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결과

SEARCH RESULTS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공란으로 1690개 검색됨

  • 필리핀 정치: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테러방지법을 염려하는 이유

    ​필리핀 정치·법률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정치·법률 필리핀 정치: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테러방지법을 염려하는 이유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7월 6일 2016년 5월 10일의 필리핀 스타 신문 1면. 밤 11시가 되자 마누엘 로하스와의 표 차이가 확연히 나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통령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대통령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이 인권침해가 되면 곤란하죠." 2016년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이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이다. 5,400여만 필리핀 유권자 중 무려 1,600만 명이 두테르테를 선택했고, 당시 2위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보다 660만이 넘는 표 차로 선거에 승리했다.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범죄 소탕과 부패 척결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워서 필리핀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처벌하는 사람(Punisher)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지만, 부패한 공무원을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그의 외침은 신선하게 들렸다. 기존 정치 기득권 세력과 다르게 각 지방의 독자성을 강화한 정책으로 지방분권형 정치 체계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끝내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의 레이테 섬(Leyte)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부터 다바오에서 생활한 데다가 다바오의 시장을 22년이나 한 경력을 바탕으로 필리핀 최초의 민다나오 출신의 대통령으로 대선길에 올랐다. 좌익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필리핀당(PDP-Laban) 소속 후보로 출마했는데, 모계 쪽으로 마라나오 부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민다나오 지역 내 경제발전과 내전 종결을 외치며 무슬림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이 선거 결과에 대해 필리핀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필리핀 국민의 마음이 모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필리핀 뉴스 1면을 장식한 것은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 이다. 지난 7월 3일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에 서명했다 는 것이다. 필리핀의 법률 제정 절차에 따르면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은 이제 전국적으로 신문에 게재된 후 15일 후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공화국법 11479호(Republic Act No 11479)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법률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의 입법 절차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상원과 하원 모두 법률안 제안, 심의 및 의결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입안자가 제출한 법률안은 국회 사무처에서 법안 일련번호가 매겨지게 되고, 심사 과정을 가지게 된다. 법안에 대한 토론과 수정을 거친 뒤에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법안이 통과되면 이 법안은 대통령에게 보내진다. 대통령이 승인 서명을 하면 법률로 공포되고 곧바로 발효된다.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의 경우 이미 지난 2월 26일 상원을 통과 했다. 한국에서 프로 권투 선수로 잘 알려진 매니 파키아오(Manny Pacquiao)는 10여 년 전부터 필리핀 정치계에 입문하여 현재 필리핀 상원의원으로 활동 중인데, 찬성표를 던졌다. 어쨌든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뒤로 미루어진 상황에서도 이 법의 입법만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6월 3일, 필리핀 하원에서는 찬성 173표, 반대 31표, 기권 29표로 테러방지법을 통과 시켰다. 상원과 하원 모두 통과한 법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반대 의사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다시 재심에 들어가게 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하원에서 통과된지 한달이 지난 지난 금요일 대통령실 대변인 해리 로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테러방지법에 대해 필리핀 정부에서는 "테러를 근절하려는 정부의 다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에 대한 억압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필리핀 인권위원회의 이야기를 기우라고만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인권법은 잊어버려라"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왔던 두테르테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벌인 마약 퇴치 과정에서 수천여 명이 살해됐다는 논란을 가진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국민은 사살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체포·구속 영장 없이도 테러 용의자를 최장 24일간 구금할 수 있게 하는 테러방지법을 만든다고 하니 상당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법의 집행을 사법부처럼 독립된 곳에서 하지 않는다 는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내각의 장관이나 공무원들로 구성된 테러방지위원회(Anti-Terrorism Council)의 허가를 바탕으로 용의자 체포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내각의 장관이나 공무원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니 대통령을 불쾌하게 한 단체는 "테러 방지를 위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될 수 있다. 그리고 피의자가 신체적, 도덕적 또는 심리적 고문을 당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절차도 사라진다 . 