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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역사: 1910년,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 미군 군사시설 건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10년,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 미군 군사시설 건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3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코레히도르섬(Corregidor Island) 1898년 파리조약(미국-스페인 강화조약)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게 된 미국에서는 1902년에서 1910년 사이에 걸쳐 코레히도르섬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군사시설로 개발했다. 미군에서는 마닐라베이(Manila Bay) 입구에 있는 코레히도르섬이 마닐라를 방어하는 요새가 될 수 있도록 섬 구석구석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요새화했는데, 당시만 해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기 전이라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포트 밀스 Fort Mills 코레히도르 요새 코레히도르섬(Corregidor Island)은 여의도 두 배 정도 크기의 작은 섬으로 위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올챙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미군에서는 이 올챙이 모양의 섬을 탑사이드(Topside)와 미들사이드(Middleside), 버텀사이드(Bottomside), 테일사이드(Tailside)로 구역으로 나누어 개발했다. 코레히도르섬 지도 올챙이 모양에서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탑사이드와 미들사이드에는 포병대 시설 및 통신센터, 대규모의 요양병원, 막사(barrack) 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올챙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바텀사이드와 테일사이드에는 배를 댈 수 있는 부두와 발전소, 마을, 작업장, 창고 등이 지어졌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포대(gun battery)가 섬 곳곳에 만들어졌고, 사정거리가 긴 대구경의 중포도 설치되었다. 상하수도 시스템과 장교를 위한 골프장과 수영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당시 미군에서 대포가 있는 섬의 서쪽 탑사이드와 부두시설이 있는 동쪽 테일사이드 사이에 100km에 달하는 도로를 깔았다는 것이다. 약 30km 정도는 트램(노면전차)가 달릴 수 있도록 해서 부두에서 포대까지 무거운 탄약과 장비를 날랐다. 실로 거대한 이 방어용 진지에는 미 육군 포병 대장이었던 사무엘 마이어스 밀스 주니어( Samuel Meyers Mills Jr.) 준장의 이름을 따서 포트 밀스(Fort Mills) 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1932년부터 1934년 사이 밀스 요새에서는 전쟁 발생 시 군수품과 중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보강 작업에 들어간다. 해안에서 적의 함선을 상대할 수 있는 해안포가 해상 전투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전투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군에서는 보텀사이드 근처에 있는 말린타힐에 300m에 가까운 길이의 말린타 터널(Malinta Tunnel) 을 뚫었다. 그리고 말린타 터널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24개의 보조 터널을 만들어 필리핀주둔미군사령부 사무실과 탄약과 보급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건설했다. 부상자를 위한 병원과 작업장 등을 갖춘 거대한 시설이었다. 말린타 터널과 함께 수십 개의 해안포 포대 등 방어 시설을 갖춘 포트 밀스(코레히도르 요새)는 철벽의 해상 요새로 보였다. 하지만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에서 일본에 항복하면서 미군은 코레히도르섬을 일본에 내주어야만 했다. 코레히도르섬은 1945년 2월에 코레히도르 탈환 전투가 일어날 때까지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와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베이에 있는 코레히도르섬이 군사요충지가 된 이유 1942년 3월까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본부로 사용되었던 말린타 터널(Malinta Tunnel) 배터리 웨이(Battery Way) 포대. 이 포대의 이름은 포병대 중위였던 헨리 웨이(Henry N. Way)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탑사이드에 설치된 커다란 해안포 필리핀 코레히도르섬, Battery Grubbs 필리핀 코레히도르섬 필리핀 코레히도르섬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NESCO World Heritage Convention: Corregidor Island and Historic Fortifications of Manila Bay · US Army Airborne & Special Operations Museum: What Happened During the Battle of Corregidor?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Bataan and Corregidor December 1941–May 1942 · United States Navy: General D. A. MacArthur and Loss of Corregidor · World War 2 Facts: Battle of Corregidor Fact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필리핀에 물이 부족한 진짜 이유와 마닐라 지역의 수도요금 변화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필리핀에 물이 부족한 진짜 이유와 마닐라 지역의 수도요금 변화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7월 5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기상청(PAGASA)에서 우기(rainy season)가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인 발표를 한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필리핀 뉴스를 보면 여전히 물이 부족하다고 나온다. 건기도 지났는데 왜 수도국에서는 여전히 단수 지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수도사업 민영화와 수도세 인상 국가가 공공 서비스로 제공하던 분야를 민간에게 위탁하는 일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기나 수돗물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것만큼은 민영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동안 시행하였던 민영화의 성과분석 결과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영화의 부작용을 말하면서 예시로서 늘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20여 년 전에 마닐라 상수도 민영화를 단행했는데, 민영화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잔뜩 보여주고 모든 부문을 민간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았다는 교훈을 주었을 뿐이다. 필리핀의 민영화 사업 결과는 누가 봐도 실패로 평가된다. 수도 공급은 원활하지 않은 데다가 서비스는 엉망이고, 수도요금은 비싸기 짝이 없다. 