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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역사: 1898년 이후 현재까지 필리핀 국기의 규격과 색상의 변화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898년 이후 현재까지 필리핀 국기의 규격과 색상의 변화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1일 필리핀의 국기는 위는 파랑, 아래는 빨강에 왼쪽에 흰색의 정삼각형에 태양과 3개의 별이 나와 있다. 국기의 가로세로 비율은 2:3인데 흰색 삼각형은 정삼각형으로, 정삼각형 변의 길이는 세로의 길이와 일치 한다. 또한 세 개의 별의 꼭짓점은 별의 중앙을 향해 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국기를 처음 도안했을 때만 해도 태양에 의인화된 얼굴이 그려져 있었으나 나중에 의인화된 특징을 없애고 광선을 단순하게 정리하였다. 국기 제작에 필요한 천 공급에 문제가 있어서 푸른색의 색상이 조금씩 변했지만, 1998년 공화국법(Republic Act. No. 8491)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과 색상으로 정해졌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도안했던 국기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 전쟁 시 국기의 붉은색이 위로 가는 이유 1898년 이후 필리핀 국기 모양의 변화 시기 국기 디자인 1898년~1901년 1901년~1907년 1919년~1936년 1936년~1941년 1941년~1945년 1985년~1986년 1998년~현재 필리핀 불라칸의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에 비치된 필리핀 국기 관련 안내문. 이 성당에서 필리핀 제1공화국의 기본법인 말로로스 헌법이 비준되었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https://www.officialgazette.gov.ph/1998/02/12/republic-act-no-8491/ · http://malacanang.gov.ph/history-of-the-philippine-flag/ · https://news.mb.com.ph/2019/05/27/national-flag-days-start-today/ · http://nhcp.gov.ph/the-philippine-flag-symbol-of-our-sovereignty-and-solidarity/ · https://www.officialgazette.gov.ph/the-philippine-flag/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와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와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3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코레히도르섬(Corregidor Island) 마닐라베이 입구에 있는 코레히도르섬(Corregidor Island) 은 태평양 전쟁 때 미국이 일본에 내주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한 장소이다. 섬 안에 무언가 특별한 보물이 있어서는 아니고, 마닐라 서쪽으로 불과 48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로 취급된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격전지였던 코레히도르섬은 1942년 미국 육군극동사령부(USAFFE) 의 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의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퀘손 대통령 역시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약 2달 동안 코레히도르섬을 필리핀 정부의 임시 소재지로 사용했다. 그리고 일본이 마닐라로 입성하기 나흘 전인 1941년 12월 30일, 마누엘 퀘손 대통령은 포트 밀스(코레히도르 요새)의 말린타 터널 밖에서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취임 선서를 했다.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 Battle of Corregidor 1942년 5월 5일~ 1942년 5월 6일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2년 1월 2일 일본군이 마닐라 입성한 뒤 미국 육군극동사령부(USAFFE)는 마닐라를 떠나 바탄 반도로 후퇴해야 했다. 마닐라를 오픈 시티(국제법상 전시에 보호를 받는 비무장도시)로 선포하고 마닐라를 떠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코레히도르섬의 말린타 터널(Malinta Tunnel)을 미국 육군극동사령부(USAFFE)의 본부로 삼아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를 지휘했다. 하지만 미군의 추가 병력과 보급품이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호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1942년 3월 필리핀을 떠나게 된다. 당시 바탄의 병사들은 바탄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에 머물며 전쟁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해 안전하게 말린타 터널의 방공호에 숨어있다는 뜻에서 더그아웃더그(Dugout Doug)라고까지 불렀지만,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이 떠난 뒤 필리핀 주둔 미군의 최고 지휘관 자리는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이 맡았다. 1942년 4월 9일 바탄 전투가 끝난 뒤 코레히도르섬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폭격 대상이 되었다. 바탄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코레히도르섬의 점령에 나선 것이다. 섬에 상주하는 포병 군인들을 위한 영화관이며 야구장과 같은 시설까지 갖춘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 는 '지브롤터'라고 불릴 정도로 방어력이 탄탄해 보였지만, 선박과 총포술의 발전은 1910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박격포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보급품이 제대로 오지 않고 있었다. 식량 배급을 조절해야 할 정도의 악조건 속에서 지속적인 일본의 포위 공격을 막기란 어려웠다.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필리핀 연합군은 한 달 가까이 버텼지만, 일본군의 집중 폭격에 무너지고 만다. 일본에서는 전투기를 동원하여 섬 곳곳에 집중적인 포격을 퍼부었는데, 섬에 투하된 중 폭탄 하나가 탄약고에 떨어져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5월 5일 일본군이 섬에 상륙하면서 사망자 수가 800명 가까이 늘어났다. 말린타 터널에는 천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있었지만, 터널까지 부상자를 옮길만한 보충병조차 없는 상황이 닥쳐왔다. 결국 미국의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은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에 항복 의사를 밝혀야만 했다. 추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코레히도르 전투(Battle of Corregidor)로 연합군의 군인 약 800명이 사망하고, 1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11,000명의 포로는 일본군 포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역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1945년이 되어서야 풀려났다. 여담이지만, 1945년 9월 2일 미국 등 연합국 대표단이 미 해군 군함 미주리호(Battleship Missouri) 위에서 일본의 공식 항복을 받을 때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장군 뒤에 서 있던 잔뜩 야윈 체격의 남자가 바로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이다. 수세에 몰려 일본에 패배를 인정하고 3년 넘게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그가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지는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본인이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베이에 있는 코레히도르섬이 군사요충지가 된 이유 필리핀 역사: 1910년,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 미군 군사시설 건설 필리핀 코레히도르섬(Corregidor Island)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NESCO World Heritage Convention: Corregidor Island and Historic Fortifications of Manila Bay · US Army Airborne & Special Operations Museum: What Happened During the Battle of Corregidor?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Bataan and Corregidor December 1941–May 1942 · United States Navy: General D. A. MacArthur and Loss of Corregidor · World War 2 Facts: Battle of Corregidor Fact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공휴일: 2019년 필리핀 공휴일은 언제일까? 징검다리 휴일을 만들기 좋은 날은?

