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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역사: 1872년, 곰부르자(GOMBURZA) 신부의 공개 처형과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872년, 곰부르자(GOMBURZA) 신부의 공개 처형과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4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비간에 있는 호세 부르고스(Jose Burgos)의 동상. 호세 부르고스는 필리핀 성직자의 평등을 위해 싸우다가 1872년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필리핀 식민지 시대 가톨릭 신부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 그 이상이었다. 스페인에서 파견된 관료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원주민(필리핀인)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수도사들은 가톨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원주민의 언어를 배웠으니, 스페인 지배계층과 원주민인 필리핀인 사이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은 가톨릭 신부에게 맡겨졌다. 가톨릭교회에서 스페인 정부로부터 거대한 규모의 토지를 받아 소작농에게 임대하면서 경제적인 영향력도 커졌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말기가 되면서 가톨릭 사제는 필리핀 사회에서 가장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메스티조(메스티소) 혼혈인과 필리핀인이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가 되기 시작하면서 교회 내부에서 차별의 문제가 생겨났다. 18세기 이후 스페인에서는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메스티조와 필리핀인도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장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기존의 성직자들이 반겼을 리가 없다. 필리핀계 성직자에게 교회에서의 권력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가톨릭교회는 메스티조와 필리핀인은 주임 신부로 임명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들을 차별했다. 메스티조가 성직자가 되는 것을 아예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가톨릭 수사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해지자 마리아노 고메즈, 호세 부르고스, 하신토 자모라 신부는 교회 안에서 차별을 철폐하는 교회 개혁 운동을 벌였다. 세 신부 모두 필리핀인, 중국인, 스페인인 등의 혈통을 가진 메스티조(혼혈인)로 성당 내에서 상당히 높은 품계까지 오른 상태였지만, 필리핀인 성직자(native clergy)의 권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 신부의 교회 개혁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카비테 반란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한 것이다. 리잘파크에 있는 GOMBURZA Monument. 곰부르자의 처형 장소를 표시하는 기념물이다. 곰부르자 신부 처형 GOMBURZA 1872년 2월 17일 1872년 1월 20일 마닐라의 근교에 있는 카비테의 포트 산 펠리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이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여 일어난 단순한 반란이었는지 아니면 스페인 식민지 정부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있는 반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마다 의견을 달리하지만, 포트 산 펠리페에서 일하던 필리핀인 노동자들이 세금과 강제 노동을 면제받을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며 분노하여 봉기한 것만은 확실하다. 약 200명의 메스티조(혼혈인) 군인과 노동자들이 모여 스페인 장교를 죽이고 순식간에 요새를 장악했지만, 지원군이 없는 상태였던 터라 스페인군이 요새를 포위하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카비테 반란(1872 Cavite mutiny)은 빠르게 진압되었지만, 스페인 수도사들은 이 사건을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던 호세 부르고스 신부 및 메스티조 신부들을 제거할 기회로 삼았다. 1872년 2월 17일, 마리아노 고메즈, 호세 부르고스, 하신토 자모라 신부는 카비테 반란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처형된다. 이들이 카비테 반란을 주도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급하게 진행된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교살형(Garrote)을 당했다. 세 명의 신부가 바굼바얀(현재의 리잘파크)에서 목졸라 처형되었다는 소식은 곧 빠르게 퍼져나갔고, 필리핀 사람들은 마리아노 고메즈(Mariano GOM ez), 호세 부르고스(José BUR gos), 하신토 자모라(Jacinto ZA mora) 세 신부의 이름을 앞 글자를 따 곰부르자(GOMBURZA)라고 불렀다. 곰부르자 신부의 묘지는 파코묘지(현재의 파코공원) 에 있다. 그런데 곰부르자 신부는 정말 카비테 반란을 주도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 과정 없이 스페인 신부들의 증언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곰부르자의 순교 사건은 필리핀 민족의식을 자극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하고자 곰부르자 신부를 처형했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곰부르자 신부의 처형은 필리핀인들이 스페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편, 1891년 호세 리잘 은 《놀리 메 탄헤레(Noli me Tangere)》의 속편에 해당하는 소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El filibusterismo)》 을 출판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풍자화하고 종교적 위선을 폭로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호세 리잘은 소설 서문에 억울하게 처형된 곰부르자(GOMBURZA) 신부에게 책을 바친다고 적었고, 이 책을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그리고 필리핀 내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호세 리잘의 놀리 메 탄헤레(Noli me Tangere). 식민지의 억압적인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호세 리잘의 책은 스페인으로부터 금서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NHCP): The Two Faces of the 1872 Cavite Mutiny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 NATIONAL MUSEUM ILOCOS EXHIBITIONS · Harvard Divinity School: Catholicism in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스페인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했던 장소, 카비테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스페인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했던 장소, 카비테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7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생가 필리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삼십 대 중반에 처형된 호세 리잘이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와 다르게 94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였던 1869년에 태어나 미국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뒤 필리핀 독립 후인 1964년에 사망했는데, 죽기 전에 카비테 카윗에 있는 자신의 집을 필리핀 정부에 기증했다. 