치솟은 물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난한 이들이 수도꼭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 수도국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부자가 되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민영화를 단행하기 전까지 필리핀 정부의 계획안을 보면 온통 핑크빛 기대로 가득했다. 경영효율이 높아져서 24시간 수도 공급이 안정적으로 된다는 말이나, 수질이 개선되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수준으로 깨끗한 수돗물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은 무척이나 달콤하게 들렸다. 수도세도 합리적으로 책정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에 필리핀 정부 시스템은 온통 부정과 부패의 천국이었지만 특히 수도와 전기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다. 그래서 공공 부문이 민영화되면 정부조직이 축소되고 공무원의 부패가 사라진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1997년 필리핀 정부는 수도사업을 민영화하기로 하고 공개 입찰에 들어갔다. 메트로 마닐라를 동서로 양분해 마닐라 워터(Manila Water Company, Inc.)와 메이닐라드 워터 서비스(Maynilad Water Services Inc.)가 각각 선정되었고, 민영화 관련 양허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상수도 민영화가 가져온 결과는 절대 달콤하지 않았다. 민영화 초기에 수도국 직원 중 절반 가까운 인원이 직업을 잃었을 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 같았지만, 수도세가 껑충 뛰기 시작하면서 상수도 민영화는 모두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비극은 수도세 인상이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령화된 수도관을 개보수하는 비용마저 수도요금에 포함되었으니, 수도세에 여러 가지 항목이 자꾸 추가되더니 수도 요금이 한꺼번에 400%나 인상되기도 했다. 페소 가치 하락 및 수익률 저하를 이유로 기본료까지 올라가면서 결국 수도요금의 1톤당 평균가격이 30페소를 넘어섰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고 해도 엄청난 가격 인상이었다. 서민들에게 월급의 상당 부분을 전기와 수도 요금으로 내는 상황이 닥쳐왔다. 현재 메트로 마닐라에 있는 주거용 콘도에 살고 있다면, 물을 단 한 방울도 쓰지 않더라도 월 3천 원 정도의 기본료를 내야 한다. 누구에게는 과자 한 봉짓값이 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는 적잖은 돈이다. 하지만 수도세 납부를 미룰 수는 없는 것이 한 달만 내지 못해도 수도 공급이 바로 중단되고, 다시 연결하려면 메이닐라드 워터에 251페소나 되는 연결 비용을 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에게는 매달 납부해야 하는 수도요금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수도 연결 비용은 회사마다, 그리고 단수 기간이 Temporarily Closed 인지 Permanently Closed에 따라 달라진다. Permanently Closed 의 경우 수도 연결비가 9,212페소나 된다.) 상수도 민영화 이후 마닐라 지역의 수도요금 변화 상수도 민영화 이후 마닐라 지역의 수도요금 변화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지역에서 가정용 상수도 요금의 물 1톤당 평균가격은 아래와 같이 인상되었다. (단위:페소)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메이닐라드워터 4.96 4.96 5.8 6.13 10.79 11.39 11.39 11.39 19.72 21.12 21.12 23.05 27.24 28.29 30.43 32.92 마닐라워터 2.32 2.32 2.61 2.76 4.22 4.51 10.06 10.4 13.95 14.94 14.94 19.64 21.91 23.08 25.11 27.44 - 자료 출처 : 마닐라 도시상수도공사(MWSS. Metropolitan Waterworks and Sewerage System) 필리핀에 물이 부족한 진짜 이유 '메이닐라드워터'와 '마닐라 워터'에서는 불라칸 지역에 있는 앙갓 댐(Angat Dam)에서 물을 끌어와 메트로 마닐라의 각 가정에 수도를 공급한다. 라메사댐(La Mesa Dam)이나 라구나 호수(Laguna Lake)에서도 물을 끌어와 사용하기는 하지만 주요 수원은 역시 앙갓 댐이 된다. 그런데 7월 현재까지도 앙갓 댐의 수위가 여전히 160m를 나타낸다고 하니 물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가 계속 내려만 준다면 댐의 수위가 정상 수준인 180m까지 곧 회복되리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불라칸에 비가 계속 오리라는 낙관론적인 관측만 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비가 계속 내리는 우기에도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물 부족 사태의 발생이 건기에 엘니뇨 현상이 겹쳤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큰비가 왔음에도 수도국에서 제한 급수를 논하는 것이 날씨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댐의 용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물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구보다 물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날씨가 회복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수자원 확보를 위한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지속해서 논의되어 온 부분이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 논의만 하는 와중에 마닐라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인구는 늘었는데 그 인구를 뒷받침할만한 상수도 시설이 생기지 못했으니 물 부족 사태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내 단수 사태에 그치지 않았다. 설거지하고 샤워를 하는 일상적인 일이 특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부족해지면서 일회용 식기를 쓰거나 접시에 비닐봉지를 씌어 사용하게 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난 것이다. 물 부족이 일회용품의 과다 사용을 불러오고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끌고 오는 셈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와서 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앙갓댐에 대한 의존을 완화하고 점점 늘어나는 물 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새로운 수원 개발을 위해 칼리와 댐 프로젝트(Kaliwa dam project)를 조속히 시작하고, 노후한 상수도관을 교체하여 물이 누수로 새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폐수처리시설을 확장하여 수질 오염을 방지하고, 수질 개선을 위해 바다와 호수의 청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필리핀의 산림 면적이 매년 2.1%씩 줄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물 공급원인 숲을 복원하는 등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수도업체의 설비투자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마닐라 도시상수도공사(MWSS. Metropolitan Waterworks and Sewerage System)에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기라고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지금의 물 부족 사태가 8월이나 9월이 되어야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 오롯이 엘니뇨 현상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물이다. 