정부는 테러용의자에 대한 감시를 최대 60일 동안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에 특별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을 감시 또는 도청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니, 표현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행위가 테러 행위가 되는지 모호하다 는 점이다. "폭발물이나 무기의 제조 및 유통"이야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와 민간의 시설 및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도 테러 행위도 규정되니,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면 테러행위라고 몰아붙여서 정치적인 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행위는 테러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시민단체의 자율적인 활동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권력이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주의로부터 뒷걸음치는 격이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시내 곳곳에서 테러방지법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미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친 터라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하긴, 지금에 와서 2016년 대선 결과를 바꿀 수도 없고 어찌하랴. 그리고 이미 1811년에 프랑스의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을 하였으니, 테러방지에 대한 법안은 이제 공화국법(Republic Act No 11479)이 되게 된다. 이 법은 모두 33장에 걸쳐 작성되었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두테르테 대통령이 7월 3일 서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에서 법안이 대통령 서명을 거쳤다는 이야기는 정식 법률로서 확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편의점에서는 투표 참여를 인증하면 콜라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STAR https://www.facebook.com/PhilippineSTAR/photos/pcb.1803302496490090/1803300239823649/?type=3&theater · Lawyers, Other Groups Terrified By Anti-Terror Bill. Here’s Why https://onenews.ph/lawyers-other-groups-terrified-by-anti-terror-bill-here-s-why · Philippines: New Anti-Terrorism Act Endangers Rights https://www.hrw.org/news/2020/06/05/philippines-new-anti-terrorism-act-endangers-rights · Duterte Signs Antiterrorism Bill in Philippines Despite Widespread Criticism https://www.nytimes.com/2020/07/03/world/asia/duterte-antiterrorism-law-philippines.html · Duterte signs 'dangerous' anti-terror bill into law https://www.rappler.com/nation/263289-duterte-signs-dangerous-anti-terror-bill-into-law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행복지수: 필리핀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행복지수: 필리핀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3월 23일 시골 멍멍이의 행복한 낮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Money does not buy happiness)'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먹고 살 걱정이 없었던 사람임은 틀림없다. 통장 잔고와 행복감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행복해지기 어렵고,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서라도 돈은 꼭 필요한 법이다. 물론 행복은 소득과 크게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미 1970년도 초반에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A. Easterlin)은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늘어난 소득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내용의 주장을 한 바 있기도 하다. 그는 행복과 소득이 관련이 있는 것은 맞지만, 장기적으로 소득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여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스털린은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집단이 소득이 낮은 집단보다 더 행복하다면서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뒤에는 소비할 수 있는 재화가 증가하는 것이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잠잘 곳이 없는 형편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린다. 어려운 것은 사람마다 만족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기본 생활비(cost of living)로 얼마나 필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국가나 종교 등에 따라 기본 생활 수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필리핀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돈은 얼마일까? 최근 금융웹사이트인 익스펜시비티(Expensivity)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필리핀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연간 28,264달러(1.3밀리언 페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익스펜시비티에서는 미국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의 연구를 사용하여 국가별 행복의 가격(Price of Happiness)에 대해 조사했는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행복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구축(build a masterplan for being happy.)'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국가 또는 지역별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익스펜시비티의 기사를 보고 필리핀인 대부분은 잠시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130만 페소를 벌기 위해서는 매달 11만 페소(한화 약 255만 원)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호주(135,321달러)나 이스라엘(130,457달러)과 비교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필리핀 서민들이 보기는 어마어마한 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필리핀 사람을 가난하게 봐서는 곤란하다. 빈부격차가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 필리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글로벌 자산 컨설턴트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의 연구소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상위 1% 부자가 되려면 60,000달러(290만 페소/한화 6,783만 원)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상위 1%가 되기 위해서는 120만 달러(13억 5,324만 원)가 있어야 한다. 필리핀 바나웨 지역의 전통가옥. 목조로 만든 집으로 '발루'라고 부른다. 