    필리핀 공휴일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공휴일 필리핀 공휴일: 2019년 필리핀 공휴일은 언제일까? 징검다리 휴일을 만들기 좋은 날은?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2월 8일 필리핀 국기 필리핀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필리핀 공휴일에 따라 휴일을 보낸다면 언제 연차를 써야 징검다리 휴일을 보낼 수 있을까?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Malacanang)에서 발표한 2019년 필리핀 공휴일(2019 Philippine Holidays)은 아래와 같으니 미리 날짜를 확인해 두었다가 휴가 계획을 세우거나 항공권 등을 발권할 때 참고하면 좋겠다. 12월의 경우 12월 23일만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때보다 긴 연휴를 보낼 수 있다. 2019년 필리핀 공휴일 2019 Philippine Holidays - '이드 알피트르(Eidul-Fitr)' 이슬람 라마단 공휴일은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아래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라마단 공휴일은 매년 이슬람력에 의해 날짜가 변경되기 때문에 추후 정확한 날짜가 확정되면 말라카냥에서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 필리핀 사람들이 공휴일을 '정규공휴일(Regular Holiday)'과 '비근무공휴일(Special Non-Working Day)'로 나누는 까닭은 휴일의 형태에 따라 휴일 급여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리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필리핀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다면 필리핀 노동고용부(DOLE)에서 정한 휴일수당에 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 필리핀에서 왈랑 빠속(WALANG PASOK)이라고 하면 No class 또는 No work의 의미가 된다. 태풍이나 지진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학교 휴교령이 내려지는지 알고 싶다면 뉴스에서 '왈랑 빠속'이 나오는지 확인하면 된다. 정규공휴일(Regular Holiday) 2019년 1월 1일 화요일 - New Year’s Day (새해 첫 날) 2019년 4월 9일 화요일 - Araw ng Kagitingan (용사의 날)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 Maundy Thursday (부활절 연휴 기간 - 성목요일)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Good Friday (부활절 연휴 기간 - 성금요일) 2019년 5월 1일 수요일 - Labor Day (근로자의 날)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 Independence Day (독립기념일) 2019년 8월 26일 월요일 - National Heroes Day (영웅의 날)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 Bonifacio Day (보니파시오 데이) 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 Christmas Day (크리스마스) 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 Rizal Day (리잘 데이) 비근무공휴일(Special Non-Working Day) 2019년 2월 5일 화요일 - Chinese New Year (설날)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 EDSA People Power Revolution Anniversary (EDSA 혁명 기념일)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 Black Saturday (부활절) 2019년 8월 21일 수요일 - Nonoy Aquino Day (니노이 아키노 데이) 2019년 11월 1일 금요일 - All Saints’ Day (만성절)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 Feas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성모마리아 축일) 2019년 12월 31일 화요일 - Last Day of the Year (연말) Additional special non-working holidays 2019년 11월 2일 토요일 All Souls’ Day (위령의 날) 2019년 12월 24일 화요일 Christmas Eve (크리스마스 이브) 2019년 필리핀 공휴일 2019년 대한민국 공휴일 올해 기해년 한국의 법정공휴일은 총 66일로 주말까지 모두 포함하여 휴일을 따져보면 총 117일이 된다. 참고로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은 필리핀 공휴일과 대한민국 공휴일 모두 업무를 보지 않는다. 명칭 날짜 요일 신정 1월 1일 화 설날 (연휴) 2월 4일 ~ 6일 월 ~ 수 삼일절 3월 1일 금 어린이날 5월 5일 일 대체공휴일 5월 6일 월 부처님오신날 5월 12일 일 현충일 6월 6일 목 광복절 8월 15일 목 추석 (연휴) 9월 12일 ~ 14일 목 ~ 토 개천절 10월 3일 목 한글날 10월 9일 수 크리스마스 12월 25일 수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Malacanang)에서 발표한 2019년 공휴일 목록 Proclamation No. 555, declaring the regular holidays and special (non-working) days for the year 2019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으로 황제관광을 가서 성매매 관련 행위로 체포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으로 황제관광을 가서 성매매 관련 행위로 체포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9월 20일 필리핀 앙헬레스의 워킹 스트리트(Angeles Walking Street) 아마도 필리핀 국민 상당수는 이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7월 필리핀에서 성희롱방지법(Republic Act No 11313) 이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성적인 불쾌감과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적절한 접촉이나 스토킹, 음란행위 등의 행동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지나가는 여성을 상태로 휘파람을 부는 일(캣콜링)이나 온라인에서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금지 대상이다. 성희롱방지법으로 적발되면 처음에는 천 페소의 벌금이나 12시간 교육 정도의 가벼운 처벌을 받을 뿐이지만, 적발 횟수가 늘어나면 징역형에 처해지고, 벌금도 3천 페소(2차 적발)에서 만 페소(3차 적발)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이 법의 시행에 서명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자신도 성폭행을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가 파문을 일으켰던 일은 한두 번이 아닌 터라 필리핀에서 이 법이 과연 잘 시행될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나로서는 경찰이 그 시간에 소아성애자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온라인 성범죄 소탕이나 매춘 근절에 힘쓰는 것이 차라리 좋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여름의 일인데, 미국 잠수함의 함장이 필리핀 수빅에서 정박하던 중 매춘부 10여 명을 불렀다는 이유로 보직에서 물러나야 했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잠수함인 브레머튼 호(USS Bremerton)의 함장이 매춘부 고용 문제로 지휘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옳다 그르다는 평가를 배제하고 하는 이야기지만, 트래비스 제텔 대령이 매춘부 열 명을 모집하기가 얼마나 쉬웠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누가 봐도 공공연하게 매춘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필리핀이니 말이다. 