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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역사: 1975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과 이멜다 마르코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75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과 이멜다 마르코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일 메트로 마닐라 (Metro Manila)가 자금처럼 인구 1,348만 명(2020년 기준)이 넘게 살고 있는 대도시가 되기 전의 이야기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인구가 40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마카티시티가 아직 리잘주(province of Rizal)에 속한 작은 타운에 불과했던 터라, 마닐라 지역 내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지역은 마닐라시티와 퀘존시티, 파사이시티, 칼로오칸 정도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고, 정부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필요성은 높아졌다.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와 인트라무로스 골프 클럽 메트로 마닐라 행정구역 신설 Metropolitan Manila 1970년의 일이다. 1972년 9월 21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 후 여러 가지 대통령령(Presidential Decree)을 발효했는데, 그중 하나가 1975년 11월 7일 서명한 대통령령 제824호(Presidential Decree No. 824) 이다. 대통령령 제824호에 따라 마닐라, 케존시티, 파사이, 칼로오칸의 4개의 시티(City)와 13개의 구(Municipality)를 대상으로 메트로폴리탄 마닐라(Metropolitan Manila) 라는 이름의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는데 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가 바로 오늘날의 NCR(National Capital Region), 즉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이다. 메트로 마닐라 지역의 수입이 국가 전체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던 시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메트로 마닐라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 위원회(MMC. Metropolitan Manila Commission) 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MMC에 세금 부과에 대한 권한 등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다. MMC의 관할 구역 및 관리 체계, 권한 등이 적힌 대통령령 제824호를 보면 MMC가 실로 막강한 권한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심지어는 시에서 제정한 조례와 결의안 등을 검토하고 수정 또는 폐지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위원회의 책임자(governor)를 선출직이 아닌 대통령 임명직이었다. 그런데 이 시절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의 주지사(Governor of Metro Manila)로 임명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 였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0년 넘게 메트로 마닐라의 주지사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마르코스 대통령이 축출될 때까지 수십억 페소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취득했다. 당시 그녀가 각종 부정부패로 모은 돈만 모두 모아도 필리핀의 외채를 전부 갚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막대한 금액의 돈이었다. 참고로 2024년 현재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의 지방(Region) 행정구역은 NCR(National Capital Region)이며, 16개의 시티(City)와 1개의 구(Municipality)로 구성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 기간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파테로스 지역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구에서 시로 승격했다. 그리고 MMC는 1995년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1976년, 퀘존시티에서 마닐라시티(City of Manila)로 수도 이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의 주요 업무 필리핀 행정구역체계: 지방(Region), 주(Province), 시(City), 구(Municipality), 바랑가이(Barangay)의 역할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대통령령(Presidential Decree) · Official Gazette: Presidential Decree No. 824, s. 1975 · 필리핀 대법원 전자도서관: PRESIDENTIAL DECREE NO. 824, November 07, 1975 · The Philippine Star: Origins of Metro Manil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2020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과 자살률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2020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과 자살률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3월 30일 필리핀 장례식 풍경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때문일까? 