바나웨 산골, 꼬마 아이의 목욕 시간 마닐라 차이나타운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The Price of Happiness in Every Country · Filipinos Need to Earn P1.3 Million a Year to Be Happy, According to Study · How Much Money Do You Need to Be Part of the 1% in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인한 부상 건수 85% 감소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인한 부상 건수 85% 감소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1월 2일 필리핀 마닐라의 새해맞이 불꽃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필리핀의 새해맞이 풍경을 바꾸었을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필리핀에 실로 다양한 변화를 몰고 왔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마닐라 EDSA 도로의 교통체증은 코로나도 막지 못했다. 지방으로 가는 스카이웨이 고속도로는 좀 한가해졌다고 하지만, EDSA는 여전히 차로 가득하고 유턴을 금지해야 한다느니, 버스 전용차선을 만들어야 한다느니 하는 식의 미봉책이 제시된다. 또 하나. 2021년 새해맞이 풍경도 크게 바꾸지 못했다.12월이 되기도 전에 코로나 감염방지를 위해 불꽃이며 폭죽의 사용을 강력히 금지할 것이라는 식의 뉴스가 보였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필리핀 정부에서 아무리 지속적인 캠페인과 단속을 한다고 해도 필리핀 사람들의 불꽃놀이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예년처럼 쇼핑몰이며 공원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모이진 않았지만, 자정 즈음 마닐라의 밤하늘은 화려한 불꽃과 시끄러운 폭죽 소리로 가득했다. 그런데 오늘 필리핀 보건부(DOH)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새해 기념행사에서 부상 건수가 85% 감소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두케 보건부 장관에 따르면 2020년 12월 21일부터 2021년 월 1일까지 불꽃놀이로 인한 부상 건수가 5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꽃놀이를 하던 도중 손에서 폭죽이 터져 50명이나 다쳤는데 "건강을 위한 필리핀인들의 행동 변화가 보인다"면서 "불과 50명"이란 표현을 하는 것은 작년만 해도 부상자가 340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의 평균 사고 건수와 비교하면 89% 감소한 수치이다. 발표 자료 중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부상이 불법적인 불꽃놀이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상자의 55%는 합법적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보건부에서는 사고를 유발한 제품의 29%는 하늘로 쏘아 올리는 kwitis(Skyrocket) 제품이었다고 밝히면서, 부상자 대부분은 메트로 마닐라(NCR)에서 나왔다고 알렸다. 메트로 마닐라에서 발생한 22건의 사고를 보면 마닐라 시티(12건)가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고, 이후 칼로오칸(4건), 파식(2건), 퀘존시티(2건)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소방국(BFP-Bureau of Fire Protection)에 따르면, 올해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새해 전야 기간 29건의 화재가 발생했지만, 불꽃놀이로 인한 화재는 발생하지 않다고 한다. 작년에는 24건의 폭죽 관련 화재 사고가 발생했었다. 필리핀 마닐라. 2021년 새해맞이 불꽃놀이 2020년 1월 1일 신문. 1년이 지났을 뿐인데, 10년은 지난 듯 느껴진다. 필리핀 불라칸. 폭죽 판매용품점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DOH reports 85% decrease in fireworks injuries for 2021 · DOH: Firecracker injuries down 85%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생활: 3모작도 가능한 필리핀이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 된 까닭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생활: 3모작도 가능한 필리핀이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 된 까닭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8년 4월 24일 ! Widget Didn’t Load Check your internet and refresh this page. If that doesn’t work, contact us.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Widget Didn’t Load Check your internet and refresh this page. If that doesn’t work, contact u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스페인 식민지 시대(1571년~1898년)의 시작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스페인 식민지 시대(1571년~1898년)의 시작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5일 마닐라 마카티에 있는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가끔 필리핀 식민지 시대를 놓고 1521년 또는 1565년에 시작되었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실제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것은 1571년부터이다. 그렇다면 1521년이나 1565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일단 1565년은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필리핀에 도착한 해 이다. 그리고 1521년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 호몬혼섬에 상륙한 해 이다. 하지만 페르디난드 마젤란 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당시 스페인은 필리핀을 정복하지 못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막탄전투 에서 사망한 이후 스페인에서는 원정대를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1571년이다. 에스파냐(영어식 국명은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2세로부터 필리핀 원정대 대장으로 임명받은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 는 긴 항해 끝에 1565년 필리핀에 도착했다. 순식간에 보홀섬까지 가서 보홀을 지배하던 시카투나와 혈명을 맺은 레가스피는 세부에 산 페드로 요새를 짓고 향료를 찾았지만, 세부 지역에는 향료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중국의 상인들이 온다는 마닐라로 눈길을 돌렸고, 마닐라로 부하들을 보냈다. 1571년, 레가스피의 부하들은 마닐라 일대를 장악하는 것에 성공했다. 마닐라가 장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레가스피는 세부를 떠나 마닐라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닐라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초대 필리핀 총독 자리에 올랐다. 1571년 6월 24일, 레가스피는 필리핀 제도가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성벽 도시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하기 시작했다. 펠리페 2세 입장에서 보면 레가스피가 필리핀을 정복함으로써 스페인 제국의 영토 확장에 성공한 것이었겠지만, 필리핀 입장에서 보면 무려 300년 넘게 이어진 오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시작이었다. 스페인의 통치는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4월 25일~8월 12일) 에서 스페인이 패배하면서 327년 만에야 끝이 났다. 