필리핀처럼 더운 나라에서 물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누에바 에시하( Nueva Ecija)에 있는 판타방간 댐( Pantabangan Dam) 누에바 에시하( Nueva Ecija)에 있는 판타방간 댐( Pantabangan Dam) 서민들에게는 수도요금 내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etropolitan Waterworks and Sewerage System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필리핀의 공식 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필리핀의 공식 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8월 1일 지폐를 보면 필리핀공화국(Republika ng Pilipinas)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필리핀 공화국 Republic of the Philippines 필리핀의 공식 국명 필리핀은 1946년 7월 4일에 미국으로부터 독립 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필리핀에서 택한 공식 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ka ng Pilipinas) 이다. 영어로는 리퍼블릭 오브 더 필리핀(Republic of the Philippines) 이라고 쓴다. 필리핀 역사에 따르면 필리핀이 공화국(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임을 처음 선포한 것은 1986년 말로로스 의회(Malolos Congress)라고 한다. 에밀리오 아기날도 에 의해 설립된 필리핀 혁명정부(필리핀 제1공화국) 는 1899년 1월 22일에 말로로스 헌법 을 공포했는데 이 헌법을 보면 'La República Filipina es libre e independiente.(The Philippine Republic is free and independent.)'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했을 시기, 미국에서는 필리핀을 어떻게 불렀을까? 미국 식민지 시절(1898년~1946년) 초창기, 미국에서는 필리핀을 < 더 필리핀 아일랜드(the Philippine Islands)> 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후 < 더 필리핀(the Philippines)> 으로 표기를 바꾼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는 타이딩스-맥더피 법(필리핀 독립법) 을 통과시켜 10년 뒤에 필리핀을 완전히 독립시킬 것을 결의했는데, 이 법에 따라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가 발족되었다. 마누엘 케손 대통령 이 코먼웰스의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전인 1935년 2월 8일에 제정된 헌법 제17조 제1항을 보면 "필리핀의 독립이 선언된 뒤 '필리핀공화국'으로 불리게 된다"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1935년 헌법 제 17조 제1항 1935 Constitution. ARTICLE XVIII THE COMMONWEALTH AND THE REPUBLIC Section. 1. The government established by this Constitution shall be known as the Commonwealth of the Philippines. Upon the final and complete withdrawal of the sovereignty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proclamation of Philippine independence, the Commonwealth of the Philippines shall thenceforth be known as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Philippines 두테르테와 마할리카 지난 2019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이란 국명이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 이유로 국호를 마할리카(Maharlika) 로 바꾸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의견이라고 하여서 국명을 바꾸는 일이 쉽게 될 리가 없다. 두테르테의 주장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직에 있던 당시에도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반응이었다가 대통령이 봉봉 마르코스로 바뀌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참고로 마할리카는 필리핀어로 자유인(freeman), 고귀함(nobility), 귀족(royalty) 등을 의미한다. Teus Mansion Presidential Museum. 말라카냥궁의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필리핀 헌법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말라카냥궁에서 판매 중인 스티커. 스티커 안쪽을 보면 국장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부분의 리본 안에는 필리핀공화국이라고 적혀 있다. Sagisag ng Pangulo ng Pilipinas. 필리핀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장이다. 필리핀 국기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GOVPH: About the Philippines · Official Gazette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The 1899 Malolos Constitution · Official Gazette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The 1935 Constitution · Nikkei Asia: Duterte wants Philippines renamed 'Maharlik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슈퍼 블루 블러드문 개기월식 관측 시간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슈퍼 블루 블러드문 개기월식 관측 시간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8년 1월 30일 1월 31일에 무려 35년 만에 찾아오는 슈퍼 블루 블러드문을 볼 수 있다는데, 필리핀에서는 대체 어디에서 몇 시에 볼 수 있을까? 내일은 많은 이들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바로 슈퍼 블루 블러드문(Super Blue Blood Moon) 때문이다. 내일 관측되는 달은 보통의 달이 아니다. 엄청나게 긴 이름부터 남다른 이 달을 보면 슈퍼문과 블루문 그리고 개기월식까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세 가지 천문현상이 동시에 겹쳐 일어나는 것은 지난 1982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무려 35년 만에 일어나는 일이니, 진기한 우주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개기월식 시작 시각이 저녁 시간대라서 특별한 장비가 없더라도 진귀한 천문현상을 시작부터 끝까지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다. 슈퍼문, 블루문, 그리고 블러드문의 의미 슈퍼문 달이 지구 가까이 접근해 평소보다 크고 밝게 보이는 것. 지구와 달의 거리는 평균 38만4400㎞이지만, 1월 31일은 35만8994㎞까지 가깝게 접근한다. 