작년 필리핀의 내 자살률이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필리핀 통계청(PSA-Philippine Statistics Authority)에서 발표한 <2020년 필리핀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필리핀에서는 3,529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2019년(2,808명)보다 721명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대한민국의 자살 사망자 수가 13,799명(2019년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2019년 대비 25.7%나 증가한 것은 큰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필리핀 정부에서는 종교 단체 측에 자살을 막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종교단체에서는 종교적인 조언이나 지도가 아닌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 프로그램으로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과 함께 실업보험이나 빈곤층을 위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자살률의 증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도별 사망자수>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15-2019 평균 560,605 582,183 579,237 590,709 620,414 575,875 586,630 비록 자살로 인한 사망자의 수는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사망자 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2020년 필리핀의 총 사망자 수는 575,875명으로 2019년 대비 40,539명 감소했다. 특히 폐렴(30,145명 감소)과 호흡기 결핵(5,135명 감소)으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사망원인 1위에서 3위는 여전히 허혈성 심장질환과 암과 같은 종양, 그리고 뇌혈관질환이 차지하고 있다. 전체 사망자의 17.3%(99,680명)는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겨 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질환이다. 협심증, 심근경색증 또는 급사(심장돌연사) 등으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인의 식습관, 영양실조, 담배, 높은 공복혈당, 음주, 비만, 콜레스테롤 문제, 고혈압, 대기오염 등을 사망의 주요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0년 필리핀 사망원인통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 필리핀 통계청은 사망 원인(Cause of Death)을 크게 19개로 분류한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전자담배사용 관련 장애, 코로나19는 별도로 분류) 이 분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제10차 개정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 체계에 따른 분류로 사망 원인을 그 유사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실정에 맞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를 개발하여 쓰고 있다. - 필리핀 사람들의 사망원인 1위는 순환계통의 질환 이다. 허혈성 심장질환(Ischaemic heart diseases)과 뇌혈관 질환(Cerebrosvascular diseases), 고혈압질환(Hypertensive diseases) 등이 모두 순환계통의 질환이다. - 종양(암) 의 사망자(62,289명)와 뇌혈관 질환의 사망자(59,736명)는 2019년도보다 조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당뇨병(6.5%) 으로 인한 사망은 전년대비 7.8% 증가했다. - 폐렴(5.7%) 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대비 48.1% 감소했다. - 운수사고(Transport accidents) 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육상 교통사고 사망이 2019년 12,764건에서 2020년 8,000건으로 감소했다. 2020년 2019년 육상 운수사고 8,000 12,764 수상운수 사고 2 8 항공 및 우주 운수 사고 - 3 기타 불특정 운송 사고 15 24 합계 8,017 12,799 - 고의적 자해(intentional self-harm) 은 필리핀인의 사망 원인 27위로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자살로 인한 평균 사망자 수는 2,630명이다. - 가해(Assault) 로 인한 사망자는 6,008명으로 2019년(8,831명)보다 감소했다. - 패혈증(Septicaemia) 으로 인한 사망자는 4,472명에 이른다. 파상풍(Tetanus) 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도 459명이나 된다. - 263명이 광견병(Rabies) 으로 인한 사망했다. - 영양실조(Malnutrition) 로 인한 사망자는 3,962명으로 파악된다. - 말라이아(Malaria) 로 사망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6명이다. - 코로나19 로 인한 사망자는 27,967명로 사망원인 7위이다. 즉, 전체 사망자의 4.9%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했다. 2020년 사망원인통계 - 코로나19 관련 사망 필리핀 사망원인통계 주요 내용 - 총 사망자 수 : 575,875명 - 조사 기간 : 2020년 1월 ~ 2020년 12월 - 조사 방법 : 전국의 통계청 등록 사무소(Office of the City/Municipal Registrars)에 사망신고된 것을 취합 - 비고 : 표의 나타난 수치는 예비(Preliminary) 조사 결과로 해외 필리핀인의 사망이 포함되지 않은 예비 수치이며 추후 최종 수치의 변경이 가능함. 사망원인 분류 2020년 1 순환계통의 질환 211,860 2 신생물 (종양 등) 62,289 3 호흡계통의 질환 57,109 4 내분비, 영양 및 대사 질환 48,433 5 질병 및 사망의 외부 원인 33,939 6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30,602 7 코로나19 27,967 8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 23,857 9 소화계통의 질환 23,313 10 비뇨생식계통의 질환 20,171 11 출생전후기에 기원한 특정 병태 9,161 12 신경계통의 질환 7,833 13 혈액 및 조혈기관의 질환과 면역메커니즘을 침범한 특정 장애 4,759 14 선천기형, 변형 및 염색체이상 4,421 15 근골격계통 및 결합조직의 질환 4,073 16 피부 및 피하조직의 질환 3,374 17 임신, 출산 및 산후기 1,335 18 정신 및 행동 장애 1,244 19 귀 및 유돌의 질환 79 20 눈 및 눈 부속기의 질환 55 21 전자담배사용 관련 장애 1 합계 575,875 ※ 질병 및 사망의 외부 원인에는 운수사고, 추락사고, 익수사고, 화재사고, 중독사고, 자살, 타살 등이 있음.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신생물은 종양 등을 의미한다. 세포의 증식이 멈춰서 더는 커지지 않는 종양이 양성 종양이다. 흔히 말하는 암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음식 때문인지 당뇨병(Diabetes Mellitus)으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필리핀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지만, 사망자는 늘 나온다. 낙태는 생명의 말살 행위로써 형법에 따라 처벌된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웠던 탓인지 교통사고 사망자가 확실히 줄었다. KOICD 질병분류 분류센터.