하지만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났다고 하여 필리핀이 독립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체결된 파리조약(미국-스페인 강화조약) 에 따라 미국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필리핀은 1946년 7월 4일이 되어서야 미국으로부터 독립 할 수 있었다. 1571년 시작된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스페인과 미국에 걸쳐 375년 동안 계속되다가 1946년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 것이다. 𖠿 관련 글 보기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도착한 곳은 세부가 아닌 호몬혼섬 필리핀 종교: 마젤란의 도착과 함께 시작된 필리핀 가톨릭의 역사 필리핀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든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필리핀 지도-마닐라 아테네오 박물관 소장품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NHCP( 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필리핀 MZ세대가 생각하는 삶의 최우선 과제는?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필리핀 MZ세대가 생각하는 삶의 최우선 과제는?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12월 20일 필리핀 마닐라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릿 필리핀 MZ세대의 삶은 어떨까? 필리핀은 아직도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모시거나 돌보는 게 당연한 나라이다. 가족중심적인 생활 습관 때문인지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와 자매를 경제적으로 돕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필리핀 MZ세대 10명 중 7명은 부모와 형제자매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표된 2021년 전국 청년 설문조사(The 2021 National Youth Survey) 결과에 따르면 15세에서 30세 사이 청년 4,900명 중 72%는 매일 SNS를 검색한다. 64%는 매일 가족과 대화하며, 76%는 매일 집안일을 한다. 매일 영화 또는 기타 비디오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도 52%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최우선 목표가 무엇이냐에 대한 응답이다. 응답자의 72%는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최우선 목표라고 생각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36%에 불과하다. 학위취득(29%)과 창업(28%) 등도 중요한 삶의 목표로 꼽혔다. 해외 이민을 희망하는 응답자는 3%에 불과하여 타인에 대한 봉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응답자보다도 적었다. 설문조사 기관에서는 응답자가 미리 준비한 13개의 항목 중에서 최대 3개까지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를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most important aspirations and life goals 응답률 1 부모와 형제자매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To help parents and sibling financially) 72% 2 부모로부터의 독립(To live independently from parents) 36% 3 학위취득(To get a college degree) 29% 4 창업(To start your own business) 28% 5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To have meaningful work) 28% 6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To have a job that earns a lot of money) 22% 7 새로운 기술과 지식 습득(To acquire new skills and knowledge) 21% 8 개인의 영적생활(To have a good personal spiritual life) 18% 9 결혼(To start my own family) 14% 10 필리핀인에 대한 봉사(To be of service to Filipinos) 10% 11 세계여행(To travel to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9% 12 자원봉사 활동(To be actively involved in volunteer work that I believe makes positive impact) 5% 13 해외이민(To migrate to another country) 3% - 자료 출처 : State of the Filipino YouthThe - 2021 National Youth Survey 2021년 전국 청년 설문조사 The 2021 National Youth Survey 필리핀의 여론조사 기관인 소셜 웨더 스테이션(SWS-Social Weather Stations)과 YouthLed(Youth Leadership for Democracy)의 파트너십을 통해 수행된 이 설문조사는 15세에서 30세 사이의 4,900명의 필리핀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다. 응답자는 필리핀의 행정구역(17개)과 YouthLed에서 타깃으로 선정한 지역(32개)에서 각 100명씩 선정되었으며, 응답자의 33%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실업 상태인 67%의 응답자 중 63%는 학생이다. 나머지 18%는 가사일, 17%는 구직 중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의 오차 범위는 95%에서 +/-1.4%이다. 설문조사는 2021년 3월 14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었지만 최근에야 결과가 발표되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보면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필리핀 사람들이다. 농담이지만, 가끔 삶의 최대 과제가 사진 찍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State of the Filipino YouthThe - 2021 National Youth Survey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평화로운 작은 공원, 투게가라오의 리잘파크(Rizal Park)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평화로운 작은 공원, 투게가라오의 리잘파크(Rizal Park)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Rizal Monument 리잘공원이라고 하면 마닐라에 있는 리잘파크부터 생각나지만, 필리핀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꽤 많은 공원이 리잘파크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마닐라의 리잘파크 쪽이 훨씬 규모가 크고, 호세 리잘이 처형되었던 장소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필리핀의 독립을 이끈 국가의 영웅을 기리는 것이 어찌 공원의 규모로 판단되겠는가. 필리핀 투게가라오에서도 리잘파크를 볼 수 있다. 필리핀 루손섬의 북부에 있는 투게가라오(Tuguegarao) 는 여행지로 크게 유명한 곳은 아니다. 마닐라 생활 중에도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닐라에서부터 차로 10시간은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차를 타고 투게가라오에 도착해도 막상 크게 할 일은 없다. Pancit Batil Patong과 Pancit Cabagan이란 이름의 국수를 먹고, 호텔 직원에게 인근에 가볼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어도 성당 이름만을 주르륵 나열해 줄 뿐이다. 