섹스 관광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수십 년 전부터 겪어온 나라답게, 말라떼나 앙헬레스 골목에만 나가도 관련 업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관련하여 정확한 통계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최소 80만 명의 여성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 한다는 이야기가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다. 필리핀 원정 성매매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 뉴스거리이다. 마닐라 여행 관련 카페 운영자가 불법 성매매를 빌미로 셋업범죄(Set Up)를 할 정도이다. 이런 셋업범죄는 그 수법이 단순하다. 일단 손님에게 호텔에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해 준다. 그리고 필리핀 경찰과 짜고 성매매 단속에 체포되는 상황을 만들고 20년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겁을 준 뒤 무사 석방을 대가로 금품을 뜯어내는 것이다. 작년 초에는 앙헬레스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한국인이 러시아 매춘부를 19명이나 고용하여 불법 영업을 했다고 하여 성매매 관련법 위반으로 구속된 일도 있었다. 당시 한국인 업주는 필리핀 이민국의 상납 요구를 거부한 뒤 억울하게 셋업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에서 온 여성이 스무 명 가까이 모여 앙헬레스의 술집에서 뭘 했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물론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각설하고, 갑자기 앙헬레스에서 만났던 바바에(여자) 생각이 났던 것은 어제 필리핀 신문 한쪽을 장식한 것은 파라나케(Parañaque City) 지역에 있는 스파에서 중국인 매춘부가 구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구출이라는 단어보다는 체포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지만, 강압으로 일하는 비자발적 성 노동자도 있을 수 있으니 신문기자는 'rescued' 라는 단어를 선택한 모양이다. 아무튼, 필리핀 경찰이 로하스 불러바드(Roxas Boulevard) 거리 어딘가에 있는 스파를 급습해서는 성매매를 하던 중국인 여성 51명을 구출했다는 것이다. 최근 마카티에서 베트남 매춘부가 잔뜩 잡혔다는 이야기와 함께 바클라란 어딘가에는 중국인 매춘부가 잔뜩 있다더라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그 소문이 진짜였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바클라란 시장 근처에 있는 웰니스 스파(Wellness Spa)는 외국인, 그중에서도 중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짐작되다시피 가게 이름만 스파일 뿐, 건강(Wellness)을 위해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마닐라에서 숙박비 비싸기로 유명한 오카다 호텔에 가서 마사지를 받아도 마사지 요금이 4,000페소부터 시작하는데, 바클라란 시장 근처에 있다는 스파의 서비스 요금이 9,000페소에서 21,000페소 사이나 되었다니 서비스 가격만 들어도 어떤 서비스가 진행되었을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급습한 날 경찰이 압수한 돈만 해도 1.8밀리언 페소에 달했다고 하니 영업은 매우 잘 되었던 것 같지만, 성매매 관련법 위반으로 구속을 피하기란 어렵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VIP 손님용 특실 7개를 포함하여 37개나 되는 객실이 있는 스파가 어떠한 운영허가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작은 음식점 하나 열려고 해도 여러 가지 허가증으로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나라가 필리핀인데 대체 얼마나 빽이 좋아야만 그만한 규모의 스파를 그냥 열 수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암튼, 필리핀 경찰은 수십 명의 매춘부와 함께 종업원 7명과 중국인 손님 18명도 다 함께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필리핀 경찰서가 얼마나 시설이 열악한지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런 성매매 사건으로 체포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렇게 외국인이 낀 불법 성매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필리핀 경찰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관련자의 비자 상태이다. 성 노동자 대부분이 관광비자를 받고 입국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회사에 다녀도 워킹비자 받기가 쉽지 않은데, 필리핀에서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외국인이 취업허가증이나 워킹퍼밋(WORKING PERMIT)을 가지고 일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바 없다. 그러니 일단 이민국(Bureau of Immigration)으로 넘겨 비자 상태부터 조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업주와 함께 손님도 관계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Republic Act 9208 (Anti-Trafficking in Persons Act of 2003) 와 Republic Act 9262 등의 공화국법을 근거로 성매매를 할 경우 반(反)인신매매법과 관련해서 처벌받게 될 수 있다. 필리핀은 아동 매춘 및 아동 매매에 대해 매우 엄격한 처벌을 하는 국가라서 성매매 상대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일 경우 더 큰 처벌을 받게 된다. 술집에서 만나 성매매에 대해 상호 협의가 된 상황이고, 미성년자임을 몰랐다고 해도 인신매매방지법은 물론 아동 특별보호법(Republic Act 7610 - Special Protection of Children Against Abuse)까지 함께 적용받을 수 있다. 특히 범인이 외국인인 경우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는데 이 재판 날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추후 법원의 판결을 통해 유죄로 판명되어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게 되면, 복역 후 필리핀에서 즉시 추방되고 영구적으로 입국이 금지된다. 필리핀 공화국법(Republic Act 9208)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필리핀에서 성매매를 하여 체포되면 아래와 같이 처벌된다. 하지만 필리핀 공화국법 10364호(Republic Act No. 10364)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면, 성매매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6년~12년의 징역 또는 50,000페소에서 100,000페소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 법의 "SEC. 11. Use of Trafficked Persons" 부분에 따르면, 범죄상대가 아동인 경우 17년~40년의 징역과 500,000페소에서 1,000,000페소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행동 유형이나 빈도수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어느 법의 적용을 받던지 그 처벌이 가볍지 않다. ① 인신매매 행위 Acts of Trafficking in Persons - 처벌 : 20년 이하의 징역 / 1,000,000페소 이상 2,000,000페소 이하의 벌금 - 성매매 행위, 성적착취, 기타 포괄적인 성매매행위 ② 인신매매 촉진을 위한 행동 Acts that Promote Trafficking in Persons - 처벌 : 15년 이하의 징역 / 500,000페소 이상 1,000,000페소 이하의 벌금 - 성매매를 위한 건물 임대, 서류 위조, 성매매알선, 성을 파는 행위 또는 음란행위 등을 할 목적으로 광고하는 등 매춘을 돕는 행위 ③ 중대한 인신매매행위 Qualified Trafficking in Persons - 처벌 : 무기징역 / 2,000,000페소 이상 5,000,000페소 이하의 벌금 - 성매매 상대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일 경우, 인신매매 목적의 해외입양 등 ④ 성매매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 Use of Trafficked Persons - 1차 적발 시는 법원이 정한 곳에서 6개월 동안 사회봉사활동 및 50,000페소 벌금 - 2차 적발 시는 1년 징역 및 100,000페소 벌금 (비고) - 대한민국 형법은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해외에서 성매매한 경우라도 국내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위의 규정은 필리핀 내에서의 처벌 규정이고, 한국에 돌아가면 국내에서 성매매를 저지른 것과 똑같이 처벌을 받게 된다. 