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자료는 대한민국 통계청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 미아가오의 공동묘지 - Miagao Cemetery Camposanto 필리핀 미아가오의 공동묘지 - Miagao Cemetery Camposanto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리핀 통계청(PSA) - Causes of Deaths in the Philippines (Preliminary): January to December 2020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색인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 및 질병명 검색 · Suicide cases rise in PH as pandemic drags o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정복자 레가스피와 그의 손자 살세도, 그리고 톤도 왕국의 공주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정복자 레가스피와 그의 손자 살세도, 그리고 톤도 왕국의 공주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9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비간 시티의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후안 데 살세도의 이름을 따서 살세도 광장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스페인 시절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필리핀 속 작은 스페인'이라고 불리는 비간 시티(Vigan City)에 가는 여행객이면 으레 방문하는 거리가 있다. 바로 크리솔로고 거리(Calle Crisologo)이다. 이 거리를 쭉 걸어 비간 대성당(성 바오로 대성당) 앞에 가면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라는 이름의 꽤 큰 광장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장은 왜 살세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후안 데 살세도 Juan de Salcedo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의 외손자 1549년 출생~1576년 사망 필리핀에 은근히 많은 지명 중 하나는 바로 살세도이다. 마닐라의 마카티 시티만 봐도 살세도 빌리지(Salcedo Village)와 살세도 공원(Salcedo Park), 살세도 거리(Salcedo Street) 등등 살세도란 이름이 붙은 곳이 꽤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세도는 스페인을 정복했던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의 외손자인 후안 데 살세도의 이름이다. 1549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 는 15살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를 따라 필리핀 원정에 나섰다고 한다. 살세도는 할아버지인 레가스피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572년 5월에 다시 루손섬 북쪽으로 떠났는데, 몇 달에 걸쳐 루손섬 북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비간 지역까지 와서 부하를 남겨두고 마닐라로 돌아간 그는 이 원정 여행에 대해 스페인으로 보고서를 보냈고, 이후 펠리페 2세에게 일로코스 비간 주변이 땅을 영지로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말라리아로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27세에 사망했다.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에 있는 산 아구스틴 성당 에는 레가스피를 비롯하여 당시 지배층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살세도의 유해도 산 아구스틴 성당에 있다고 한다. 각설하고, 정복자라고 불리는 후안 데 살세도에게는 좀 애틋한 일화가 있다. 수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20대 청년이었던 살세도가 필리핀의 토착왕국인 톤도 왕국의 공주였던 칸다라파 공주(Princess Kandarapa) 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칸다라파 공주는 마닐라의 파식강 주변을 통치하던 왕의 조카로 알려져 있는데, 살세도를 처음 만났을 때 꽃다운 18세였다고 전해진다. 22세의 청년 살세도가 파식강을 지나가다 우연히 공주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나 살세도 공주의 가족 그 누구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칸다라파 공주에게는 이미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 있었고, 레가스피는 귀한 손자가 원주민이 아닌 스페인 여성과 결혼하길 원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비밀리 결혼에 성공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칸다라파 공주는 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지만, 살세도가 갑자기 긴 원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살세도가 원정을 떠난 뒤의 이야기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 외손자가 원주민과 사랑에 빠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레가스피는 살세도가 칸다라파 공주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채 전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살세도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먼 길 떠난 남편에게 편지 한 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오해한 칸다라파 공주는 상심 끝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중에 원정에서 돌아온 살세도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퍼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살세도가 칸다라파 공주를 잊지 못해 사망했을 때까지 그녀가 편지를 쓸 때 주었던 말린 연꽃잎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비간 시티(Vigan City) 비간 시티의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비간 대성당(성 바오로 대성당). 정식 이름은 Metropolitan Cathedral and Parish of the Conversion of Saint Paul이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 보통 비칸 카테르랄(Vigan Cathedral)이라고 부른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Inquirer: Love and power among the ‘conquistador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창세신화: 대나무에서 나온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창세신화: 대나무에서 나온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6일 필리핀 창세신화,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7천 개가 넘는 섬나라 필리핀에는 어떤 창세신화가 있을까? 