블루문 달의 실제 공전주기는 29.5일이지만 양력의 한 달은 2월을 제외하면 30일과 31일이다. 이 말은 월초에 보름달이 뜨면 30일이나 31일에 다시 보름달이 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달 내에 보름달이 두 번 뜰 경우,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한다. 다만 이런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색깔이 푸른색이기 때문이 아니다. '배신하는(belewe) 달'이라는 의미이다. 블러드문과 개기월식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놓이게 되면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게 되는데 이 현상을 '개기월식'이라고 한다. 개기월식이 일어날 때 지구대기를 지난 태양 빛이 산란이 일어나면서 붉게 변해 달에 도달하면 보름달이 핏빛처럼 붉게 보인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슈퍼 블루 블러드문 관측하기 슈퍼 블루 블러드문을 필리핀에서도 볼 수 있을까? 필리핀 기상청에 따르면 필리핀 전역에서 슈퍼 블루문 블러드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혹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Lunar eclipse)의 전체 과정을 보려면 1월 31일 저녁 6시 49분부터 2월 1일 오전 12시 9분까지 하늘을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장면만 보려고 한다면 저녁 9시 29분에 하늘을 보면 된다. 그리고 만약 내일 우주쇼를 놓치게 된다면 7년 뒤인 2025년 9월 7일에 개기월식 전 과정을 다시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올해 7월 28일 개기월식이 한 번 더 일어난다고 하지만, 이때는 시작 시간대가 새벽이어서 전 과정을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반영식의 시작 : 1월 31일 오후 6시 49분 - 부분식의 시작 : 1월 31일 오후 7시 48분 - 최대 하이라이트(Greatest eclipse) : 1월 31일 오후 9시 29분 - 부분식의 종료 : 1월 31일 오후 11시 11분 - 반영식의 종료 : 2월 1일 오전 12시 9분 퀘존 천문대에서 개기월식(Lunar eclipse) 관측하기 필리핀에서도 마닐라 퀘존 지역에 살고 있다면 기상청 천문대(PAGASA Astronomical Observatory)에서 관람해도 좋겠다. 천문대 안의 만원경을 무료로 사용가능하며, 우주 사진 찍기 강연도 참석할 수 있다. 파가사 천문대(PAGASA Astronomical Observatory)는 필리핀 기상청(pagasa)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퀘존 UP 딜리만(UP Diliman) 안에 있다. - 날짜: 2018년 1월 31일 - 입장료: 무료 - 주소: PAGASA Astronomical Observatory. 1101 마닐라. 퀘존. 딜리먼 - 위치: 마닐라 퀘존 UP 딜리만 대학교 필리핀 기상청에 따르면 1월 31일 저녁 9시 29분이 이번 개기월식에 있어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 출처 : https://www1.pagasa.dost.gov.ph/index.php/28-astronomy)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 Atmospheric Geophysical and Astronomical Services Administratio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우까이우까이는 반입 규제 물품! 필리핀은 중고 의류의 상업적 수입금지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우까이우까이는 반입 규제 물품! 필리핀은 중고 의류의 상업적 수입금지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10월 20일 우까이우까이(Ukay-Ukay) 얼마 전 한국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 중고의류 400묶음이 카가얀데오로(Cagayan de Oro)의 세관에 압수되었다고 한다. 필리핀 관세청(BOC)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 보낸 헌 옷(중고의류)이 필리핀 북민다나오 미사미스 오리엔탈(Misamis Oriental)에 있는 민다나오 컨테이너 터미널(Mindanao Container Terminal)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월 13일. 이 물품은 헌 담요와 베갯잇, 중고 장난감 등으로 신고되었지만 CIIS-CDO의 조사 결과 헌 옷(구제 옷)이라고 밝혀져서 압수 처리되었다. 그런데 민다나오까지 이 물건을 가져온 사람은 어떤 법을 위반한 것일까? 일단 필리핀 공화국법 제10863조(Republic Act No. 10863)에 따라 물품 목록에 대해 거짓 신고를 했음에 대해 처벌을 받게 된다. 세관현대화⋅관세법(Customs Modernization and Tariff Act)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무려 166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입 업자가 수입 화물의 품목 정보나 원산지 등을 고의로 잘못 신고했을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물품의 거짓 신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리핀에서 중고의류는 애초에 수입금지품목(반입 규제 물품) 이라는 것이다. 동네 재래시장의 우까이우까이만 가도 한국에서 온 헌 옷을 매우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지만 필리핀 법에 따르면 중고의류는 반입 규제 물품(Regulated Goods)이다. 그리고 이 법의 시작은 무려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 우까이우까이 필리핀에서는 의류, 가방, 신발 등의 중고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상점을 우까이우까이(Ukay-Ukay) 라고 부르는데, DIG(파내다)란 의미의 필리핀어 hukay(halukay)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필리핀 최대 쇼핑몰인 SM쇼핑몰에 빗대어서 장난스럽게 S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세군다 마노(Segunda Mano. 타갈로그어로 '중고'를 의미)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우까이우까이 상점에서 파는 물품의 가격은 품질 또는 판매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20페소에서부터 200페소 사이로 책정되어 있다. 애초 우까이우까이의 주요 수요층은 새 옷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이었지만, 요즘은 '클래스 A'의 중고 의류를 상당한 고가에 판매하기도 한다. 중고의류 수입금지 중고의류는 반입 규제 물품(Regulated Goods) 1966년 제정된 공화국법(Republic Act No. 4653)을 보면 "일반적으로 중고의류(used clothing) 및 넝마(Rag)로 알려진 섬유 제품의 상업적 수입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국가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헌 옷의 수입과 국가의 존엄성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어쨌든 중고의류의 상업적 수입은 1966년부터 불법이었다. 그리고 불법적인 개인, 협회 또는 법인에 의한 중고 의류 및 넝마의 수입에 대한 처벌은 꽤 센 편이다.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한 자는 200페소 이상 2만 페소 이하의 벌금 또는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우까이우까이(Ukay-Ukay)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에 만들어진 법이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히 비싼 벌금을 책정한 셈이다. 