그의 집은 필리핀 역사에서 매우 중요했던 사건이 있었던 장소인 터라 필리핀 정부에서는 아기날도의 집을 아기날도 쉬라인 앤 뮤지엄(Aguinaldo Shrine and Museum) 이란 이름으로 박물관으로 꾸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생가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아기날도(Carlos Jamir Aguinaldo)가 카비떼의 카윗에 처음 집을 지은 것은 1845년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니파헛 형태의 나무집이었지만, 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1949년에 집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새로 지은 집은 석회석과 나무를 주로 사용했는데, 당시 부유층이 흔히 그러하였듯 카피즈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넓은 창문을 만들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 1898년 6월 12일에 이 집 거실에서 스페인으로부터의 필리핀의 독립선언을 하였으며, 필리핀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로는 이 집에서 대통령 업무를 보기도 했다. 죽은 뒤에는 건물 뒤 정원에 그의 무덤이 마련되기도 했다. 비밀통로가 있는 가정집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필리핀-미국 전쟁 중 미군에게 체포된 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카비테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리고 1919년에서 1921년까지 3년 동안 대대적인 집수리를 했다. 은둔생활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구하기 어렵다는 고급 목재를 사용해서 집을 수리했는데, 건물이 상당히 견고하게 수리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 식민지 시절 주택의 특징과 함께 필리핀 상류층 가정의 주거 형태를 엿볼 수 있다. 1,324㎡(약 400평) 규모의 건물은 본관을 중심으로 중앙 탑과 동쪽의 가족 주거지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아기날도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본관 메인 홀에서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곤 했다고 전해진다. 가족 주거지였던 구역으로 가면 침실과 주방, 식당, 거실 등의 공간을 만날 수 있는데, 아기날도와 그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침대며 옷장, 흔들의자 등의 가구와 목제 공예품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집은 내부 설계가 상당히 흥미롭다. 저택 안 구석구석에 비밀 장소가 대단히 많아서 언제든 피신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아기날도의 침실로 가는 메인 통로 쪽을 보면 선반 벽으로 위장된 비밀통로 시설이 되어 있는 식이다. 주방 식탁 아래도 비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폭격 시 사용할 수 있도록 대피소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 직원이 안내에 따르면 의자나 캐비닛 등 가구에도 비밀 보관함 장치가 곳곳에 되어 있는데 중요 문서나 무기 등을 숨기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했겠지만, 집 안 구석구석에 있는 비밀 장치를 보면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삶도 마냥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인디펜던스 발코니(Independence Balcony) 인디펜던스 발코니 6월 12일에 필리핀에 있다면 마닐라 근교에 있는 카비테의 카윗(Kawit)에 가면 좀 색다른 행사를 볼 수 있다. 바로 필리핀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기념행사다. 해마다 행사 규모는 다르지만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저런 행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필리핀 특유의 전통적인 퍼레이드와 함께 진행되어 꽤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중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오전에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국기게양식 행사이다. 이 국기게양식은 필리핀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서 거행되는 중요한 행사이다. 필리핀 정부에서 독립기념일에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의 인디펜던스 발코니(Independence Balcony)에서 국기게양식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이 발코니에 상당한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따르면, 1898년 6월 12일에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카티푸난의 독립운동가들이 바로 이곳 카비테의 집에서 모여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가 작성한 필리핀 독립선언문 을 낭독하고 필리핀 국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훌리안 펠리페(Julian Felipe)가 작곡한 필리핀 국가 행진곡(Marcha Nacional Filipina) 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도 이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898년 당시에는 집에 돌출개방형 발코니가 없었고 거실 창문에서 독립을 외쳤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참고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1920년대에 대대적인 건물 수리를 하였는데, 그때 발코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독립 선언의 장소를 명확히 각인시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는데, 그래서인지 필리핀 독립선언에 대한 이미지를 보면 대부분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발코니 바깥에서 국기를 흔드는 이미지이다. 필리핀 지폐 속 그 집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독립운동가들이 카비테의 집에서 모여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필리핀 국기를 흔드는 모습은 구권 2페소 지폐와 5페소 지폐 도안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림 속 필리핀 국기의 크기가 매우 큰 것을 볼 수 있는데 과장되어 그려진 것이 아니다. 