필리핀의 창세신화는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며, 문헌마다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필리핀 창세신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대나무에서 나왔다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 (Malakas at Maganda) 의 이야기로 대나무에서 나온 말라카스와 마간다로부터 세상의 시작되었음을 풀어나간다. 필리핀 비사야 지방에서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말라카스와 마간다 대신 시칼락(Sikalak)과 시카베이(Sikabay)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예 이야기 주인공 자체가 바뀌어서, 캅탄(Kaptan)이란 이름의 신이 대나무를 심었는데 이 대나무가 자라면서 반으로 나뉘어서 남자와 여자가 나타났다는 식의 설화도 있다. ⚑ 아래의 내용은 필리핀 창세신화인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이야기 중 하나를 가져다가 필인러브 운영자가 임의로 번역한 것입니다. ⓒNCCA Official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필리핀 창세신화 The Legend of Malakas and Maganda 🜹 필리핀어(타갈로그어)로 말라카스(Malakas) 는 '강한(strong)'을 의미한다. 마간다(Maganda) 는 '아름답다(beautiful), 사랑스러운(lovely), 좋은(good), 멋진(nice)'을 뜻한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시작될 때의 일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 그리고 카이트(Kite)라는 이름의 새만 살았다. 독수리 같기도 하고 솔개 같기도 한 모습의 카이트는 대단히 몸집이 큰 녀석이었다. 그 큰 몸집으로 온종일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땅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마땅히 쉴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세상을 돌며 쉴 곳을 찾던 카이트는 계략을 하나 짜냈다. 바로 하늘과 바다 사이에 싸움을 붙여보자는 것이었다. "하늘아, 하늘아. 너 그거 알아? 바다가 널 좀 우습게 알더라." "그거 정말이야?" "진짜지! 하늘이 널 가만두지 않겠다던데?" “뭐라고? 그렇다면 내가 먼저 바다를 혼내야겠어!" 카이트의 말을 듣고 하늘은 화가 잔뜩 나서 바다를 만나면 혼을 내주겠다고 소리쳤다. 이 이야기를 듣고 카이트는 바다에게 갔다. "바다야, 바다야. 너 그거 알아? 하늘이 널 혼내주겠다던데?" "뭐라고? 어디 감히? 하늘에게 내 힘을 보여주어야겠네!" 카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바다는 잔뜩 화가 나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고, 바다에는 파도가 거칠게 일어났다. 그러자 이를 본 하늘이 바다에 바위와 섬을 던져 바다가 솟아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늘과 바다의 싸움은 길고 길었고, 그 싸움 끝에 수많은 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이트가 바라던 대로 땅이 생긴 것이다. 카이트는 새로 생긴 땅에 내려와 쉬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하늘과 바다의 싸움을 붙여 만든 새로 생긴 땅은 대나무가 많은 땅이었다. 카이트가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대나무 줄기가 파도에 밀려와서 카이트의 발을 찔렀다. 화가 난 카이트는 부리로 대나무를 마구 쪼아댔고, 대나무는 반으로 쩍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대나무 마디 사이에서 필리핀 최초의 남자인 말라카스(Malakas)와 필리핀 최초의 여자인 마간다(Maganda)가 태어났다. 강하고 튼튼한 말라카스와 아름다운 마간다는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대나무 종족의 아이들은 게을렀고, 말라카스와 마간다는 오은영 박사님과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양육에 고심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아이들의 게으름에 잔뜩 화가 난 말라카스가 커다란 몽둥이를 찾아 휘두르며 아이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노여움이 무서웠던 아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을 쳐서 몸을 숨겼다. 일부는 집안에, 일부는 밖으로, 일부는 바다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때 집 안의 방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추장 이 되고, 부엌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노예 가 되었다. 그렇다면 벽난로 안에 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벽난로 속 아이들의 후손은 벽난로 속 그을름 때문에 피부가 검게 변해 필리핀의 원주민인 아에따족 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2022년에 주필리핀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에서 개최했던 전시회의 작품. 유명 동화에 한복을 입힌 작품으로 유명한 우나영 작가가 필리핀 전시를 위해 만든 작품으로 필리핀의 설화 말라카스와 마간다를 한국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사진 출처: NCCA Official - tigmamanukin · Mabel Cook Cole, Philippine Folk Tales . A. C. McClurg & Company. p. 187-188. · The Aswang Project: Examining the ‘First Man & Woman From Bamboo’ Philippine Myth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2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불라칸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필리핀에도 3·1독립선언서와 같은 독립선언서가 있을까? 필리핀에는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낭독되었던 필리핀 독립선언문이 있다. 이 독립선언서는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 했으며, 스페인어로 작성되어 있다. 필리핀 혁명정부는 독립선언 뒤 불라칸 말로로스에 있는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에서 의회를 구성했는데, 그때 구성된 말로로스 의회(혁명의회)에 의해 1898년 9월 29일 공식 비준 되었다. 