독특한 것은 중고 의류 판매에 대해서는 불법이라는 규정이 보이지 않는다. 판매가 아닌 수입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꼴이다. 어쨌든, 공화국법 제4653조(RA 4653)의 존재가 우까이우까이의 증가를 막지는 못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세관 규정: 필리핀 입국 시 반입이 규제·제한·금지되는 물품 우까이우까이(Ukay-Ukay) 구세군과 우까이우까이 중고의류 그렇다면 필리핀에는 언제부터 우까이우까이(Ukay-Ukay)가 생겨났을까? 우까이우까이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1980년대에 비정부기구(NGO)가 기금 마련 수단으로 의류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중고의류 판매가 늘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런 NGO단체 중 대표적인 단체는 바로 구세군이다. 연말이면 붉은색 자선냄비와 함께 등장하는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개신교단이다. 1878년이 되자 기독교 선교회에서는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의미로 구세군(The Salvation Army)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사회봉사를 통해 선교활동을 펼쳐나갔다. 1980년대 구세군에서는 빈곤과 악을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의미의 자선 활동을 많이 했는데, 그 대상지 중 하나가 필리핀이었다. 요컨대 구세군 등 NGO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품으로 받은 의류를 가져다가 바기오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중고 의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는 이야기이다. 당시 젊은 사람들이 이를 빈티지 의류의 유행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중고의류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어났다. 홍콩에서 싼값에 옷을 사다가 필리핀으로 가져와서 판매하는 사업은 매우 수익성 좋은 사업이었고, 바기오 야시장(Baguio Night Market)과 산토 토마스 대학교(UST) 근처 밤방 거리(Bambang St)에는 중고 의류 가게가 잔뜩 생겨났다. 하지만 기부용 중고의류를 필리핀으로 가지고 와서 판매하는 것은 불법 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바로 과연 필리핀 정부에서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중고 의류 밀수업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DSWD)에서는 NGO가 사회복지개발부의 허가를 받고 기부물품처럼 중고의류를 가지고 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한다. NGO 단체가 저지른 불법 활동에 사회복지개발부가 가담한 것으로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 중고 의류의 수입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으니, 1966년 만들어졌다는 법을 지키는 일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필리핀 의류업계에서는 이런 중고의류가 합법적인 의류 제조업체의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필리핀 전역에 걸쳐 중고 의류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 관세청 (Bureau of Customs) 에서는 중고 의류 관련하여 세관 검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필리핀에서 중고 의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필리핀 관세청(BOC) 직원이 뇌물을 받고 홍콩이며 미국에서 중고의류를 들여오도록 도와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2015년, 미사미스 오리엔탈에서 중고 의류가 담긴 21개의 컨테이너가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중고 의류의 가치는 무려 5,200만 페소에 달했고, 필리핀 관세청(BOC)에서 이 일을 놓고 중고의류의 최대 압수(biggest seizure of used clothing)라고 칭하면서 앞으로도 철저하게 밀수품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0년인 지금까지도 비슷한 일은 종종 일어난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계속 몰래 중고의류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중고의류가 여전히 큰돈이 되는 모양이다. 중고의류에 대한 필리핀 세관검사 필리핀 관세청(BOC)에서는 세관 수입통관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물품 검사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컨테이너 전용 엑스레이(X-ray)를 사용하여 검사를 진행하지만, 실제 컨테이너 내용물과 수입자의 포장명세서(Packing List)가 차이가 있을 경우는 세관 직원이 물품을 직접 조사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 하나. 필리핀 관세청(BOC)에서는 이번에 적발된 중고의류에 대해 2밀리언 페소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된다고 밝혔다. 200만 페소(한화 4,694만 원에 해당)에 해당하는 헌 옷 400묶음이 적발되었다고 했으니 헌 옷 한 묶음에 5천 페소(한화 117,350원) 정도 되는 셈이다. 참고로 필리핀의 수입금지 품목은 중고 의류 및 넝마뿐만이 아니다. 일단 내란 선동이나 반역 등의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서적이나 신체에 해악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적은 수입이 금지된다. 성인용품과 같은 외설적인 음란물, 불량 의약품 및 식품,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상품 등도 모두 수입이 금지된다. 낙태를 불법으로 하는 나라답게 "불법 낙태용 도구 및 약품"에 대해서도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마리화나와 같은 마약이나 폭약 및 총기, 도박 용구, 복권, 경마권 등은 법률 또는 규정에 의해 승인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수입이 가능하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자국 취약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높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수입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우까이우까이(Ukay-Ukay)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Republic Act No. 10863 - AN ACT MODERNIZING THE CUSTOMS AND TARIFF ADMINISTRATION · Republic Act No. 4653 · 필리핀 관세청(BOC) - Bureau of Customs · Prohibited & Restricted Imports · Illegal? What you need to know about ukay-ukay · When ukay-ukay is more than a challenge · Online ‘ukay-ukay’ finds for you by young lady in Cebu! · Customs cracks-down on Baguio ‘ukay-ukay’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6월 8일부터 마닐라 시티(Manila City)의 주류 판매 금지 