참고로 2012~2016년 사이 해외 원정 성매매로 적발된 건수는 1,632건에 달했다. 파라냐케 바클라란 시장 근처에 있는 White Bird 술집. 간판에 적힌 '남자 엔터테인먼트 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필리핀의 술집 상당수는 남성을 대상으로 하지만 가끔 여성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곳도 있다.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에 '필리핀에서 성매매는 인신매매로 취급, 불법이며 위험함'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공지사항 밤 문화로 유명한 앙헬레스의 워킹 스트리트(Angeles Walking Street). 낮에 가면 그냥 조용하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Republic Act 9208 · Republic Act No. 10364 or The Expanded Anti-Trafficking in Persons Act of 2012 Published · New law punishes wolf whistling, catcalling, online sexual harassment · 51 Chinese women rescued in Parañaque sex den raid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일로코스 파오아이 호수의 마르코스 박물관 - 북쪽의 말라카냥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일로코스 파오아이 호수의 마르코스 박물관 - 북쪽의 말라카냥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8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일로코스의 마르코스 박물관,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필리핀 일로코스 노르테( Ilocos Norte) 의 파오아이(Paoay)라는 동네에 가면 산호석회암으로 만든 아름다운 파오아이 성당(Paoay Church) 을 볼 수 있다. 파오아이 성당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로크양식 교회로 화려하다기보다는 단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성당이다. 이 파오아이 성당에서 10km 정도 가면 파오아이 호수(Paoay Lake)가 나타나는데, 그 호숫가로 가면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이름의 주택을 볼 수 있다.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그의 가족들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만 듣고 마르코스가 이곳에 계속 살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집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소유했던 29개나 되는 여름 별장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계속 살았던 것이 아니라 일로코스 노르테에 머물 때만 가족 행사와 파티 등의 목적으로 이용했던 별장이다. 호숫가 옆 넓은 땅에 만들어진 저택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로코스 사람들에게 북쪽의 말라카냥에 관해 물으면 1977년에 이멜다 마르코스가 60번째 생일을 맞은 남편 마르코스에게 선물한 집 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멜다 마르코스가 사비를 털어 산 집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파오아이 호숫가의 넓은 땅을 임대하여 현재의 관광인프라 및 기업구역청(TIEZA)의 전신인 PTA(Philippine Tourism Authority)에 북쪽의 말라카냥 건물과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도록 했다. 하지만 1977년 당시에도 북쪽의 말라카냥을 둘러싼 57헥타르 규모의 부지는 마르코스의 소유가 아니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원래 땅의 주인인 소유주에게 25년 동안 매년 1페소의 임대료를 내고 땅을 임대 하는 형태로 계약서를 썼다. 1977년의 물가는 지금과 달랐다고 하지만 1페소는 임대료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봉봉 마르코스가 이 땅의 주인이 자신의 가문임을 주장한 바 있는데, 1978년 작성된 임대 계약서에 해당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 명시되지 않았으며, 마르코스가 토지 소유자로서 세금을 냈다는 공식 기록도 없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건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마르코스의 지저분한 이야기는 잊고 건물 자체만 보면 북부의 말라카냥은 필리핀식과 스페인식, 거기에 일로코스 지역 특유의 건축 양식의 혼합된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이다. 바하이 나 바토(Bahay na bato) 로 불리는 건축 스타일로 지은 이층집인데 1층은 대리석과 콘크리트로, 2층은 나무를 이용해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방을 가진 집으로 9개의 침실과 2개의 거실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를 위해 지은 집인 만큼 카피즈 조개를 이용하여 만든 창문과 단단한 목재로 만든 정교한 마루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멋진 것은 상쾌한 공기와 멋진 주변 풍경이다. 발코니에 나가면 탁 트인 파오아이 호수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986년 피플파워혁명 이후 마르코스가 피플파워 혁명으로 독재 정권에서 물러난 뒤 이 집은 필리핀 정부에 의해 압류되게 된다. 그리고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일로코스 노르테 지방 정부에 이 집의 사용권을 넘겼다. 그런데 당시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는 마르코스의 딸인 아이미 마르코스(이메 마르코스)였다. 현 필리핀의 대통령인 봉봉 마르코스의 누나이기도 한 아이미 마르코스는 당시 일로코스 지역의 관광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그 캠페인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마르코스의 흔적을 역사적 명소로 만드는 일이었다. 북쪽의 말라카냥 역시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마르코스 박물관(북쪽의 말라카냥) Malacañang of the North 북쪽의 말라카냥은 일로코스 지역 여행 시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현 필리핀 대통령인 봉봉 마르코스가 유년기에 사용했다던 의자와 책상, 침대 등 가구를 볼 수 있는데, 그 시절에도 참 호화롭게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물관 2층에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개인 소지품과 함께 사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각 전시실은 비교적 주제가 잘 분리되어 있어 고속도로(Pan-Philippine Highway) 건설과 OFW 해외노동자 파견 등과 같이 마르코스 시대의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물 등을 볼 수 있다. 한결같이 마르코스 대통령의 업적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 마르코스의 부정부패와 인권 억압에 대한 전시품은 물론 없다. ■ 주소: Malacanang of the North Barangay, Municipality of Paoay, 2902 Ilocos Norte ■ 위치 : 필리핀 일로코스 노르테, 파오아이 / 파오아이 호수 근처 ■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30분 / 월요일 휴관 필리핀 일로코스의 마르코스 박물관,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마르코스 박물관 1층 공간 마르코스 박물관 1층 공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가 사용했었다던 침대. 그는 스물셋의 나이에 아버지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북일로코스)의 주지사를 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을 지낼 때였으니 가능한 이야기였다. 필리핀 일로코스의 마르코스 박물관,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사용했었다는 서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사용했었다는 서재 마르코스 박물관 2층 상당히 넓은 공간으로 쾌적하게 꾸며져 있다. 모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가구라고 한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이 침대를 사용했었다는 침대 북쪽의 말라카냥(Malacañang of the North)의 거실 넓은 식탁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OFW 해외노동자 파견과 관련된 전시물. 