) 의 마지막 날, 조셉 에스트라다는 대통령 자리에서 사임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2001년,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낸 2차 피플 파워 혁명(제2차 EDSA 혁명) 다시 영화배우로 흥미로운 것은 부정부패와 국정운영 능력 부족으로 물러난 이후 조셉 에스트라다의 행적이다. 2007년 9월, 재임 기간에 정치헌금과 뇌물로 80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부정 축재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조셉 에스트라다는 종신형 유죄 판결 을 받았다. 하지만 70세라는 나이와 긴 가택 연금 기간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후 조셉 에스트라다는 ABS-CBN 방송에 출연해 이 모든 것이 반대파의 음모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9년 그는 72세의 나이로 20년 만에 'Ang Tanging Pamilya: A Marry Go Round'라는 제목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다. 필리핀계 미국인 남자 친구와 결혼하려는 딸을 가진 버스 운전기사 역할이었다. 영화 촬영이 시작된 날 그는 왕년의 영화스타의 얼굴로 "내가 있었던 곳에 돌아와 행복하다" 라는 논지의 인터뷰를 했다. 서민층의 지지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라 서민층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뇌물로 받아 챙겨서 비리 혐의를 받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모두 잊은 듯한 인터뷰였다. 2018년 마닐라 거리의 풍경. 이 당시만 해도 거리에서 마닐라 시장이었던 조셉 에스트라다(에랍)의 이름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마닐라 시장으로 당선 2010년, 조셉 에스트라다는 다시는 정치 활동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대선에 출마했다. 2010년 선거에서 에스트라다는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노이노이 아키노 )에게 패했지만, 그래도 26.25%라는 지지율을 얻었다. 이런 높은 지지율을 놓고 빈곤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선거전략이 효과적이었다거나 높은 인지도가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부정부패로 종신형까지 선고받았던 자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으려고 했다니, 실상 국민이 우매했다고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이후 그는 2013년 지방선거에 나갔고,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 시티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당시 에스트라다는 52.72%나 되는 표를 얻어 시장 자리에 올랐다. 상대 후보였던 알프레도 림(Alfredo S. Lim)이 그의 시장직 박탈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면되지 않았냐는 쪽과 아로요 대통령의 사면으로 에스트라다의 정치적 권리가 모두 회복되었다는 쪽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그리고 이 일에서 정의는 승리하지 못했다. 결과는 에스트라다의 승리였다.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니 그를 시장으로 두기를 원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2016년 선거에서도 재선되었다. 조셉 에스트라다는 3선에도 도전했지만, 2019년에는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 가 마닐라 시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조셉 에스트라다는 한국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데,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2012년에는 가수 윤복희 씨가 에스트라다 대통령과 데이트한 일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2014년 마닐라 시장으로 재임 시에는 한-필리핀 경제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 방한하여 태양광 LED 가로등 설치 사업 등을 논의한 바 있기도 하다. 물론 마닐라의 가로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 Inauguration of President Estrada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필리핀 제13대 대통령 필리핀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 투어 중 테우스 맨션(Teus Mansion)의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에 가면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에 대해 위와 같이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영화배우 시절의 사진 출처 : FAMAS Awards · Manila Standard: 2019 May 15 - Wednesday · GMA News: Former president Joseph 'Erap' Estrada leads the mayoralty race in Manila · Encyclopedia Britannica: Joseph Estrada · Culture Laboratory Philippines: Joseph Ejercito Estrad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니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2세)와 코라손 아키노, 노이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니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2세)와 코라손 아키노, 노이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3세)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5일 니노이 아키노와 코리 아키노 필리핀 역사나 정치 이야기를 보면 아키노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니노이 아키노와 그의 안내, 아들까지 모두 필리핀 정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2세는 마르코스 정권에 투쟁하다가 귀국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인물로 본명은 베니그노 시메온 '니노이' 아키노 주니어이다. 