독립 선언 시 사용되었던 필리핀 최초의 국기는 실제 식탁보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크게 만들어졌다. 아기날도의 부탁을 받고 홍콩에서 마르셀라 아곤실로 가 바느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카비테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Aguinaldo Shrine and Museum(Aguinaldo House)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은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태어나고 생활하였던 생가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미국에 항복하여 충성 선서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반미 심리전에 이용당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진정한 국가 영웅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있어서도 필리핀 독립 선언이 있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생가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이 집은 에밀리오 아기날도 개인 소유였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필리핀 정부에서 정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죽기 전, 1963년 3월 22일에 93세의 생일을 맞아 정식으로 필리핀 정부에 기증한 것이다. 필리핀 정부는 아기날도 사망 후 1964년 6월에 공화국법 4039호(Republic Act 4039)에 따라 아기날도의 저택을 국가 유적지로 선언했고, 국립박물관청(National Museum agency)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1972년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로 시설 운영권이 공식적으로 양도되었다.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에서는 1층을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시청각실 등의 시설을 만들어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필리핀에 있는 그 어떤 역사유적지보다도 방문객이 많은 유적지로 손꼽힌다. 건물 뒤쪽으로 정원에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무덤도 있다. ■ 주소: Barangay Kaingen, Kawit, Cavite ■ 위치: 필리핀 카비테 카윗 / 마닐라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 ■ 운영시간: 오전 9시 ~ 오후 4시(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필리핀 카비테 카윗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박물관 입구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커다란 정원을 가진 저택이다.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전시실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혁명 정부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전시실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전시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실제 사용했던 가구를 볼 수 있다. 침실 비밀통로가 있는 복도 서류 등을 숨길 수 있도록 가구에 비밀 보관함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한다. 저택 뒤에는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무덤이 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무덤 집 앞 공원(Freedom Park)에 있는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청동상 Freedom Park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NHCP Museo ni Emilio Aguinaldo · The Filipino Spirit: The Aguinaldo Shrine · Real Living: 6 Things You Need To Know About The Aguinaldo Shrine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보니파시오에 있는 마닐라 미군 묘지 추모 공원(Manila American Cemetery)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보니파시오에 있는 마닐라 미군 묘지 추모 공원(Manila American Cemetery)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3월 3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미군묘지 추모 공원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직후 미국에서는 필리핀 국토를 필리핀 정부에 반환했는데, 군사기지가 있는 지역은 제외되었다. 1949년 5월 14일이 되어서야 타귁의 윌리엄 맥킨리 요새(Fort William McKinley)는 필리핀 정부 소유로 반환되었다. 요새를 반환하기 전인 1948년, 미국에서는 맥킨리 요새에 묘역을 조성하고 2자 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묘지를 만들었다. 이 묘지가 바로 타귁시티에 있는 마닐라 미군묘지 추모 공원(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이다. 이 추모 공원은 152에어커(약 18만 6천 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필리핀 정부가 아닌 미국의 전쟁기념물위원회(ABMC)에서 묘지의 운영 및 관리 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묘지 안을 자세히 보면 미국 성조기가 눈에 띄는데, 성조기 하강식도 매일 진행된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다른 시설과 다르게 미군묘지 추모 공원은 누구에게나 방문이 개방되어 있는데, 너무 넓어서 모두 돌아보기는 어렵고 보통 중앙에 있는 Wall Of Missing이라는 이름의 원형의 무명용사 기념물과 채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안내문 등을 중심으로 관람하게 된다. 묘역은 중앙의 기념물을 중심으로 나선형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초록색 공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17,000여 개의 흰색 대리석 십자가의 주인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전쟁기념물위원회(ABMC)에 따르면 16,859명에 이르는 미군 전사자가 이곳에서 쉬고 있다고 한다. 흰색 십자가가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가끔 마닐라 여행 중 방문해 볼 만한 곳으로 미군묘지가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방문할 정도의 시설은 아니다. 