발릭바얀 박스(Balikbayan Box)가 놓여져 있다. 1970년대 필리핀 해외노동자들은 발릭바얀 박스(Balikbayan Box) 안에 이런 물건을 넣어 고향의 집으로 보냈었다. 마르코스가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외에서 이런 물건을 보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도 많았다. 두꺼운 타월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마닐라공항의 옛 사진. 마닐라 국제 공항이라고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마닐라공항은 마르코스가 피플파워혁명으로 물러난 뒤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산후아니코 대교(San Juanico Bridge). 타클로반에 있는 이 다리는 마르코스 정권 때 일본의 원조로 건설되었다. 마르코스 지지자들이 아직도 목소리에 힘을 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마르코스 시절 이런 사회 기반 시설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의 옛 사진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Rappler: Paoay property is ours – Bongbong Marco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75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과 이멜다 마르코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75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과 이멜다 마르코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일 메트로 마닐라 (Metro Manila)가 자금처럼 인구 1,348만 명(2020년 기준)이 넘게 살고 있는 대도시가 되기 전의 이야기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인구가 40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마카티시티가 아직 리잘주(province of Rizal)에 속한 작은 타운에 불과했던 터라, 마닐라 지역 내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지역은 마닐라시티와 퀘존시티, 파사이시티, 칼로오칸 정도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고, 정부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필요성은 높아졌다.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와 인트라무로스 골프 클럽 메트로 마닐라 행정구역 신설 Metropolitan Manila 1970년의 일이다. 1972년 9월 21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 후 여러 가지 대통령령(Presidential Decree)을 발효했는데, 그중 하나가 1975년 11월 7일 서명한 대통령령 제824호(Presidential Decree No. 824) 이다. 대통령령 제824호에 따라 마닐라, 케존시티, 파사이, 칼로오칸의 4개의 시티(City)와 13개의 구(Municipality)를 대상으로 메트로폴리탄 마닐라(Metropolitan Manila) 라는 이름의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는데 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가 바로 오늘날의 NCR(National Capital Region), 즉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이다. 메트로 마닐라 지역의 수입이 국가 전체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던 시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메트로 마닐라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 위원회(MMC. Metropolitan Manila Commission) 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MMC에 세금 부과에 대한 권한 등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다. MMC의 관할 구역 및 관리 체계, 권한 등이 적힌 대통령령 제824호를 보면 MMC가 실로 막강한 권한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심지어는 시에서 제정한 조례와 결의안 등을 검토하고 수정 또는 폐지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위원회의 책임자(governor)를 선출직이 아닌 대통령 임명직이었다. 그런데 이 시절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메트로폴리탄 마닐라의 주지사(Governor of Metro Manila)로 임명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 였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0년 넘게 메트로 마닐라의 주지사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마르코스 대통령이 축출될 때까지 수십억 페소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취득했다. 당시 그녀가 각종 부정부패로 모은 돈만 모두 모아도 필리핀의 외채를 전부 갚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막대한 금액의 돈이었다. 참고로 2024년 현재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의 지방(Region) 행정구역은 NCR(National Capital Region)이며, 16개의 시티(City)와 1개의 구(Municipality)로 구성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 기간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파테로스 지역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구에서 시로 승격했다. 그리고 MMC는 1995년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1976년, 퀘존시티에서 마닐라시티(City of Manila)로 수도 이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의 주요 업무 필리핀 행정구역체계: 지방(Region), 주(Province), 시(City), 구(Municipality), 바랑가이(Barangay)의 역할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대통령령(Presidential Decree) · Official Gazette: Presidential Decree No. 824, s. 1975 · 필리핀 대법원 전자도서관: PRESIDENTIAL DECREE NO. 824, November 07, 1975 · The Philippine Star: Origins of Metro Manil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2020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과 자살률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2020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과 자살률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3월 30일 필리핀 장례식 풍경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때문일까? 작년 필리핀의 내 자살률이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필리핀 통계청(PSA-Philippine Statistics Authority)에서 발표한 <2020년 필리핀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필리핀에서는 3,529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2019년(2,808명)보다 721명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대한민국의 자살 사망자 수가 13,799명(2019년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2019년 대비 25.7%나 증가한 것은 큰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필리핀 정부에서는 종교 단체 측에 자살을 막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종교단체에서는 종교적인 조언이나 지도가 아닌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 프로그램으로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과 함께 실업보험이나 빈곤층을 위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자살률의 증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도별 사망자수>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15-2019 평균 560,605 582,183 579,237 590,709 620,414 575,875 586,630 비록 자살로 인한 사망자의 수는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사망자 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2020년 필리핀의 총 사망자 수는 575,875명으로 2019년 대비 40,539명 감소했다. 