필리핀 국민들에겐 애칭으로 니노이 아키노 라 불린다.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의 애칭은 코리 아키노 , 나중에 필리핀 제15대 대통령이 된 베니그노 아키노 3세는 노이노이 아키노 라고 불린다. 필리핀 500페소 지폐를 보면 베니그노 아키노와 함께 코라손 아키노가 함께 도안된 것을 볼 수 있다. 니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2세) 전 상원의원 / 마닐라공항에서 암살됨 베니그노 시미온 니노이 아키노 주니어 Benigno "Ninoy" Simeon Aquino Jr. 1932년 11월 27일 출생~1983년 8월 21일 사망 코리 아키노(코라손 아키노)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 / 필리핀 제11대 대통령 마리아 코라손 코후앙코 아키노 Maria Corazon Cojuangco Aquino 1933년 1월 25일 출생~2009년 8월 1일 사망 대통령 재임 기간: 1986년 2월 25일–1992년 6월 30일 노이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3세) 니노이 아키노의 아들 / 필리핀 제15대 대통령 베니그노 시메온 노이노이 코후앙코 아키노 3세 Benigno Simeon "Noynoy" Cojuangco Aquino III 1960년 2월 8일 출생~2021년 6월 24일 사망 대통령 재임 기간: 2010년 6월 30일–2016년 6월 30일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983년, 마닐라공항에서 니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2세) 사망 필리핀 역사: 피플파워혁명 이후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코리 아키노(코라손 아키노) 리잘파크 근처에 세워진 니노이 아키노와 코라손 아키노 기념 동상. 필리핀 500페소 지폐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Malacañang Palace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과 캠프 오도넬 포로수용소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과 캠프 오도넬 포로수용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파스 뉴클락시티에 있는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은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연합군 포로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장소이다. 1942년, 치열했던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가 끝난 뒤 후 일본군의 포로가 된 약 76,000명의 미국-필리핀 연합군 군인들은 바탄에서 딸락의 캠프 오도넬(Camp O'Donnell)까지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을 해야만 했다. 4월의 잔인한 날씨 속에서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1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 동안 최소 1만 명이 굶주림과 탈진, 말라리아 감염으로 사망했다. 캠프 오도넬에 도착한 뒤에도 연합군 포로에 대한 대우는 나아지지 않았다. 포로수용소는 대규모의 인원을 수용할 만한 시설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었고, 식량이나 의약품조차 제대로 배급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본군의 가혹행위는 계속되었다. 굶주림과 질병, 구타와 학대를 속에서 수용소에서는 매일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리고 약 25,000명의 필리핀인과 6,000명의 미국인 군인이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숨졌다.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 Capas National Shrine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은 카파스 전쟁기념관, 카파스 국가 성지, 카파스 국립 성지 등으로 번역된다. ■ 주소: Capas Shrine Museum, New Clark City, Capas, Tarlac ■ 위치: 필리핀 딸락 카파스, 뉴클락시티 / 피나투보 화산 근처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필리핀 내 미군까지 모두 떠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필리핀의 영토와 국민에 대해 행사한 권한 을 철회하고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군사기지만큼은 남겨두고자 했다. 그리고 미국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1946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마누엘 로하스는 미국이 필리핀이 독립한 뒤에도 필리핀 내에 미군기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에서는 카파스에 있는 237만 평(1,937에이커)의 공간을 필리핀에 있는 해군 함정에 무선 전송을 제공하는 라디오 스테이션(U.S. Naval Radio Station)으로 사용했다. 1962년부터 1989년까지 운영되던 라디오 스테이션이 문을 닫은 뒤 이 지역은 주거지로 개발되었지만 일부는 필리핀 정부 소유가 되었다. 1991년 6월 12일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한 뒤 미국은 1991년과 1992년 사이 클락공군기지 및 수빅해군기지 등을 모두 필리핀에서 철수시켰다. 