해제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6월 8일부터 마닐라 시티(Manila City)의 주류 판매 금지 해제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6월 8일 마닐라 시(Manila City)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5명을 기록하던 지난 3월 28일, 마닐라시 시장(mayor)인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Isko Moreno Domagoso)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No. 2020-026)을 통해 주류의 판매 및 유통에 대해 금지령을 선포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거리에 모여 술을 마시는 모습이 확인되자 강경책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당시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는 이 금주령을 위반할 경우 판매 업소의 사업허가(비즈니스 퍼밋)를 취소할 것이라고 호령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격리조치가 끝날 때까지 금주령은 계속 시행된다고 밝혀 애주가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메트로 마닐라의 다른 지역에서 주류 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니, 마닐라 시(Manila City) 안에서만 술을 팔지 않는다고 금주 효과가 나타날 리가 없다. 오늘(6월 8일)부터 마닐라 시의 금주령이 해제된다.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여전히 금지되지만, 주류의 판매나 유통 모두 가능 하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통행금지 등은 계속 시행될 예정이다. 한편, 6월 5일 현재 마닐라 시의 확진자 수는 1,557명이며, 그중 104명이 사망했다. 회복된 환자는 457명으로 조사된다. 𖠿 관련 글 보기 마닐라 시티(Manila City) 금주령 시행 - 주류 판매 금지 메트로 마닐라의 금주령 - 주류 판매 허용 지역과 금지 지역 필리핀 마닐라 말라떼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anila Public Information Office · Isko Moreno Domagoso · Manila City govt to lift liquor ban on Monday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의 비논도 성당과 필리핀 최초의 성인 로렌조 루이스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의 비논도 성당과 필리핀 최초의 성인 로렌조 루이스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2월 20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비논도 성당(Binondo Church) "그럼 이번에는 비논도 성당에 가보실까요?" 여행가이드와 함께 마닐라의 차이나타운에 가면 가이드가 꼭 데리고 가는 장소가 있다. 필리핀관광부에서도 마닐라 여행 중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로 손꼽는 명소인데 바로 비논도 성당이다. 이 성당의 정식 이름은 '마이너 바실리카 앤 내셔널 쉬라인 오브 산 로렌조 루이스(Minor Basilica and National Shrine of San Lorenzo Ruiz)'이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서 보통 비논도 성당이라고 불린다. 이름 그대로 비논도 지역에 있는데, 차이나타운 투어를 하고 싶다면 이 성당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된다. 그러니까 성당 왼쪽으로 가면 럭키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쇼핑 지역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옹핀 거리를 중심으로 한 맛집투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리핀 역사에 흥미가 있다면 에스콜타 거리로 가거나 파식강 방향으로 걸어가서 산니콜라스 지역 투어를 하면 된다. 마닐라 비논도 성당 Binondo Church 비논도 성당은 1596년 설립된 가톨릭교회로 수백 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다. 전쟁 중 폭격으로 종탑 일부만을 제외하고 건물이 모두 파괴되자, 지붕도 없이 미사를 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우리는 2차 대전 이후 재건된 교회 건물을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그래도 내게 이 성당이 특별한 것은 '필리핀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와 비논도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다 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따로 긴 목록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수없이 나열할 수 있는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에는 독립운동가로 거론되는 인물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매우 돋보이는 인물이다. 마닐라 톤도 출신인 보니파시오가 필리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은 외국인인 내가 봐도 퍽 흥미롭다. 각설하고,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비논도 성당이 유명한 이유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결혼식이 있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너 바실리카 앤 내셔널 쉬라인 오브 산 로렌조 루이스(소성전과 로렌조 루이스 성지)'라는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필리핀 최초의 성인이라는 로렌조 루이스(Saint Lorenzo of Manila) 때문이다. 역사에 따르면 로렌조 루이스가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김대건 신부보다 200년도 전인 1594년에 태어나긴 했지만, 최초의 순교자(protomartyr) 였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년~1846년)와 비견되는 인물이다. 로렌조 루이스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 신분이었지만, 신앙심을 어찌 신분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필리핀 성인, 로렌조 루이즈 Lorenzo Ruiz(1594년 11월 28일~1637년 9월 29일)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에서 태어난 중국계 필리핀인 로렌조 루이스(Lorenzo Ruiz)가 어떤 이유로 가톨릭이란 종교를 믿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사제의 일을 돕는 복사(Altar server)로 일했다고 하니 부모님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당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카톨릭을 믿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비논도 성당을 다니며 도미니크회 수사들에게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1594년생이라는 것이다. 필리핀에 가톨릭이 전파된 것이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에 방문하면서부터이고,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1571년부터 1898년까지임을 떠올려보면 필리핀이 스페인에 막 식민지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초창기였던 셈이다. 