물론 이곳 미군묘지가 필리핀 내 그 어떤 묘지보다 상당히 쾌적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필리핀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파시오 지역에 있다면 잠깐 들러볼 만하지만, 말라떼나 파사이 쪽에서 미군 묘지 하나를 보러 일부러 시간을 낼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이곳 미군묘지를 놓고 '필리핀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영혼'이라는 식의 설명을 붙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곳에 안장된 군인 대부분은 미국인이며 이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마닐라 미군묘지 추모 공원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마닐라 미군묘지 추모 공원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 주소: Manila American Cemetery. McKinley Road, Fort Bonifacio 1634 Philippines ■ 위치: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 ■ 입장료: 무료 ■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마닐라 미군묘지(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는 1월 1일과 12월 25일(크리스마스)에만 이틀만 문을 닫는다. 입구에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오른쪽에 보이는 녹색 공원이 마닐라 미군묘지이다. 사진 중앙의 왼쪽 부분에 있는 건물이 바로 필리핀 대사관 건물이다.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마닐라 미군묘지 입구 초록색 잔디 위에 빽빽하게 늘어선 십자가만 없다면 공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조경이 잘 되어 있다.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BMC(American Battle Monuments Commission): Manila American Cemetery · U.S. EMBASSY IN THE PHILIPPINES: MANILA AMERICAN CEMETERY AND MEMORIAL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보니파시오, 32번가에 세워진 예술 작품 Ang Supremo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보니파시오, 32번가에 세워진 예술 작품 Ang Supremo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0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Ang Supremo: Andres Bonifacio Monument in BGC 보니파시오에서 세인트룩스 메디컬센터 근처 32번가에 가면 높이가 3m 정도 되는 예술 작품을 하나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난 2020년 작고한 예술가 빌라누에바(Ben-Hur G. Villanueva)가 필리핀의 국가 영웅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으로 앙 수프레모(Ang Supremo)라는 작품명을 가지고 있다. 수프레모(Supremo)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활약했던 필리핀의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카티푸난(KKK)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에 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onifacio Global City, BGC) 의 이름이 필리핀의 국가 영웅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BGC에서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 7월에 보니파시오에 이 작품을 설치했다. 그런데 작품을 보면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외에도 2명이 함께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길쭉한 대나무 창을 든 남자는 카티푸난(KKK)의 동료 를 나타낸다. 그리고 깃발을 든 여성은 보니파시오의 아내였던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Gregoria de Jesús) 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가 표현된 것은 그녀가 단순히 보니파시오의 아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 역시 카티푸난(KKK) 일원으로 여성 단원들의 지도자로 활동했었다.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는 카티푸난의 문서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는데, 필리핀 총독부의 압수 수색을 피하고자 밤새 칼레사 말마차를 타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런데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무기가 아닌 구겨진 종이를 들고 있음이 눈에 띈다. 호세 리잘과 같은 온건한 방법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카티푸난(KKK)을 조직하여 무장혁명을 통해 필리핀의 독립을 이루고자 한 사람이 바로 보니파시오이다. 그런 그가 방망이도 아닌 종이를 들고 있음이 의아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종이는 다름 아닌 세둘라(cedula)이다. 세둘라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매년 거주세를 납부하면 발급받던 종이로 식민지 주민임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표현한 것은 1986년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무장혁명을 시작할 때 보니파시오의 모습인 셈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푸가드 라윈의 통곡 혁명 당시 카티푸난에서는 세둘라(cedula)를 찢어버림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겠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편, 빌라누에바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보니파시오가 국가 영웅이 된 것은 무장혁명을 시도했기 때문이 아니라서 손에 세둘라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작품을 만들다고 설명했다. 보니파시오가 필리핀 독립운동의 지도자(수프레모)가 된 것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Ang Supremo: Andres Bonifacio Monument in BGC 앙 수프레모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기념물 Ang Supremo: Andres Bonifacio Monument in BGC ■ 주소: Along 32nd St cor, Rizal Dr, Taguig, Metro Manila ■ 위치: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세인트룩스 메디컬센터 근처에 작품이 세워져 있다. 깃발을 든 여성은 보니파시오의 아내였던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Gregoria de Jesús)이다. 구겨진 세둘라 종이를 들고 있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Ang Supremo: Andres Bonifacio Monument in BGC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star : Identifying with the Supremo · Fort Bonifacio Development Corporation: Ang Supremo By Ben-Hur G. Villanueva · Andrés Bonifacio, Katipunan Supremo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50년,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한국전쟁에 참전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50년,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한국전쟁에 참전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9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타귁에 있는 국립 영웅묘지(마닐라 국립묘지)의 국전 참전비 2024년은 한국·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다. 