그리고 이 시기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은 2차 대전 중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연합군 포로들을 기리기 위하여 캠프 오도넬 포로수용소가 있던 지역의 일부를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으로 만들기로 결정하는 선언문(Proclamation No. 842)에 서명한다. 1991년 12월 7일에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서명한 선언문에 따라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은 54헥타르의 넓은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54헥타르 중 35헥타르의 공간을 할애하여 31,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사망자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그리고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 중앙에는 높이 73m의 오벨리스크(Obelisk) 기념탑과 영웅의 벽(Wall of Heroes)이 만들어졌다. 오벨리스크 기념탑은 평화를 상징하는 기념탑으로 탑의 세 기둥은 각각 필리핀인, 미국인, 일본인을 의미한다. 오벨리스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영웅의 벽(Wall of Heroes)의 검은색 대리석을 자세히 보면 이름이 가득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캠프 오도넬 포로수용소에 있던 희생자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은 현재 필리핀 국방부(DND)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필리핀 재향군인회(PVAO, Philippine Veterans Affairs Office) 산하의 VMHD(Veterans Memorial and Historical Division)에서 관리하고 있다. 평소에는 숲을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조용한 편이지만, 4월 9일 용사의 날(Araw ng Kagitingan)이 되면 추모식이 진행되기도 한다. 필리핀 뉴클락시티에 있는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입구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필리핀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오벨리스크(Obelisk) 기념탑 영웅의 벽(Wall of Heroes) 한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후안 라소(Juan L. Raso)의 시가 적혀 있다. 영웅의 벽(Wall of Heroes) 미니 숲 이 미니 숲에 있는 나무는 단순히 조경만을 목적으로 심어둔 나무가 아니다. 31,000그루의 나무는 각각 포로수용소에서의 사망자를 상징한다. 미니 숲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Encyclopedia Britannica: Bataan Death March · Capas, Tarlac: HISTORY OF CAPAS · Philippine Veterans Affairs Office: Capas National Shrine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보니파시오 맛집: 마쯔야 일식당(Matsuya Japanese Restaurant)
필리핀 맛집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맛집 필리핀 보니파시오 맛집: 마쯔야 일식당(Matsuya Japanese Restaurant)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8월 22일 맛있는 점심 사준다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보니파시오까지 가면 먹게 되는 것 :) 마쯔야는 한국인 교민이 하는 일식당으로 일식 메뉴만 판매하지 않고 중식과 한식 메뉴도 판매한다. 주변 직장인을 타킷으로 한 점심 메뉴로 도시락 종류도 많이 팔지만 필리핀 사람 입맛에 맞춘 반찬이라 도시락보다는 단품 주문을 추천.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마쯔야 일식당(Matsuya Japanese Restaurant) 매장 내부 마쯔야 일식당(Matsuya Japanese Restaurant) Matsuya Japanese Restaurant 마쯔야 일식당 ■ 위치 :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 주소 : The Fort Strip, Katipunan Cir, Taguig, Metro Manila ■ 전화번호 : 0917 899 4389 ⚝ 매장 방문 횟수: 1회 마쯔야 일식당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업체 사정에 의해 영업 여부 및 메뉴 등이 변동되었을 수도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 맛집: 베트남 사람이 하는 마카티의 베트남 음식점 - BON Banhmi
필리핀 맛집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맛집 필리핀 마닐라 맛집: 베트남 사람이 하는 마카티의 베트남 음식점 - BON Banhmi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7년 7월 19일 2024년 현재 이 레스토랑은 영업이 중단되었습니다. 마카티 산안토니오 빌리지. 이 동네에 의외로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베트남 음식점이 많다. 마닐라에서 고수 향기가 진한 오리지널 베트남 반미 빵을 먹고 싶었다면, 마카티 산안토니오 빌리지로 가면 된다. BON Banhmi Vietnamese Sandwich라는 이름의 가게인데 주인이 베트남 사람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마닐라에 있는 다른 어떤 베트남 음식점보다 베트남스러운 맛이 강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반미 빵집인 "BON Banhmi Vietnamese Sandwich" 옆으로는 "BON Pho&Roll"라는 이름의 레스토랑도 겸하고 있어 쌀국수도 주문할 수 있는데, 쌀국수 역시 다른 집보다 향이 강한 편이다. 숙주 양은 좀 아쉽지만, 대신 소고기 고명을 다른 식당에 비해 상당히 많이 올려준다. 동네 주민들에게 꽤 소문난 맛집답게 매장도 깔끔하고, 서비스도 친절하다. 