필리핀 가톨릭 역사를 보면 도미니크회 사제들이 1587년에 필리핀에서 선교를 시작하며 필리핀 곳곳에 수십 개의 가톨릭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비논도 성당도 그중 하나였다. 1636년 6월, 비논도 성당에서 서기 겸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로렌조 루이스는 스페인 사람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스페인 선교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고, 일본 나카사키로 끌려가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강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좋지 않지만, 당시 일본의 지배계층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간에이 시기, 종교를 내세운 스페인의 침략을 두려워한 일본에서는 낯선 외국인이 가져온 종교를 심하게 박해했고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필리핀에서 왔다는 로렌조 루이스가 고문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땅속 깊이 판 구멍에 거꾸로 매달리는 참혹한 고문 끝에 로렌조 루이스는 순교했다. 그리고 필리핀 최초의 성인이 되었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로렌조 루이스는 죽어가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하나님을 위한 죽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만약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Ego Catholicus sum et animo Prompto paratoque pro Deo mortem obibo. Si mille vitas haberem, cunctas ei Offerrem. Saint Lorenzo Ruiz de Manila, Santa Ana Church, Taguig City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 산타아나 성당(Santa Ana Church) 안에 있는 Saint Lorenzo Ruiz de Manila 마닐라 비논도 성당(Binondo Church) Plaza Lorenzo Ruiz in Binondo, Manila 산 로렌조 루이스 모누멘트(San Lorenzo Ruiz Monument) Plaza Lorenzo Ruiz in Binondo, Manila Plaza Lorenzo Ruiz in Binondo, Manila Plaza Lorenzo Ruiz in Binondo, Manila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Minor Basilica and National Shrine of San Lorenzo Ruiz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자정에 즐기세요! 마닐라 다이아몬드 호텔의 499페소 뷔페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자정에 즐기세요! 마닐라 다이아몬드 호텔의 499페소 뷔페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6월 5일 마닐라 다이아몬드 호텔. 위치와 시설, 서비스 모두 괜찮아서 코로나19 이전에만 해도 풀부킹으로 빈방 구하기가 어려웠던 호텔이다. 마닐라 말라떼에 있는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색다른 상품을 내놓았다. 바로 자정 전후한 시간에 이용하는 심야 뷔페이다. 코니쉬(Corniche) 뷔페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피카피카 뷔페(Corniche's Pica-Pica Buffet)는 여느 뷔페 레스토랑과는 다르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10시 30분부터 새벽 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499페소. 한국 돈으로 약 12,000원 정도이다. 음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라이브 음악과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뷔페 이용권은 다이아몬드 호텔 로비나 웹사이트를 통해 구매할 수 있으며, 내일부터 6월 25일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사이에 예약이 가능하다. 다이아몬드 호텔 심야 뷔페 Nightcap at Corniche: Midnight Pica- Pica Buffet ■ 이용 시간: 월요일~토요일 / 10:30 PM- 1 AM ■ 뷔페 이용료: 499페소/1인 ■ 위치: 마닐라 다이아몬드 호텔(Diamond Hotel) ■ 예약하기: Nightcap at Corniche 마닐라 다이아몬드 호텔(Diamond Hotel)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Diamond Hotel: Nightcap at Corniche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콜레라와 호세 리잘, 그리고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콜레라와 호세 리잘, 그리고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한국에서 괴질 또는 호열자로 부르던 콜레라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률이 50% 이상으로 올라가는 전염병이다. 1800년대 초반, 마닐라를 휩쓴 것은 다음 아닌 콜레라 전염병이었다. 마닐라에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자 스페인에서는 거주지인 인트라무로스 성벽 바깥에 스페인 귀족들을 위한 묘지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방문하기 쉽게끔 크게 멀지 않으면서도 인트라무로스와는 좀 떨어진 곳으로 묘지가 하나 만들어졌는데 ' Cementerio General de Dilao '라는 이름의 이 묘지가 바로 마닐라 파코 공원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1822년에 파코 묘지가 완공되었을 때는 현재와 같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파코묘지는 몇 번의 확장 공사를 거쳐 그 영역을 넓혔는데, 묘지 주변에 원형으로 외벽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파코공원이 파코묘지(Paco Cemetery)로 불렸을 시기, 이 묘지에 안장되었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호세 리잘(Jose Rizal) 이다. 호세 리잘이 1896년 12월 30일 바굼바얀(현재의 리잘파크)에서 반역 혐의로 처형된 뒤 어떤 경로를 통해 파코묘지에 매장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역사에 따르면 호세 리잘의 여동생인 나르시사(Narcisa Rizal)가 마닐라 일대에 새로 만들어진 무덤을 모두 수색하여 그의 무덤을 찾아냄으로써 호세 리잘의 유해가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르시사는 관리인을 매수하여 오빠의 무덤임을 알 수 있도록 십자가에 처형일을 적은 뒤 호세 리잘(José Protasio Rizal)의 이름을 역순으로 쓴 R.P.J라고 적은 묘비는 무덤 앞에 세웠다. 스페인이 물러가고 미국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자 나르시사는 미국 측으로부터 유해를 수습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는 것에 성공했고, 파묘하여 유해를 수습했다. 그리고 신발 등의 물건의 흔적을 통해 정말 호세 리잘의 유해임을 확인한 뒤 오빠의 유해를 집으로 가져와 보관했다. 이후 1912년 12월 29일, 호세 리잘의 유해는 마닐라시청을 거쳐 리잘파크로 옮겨진다. 그리고 1년 뒤인 1913년 12월 20일, 호세 리잘의 유해는 리잘파크에 있는 호세 리잘의 기념비(Rizal Monument) 에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파코묘지는 1912년을 끝으로 더는 새로운 시신을 매장하지 않았다. 