지금이야 193개국과 수교를 맺은 상태이지만, 1949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수교를 맺은 국가는 대만, 미국, 영국, 프랑스, 필리핀 5개국에 불과했다. 1949년 3월 3일 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한 필리핀은 이듬해인 1950년에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인 7,420명을 파병했다. 필리핀 한국 원정군 펩톡(PEFTOK) P hilippine E xpeditionary F orces to K orea 필리핀은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이다. 한국과 필리핀의 인연을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전쟁 때 필리핀에서 선뜻 군인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식의 이야기인데, 실제 필리핀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아시아 국가 중에선 가장 먼저 6·25전쟁 파병을 결정 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인 7,420명의 전투병을 보냈다. 모두 5개 전투대대 7,420명이 1950년부터 5년간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싸웠으며, 112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당했으며 16명이 실종되고 41명이 포로가 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Philippine Expeditionary Force to Korea) 이야기를 하면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지금 하느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7천 명이 넘는 군인을 선뜻 한국으로 보내기에는 필리핀 국내 상황 역시 좋지 못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46년 7월 4일에 이르러서야 긴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필리핀은 1950년 당시 공산주의 게릴라 조직인 후크발라합(Hukbalahap) 때문에 정치적으로 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독립 4년에 지나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은 유엔의 한국전 참전 결정이 내려지자 후크발라합 토벌 작전에 투입된 10개 대대 가운데 정예부대인 1개 대대를 차출하여 한국으로 파병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하여 군대를 파병할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950년 9월 19일 지상군 1개 대대 전투단으로 구성된 필리핀군 전투대대 1,367명은 미 수송선편으로 필리핀을 떠났고,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부산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부산항에 도착한 이들은 열흘 간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후 10월 1일부터 미25사단에 배속되어 바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전곡 진상리전투, 연천 율동전투, 적성 설마리 전투, 철원 에리고지전투(이리고지 전투), 양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은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엔군 사령부 경계 지원 임무와 한국의 재건을 위한 작전을 실시하다가 1955년 5월 13일에 철수했다. 한편, 마닐라공항의 이름을 니노이 아키노 공항이란 이름으로 바꾸게 한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주역,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 는 한국전쟁 당시 불과 17살의 나이었지만 《마닐라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한국에 와서 전쟁의 모습을 필리핀에 알렸다. 필리핀 구권 500페소 지폐를 보면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마닐라 타임스 종군기자로 활약한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도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으로 유명한데, 제20대대 전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고 한다. 피델 라모스는 보병 정찰 소대를 이끄는 소대장(소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필리핀으로 돌아가 필리핀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거쳐 필리핀 제12대 대통령이 되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 영웅묘지(마닐라 국립묘지)의 한국전 참전비 필리핀 역사 유적지: 타귁시티의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한국전 참전기념관 한-필 우정센터의 필리핀 한국전 참전기념관(PEFTOK Korean War Memorial Hall) 필리핀 한국원정군 전사자 추모비(PEFTOK Memorial Wall)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대한민국 외교부: 외교관계수립현황 ·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필리핀군 6.25전쟁 참전사 책자 발간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 생활: 필리핀 텔레비전 방송 시청률 조사기관 및 조사 방법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마닐라 생활: 필리핀 텔레비전 방송 시청률 조사기관 및 조사 방법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7월 25일 필리핀의 방송은 상품의 광고료로 운영하는 상업방송이 주축 을 이룬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장르는 드라마와 시트콤, 버라이어티 쇼이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를 끌었는지 시청률(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TV 방송을 시청 또는 청취하는가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은 늘 관심사가 된다. 필리핀에서 시장조사 및 여론조사업을 하는 업체로 대표적인 곳은 칸타미디어(Kantar Media Philippines)와 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AGB Nielsen Media Research) 두 곳으로 모두 세계적인 시청률 조사기관이다. 닐슨 미디어 리서치는 도시 지역(메트로 마닐라)을 중심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필리핀 전역의 시청률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칸타미디어의 조사를 언급한다. 필리핀 마닐라 GMA Network.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민영 방송사이다. 방송 시청률 조사기관 및 조사 방법 ① 칸타미디어 Kantar Media Philippines 칸타미디어에서는 필리핀의 방송 매체를 대상으로 TV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을 조사한다. 