차로 30분 정도 거리의 가까운 곳에 6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칼라오 원인의 뼈가 발견된 칼라오 동굴(Callao Cave) 이 있지만 오후 시간에 가기는 부적절하다. 부활절이라 성당에서 오후 행사가 있을 듯해 투게가라오 대성당(Tuguegarao Cathedral)으로 가다가 골목 끝에서 작은 리잘 공원을 발견했다. 중앙을 차지한 호세 리잘의 동상을 보고 광장을 자세히 보니 리잘파크(Rizal Park)라고 적힌 안내문이 보였다. 규모는 매우 작지만,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의 공원으로 아이들이 깔깔 웃음소리를 공기 중에 뿌리며 뛰어놀고 있었다. 호세 리잘이 원했던 평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가 된 언어 천재 호세 리잘(Jose Rizal) 필리핀 투게가라오 리잘파크 Rizal Park ■ 주소: JP6J+P42, Tuguegarao, 3500 Cagayan ■ 위치: 필리핀 투게가라오, 투게가라오 대성당(Tuguegarao Cathedral) 근처 필리핀 투게가라오 리잘파크(Rizal Park) 필리핀 투게가라오 리잘파크(Rizal Park) Cagayan Museum and Historical Research Center Cagayan Museum and Historical Research Center Cagayan Museum and Historical Research Center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TUGUEGARAO CITY: Rizal's Park Monumen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1931년, 필리핀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1931년, 필리핀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1월 1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 제1차 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후, 사람들은 직선적이거나 기하학적 형태를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로 인식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기초적인 도형의 형태를 이용한 기능미가 유행했고,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처럼 직선적이며 화려하지만 모던한 형태의 건물이 지어졌다. 연속적인 곡선을 사랑한 아르 누보 대신 나타난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의 장식 미술을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아르데코(art deco) 건축물이라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이 오는 2021년 4월 27일에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이다. 지난 1996년에 문을 닫았었으니 무려 25년 만의 재개관 이다.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NCCA)에 따르면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이브닝 쇼 및 공연도 진행될 예정인데, 막탄전투에서의 라푸라푸(Lapu-Lapu)의 승리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라고 한다. 1932년 찍은 마닐라의 풍경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Manila Metropolitan Theater 마닐라 시청에서 퀴아포 성당 가는 길에 퀘존 브릿지를 건너기 전에 우측으로 낡고 커다란 건물 하나를 볼 수 있다. 대체 누구 소유의 건물이길래 이 노른자위 땅을 활용하지 않고 방치할까 싶지만, 알고 보면 국유지로 메트로폴리탄 극장이란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닐라시청과 우체국 사이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현대식 콘도나 쇼핑몰을 지으면 인기를 끌 것 같지만 마구잡이로 철거하여 쇼핑몰 따위를 짓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은 미국 식민지 시절에 마닐라 중앙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의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후안 M. 아렐라노(Juan M. Arellano)가 설계한 건물 로 건축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어졌다. 1931년 12월 10일 개관 당시만 해도 오페라며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였던 최고의 극장이었다. 필리핀 최초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극장 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전쟁 중에 지붕이며 벽 등이 파괴되어 보수가 시급했지만, 사람이 살아갈 집도 마련하기 어려운 때에 극장을 보수하는 일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 후 혼돈의 시기, 복싱경기장과 싸구려 모텔, 게이바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78년에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가 극장 복원공사를 하면서 잠시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는 듯 보였지만, 마닐라시티와 GSIS(Government Service Insurance System) 사이에서 극장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면서 1996년에 폐관하게 된다. 건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GSIS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극장을 다시 보수하여 사용하는 일은 요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2015년에 예산관리부에서 GSIS에게 극장 소유권을 사게 되면서 극장의 복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NCCA)와 필리핀 국립 박물관, 필리핀 국립 역사위원회(NHCP) 등이 함께 재건 사업을 시작했지만, 극장을 예전처럼 꾸미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일꾼이 나와 문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몇 년째 "수리 중"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문화 유적지 되살리기의 바람을 타고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복원 문제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극장 복원팀에 따르면,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복원은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1단계는 메인 극장의 복원이며, 2단계는 극장 양쪽 날개 부분, 그리고 3단계는 날개 부분의 내부 공사이다. NHCP에 따르면 메인 극장의 복원은 이미 90%가 완료된 상태이며, 곧 2단계 복원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복원된 극장에서는 아르데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식품과 함께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몬티의 작품 및 필리핀 시골 풍경을 그렸던 화가 페르난도 아모르솔로(Fernando Amorsolo)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명과 음향 시스템도 개선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바뀌었을지 기대가 크다. 퀴아포 성당을 갈 때마다 "대체 이 공사는 언제 끝날까?"를 궁금해하면서 가설 울타리를 보았던 터라 내부를 꼭 보고 싶은데, 공연 관람비가 얼마일지 궁금할 뿐이다.