특히 폐렴(30,145명 감소)과 호흡기 결핵(5,135명 감소)으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사망원인 1위에서 3위는 여전히 허혈성 심장질환과 암과 같은 종양, 그리고 뇌혈관질환이 차지하고 있다. 전체 사망자의 17.3%(99,680명)는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겨 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질환이다. 협심증, 심근경색증 또는 급사(심장돌연사) 등으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인의 식습관, 영양실조, 담배, 높은 공복혈당, 음주, 비만, 콜레스테롤 문제, 고혈압, 대기오염 등을 사망의 주요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0년 필리핀 사망원인통계 필리핀인의 주요 사망원인 필리핀 통계청은 사망 원인(Cause of Death)을 크게 19개로 분류한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전자담배사용 관련 장애, 코로나19는 별도로 분류) 이 분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제10차 개정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 체계에 따른 분류로 사망 원인을 그 유사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실정에 맞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를 개발하여 쓰고 있다. - 필리핀 사람들의 사망원인 1위는 순환계통의 질환 이다. 허혈성 심장질환(Ischaemic heart diseases)과 뇌혈관 질환(Cerebrosvascular diseases), 고혈압질환(Hypertensive diseases) 등이 모두 순환계통의 질환이다. - 종양(암) 의 사망자(62,289명)와 뇌혈관 질환의 사망자(59,736명)는 2019년도보다 조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당뇨병(6.5%) 으로 인한 사망은 전년대비 7.8% 증가했다. - 폐렴(5.7%) 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대비 48.1% 감소했다. - 운수사고(Transport accidents) 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육상 교통사고 사망이 2019년 12,764건에서 2020년 8,000건으로 감소했다. 2020년 2019년 육상 운수사고 8,000 12,764 수상운수 사고 2 8 항공 및 우주 운수 사고 - 3 기타 불특정 운송 사고 15 24 합계 8,017 12,799 - 고의적 자해(intentional self-harm) 은 필리핀인의 사망 원인 27위로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자살로 인한 평균 사망자 수는 2,630명이다. - 가해(Assault) 로 인한 사망자는 6,008명으로 2019년(8,831명)보다 감소했다. - 패혈증(Septicaemia) 으로 인한 사망자는 4,472명에 이른다. 파상풍(Tetanus) 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도 459명이나 된다. - 263명이 광견병(Rabies) 으로 인한 사망했다. - 영양실조(Malnutrition) 로 인한 사망자는 3,962명으로 파악된다. - 말라이아(Malaria) 로 사망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6명이다. - 코로나19 로 인한 사망자는 27,967명로 사망원인 7위이다. 즉, 전체 사망자의 4.9%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했다. 2020년 사망원인통계 - 코로나19 관련 사망 필리핀 사망원인통계 주요 내용 - 총 사망자 수 : 575,875명 - 조사 기간 : 2020년 1월 ~ 2020년 12월 - 조사 방법 : 전국의 통계청 등록 사무소(Office of the City/Municipal Registrars)에 사망신고된 것을 취합 - 비고 : 표의 나타난 수치는 예비(Preliminary) 조사 결과로 해외 필리핀인의 사망이 포함되지 않은 예비 수치이며 추후 최종 수치의 변경이 가능함. 사망원인 분류 2020년 1 순환계통의 질환 211,860 2 신생물 (종양 등) 62,289 3 호흡계통의 질환 57,109 4 내분비, 영양 및 대사 질환 48,433 5 질병 및 사망의 외부 원인 33,939 6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30,602 7 코로나19 27,967 8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 23,857 9 소화계통의 질환 23,313 10 비뇨생식계통의 질환 20,171 11 출생전후기에 기원한 특정 병태 9,161 12 신경계통의 질환 7,833 13 혈액 및 조혈기관의 질환과 면역메커니즘을 침범한 특정 장애 4,759 14 선천기형, 변형 및 염색체이상 4,421 15 근골격계통 및 결합조직의 질환 4,073 16 피부 및 피하조직의 질환 3,374 17 임신, 출산 및 산후기 1,335 18 정신 및 행동 장애 1,244 19 귀 및 유돌의 질환 79 20 눈 및 눈 부속기의 질환 55 21 전자담배사용 관련 장애 1 합계 575,875 ※ 질병 및 사망의 외부 원인에는 운수사고, 추락사고, 익수사고, 화재사고, 중독사고, 자살, 타살 등이 있음.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신생물은 종양 등을 의미한다. 세포의 증식이 멈춰서 더는 커지지 않는 종양이 양성 종양이다. 흔히 말하는 암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음식 때문인지 당뇨병(Diabetes Mellitus)으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필리핀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지만, 사망자는 늘 나온다. 낙태는 생명의 말살 행위로써 형법에 따라 처벌된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웠던 탓인지 교통사고 사망자가 확실히 줄었다. KOICD 질병분류 분류센터.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자료는 대한민국 통계청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 미아가오의 공동묘지 - Miagao Cemetery Camposanto 필리핀 미아가오의 공동묘지 - Miagao Cemetery Camposanto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리핀 통계청(PSA) - Causes of Deaths in the Philippines (Preliminary): January to December 2020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색인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 및 질병명 검색 · Suicide cases rise in PH as pandemic drags o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정복자 레가스피와 그의 손자 살세도, 그리고 톤도 왕국의 공주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정복자 레가스피와 그의 손자 살세도, 그리고 톤도 왕국의 공주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9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비간 시티의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후안 데 살세도의 이름을 따서 살세도 광장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스페인 시절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필리핀 속 작은 스페인'이라고 불리는 비간 시티(Vigan City)에 가는 여행객이면 으레 방문하는 거리가 있다. 바로 크리솔로고 거리(Calle Crisologo)이다. 이 거리를 쭉 걸어 비간 대성당(성 바오로 대성당) 앞에 가면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라는 이름의 꽤 큰 광장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장은 왜 살세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후안 데 살세도 Juan de Salcedo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의 외손자 1549년 출생~1576년 사망 필리핀에 은근히 많은 지명 중 하나는 바로 살세도이다. 