다만 진한 육수를 좋아한다면 이 집 쌀국수 국물이 좀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가게 입구 베트남 쌀국수 BON Banhmi Vietnamese Sandwich 본 반미 ■ 연락처: (02) 808 7979 ■ 영업시간: 오전 7:30~오후 11:00 BON Banhmi Vietnamese Sandwich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업체 사정에 의해 영업 여부 및 메뉴 등이 변동되었을 수도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마젤란의 죽음과 라푸라푸를 필리핀의 영웅으로 만든 막탄전투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마젤란의 죽음과 라푸라푸를 필리핀의 영웅으로 만든 막탄전투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2월 28일 필리핀의 영웅, 라푸라푸(Lapu-Lapu)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이 위대한 탐험가인지 아니면 침략자인지의 문제는 뒤로 하고, 그가 항해했었다는 경로를 보면 실로 대단하다. 당시 에스파냐(스페인)의 왕이었던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의 후원으로 270여 명의 선원과 함께 5척의 배를 끌고 1519년 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건너 54,000km를 항해한 뒤 1521년 3월이 되어서야 필리핀에 도착했다. 하지만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머물 수 있었던 날을 계산해 보면 두 달도 되지 않는다. 1521년 4월 27일, 마젤란은 막탄섬을 통치하던 라푸라푸(Lapu-Lapu)와 벌였던 막탄전투(Battle of Mactan)에서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막탄전투 Battle of Mactan 1521년 4월 27일 지난 2021년, 필리핀 문화예술위원회(NCCA)는 막탄섬을 통치하였던 라푸라푸(Lapu-Lapu)가 막탄 전투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누군가의 승리는 다른 이의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마젤란의 필리핀 발견은 침략이란 말과 동일 선상에 있다. 그러니 막탄전투에서의 승리 500주년이란 말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년 2월 3알~1521년 4월 27일)이 사망한 지 500년이나 지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막탄섬을 지배하던 라푸라푸(Lapu-Lapu) 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나타나 기독교로 개종하고 스페인에 충성하기를 강요한 마젤란이 침략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라푸라푸를 너무 얕잡아 보고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 것이 마젤란의 실수였다. 라푸라푸에게는 함께 싸울 1,500명의 사람과 전투를 효과적으로 끌어 나갈 전략이 있었다. 라푸라푸는 일단 막탄섬 얕은 해안에서 전투를 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 않아도 얕은 해안에 바다에서 조수가 빠져나간 시간에 시작된 전투는 처음부터 마젤란에게 불리했다. 해수면이 낮아진 상태라 배를 해안에 댈 수 없었던 것이다. 라푸라푸는 스페인 병사들의 갑옷이 다리 부분까지 덮지 못했음을 약점으로 파악하고 공격을 시작했고, 라푸라푸의 전사들은 마젤란의 다리에 독이 묻은 화살을 맞추는 것에 성공한다. 전투에서 지도자를 잃은 병사가 전투를 계속할 의지를 갖기란 쉽지 않다. 마젤란을 잃은 스페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막탄전투가 라푸라푸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라푸라푸는 필리핀 영웅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의 필리핀 역사가 모두 그렇지만 마젤란의 방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막탄전투의 상황은 마젤란의 사망 후 스페인의 세비야로 돌아왔던 안토니오 피가페타 라는 인물이 쓴 기록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내용이 알려졌다. 스페인 원정대의 생존자 입장에서 적은 글이기는 하나 필리핀 원주민의 반격에 대한 내용까지 담겨 있어 당시의 전투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𖠿 관련 글 보기: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도착한 곳은 세부가 아닌 호몬혼섬 막탄전투를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병사들이 육지가 아닌 물속에서 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스페인 입장에서 보면 미개한 원주민에게 당한 것으로 보일 터이지만, 라푸라푸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 침략자에 맞서 싸우고 승리한 셈이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에 있던 라푸라푸의 동상 이 작품에는 자유의 파수꾼(Sentinel of Freedom)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Battle of Mactan, 마누엘 케손 추모 기념관(Quezon Memorial Shrine)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 Revolution Web Central: The Battle of Macta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 맛집: 파사이 파칼몰, A1 프리미엄 샤부샤부(A1 Premium Shabu-Shabu)
필리핀 맛집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맛집 필리핀 마닐라 맛집: 파사이 파칼몰, A1 프리미엄 샤부샤부(A1 Premium Shabu-Shabu)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7월 27일 누가 마닐라에서 샤부샤부를 먹으러 간다면 추천하고 싶은 레스토랑이 생겼다. A1 프리미엄 샤부샤부(A1 Premium Shabu-Shabu) 라는 곳인데 고급 해산물 뷔페로 유명한 바이킹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이라고 한다. 가게 이름에 프리미엄(Premium)이란 단어가 붙어 있음에서 짐작되는 부분이지만, 음식의 가격대는 다소 비싼 편. 대신 채소며 해산물이 모두 싱싱하고 서비스도 상당히 친절한 편이다. 더운 나라 필리핀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에 핫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는 뜨거운 국물과 채소를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샤부샤부(Shabu-Shabu)라는 음식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내기에서 이겨서 얻어먹게 된다면 더욱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기의 주제는 카지노 개장일. 