퀘존에 사무실을 둔 이 업체에서는 시청자들을 대표할 수 있다고 보이는 가구를 조사대상가구(표본패널)로 선정한 뒤 TV 수상기에 시청률 조사 기기인 피플미터(people meter)를 장착하여 시청률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대상가구는 총 2,610가구로 농촌(631만5천 가구)과 도시( 882만 가구)지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조사하여 Kantar Twitter TV Rating을 발표하기도 한다. ② 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AGB Nielsen Media Research 닐슨에서 조사하는 시청률은 NUTAM(National Urban Television Audience Measurement) People Rating이라고 부른다. NUTAM People Rating은 3,500개 이상의 홈 패널에서 데이터를 가져오지만, 조사대상가구가 메트로 마닐라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필리핀 전역의 시청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필리핀 TV에서도 아이유가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타갈로그어 더빙 후 방영된다. 시청률 조사에 대한 신뢰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은 매일 발표되지만, 이 시청률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기란 어렵다. 일단 인구와 비교하여 표본의 수가 너무 적다. 게다가 표본 선택의 기준도 제대로 되어있는지 의문이다. 필리핀 유료 TV 시장은 불법 시청(piracy)을 하는 가구가 많아서 통계 수치가 명확하지 못하다.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 해당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 데다가 미디어 그룹 소유자나 방송사업자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까닭에 상당 부분 추정이 개입된 결과로 해석된다. 조사 기관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것도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 조사 기관마다 자료에 큰 차이를 보이니 자료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작년 《ABS-CBN》과 《GMA Network》 방송국에서 과연 어느 조사기관의 시청률 조사가 더 정확한지에 대해 갑론을박한 적이 있다. 당시 ABS-CBN에서 2018년도의 자사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이 45%를 넘어섰다고 밝히면서, 지역별 평균 시청률이 루손섬 내 40%이며, 비사야 지역에서는 53%, 민다나오에서는 52%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에 대해 GMA에서 반박에 나선 것이다. NUTAM People Rating에 따르면 GMA의 연간 총시청자 수가 40.8 %이니 GMA가 더 많은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칸타미디어보다 닐슨 쪽이 전국적으로 약 900가구 정도 더 많은 수의 표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NUTAM People Rating의 조사 결과가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GMA의 주장이기도 했다. 지난 2007년에는 ABS-CBN에서 GMA의 시청률이 ABS-CBN보다 지속해서 높게 조사됨에 따라 방송 광고시장이 상당 부분 잠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 Nielsen의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뇌물수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기도 하다. 필리핀 마닐라 GMA Network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Kantar Media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소피텔(Sofitel), 세부 시티에 호텔 오픈 예정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소피텔(Sofitel), 세부 시티에 호텔 오픈 예정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3월 24일 Sofitel Cebu City - PHOTO COURTESY OF ACCOR 마닐라의 인기 호텔을 이야기하면서 파사이의 소피텔(Sofitel Philippine Plaza Manila)이 빠질 수 없다. 호텔 건물이 오래되어서 객실 시설은 새로 지은 호텔만큼 못하다고 하지만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잘 꾸며진 수영장과 괜찮다고 소문난 조식, 마닐라공항과의 가까운 거리 등의 장점은 소피텔을 늘 인기호텔 목록 위로 올려두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호텔그룹인 아코르(Accor)에서 부동산 개발 업체인 세부 랜드마스터(Cebu Landmasters, Inc.)와 계약을 맺고 세부 시티에 소피텔을 짓는다는 소식이다. 아코르의 발표에 따르면 소피텔 세부(Sofitel Cebu City)는 195개의 객실 규모의 호텔로 아얄라몰이 있는 세부 비즈니스 파크(Cebu Business Park) 지역에 지어질 예정이다. 설계는 여의도 63빌딩을 설계한 바 있는 미국의 설계 회사 SOM(Skidmore, Owings and Merrill)가 맡았는데, 객실 외 레스토랑과 옥상 루프탑바(rooftop bar), 수영장, 스파 등의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객을 위해 비즈니스 센터와 회의실 및 VIP 라운지(Executive Floor Lounge) 등의 시설도 계획하고 있다. 소피텔 세부(Sofitel Cebu City)는 2025년에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ccor announces the signing of Sofitel Cebu City · Accor to open Sofitel Cebu City in 2025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이멜다 마르코스의 3천 켤레의 구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이멜다 마르코스의 3천 켤레의 구두는 어떻게 되었을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는 미국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하지만 사치와 부정 축재의 대명사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아키노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1991년 필리핀으로 돌아와서 95세가 넘은 지금까지 건재하며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아버지의 독재정권 시절에 필리핀이 발전했다며 자신은 사과할 것이 없다는 망언을 했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는 현재 필리핀의 대통령이다. 이멜다 마르코스 · 본명: Imelda Romuáldez Marcos · 1929년 7월 2일 출생 ~ 2024년 현재 95세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배우자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의 만남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둘의 만남과 결혼 과정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무척 많은데, 진짜인지 의심스러운 이야기도 상당수이다. 