마닐라의 마카티 시티만 봐도 살세도 빌리지(Salcedo Village)와 살세도 공원(Salcedo Park), 살세도 거리(Salcedo Street) 등등 살세도란 이름이 붙은 곳이 꽤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세도는 스페인을 정복했던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의 외손자인 후안 데 살세도의 이름이다. 1549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 는 15살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를 따라 필리핀 원정에 나섰다고 한다. 살세도는 할아버지인 레가스피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572년 5월에 다시 루손섬 북쪽으로 떠났는데, 몇 달에 걸쳐 루손섬 북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비간 지역까지 와서 부하를 남겨두고 마닐라로 돌아간 그는 이 원정 여행에 대해 스페인으로 보고서를 보냈고, 이후 펠리페 2세에게 일로코스 비간 주변이 땅을 영지로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말라리아로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27세에 사망했다.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에 있는 산 아구스틴 성당 에는 레가스피를 비롯하여 당시 지배층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살세도의 유해도 산 아구스틴 성당에 있다고 한다. 각설하고, 정복자라고 불리는 후안 데 살세도에게는 좀 애틋한 일화가 있다. 수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20대 청년이었던 살세도가 필리핀의 토착왕국인 톤도 왕국의 공주였던 칸다라파 공주(Princess Kandarapa) 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칸다라파 공주는 마닐라의 파식강 주변을 통치하던 왕의 조카로 알려져 있는데, 살세도를 처음 만났을 때 꽃다운 18세였다고 전해진다. 22세의 청년 살세도가 파식강을 지나가다 우연히 공주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나 살세도 공주의 가족 그 누구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칸다라파 공주에게는 이미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 있었고, 레가스피는 귀한 손자가 원주민이 아닌 스페인 여성과 결혼하길 원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비밀리 결혼에 성공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칸다라파 공주는 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지만, 살세도가 갑자기 긴 원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살세도가 원정을 떠난 뒤의 이야기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 외손자가 원주민과 사랑에 빠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레가스피는 살세도가 칸다라파 공주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채 전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살세도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먼 길 떠난 남편에게 편지 한 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오해한 칸다라파 공주는 상심 끝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중에 원정에서 돌아온 살세도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퍼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살세도가 칸다라파 공주를 잊지 못해 사망했을 때까지 그녀가 편지를 쓸 때 주었던 말린 연꽃잎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비간 시티(Vigan City) 비간 시티의 플라자 살세도(Plaza Salcedo) 비간 대성당(성 바오로 대성당). 정식 이름은 Metropolitan Cathedral and Parish of the Conversion of Saint Paul이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 보통 비칸 카테르랄(Vigan Cathedral)이라고 부른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Inquirer: Love and power among the ‘conquistador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창세신화: 대나무에서 나온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창세신화: 대나무에서 나온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6일 필리핀 창세신화,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7천 개가 넘는 섬나라 필리핀에는 어떤 창세신화가 있을까? 필리핀의 창세신화는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며, 문헌마다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필리핀 창세신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대나무에서 나왔다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 (Malakas at Maganda) 의 이야기로 대나무에서 나온 말라카스와 마간다로부터 세상의 시작되었음을 풀어나간다. 필리핀 비사야 지방에서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말라카스와 마간다 대신 시칼락(Sikalak)과 시카베이(Sikabay)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예 이야기 주인공 자체가 바뀌어서, 캅탄(Kaptan)이란 이름의 신이 대나무를 심었는데 이 대나무가 자라면서 반으로 나뉘어서 남자와 여자가 나타났다는 식의 설화도 있다. ⚑ 아래의 내용은 필리핀 창세신화인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이야기 중 하나를 가져다가 필인러브 운영자가 임의로 번역한 것입니다. ⓒNCCA Official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필리핀 창세신화 The Legend of Malakas and Maganda 🜹 필리핀어(타갈로그어)로 말라카스(Malakas) 는 '강한(strong)'을 의미한다. 마간다(Maganda) 는 '아름답다(beautiful), 사랑스러운(lovely), 좋은(good), 멋진(nice)'을 뜻한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시작될 때의 일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 그리고 카이트(Kite)라는 이름의 새만 살았다. 독수리 같기도 하고 솔개 같기도 한 모습의 카이트는 대단히 몸집이 큰 녀석이었다. 그 큰 몸집으로 온종일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땅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마땅히 쉴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세상을 돌며 쉴 곳을 찾던 카이트는 계략을 하나 짜냈다. 바로 하늘과 바다 사이에 싸움을 붙여보자는 것이었다. "하늘아, 하늘아. 너 그거 알아? 바다가 널 좀 우습게 알더라." "그거 정말이야?" "진짜지! 하늘이 널 가만두지 않겠다던데?" “뭐라고? 그렇다면 내가 먼저 바다를 혼내야겠어!" 카이트의 말을 듣고 하늘은 화가 잔뜩 나서 바다를 만나면 혼을 내주겠다고 소리쳤다. 이 이야기를 듣고 카이트는 바다에게 갔다. "바다야, 바다야. 너 그거 알아? 하늘이 널 혼내주겠다던데?" "뭐라고? 어디 감히? 하늘에게 내 힘을 보여주어야겠네!" 카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바다는 잔뜩 화가 나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고, 바다에는 파도가 거칠게 일어났다. 그러자 이를 본 하늘이 바다에 바위와 섬을 던져 바다가 솟아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늘과 바다의 싸움은 길고 길었고, 그 싸움 끝에 수많은 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이트가 바라던 대로 땅이 생긴 것이다. 카이트는 새로 생긴 땅에 내려와 쉬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하늘과 바다의 싸움을 붙여 만든 새로 생긴 땅은 대나무가 많은 땅이었다. 카이트가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대나무 줄기가 파도에 밀려와서 카이트의 발을 찔렀다. 화가 난 카이트는 부리로 대나무를 마구 쪼아댔고, 대나무는 반으로 쩍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대나무 마디 사이에서 필리핀 최초의 남자인 말라카스(Malakas)와 필리핀 최초의 여자인 마간다(Maganda)가 태어났다. 