솔레어 (Solaire) 와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 카지노 중 어느 것이 더 먼저 지어졌는가를 놓고 점심 내기를 했는데, 당연하게도 내가 이겼다. 씨오디는 2014년, 솔레어는 2013년에 문을 열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일러주시곤 했는데, 올바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시티 오브 드림즈 카지노가 문을 열었을 당시 "이제 솔레어에 가지 말고 씨오디에 가야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난 덕분에 가격 걱정 없이 메뉴판을 볼 수 있었다. A1 프리미엄 샤부샤부에는 1인용 샤부샤부 메뉴가 다양하게 준비 된 편인데, 가장 간단한 기본 세트가 695페소이다. 가장 비싼 것은 1,850페소짜리 와규 비프 세트. 서비스 차지 7%와 부가세 등을 내고 나면 한 끼 식사에 대략 5만 원 정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애초에 A1 프리미엄 샤부샤부에 가보라고 추천해 주었던 P의 이야기에 따르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메뉴는 미국산 앵거스 비프(ANGUS BEEF) 세트라고 한다. 1인분에 1,090페소인데 고기의 질도 괜찮고 제법 먹을 만하다나. 하지만 타인의 추천은 추천일 뿐, 내 선택에 완벽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중한 얼굴로 메뉴판을 바라보고 난 뒤 내가 고른 메뉴는 씨푸드 메뉴였다. 프리미엄급의 샤부샤부 레스토랑에서는 어떤 해산물을 줄지 궁금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사는 썩 괜찮았다. 채소는 물론 오징어며 새우까지 모두 흠잡을 곳 없이 싱싱하고, 피시볼도 차이나타운이나 SM슈퍼마켓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니었다. 게다가 음식의 담음새도 깔끔하니, 내기에 이겨 공짜로 얻어먹지 않았더라도 무척 만족스러웠을 그런 식사였다. A1 Premium Shabu-Shabu A1 Premium Shabu-Shabu A1 Premium Shabu-Shabu A1 프리미엄 샤부샤부 A1 프리미엄 샤부샤부(A1 Premium Shabu-Shabu)는 파사이 파칼몰 외에도 마카티와 보니파시오에도 매장이 있다. 2024년 현재 아래와 같이 총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 파사이 파칼몰, A1 Premium Shabu-Shabu, Parqal Mall · 주소: Ground Floor, Building 3, Parqal Mall Diosdado Macapagal Blvd. , Parañaque, Philippines ■ 보니파시오, A1 Premium Shabu-Shabu, BGC · 주소: Ground Floor, Verve 1, 26th Street, corner 8th Ave, Taguig, 1214 Metro Manila ■ 마카티 그린벨트3, A1 Premium Shabu-Shabu, Greenbelt 3 · 주소: 3 Greenbelt Dr, Makati, Metro Manila ■ 마카티 더 라이즈. A1 Premium Shabu-Shabu, The Rise · 주소: G/F, Assembly Grounds at The Rise, Brgy Malugay, Makati, 1203 Metro Manila ⚝ 매장 방문 횟수: 1회(재방문 의사 100%) 파사이 파칼몰 지점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업체 사정에 의해 영업 여부 및 메뉴 등이 변동되었을 수도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 맛집: 올티가스의 한국식 횟집, 도마
필리핀 맛집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맛집 필리핀 마닐라 맛집: 올티가스의 한국식 횟집, 도마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3년 11월 9일 간판에 도마 코리안 레스토랑(Doma Korean Restaurant) 이라고 적혀 있고, 각종 식사류와 분식을 메뉴에 넣어 팔고 있으니 한식당이 맞기는 하지만 '도마 한식당'이라고 쓰지 않고 '한국식 횟집 도마'라고 적은 것은 일반적인 한식당과 다르게 이곳의 메인 메뉴가 회와 스시이기 때문이다. 회를 판다고 해도 대충 썰어 놓은 회를 주면 '한식당에서 회도 파는구나'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말겠지만, 도마에서는 진짜 회를 판다. 회 비슷하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진짜 회 말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밥집이라기보다는 이자카야 주점 분위기이다. 도마에서 파는 회의 종류는 라푸라푸회와 모듬회, 참치회, 연어회 네 가지. 미리 주문 예약을 하면 광어와 전복 등도 '시가(Market Price)'라는 무서운 가격으로 판다고 한다. 참치회와 연어회야 필리핀 로컬 재래시장에서도 횟감을 팔아서 집에서도 가끔 먹는 터라 전혀 색다른 메뉴는 아니지만, 활어회를 먹는 것은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맛있는 활어회를 먹으려면 솜씨 좋은 요리사와 신선한 횟감이 모두 필요한데, 마닐라에서는 둘 다 귀한 존재이다. 라푸라푸회를 주문하면 자동으로 스끼다시 전채요리와 밑반찬, 매운탕 등이 따라오는데 회는 물론이고 반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남이 사주는 밥은 기본적으로 다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지만, 그런 상황적인 요건을 무시하고도 식탁에 오른 음식 하나하나가 죄다 맛이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Doma Korean Restaurant 올티가스 도마 ■ 위치: 필리핀 마닐라 올티가스, 8101 Pearl Plaza 상가 2층 ■ 주소: 2F, 8101 Pearl Plaza,Pearl Drive, Brgy. San Antonio, Ortigas Center,Pasig, Metro Manila, Philippines ■ 전화번호: 0977 750 6479 ⚝ 매장 방문 횟수: 10회 이상 올티가스 도마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업체 사정에 의해 영업 여부 및 메뉴 등이 변동되었을 수도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