한편, 지난 2024년 9월 14일에 독립선언서 사본이 마카티의 레온 갤러리에서 열린 경매에 등장하여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경매에 등장한 것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98인 중 한 명인 호세 바뉴엘로스(Jose Banuelo)가 만든 사본으로 'Birth Certificate of the Filipino Nation '라고 부르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했던 필리핀 독립선언문 초안의 사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매에서 1,140만 페소에 팔렸다. 필리핀 독립선언문 Acta de la Proclamacion de Independencia del Pueblo Filipino 필리핀 독립선언문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필리핀 독립선언문은 표지를 포함하여 총 21장으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그중 다섯 페이지는 필리핀 혁명정부의 대표 98인의 서명이니, 실제적으로는 15장 분량으로 작성된 셈이다. 필리핀 독립선언문이 이렇게 긴 것은 단순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리핀 독립선언문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하고 레가스피가 필리핀을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하여 긴 스페인 식민지 기간 필리핀인이 스페인으로부터 받았던 박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런데 스페인이 그동안 벌인 만행에 대한 내용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 적어둔 필리핀 국기의 의미이다. 국기의 흰색 삼각형은 카티푸난을, 세 개의 별은 루손, 민다나오, 파나이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태양의 광선은 혁명이 일어났던 여덟 개 지방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필리핀 국기에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성조기 색상을 사용한 이유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주리라 생각했었던 터라 "위대한 국가인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 보호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미국 국기의 색을 사용했다" 고 밝히고 있다. And, lastly, it was resolved unanimously that this Nation, already free and independent as of this day, must use the same flag which up to now is being used, whose design and colors are found described in the attached drawing, the white triangle signifying the distinctive emblem of the famous Society of the "Katipunan" which by means of its blood compact inspired the masses to rise in revolution; the three stars, signifying the three principal Islands of this Archipelago-Luzon, Mindanao, and Panay where this revolutionary movement started; the sun representing the gigantic steps made by the sons of the country along the path of Progress and Civilization; the eight rays, signifying the eight provinces-Manila, Cavite, Bulacan, Pampanga, Nueva Ecija, Bataan, Laguna, and Batangas - which declared themselves in a state of war as soon as the first revolt was initiated; and the colors of Blue, Red, and White, commemorating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North America, as a manifestation of our profound gratitude towards this Great Nation for its disinterested protection which it lent us and continues 🜹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한 독립선언문의 영문 번역본 전체 보고 싶다면, 미시간 대학교 도서관(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 사이트 에서 이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203페이지에서 206페이지 사이를 보면 된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필리핀 독립선언서의 작성자,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불라칸의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리핀 독립선언문 이미지 출처: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June 12, 1898 · 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 The laws of the first Philippine Republic (the laws of Malolos) 1898-1899. / Compiled & edited by Sulpicio Guevara . · Filipino Librarian: The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 INQUIRER: 1898 copy of PH Declaration of Independence up for auction · The Philippine Star: Copy of declaration of Philippines independence sold for P11.4 million · GMA: How Leon Gallery got a hold of the copy of declaration of Philippine independence for auctio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대학교: 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 필리핀 대학 순위 vs 한국 대학 순위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대학교: 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 필리핀 대학 순위 vs 한국 대학 순위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11월 27일 UP대학교(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필리핀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는 UP대학교는 세계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최근 세계대학평가 기관인 쿠라쿠렐리 시몬스(QS. Quacquarelli Symonds)에서 '2021년 QS 세계대학평가(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1)'를 발표했다. 세계 대학 1위는 올해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서는 서울대학교가 전체 순위에서 37위(아시아 지역 내 대학 순위에서는 14위)를 차지했다. 