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중앙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기념 동상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n aerial view of the post office, 1932 · Manila Metropolitan Theater 내부 사진 출처 : 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 필리핀 국립역사위원회(NHCP) - 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https://www.facebook.com/nhcp1933 · 필리핀 문화예술위원회(NCCA) - 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https://www.facebook.com/NCCAOfficial/posts/10158315582120283 · 25 years after shutdown, the Metropolitan Theater is reopening—here’s what we can expect https://news.abs-cbn.com/ancx/culture/spotlight/01/12/21/25-years-after-shutdown-the-metropolitan-theater-is-reopeningheres-what-we-can-expec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민다나오 금광개발과 부투안에서 발견된 발랑아이(바랑가이 범선)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민다나오 금광개발과 부투안에서 발견된 발랑아이(바랑가이 범선)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6월 20일 The Balangay No 2 under Excavation (이미지 출처 : National Museum). 한때 필리핀을 놓고 유행하던 사기 수법 중 하나는 민다나오 금광개발에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필리핀 정부의 개발허가증 등을 내밀고 금광투자를 빌미로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착수금을 받아서 돈을 가로채는 것이다. 고대 보물이 가득한 침몰선을 인양하자며 사업자금을 받아다가 잠적하는 일도 많았다. 지금 보면 대체 누가 속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한 다단계식 사기수법이지만, 멋진 사업설명회와 그럴듯한 도장이 잔뜩 찍힌 허가증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 사실 이런 사기가 가능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민다나오에 진짜 금광이나 침몰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당시 민다나오 카라가 지방의 부투안(Butaun) 지역 마사오강(Masao River) 에는 금을 찾던 사람들에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6년의 어느 날, 이들에 의해 목재로 만든 발랑아이(Balangay. 말레이어로 범선을 의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황금빛 엘도라도를 찾던 이들에게 낡은 전통 목선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었으니, 다행히 이 발견은 필리핀 정부 쪽으로 보고될 수 있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 배에 대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실험을 했는데, 10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배 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필리핀, 특히 부투안 지역이 오래전 동남아시아 상업의 주요 중심지였다는 이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이 보트가 나무라는 것이다. 사용된 목재의 수종이 매우 단단하다고는 하지만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도 나무가 완전히 썩지 않았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제로 된 못 대신 나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의 형태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다. 필리핀 학자들은 배가 의도적으로 묻혔을 수도 있지만, 지진이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로 인해 갑자기 묻혔기에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이론일 뿐, 정답은 10세기 부투안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부투안의 배에 대한 흥미로운 상식 - 부투안의 발랑아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된 목조 선박이 되었다. 총 9척이 발견되었다. - 1987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이 배를 국가지정문화재(National Cultural Treasures)로 지정하고, 발굴 장소 주변을 고고학적 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 필리핀의 최소 행정단위인 바랑가이(Barangay) 는 발랑아이(Balangay)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바랑가이 배를 부투안의 배(Butuan Boat)라고 부르기도 한다. - 부투안에서는 매년 5월이면 부투안의 배(Butuan Boat)를 주제로 한 축제(Balanghai Festival)를 열기도 한다. 초기 정착민이 바랑가이 배를 타고 필리핀에 도착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축제의 핵심이다. - 부투안의 배는 길이 15미터의 배가 대부분이지만, 길이 25미터나 되는 커다란 배도 한 척 발견되었다. - 부투안 보트의 발굴이나 유물 관리, 연구 등은 부투안 박물관(Butuan National Museum)에서 담당하고 있다. -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국립박물관에는 발랑아이 보트 한 척이 보관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 레니 로브레도 필리핀 부통령의 트위터 캡처 "Parao Mercante" - illustration of a biroco merchant ship from the Philippines (1890)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GMA News : Massive balangay 'mother boat' unearthed in Butuan · A National Cultural Treasure Revisited – Re-assessing the ‘Balangay’ Boat Discoveries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 Butuan Boat · Vice President Leni : https://twitter.com/VPPilipinas/status/862642694958456834/photo/1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필리핀 여행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여행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7월 4일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그려진 것은 머리에 갓을 쓴 조선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기도하는 듯 두 손은 가지런하게 모여 있다. 필리핀에 있는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에 조선 사람이 그려진 것이 신기하여 넋을 잃고 보다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만 떠나려는데 성당 앞마당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뭔가 이야기를 해오셨다. 타갈로그어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눈치가 아무도 없는데 왜 빈 성당 안에 들어가 있느냐는 것인가 싶다. 성당을 구경 온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반가워해 주시면서 안드류 킴(Andrew Kim)을 보러 왔느냐고 물으신다. 