미인 대회 출신인 이멜다의 미모에 반해서 만난 지 11일 만에 결혼했는데 결혼 전 11일 동안 매일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다던가 마르코스가 이멜다에게 청혼하며 언젠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게 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든가 하는 식의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나중에 그들이 부부로서 함께 필리핀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을 보면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이멜다 마르코스의 손가락에 끼울 60억 원짜리 25캐럿 희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산다고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일본점령기(1942년~1945년)에 일본군에 대항하여 게릴라군으로 싸웠다는 식의 이야기는 본인의 주장 외에는 특별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마르코스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부정 축재한 재산으로 12살 연하의 아내에게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과시적인 사치와 함께 절대 권력을 누리기도 했는데, 로마에서 치즈를 사는 것을 잊었다며 비행기를 회항하도록 했다는 식의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1966년 비틀즈가 필리핀 공연을 했을 당시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를 위해 말라카냥궁에서 열리는 비공개 행사에 초대했지만 거절당하자 비틀즈의 출국을 방해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3천 켤레의 구두로 기억되는 퍼스트레이디 필리핀 경제를 거덜 낸 '사치의 여왕'인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구두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얼마나 구두가 많았는지 그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느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이멜다 마르코스의 구두는 아시아 독재국가의 사치의 상징이 되었다. 이멜다 마르코스의 사치 행각이 얼마나 심했는지 8년 동안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일어난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되었다. 그런데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멜다는 하와이로 서둘러 도망치면서도 미군 수송기 두 대를 빌려 보석과 금괴 등을 가득 가지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물건이 많았으니 모두 챙겨가지는 못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하와이로 망명한 뒤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 지하에서 3천 켤레의 명품 구두¹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200벌의 드레스와 1,500개의 핸드백 등도 함께 남겨 있었는데, 상당수는 상표도 떼지 않은 상태라 마르코스 가족의 사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했다. 그런데 이멜다 마르코스는 자신의 구두에 대해 하와이에서 망명 중에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신발은 모두 필리핀 제품이었고 자신은 퍼스트레이디로서 국산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두를 수집했다는 식의 망언을 한 바 있다. 구두의 대부분은 마리키나 시티(City of Marikina)의 신발 제조 업체들이 준 선물이었다는 주장인데, 구두의 상표를 보면 이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대체 마리키나의 신발 제조 업체들이 어떻게 샤넬이며 지미추, 페라가모와 같은 디자이너 명품 구두를 선물하겠는가. 설령 신발 제조업체에서 선물로 주었다고 해도 문제인 것이 구두의 숫자가 천 켤레를 넘는다. 이멜다의 구두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르코스 독재 정부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이멜다 마르코스가 남긴 엄청난 양의 개인 소지품, 옷, 예술품 등을 이멜다의 사치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말라카냥궁에 전시하였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 마르코스가 국민들의 어려움을 뒤로 한 채 국가 자원을 빼돌리고 부정부패로 이룬 재산으로 얼마나 사치스러웠던 생활을 했는지 보여주고, 후손들에게 독재 정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1992년 필리핀 제12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피델 라모스 대통령은 이멜다의 구두를 말라카냥궁 지하창고에 보관했다. 그런데 이멜다 마르코스가 샀었던 물건들이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은 분명했다. 이리 저기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구두 상당수가 손상된 것이다. 말라카냥 궁전 안 지하 선반 보관함에 처박혀 있는 동안 개미와 곰팡이로 잔뜩 망가진 이멜다의 신발이며 마르코스의 바롱 셔츠는 마닐라 국립 박물관으로 보내졌지만, 박물관에서조차 관리를 소홀히 하여서 비난을 샀다. 태풍으로 인해 천정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젖어버려 상당수를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시관을 운영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주인을 제대로 만났으면 유용하게 잘 쓰였을 신발이 이리저리 창고에만 처박히다가 망가졌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맨발인 채 다니는 꼬마 아이들을 자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¹ 나중에 이멜다가 남긴 구두가 3천 켤레가 아닌 1,060켤레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천 켤레라고 해도 이멜다 마르코스가 사치의 여왕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다. ² 현재 이멜다의 구두는 마리키나 구두박물관 과 마르코스 박물관 등에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필리핀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에서도 이멜다 구두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멜다 마르코스의 흉상 이멜다 마르코스의 초상화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Inquirer: Employees blame museum execs for decay of Imelda Marcos gowns, shoes(September 29, 2012) · Christian Science Monitor: Imelda Marcos shoe collection now worthless, says Philippines governmen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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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파사이의 CCP 콤플렉스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파사이의 CCP 콤플렉스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CCP Complex 마닐라의 말라테에서 시티오브드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스타시티 놀이공원 옆에서 오른쪽으로 컬추럴 센터 오브 더 필리핀(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이라고 적힌 커다란 건물을 하나 볼 수 있다. CCP 바로 앞에 있던 호텔 젠이 코로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22년에 폐업한 데다가 소피텔마저 지난 2024년 7월 1일부터 문을 닫아서 주변이 모두 썰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CCP 콤플렉스(CCP Complex)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필리핀 정부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개발한 곳이다. 