필리핀의 대학교는 UP대학교(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을 비롯하여 아테네오(Ateneo de Manila University), 라살(De La Salle University), 산토 토마스 대학(UST-University of Santo Tomas) 네 곳이 상위 1000위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QS 세계대학평가와 관련하여 필리핀 신문을 보면 한결같이 세계 순위보다는 아시아 순위를 중심으로 기사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올해 UP대학의 세계 순위는 396위로 작년(356위)보다 훨씬 못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대신 아시아 대학 순위는 69위로 작년(72위)보다 3계단 올랐다. 필리핀 내 대학 중 아시아 지역 탑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대학교는 UP대학이 유일하다. < UP대학교 세계대학평가 순위 변화 > 순위 2021년 396위 2020년 356위 2019년 384위 2018년 367위 2017년 374위 2016년 401-410위 2015년 367위 2014년 380위 2012년 348위 🜹 QS 세계대학평가(QS World University Rankings ):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에서는 1994년부터 매년 전 세계 상위권 대학들의 랭킹을 매겨 발표하고 있는데, 2010년부터 아시아권의 순위표도 발표하고 있다. QS에서는 전 세계적 3천 개 이상의 대학들을 대상으로 학계에서의 평판을 중심으로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산업계평가, 연구 논문 수, 유학생 비율 등을 기준으로 각 대학을 평가한 뒤 1,000개의 대학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 QS에서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대학을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 순위를 발표했는데, 대상이 된 대학 중 상당수는 중국(124개), 인도(106개), 일본(98개), 한국(85개)에 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대학 1위는 싱가포르국립대학교이다. 필리핀 대학 순위 자료 출처: 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필리핀 대학 순위-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한국 대학 순위 자료 출처: 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한국 대학 순위-2021년 QS 세계대학평가 필리핀 두마게티 실리만 대학교(Silliman University) 필리핀 두마게티 실리만 대학교(Silliman University)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QS Global World Ranking 2021 (2020년 11월 25 일 발표 자료) · QS Asia University Rankings 2021 · UP makes it to top 100 of 2021 QS Asian university rankings · UP takes 69th place in top 100 universities in Asia lis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으로 10년 후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으로 10년 후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5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1935년 즈음의 필리핀 마닐라의 산타 크루즈 교회 필리핀은 1898년부터 1946년까지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902년부터 1935년까지 미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독을 통해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 라는 형태로 필리핀을 관리했다. 그러다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지배 방식이 뚜렷이 바뀌게 된 것은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필리핀 독립법 Philippine Independence Act 타이딩스-맥더피법 Tydings-McDuffie Act 1934년 3월 24일, 필리핀 내 자치정부 수립과 10년 후 완전한 독립을 약속하는 필리핀 독립법(Philippine Independence Act) 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법안 제안자인 밀러드 타이딩스(Millard Tydings) 상원의원과 존 맥더피(John McDuffie)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타이딩스-맥더피법(Tydings-McDuffie Act) 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에 이어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하는 법으로 코먼웰스(Commonwealth)가 출범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7월 4일에 필리핀을 독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필리핀 독립법(타이딩스-맥더피법)에는 필리핀 독립 이후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설탕과 코코넛 오일 등에 대한 관세와 필리핀 이민자 수 등에 내용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은 필리핀에 관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농부들은 필리핀 농산물에 대한 관세 면제와 필리핀 이민자들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필리핀에게 빠르게 독립을 부여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법)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을 받은 뒤 승인을 위해 필리핀 상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1935년 상원의 승인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다. 1935년 11월 15일, 필리핀이 10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독립국이 된다는 것을 약속하는 타이딩스-맥더피법에 따라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 가 폐지되고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가 세워졌다. 