필리핀 사람들이 알파벳 에이(A)를 '아'로 발음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주머니의 안드류 발음은 유독 또렷했다.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나를 반가워해 주셨지만, 이내 딱하다는 얼굴을 해왔다. 이곳 성당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고 근처에 있는 수원교구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에 가면 볼거리가 아주 많은데 오늘은 구경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리가 멀지 않으니 그냥 걸어가거나 10페소를 내고 트라이시클을 타면 되지만, 가봐도 지금은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렇지 않아도 본당 앞까지 갔다가 꽉 잠긴 대문만 보고 온 터라 어찌 된 일인지 여쭈었더니 간밤에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주변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겨서 그렇단다.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신부님도 오늘 아침 미사만 보고 댁으로 들어갔다면서 물이 빠질 때까지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동네가 저지대인 데다가 배수 시설이 좋지 못하니 비만 내리면 집이 침수되는 모양이었다. 허벅지까지 동네가 물에 잠기면 동네 사람들이 성당을 대피소로 쓰기도 한다는데, 이번에는 성당까지 침수되었다니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튼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안드류 김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어오셔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재밌는 일화가 많은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설명이 어렵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책을 찾아 읽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동네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나는 김대건 신부님이 대체 어떤 일화를 가졌는지 공부를 한 뒤, 비가 오지 않을 때 성당에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 아래는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가톨릭 사전과 평화 신문 등에 올라온 내용을 주로 참고했지만, 기록이 조금씩 달라서 내용 중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필리핀 불라칸 롤롬보이 김대건 성인 성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선 후기에 실학자 이중환이 만든 지리서를 보면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설명을 곁들인 동네가 있다. 요즘으로 보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일대인데,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예전에는 '솔뫼'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솔뫼에서 1821년에 태어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조선 최초의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이시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왔는데, 증조부(김진후)가 1814년 순교한 뒤로 종조부(김한현)와 부친(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모두 순교하였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이었다. 증조부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한 뒤 솔뫼를 떠나 경기도 용인시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를 하지만, 솔뫼는 천주교회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며,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평가된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야 할 길은 확실했다. 김대건 신부는 용인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은 뒤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 후 조선으로 돌아와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1년 정도 사목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학식이 워낙 출중하여 영국에서 만든 라틴어 세계지도를 우리말로 옮겨다가 세계 지리책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영의정 권돈인이 김대건이 신학 공부와 사목을 핑계로 외국인과 접촉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선에서 금지하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목을 벤 뒤 군문(軍門)에 메다는 군문효수형이었다.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이 집행되었고, 김대건 신부님은 순교했다.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Saint Andrew Kim Tae-gon 그런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가 어떻게 필리핀, 그것도 마닐라가 아닌 불라칸에 있는 것일까? 김대건 신부님이 마닐라에 온 것은 1839년도의 일이었다. 1837년, 열일곱의 나이로 신학 공부를 위해 용인에서 마카오까지 9,000리(약 3,500㎞)의 길을 걸어갔지만, 아편 수입과 판매 금지 문제로 인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으니 편안히 자리에 앉아 신학을 공부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포르투갈 식민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정치 불안이 심해졌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때,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본부에서 칼르리 신부와 데플레슈 신부를 비롯해 신학생 몇 명을 필리핀으로 피신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839년 4월 6일 마카오에서 출발한 스페인 배를 이용했는데, 필리핀 마닐라까지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닐라의 대주교가 사목 방문을 위해 출타 중이었으니, 낯선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그들을 받아 주었고, 1839년 5월 3일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의 보카우에 롤롬보이(Lolomboy)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의 농장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불라칸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마카오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들과 수사들은 매우 친절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뒤 대만가는 길에 다시 들려 열흘 정도 머물다 갔었다니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평화롭지 않았을까 짐작이 해보기도 한다. 김대건 신부님 성인 품위에 오른 것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이다. 그리고 2년 뒤, 1986년 5월 22일 김대건 신부님이 머물던 불라칸의 성당이 김대건 성인 성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 오기선 신부의 지도하에 마닐라 한인 천주교회 신자들과 한국의 신자들이 뜻을 모아 김대건 성인상 동상을 세우고 성지로 선포한 것이다. 