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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으로 10년 후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

⚐ 최종 업데이트:

2024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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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즈음의 필리핀 마닐라의 산타 크루즈 교회

필리핀은 1898년부터 1946년까지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902년부터 1935년까지 미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독을 통해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라는 형태로 필리핀을 관리했다. 그러다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지배 방식이 뚜렷이 바뀌게 된 것은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필리핀 독립법

Philippine Independence Act

타이딩스-맥더피법

Tydings-McDuffie Act

 


1934년 3월 24일, 필리핀 내 자치정부 수립과 10년 후 완전한 독립을 약속하는 필리핀 독립법(Philippine Independence Act)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법안 제안자인 밀러드 타이딩스(Millard Tydings) 상원의원과 존 맥더피(John McDuffie)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타이딩스-맥더피법(Tydings-McDuffie Act)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에 이어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하는 법으로 코먼웰스(Commonwealth)가 출범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7월 4일에 필리핀을 독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필리핀 독립법(타이딩스-맥더피법)에는 필리핀 독립 이후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설탕과 코코넛 오일 등에 대한 관세와 필리핀 이민자 수 등에 내용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은 필리핀에 관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농부들은 필리핀 농산물에 대한 관세 면제와 필리핀 이민자들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필리핀에게 빠르게 독립을 부여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법)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을 받은 뒤 승인을 위해 필리핀 상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1935년 상원의 승인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다.


1935년 11월 15일, 필리핀이 10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독립국이 된다는 것을 약속하는 타이딩스-맥더피법에 따라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가 폐지되고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가 세워졌다. 여전히 미국의 보호 아래 있기는 했지만 선거를 통해 마누엘 케손(Manuel Quezon)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의회를 중심으로 국가의 독립을 추구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의 발발로 인해 필리핀 자치정부는 1946년 7월 4일이 되어서야 필리핀의 독립을 실현할 수 있었다.


1930년대 마닐라 시청 주변 풍경 - 사진 출처: John Tewell

· PHILIPPINE-HISTORY: The Philippine Independence Act (Tydings-McDuffie Law)

· Encyclopedia Britannica: Tydings-McDuffie Act

· Manila City Hall Clock Tower under construction, Philippines, 1930s 사진 출처: John Tewell

· Santa Cruz Church in Manila, Philippines 사진 출처: John T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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