강하고 튼튼한 말라카스와 아름다운 마간다는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대나무 종족의 아이들은 게을렀고, 말라카스와 마간다는 오은영 박사님과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양육에 고심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아이들의 게으름에 잔뜩 화가 난 말라카스가 커다란 몽둥이를 찾아 휘두르며 아이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노여움이 무서웠던 아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을 쳐서 몸을 숨겼다. 일부는 집안에, 일부는 밖으로, 일부는 바다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때 집 안의 방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추장 이 되고, 부엌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노예 가 되었다. 그렇다면 벽난로 안에 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벽난로 속 아이들의 후손은 벽난로 속 그을름 때문에 피부가 검게 변해 필리핀의 원주민인 아에따족 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2022년에 주필리핀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에서 개최했던 전시회의 작품. 유명 동화에 한복을 입힌 작품으로 유명한 우나영 작가가 필리핀 전시를 위해 만든 작품으로 필리핀의 설화 말라카스와 마간다를 한국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사진 출처: NCCA Official - tigmamanukin · Mabel Cook Cole, Philippine Folk Tales . A. C. McClurg & Company. p. 187-188. · The Aswang Project: Examining the ‘First Man & Woman From Bamboo’ Philippine Myth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2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불라칸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필리핀에도 3·1독립선언서와 같은 독립선언서가 있을까? 필리핀에는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낭독되었던 필리핀 독립선언문이 있다. 이 독립선언서는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 했으며, 스페인어로 작성되어 있다. 필리핀 혁명정부는 독립선언 뒤 불라칸 말로로스에 있는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에서 의회를 구성했는데, 그때 구성된 말로로스 의회(혁명의회)에 의해 1898년 9월 29일 공식 비준 되었다. 한편, 지난 2024년 9월 14일에 독립선언서 사본이 마카티의 레온 갤러리에서 열린 경매에 등장하여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경매에 등장한 것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98인 중 한 명인 호세 바뉴엘로스(Jose Banuelo)가 만든 사본으로 'Birth Certificate of the Filipino Nation '라고 부르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했던 필리핀 독립선언문 초안의 사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매에서 1,140만 페소에 팔렸다. 필리핀 독립선언문 Acta de la Proclamacion de Independencia del Pueblo Filipino 필리핀 독립선언문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필리핀 독립선언문은 표지를 포함하여 총 21장으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그중 다섯 페이지는 필리핀 혁명정부의 대표 98인의 서명이니, 실제적으로는 15장 분량으로 작성된 셈이다. 필리핀 독립선언문이 이렇게 긴 것은 단순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리핀 독립선언문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하고 레가스피가 필리핀을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하여 긴 스페인 식민지 기간 필리핀인이 스페인으로부터 받았던 박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런데 스페인이 그동안 벌인 만행에 대한 내용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 적어둔 필리핀 국기의 의미이다. 국기의 흰색 삼각형은 카티푸난을, 세 개의 별은 루손, 민다나오, 파나이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태양의 광선은 혁명이 일어났던 여덟 개 지방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필리핀 국기에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성조기 색상을 사용한 이유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주리라 생각했었던 터라 "위대한 국가인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 보호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미국 국기의 색을 사용했다" 고 밝히고 있다. And, lastly, it was resolved unanimously that this Nation, already free and independent as of this day, must use the same flag which up to now is being used, whose design and colors are found described in the attached drawing, the white triangle signifying the distinctive emblem of the famous Society of the "Katipunan" which by means of its blood compact inspired the masses to rise in revolution; the three stars, signifying the three principal Islands of this Archipelago-Luzon, Mindanao, and Panay where this revolutionary movement started; the sun representing the gigantic steps made by the sons of the country along the path of Progress and Civilization; the eight rays, signifying the eight provinces-Manila, Cavite, Bulacan, Pampanga, Nueva Ecija, Bataan, Laguna, and Batangas - which declared themselves in a state of war as soon as the first revolt was initiated; and the colors of Blue, Red, and White, commemorating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North America, as a manifestation of our profound gratitude towards this Great Nation for its disinterested protection which it lent us and continues 🜹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가 작성한 독립선언문의 영문 번역본 전체 보고 싶다면, 미시간 대학교 도서관(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 사이트 에서 이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203페이지에서 206페이지 사이를 보면 된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필리핀 독립선언서의 작성자,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불라칸의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리핀 독립선언문 이미지 출처: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June 12, 1898 · 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 The laws of the first Philippine Republic (the laws of Malolos) 1898-1899. / Compiled & edited by Sulpicio Guevara . · Filipino Librarian: The Philipp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 INQUIRER: 1898 copy of PH Declaration of Independence up for auction · The Philippine Star: Copy of declaration of Philippines independence sold for P11.4 million · GMA: How Leon Gallery got a hold of the copy of declaration of Philippine independence for auctio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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