당시 동상 축복식엔 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등이 참석했다고 하며, 이후 롤롬보이 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게 됐다. 그러다가 성당 규모가 커진 것은 2002년 즈음 한국 교회에서 부지 매입을 하면서이다. 원래 이곳 성당 부지는 멘도사(Mendosa) 집안의 땅이었는데, 2000년도에 멘도사 집안에서 땅을 팔려고 내놓은 것을 한국 교회에서 매입하여 필리핀 정부와 현지 교구청 인가를 받아 성당을 세우고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는 성지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수원교구 소속 성 안드레아 수녀회에서 성지를 관리하면서 예수성심상, 김대건 성인 유골이 모셔진 봉헌소, 성모당, 7궁방(7층탑)을 차례로 건립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으로 성지순례 온 신자들을 위해 순례 투어 프로그램 및 피정의 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망향의 망고나무 불라칸 롤롬보이(Lolomboy)에 방치되어 있던 터를 다듬어 성지로 만들고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생긴 신기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부터 자정만 되면 개들이 시끄럽게 짖기 시작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개 짖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밤 벌어지는 이 소동에 동네 사람들이 이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동네 유지였던 멘도사 가문의 식모가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문 바깥으로 확인하러 나갔다가 목 없는 유령을 보고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식모는 재빨리 그 집을 도망쳐 나왔고, 온 동네에 목 없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밤이면 목 없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네는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도착한 날부터 개 짖는 소리가 사라졌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김대건 신부가 목이 잘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인의 영혼이 나타났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본당의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에 있는 커다란 망고나무에 대한 일화도 있다. '망향의 망고나무'라는 이름의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좀 더 슬프다. 어린 아들을 멀리 타국으로 보내놓고 걱정하지 않을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고향에서 아버지가 인편으로 보낸 편지가 중국을 거쳐 필리핀까지 온 것은 무려 사 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 반가운 편지를 받고 망고나무 옆에 서서 집안 모두 무사하다는 글을 읽은 김대건 신부는 반가움과 그리움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아버지가 천주교 박해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때였다고 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간 편지는 아버지가 이역만리 떨어진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성당에 가기 전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필리핀에서 가본 맥도날드 중 가장 손님이 없는 맥도날드였다. 가만히 보니 맥도날드 바로 앞에 졸리비와 망이나살이 보였다. 맥도날드에 손님이 뜸할 수 밖에 없다. 성당 입구 주차비가 적혀 있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이곳 성당 주차장 또는 맥도날드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한다. (본당에는 주차 공간이 없음)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나이에 필리핀에 왔을 터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 뭔가 어색하지만, 필리핀 사람들 생각에는 김대건 신부님이 이렇게 생겼나 보다. 간단한 안내문이 있지만, 타갈로그어로 적혀 있다. 듣기로는 본당 쪽에 가면 한글로도 적혀 있다고 한다.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The Parish of Sto. Cristo and St. Andrew Kim Tae-gon New Church) 성당 내부 성당 왼쪽으로는 배 모형도 있다. Diocesan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 주소 : Project Pangarap, Lolomboy, Bocaue, 3018 Bulacan Province, Philippines ■ 위치 : 필리핀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 보카우에 롤롬보이 ■ 비고 - 차를 가지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으로 가려면 구글이나 웨이즈에서 'McDonald's Lolomboy'로 검색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 주차는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있는 새로 지은 성당 쪽에 해야 한다. 롤롬보이 본당 쪽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본당 정문 앞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라서 차를 돌리기도 어려우니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 롤롬보이 본당으로 간다면 구글맵에서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로 검색하고 걸어가면 된다. [주의]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는 롤롬보이 본당(기존 성당)과 성 십자가와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새로 지은 성당) 두 곳으로 장소가 나뉜다. ① 수원교구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Bulacan’s Korean Temple(Shrine of Saint Andrew Kim) www.philinlove.net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신부 성지 -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필리핀 여행 | 필인러브 ②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Nuestro Señor Jesucristo Parish - Diocesan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불라칸 김대건 성인 성지 - 성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필리핀 현지 사정에 의해 수시로 내용이 변동될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PC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콘텐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이에 대한 무단배포 및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글, 사진, 영상 등 콘텐츠의 내용을 사전 동의 없이 재편집하여 사용하거나, 출처 없이 필인러브의 콘텐츠를 무단 스크랩하여 사용하실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Copyright 2025. 필인러브 all rights reserved -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