일본점령기에 일본군의 탄약창고로 사용되던 파코묘지를 공원으로 개발한 것은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이다. 1966년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은 파코묘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뒤 공원 시설 복원에 나섰다. 공원 안에 작은 가톨릭 예배당이 지어졌고, 성 판크라티우스(판크라시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참고로 파코(Paco)는 성프란치스코에 설립된 가톨릭 프란치스코회(Franciscans ) 수도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프란치스코의 라틴어 이름(pater communitatis)에서 각 단어의 첫음절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1571년에 레가스피가 필리핀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음을 선언한 뒤, 1578년 프란치스코회의 15명의 수도사가 필리핀을 방문했다고 한다. 마닐라 파코 공원 Paco Park ■ 주소: Belen, Paco, Manila, Metro Manila ■ 위치: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에서 도보 10분 거리 요즘 파코공원의 풍경을 보면 콜레라 사망자를 매장하던 묘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공원 시설은 소박한 편이지만, 마닐라에서 보기 드물게 잘 정돈된 도심공원 중 하나이다. 건기가 되어 날씨가 화창해지면 야외 결혼식이며 소규모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부활절 기간에 가면 다소 붐비지만, 평소에는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적한 공원이라 짧은 마닐라 여행 중이라면 굳이 꼭 방문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리잘파크 쪽에 있다가 조용한 필리핀의 공원에 앉아 있고 싶어지면 방문해 봐도 좋겠다. 공원 입구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공원 안내문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에 있는 성 판크라티우스 채플(Saint Pancratius Chapel)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에 있는 성 판크라티우스 채플(Saint Pancratius Chapel)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NHCP Museo ni Jose Rizal Fort Santiago: Bust of Narcisa Rizal · National Parks Development Committee: Paco Park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대학: 필리핀 기업에서 선호하는 대학교 순위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대학: 필리핀 기업에서 선호하는 대학교 순위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8년 6월 19일 필리핀 국기 필리핀에는 약 1,141개의 대학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대학 중 어느 대학의 졸업생들이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가장 환영받을까? 필리핀 기업에서는 채용을 결정할 때 구직자의 어떤 부분을 가장 많이 볼까? 취업포털사이트인 잡스트리트에서 최근 발표한 '2018 Fresh Graduate Report' 조사 보고서 보면 필리핀에서도 취업 시 출신 대학의 간판이 큰 영향을 미친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무교육 여부, 과외활동 여부, 리더십, 상황 분석력 등도 채용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어떤 대학 출신인가도 취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대체로 "우수한 학교에서 우수한 졸업생(직원)을 배출한다"고 믿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일부 기업에서는 특정 학교의 졸업생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IT 업계에서는 라살대학과 PUP대학, 마푸아(Mapua Institute of Technology)를 선호하고, 금융권에서는 산토토마스 대학과 PUP, 아테테오 대학을 더 선호하는 식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출신 대학이 취업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교가 가장 기업에서 선호하는 대학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필리핀 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학교는 어디일까? Pamantasan ng Lungsod ng Maynila (PLM) 필리핀 기업에서 선호하는 대학교 올해 필리핀 기업에서 선호하는 대학 1위는 PUP대학교(Polytechnic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가 차지했다. 작년에는 UP에 밀려 2위를 차지했었지만, 올해 다시 영광의 1위의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2위는 필리핀 UP대학교(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 3위는 아테네오 대학(Ateneo de Manila University) 이 자리를 차지했다. 지방 대학으로는 세부에 있는 산 카를로스 대학(University of San Carlos) 과 세부대학(University of Cebu) 이 순위권 안에 들어 눈길을 끌었다. 지방 대학교가 상위 10위 목록 안에 든 것은 2014년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로 처음이라 내년에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단, 이 조사는 기업 인사담당자의 선호도에 대한 조사라서 'QS 세계 대학 순위'나 'uniRank 대학순위'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필리핀 기업 선호 대학 TOP 11 한편, 필리핀의 새로운 교육제도인 K-12 교육개편과정(K to 12 Program)을 수료한 졸업생(고교 졸업생)을 고용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 기업 중 24%만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필리핀에서도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지만, 특히 고졸 학력으로는 취업이 상당히 어려움을 알 수 있다. 필리핀의 K-12 Program이란? "K to 12 Program"은 재작년부터 필리핀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에서 새로 시행하고 있는 교육 제도도 기존 기본 교육에 2년을 추가한 과정이다. 필리핀은 원래 유치원 1년과 초등학교(elementary education) 6년, 고등학교(high school education) 4년의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난 2016년에 유치원 1년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으로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제를 개편 했다. 이렇게 10학년제에서 12학년제로 바뀌면서 의무교육 이수 후 유학을 할 때 한국이나 미국, 호주 등과 같이 12학년제로 학제를 운영하는 나라로 입학하기가 좀 더 쉬워졌다. 학제를 개편하면서 학기제도 9월 시작 학기제로 전환하고 있다. 라살대학교(De La Salle University)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잡스트리트, 2018 Fresh Graduate Repor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