필리핀 문화센터 복합단지(CCP Complex) 는 독재자로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집권했을 당시 1966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된 곳이다. 국립극장(Tanghalang Pambansa)을 중심으로 필리핀 국제 컨벤션 센터(PICC)와 민속예술극장(Folk Arts Theater), 마닐라 필름센터(Manila Film Center) , 코코넛팰리스(Coconut Palace) 등을 모두 아우르는 88헥타르 규모의 거대한 복합단지로 필리핀의 예술과 문화를 보존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필리핀 문화센터 복합단지(CCP Complex)의 개발은 그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마르코스의 독재 정권에 신뢰성을 주는 홍보 전략으로 악용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운영에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은 CCP 콤플렉스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을 보며 이멜다 마르코스가 많은 일을 해냈다고 칭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건물이 세워질 때마다 국가채무는 늘어났고 이멜다 마르코스의 주머니에는 더 많은 부가 축적되었다. 필리핀 문화센터 복합단지 CCP Complex 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Complex ■ 주소: Roxas Boulevard, 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Complex, Manila ■ 위치: 필리핀 마닐라, 파사이 시티 필리핀의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듬해인 1966년 필리핀 문화센터(CCP, 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의 설립에 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행정명령에 따라 필리핀 정부 소유의 국유기업인 필리핀 문화센터(CCP)가 설립 되고 이사회가 만들어졌는데, 이사회의 의장이 마르코스의 아내이자 사치의 여왕으로 유명한 이멜다 마르코스였다. 이사회의 의장으로 문화센터의 자금을 관리할 권한을 갖게 된 이멜다는 탕할랑 팜반사(Tanghalang Pambansa) 라고 부르는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을 세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국립극장의 설립 자금을 위해 기금 모음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금만으로는 건설 비용의 충당이 어려워지자 미국에서 받은 전쟁 피해 기금을 국립극장 건설에 사용하게 된다.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건물 내부의 작은 장식품에서부터 카펫까지 모두 기부를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공사비가 애초 예상했던 천5백만 페소를 훌쩍 뛰어넘어 5천만 페소로 늘어났다. 5천만 페소라고 하면 현재 환율로 약 12억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많은 돈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지만, 1966년 당시 필리핀 노동자의 하루 일당(최저임금)은 6페소에 불과했다. 마르코스의 정적인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5천만 페소나 들여 소수 부유층만 이용할 수 있는 국립극장을 건설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멜다 마르코스의 지시 아래 공사는 강행되었다. 그리고 1969년 9월 8일, 국립극장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하게 개관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개관 기념으로 3개월 동안이나 연일 뮤지컬이 상영되었다. 이후 1972년 마르코스가 계엄령을 발표하며 국립극장(Tanghalang Pambansa) 주변이 필리핀 문화센터 복합단지(CCP Complex)로 개발 되었고, 민속예술극장(1974년), 필리핀 국제 컨벤션 센터(1976년), 코코넛 팰리스(1978년), 마닐라 필름센터(1982년)가 차례로 세워졌다. 하지만 필리핀 문화센터 복합단지(CCP Complex)는 곧 돈 먹는 하마임이 드러났다. 국립극장은 개관 이후에도 계속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워낙 건설 비용이 높았던 터라 적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부실 공사이다. 1974년 마닐라에서 열렸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위해 77일이란 기록적인 시간 동안 지어진 민속예술극장이나 1982년 마닐라 국제 영화제를 위해 10개월 만에 성급하게 지어졌던 마닐라 필름센터 모두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개보수를 하고 있다. CCP의 메인 건물인 국립극장(Tanghalang Pambansa) 역시 지난 2023년 리노베이션을 위해 문을 닫았다. 2025년 3월까지 재오픈할 때까지 CCP에서 주관하는 발레나 콘서트와 같은 문화 관련 이벤트는 지난 2022년 9월 8일 개관한 CCP Black Box Theater(Tanghalang Ignacio Gimenez) 등 다른 공연장에서 진행된다. CCP Complex 공사기간 완공(개관) 국립극장(National Theater) - Tanghalang Pambansa 3년 정도 1969년 민속예술극장(Folk Arts Theater) - Tanghalang Francisco Balagtas 77일 1974년 필리핀 국제 컨벤션 센터(PICC) - Philippine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23개월 1976년 소피텔(Sofitel Philippine Plaza Manila) 3년 정도 1976년 코코넛 팰리스(Coconut Palace) - Tahanang Pilipino 3년 정도 1981년 마닐라 필름센터(Manila Film Center) 10개월 1982년 2015년 필리핀 CCP(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2018년 필리핀 CCP(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2019년 필리핀 CCP(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2019년 CCP에서는 개관 5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2020년 필리핀 CCP(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Foundation, Inc. · Inquirer: Imelda Marcos and her ‘edifice complex’ · The Philippine Star : Fact or fiction? Marcos built power structures that benefit Filipinos EDIFICE COMPLEX · GMA: CCP's Tanghalang Pambansa to close for more than 2 year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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