여전히 미국의 보호 아래 있기는 했지만 선거를 통해 마누엘 케손(Manuel Quezon) 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의회를 중심으로 국가의 독립을 추구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의 발발로 인해 필리핀 자치정부는 1946년 7월 4일이 되어서야 필리핀의 독립을 실현할 수 있었다. 1930년대 마닐라 시청 주변 풍경 - 사진 출처: John Tewell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HISTORY: The Philippine Independence Act (Tydings-McDuffie Law) · Encyclopedia Britannica: Tydings-McDuffie Act · Manila City Hall Clock Tower under construction, Philippines, 1930s 사진 출처: John Tewell · Santa Cruz Church in Manila, Philippines 사진 출처: John Tewell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바탄 죽음의 행진과 사맛산 십자가(Mount Samat National Shrine)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바탄 죽음의 행진과 사맛산 십자가(Mount Samat National Shrine)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8년 1월 19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사맛산 십자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4월이었다. 흰 구름 속으로 비는 한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못한 상황이라 탈진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더위 속에서 걷는 일에 지친 병사들이 길거리에 쌓여갔다. 걷거나 혹은 죽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죽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만큼 행군은 고되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총칼은 무서웠고, 두려움은 병사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길의 끝에 간다고 해도 지금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위와 먼지 속에서 100km의 길은 죽음의 길, 그 자체였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앙헬레스(Angeles)로 가기 전에 산페르난도(San Fernando)에서 루손섬 서쪽으로 빠지면 과구아(Guagua) 지역을 지나 바탄(Province of Bataan)이라는 곳이 나온다. 바탄(바타안)에는 크게 유명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필리핀에서 2차 세계대전 전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1941년 12월 8일의 일이다. 일본군이 필리핀의 미군기지를 공습 했다. 일본군에게 있어 필리핀은 남태평양 침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보였고, 전쟁은 미치광이를 만들어 내곤 하는 법이니 일본군의 공격은 거세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기 이전부터 미국에서는 이미 관련 정보를 입수하였고, 100만 갤런에 달하는 휘발유를 바탄에 비축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기세에 미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이 그의 부대를 바탄으로 이동시켰지만, 전세는 역전되지 못했다. 일본군이 바탄을 포위하고 전면 공격을 해왔고, 바탄 전투(1942년 1월 7일 ~ 4월 9일) 는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1942년 4월은 바탄 전투에서 잡힌 미군과 필리핀군에게 죽음의 4월이 되었다. 일본군의 전쟁 포로 학대 사례로 늘 언급되는 데스 마치,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이 시작된 것이다. 7만 명에 달하는 필리핀군과 미군은 바탄 반도 끝에서부터 딸락의 포로수용소까지 무려 100km에 달하는 거리를 강제 행군해야만 했다. 고문에 가까운 행군은 비극 그 자체였다. 4월 더위 속 물 한 병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행군으로 헤아릴 수 없는 군인들이 죽어 나갔고, 바탄 일대는 지옥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바탄에 가면 평화로운 시골 풍경만을 보여준다. 공장지대가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도시화가 덜 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가로운 인상이다. 하지만 죽음의 행진을 했었던 경로에는 곳곳에 데스 마치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어렵지 않게 죽음의 행진이 있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맛산 십자가(Mount Samat Cross)와 같은 전쟁유적지가 제법 깔끔하게 운영 관리되고 있다. 그 잔인했던 4월 바탄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라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었다.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 Mount Samat National Shrine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은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이곳은 내국인(필리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를 구분하여 받는데, 내국인은 30페소, 외국인 50페소이다. 전쟁기념관이라고는 하지만 탁 트인 주변 풍경이 멋져서 방문해 볼만하다. ■ 주소: Mount Samat Rd, Pilar, Bataan ■ 위치: 필리핀 바탄(바타안) ■ 운영시간: 오전 8시~오후 4시 (월요일 휴관) ■ 입장료: 50페소(2022년 기준) 🜹 바탄(Bataan)은 좀 길게 바타안이라고 발음하기도 하고, 짧게 바탄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그래서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을 바타안 죽음의 행진으로 적기도 한다. 필리핀 바탄(바타안). 멀리서도 사맛산 십자가(Mount Samat Cross)가 보인다.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 입구 Mount Samat National Shrine 건물 안에서 바탄 전투에 대한 안내문을 읽을 수 있다. 바타안의 사맛산 꼭대기에 세워진 이 십자가는 그 높이가 무려 90m가 넘는다. 2차 대전 중에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죽은 필리핀 군인들을 애도하는 위령탑으로 십자가 주변으로 전쟁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바타안 사맛산 십자가 Memorial Cross 내부에는 작게 휴게소 시설이 있다. 이곳에서는 바타안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역 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마닐라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rovince of Bataan : Mt. Samat National Shrine · Mt. Samat FTEZ - Mt. Samat Flagship Tourism Enterprise Zone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2022년 9월 12일부터 야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2022년 9월 12일부터 야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9월 12일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필리핀 내 각 지방정부에서는 서둘러 새로운 조례를 발표해야만 했다. 바로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에 대한 조례였다. 그리고 마카티 시티의 조례(City Ordinance No. 2020-089)에 따르면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은 무려 1천 페소에 달한다. 세 번 어겼을 경우 벌금은 무려 5천 페소로 늘어난다. 그런데 드디어 마스크 착용 의무가 2년여 만에 해제 된다.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이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의무를 해제하고 자율화하겠다고 명시한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백신접종자인 경우 바깥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게 된 것이다. 실외에서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는 것은 올 연말이나 되어서야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필리핀,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 시행일 : 2022년 9월 12일 ■ 시행 근거 : Executive Order No. 03 ■ 대상자 : 백신예방접종완료자 ■ 비고 - 야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자율화 -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고령자, 환자, 기저질환자 등은 여전히 마스크 착용의 의무가 있음 - 지방정부에 따라 각기 다른 규칙을 적용하게 될 수도 있음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문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문 필리핀 지프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지프니를 탈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에 대한 안내문 사리사리 스토어에 붙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문 마닐라공항 터미널2 필리핀 마닐라 올티가스의 문구점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마닐라의 상가 식당에 붙은 안내문 마닐라의 빌딩 앞에 붙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문 필리핀 안티폴로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마카티 시티(Makati City): City Ordinance No. 2020-089 · Executive Order No. 03 20220912-EO-03-FRM .pdf PDF 다운로드 • 1.48MB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팔라완의 타본동굴(Tabon Caves)과 인류학자 로버트 폭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팔라완의 타본동굴(Tabon Caves)과 인류학자 로버트 폭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5일 필리핀 팔라완의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차로 3~4시간 정도 달리면 퀘존(Quezon)이란 곳에 갈 수 있다. 팔라완의 퀘손(퀘존)에는 관광지가 많지는 않지만, 매우 유명한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필리핀 문명의 요람 이라고 불리는 타본동굴 이다. 로버트 B. 폭스 Robert Bradford Fox 1918~1985 필리핀 국립 박물관에서 일했던 인류학자 중 로버트 폭스라는 이가 있다. 그는 1958년부터 필리핀 국립 박물관 발굴팀과 함께 필리핀 내 유적지 발굴에 주력했는데, 1960년대에는 특히 팔라완 지역의 유적지 발굴에 힘썼다. 그가 발견한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1962년 5월에 발굴된 타본 동굴(Tabon Caves)이다. 타본 동굴에서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머리뼈와 턱뼈가 발견된 것이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이지만, 47,000년 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타본 동굴 일대의 집중 탐사에 들어가게 된 로버트 폭스는 타본원인(Tabon Man)의 뼛조각과 함께 석기 도구와 토기 등 각종 문화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초기 인류가 집단 주거를 하였음을 밝혀냈다. Quezon Memorial Shrine 필리핀 문명의 요람, 팔라완 타본 동굴 Tabon Caves 타본 동굴은 4만 7천 년에 살았던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이 나온 동굴로 한때 필리핀 최초 인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던 곳 이다. 타본 동굴이라고 하면 하나의 커다란 동굴을 연상하게 되지만, 실제 타본 동굴은 2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석기 도구와 사후 세계로 떠나는 사망자의 얼굴이 섬세하게 묘사된 매장용 항아리가 발굴 되면서 '필리핀 문명의 요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타본 원인(Tabon Man)의 유골은 그 뒤 2007년 칼라오 동굴(Callao Cave)에서 6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칼라오 원인(Callao man)이 발견되면서 '필리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간의 뼈'란 타이틀을 뺏겼지만, 그렇다고 그 신비로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 지역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동굴 중 일부는 일반에게 공개하기도 한다. 타본 동굴의 이름은 이 지역 내 사는 타본 새(Philippine megapode)의 이름에서 따왔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유적지: 67,000년 전 호빗과 같은 인류가 살았던 곳, 칼라오 동굴(Callao Cave) 기원전 47,000년 전 타본 원인의 생활 모습을 묘사한 디오라마 - 마닐라 마카티에 있는 야얄라 뮤지엄 소장품 아이가 석기 도구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때 벌써 로프 등과 같은 도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he Tabon Cave Complex and all of Lipuun · newscientist: Stone tools in Filipino cave were used to make ropes 40,000 years ago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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