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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역사: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날 리잘파크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날 리잘파크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30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1946년 5월 28일, 마누엘 로하스는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취임 선서를 했다. 전후 복구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에게는 꼭 준비해야만 하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1946년 7월 4일 필리핀 독립 기념행사였다. 스페인에서부터 미국, 그리고 일본까지, 1571년부터 수백 년에 걸쳐 있었던 지긋지긋한 식민지 생활을 드디어 끝내게 된 것이다. 필리핀 독립 Independence of the Philippines 1946년 7월 4일 마누엘 로하스 정부가 독립기념일 행사장으로 선택한 것은 루네타 파크(현재의 리잘파크) 지역. 얼마나 많은 인원이 행사를 보러 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대한 넉넉히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무대와 관람석은 호세 리잘 기념비를 중심으로 뱃머리 모양(국가의 배를 상징)으로 꾸며졌다. 하지만 행사장만 준비되었다고 해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행사 뒤 갈라쇼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마닐라 호텔을 말끔히 청소해야 했고, 맥아더 장군 등 주요 인사들에게 초대장도 발급해야 했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준비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사 날짜를 미룰 수는 없었다. 1946년 7월 4일, 그날 아침은 햇볕이 없는 흐린 날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흐린 날씨조차 필리핀 사람들의 흥분을 꺾지는 못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오랜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날인 것이다. 아침이 시작되기도 전에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초대장을 받은 손님들도 속속 행사장에 도착했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를 비롯하여 세르히오 오스메냐 전 대통령 , 정부 고위 인사 등이었다. 미국 쪽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와 폴 맥넛이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 의회 대표단, 프랜시스 버튼 해리슨( 존슨법 이 통과될 당시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의 총독), 밀러드 타이딩스( 타이딩스-맥더피법 법안 제안자) 등도 참석했다. 오전 9시 15분이 되자 약 3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립 행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국기게양식 행사였다. 필리핀 독립 관련 사진을 보면 항상 보이는 사진 중 하나가 미국 국기를 내리고 필리핀 국기를 게양하는 사진인데 바로 그 장면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미 육군 밴드가 '별이 빛나는 깃발(미국 국가)'을 연주하는 가운데 폴 맥넛이 성조기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루팡 히니랑(필리핀 국가) 의 연주에 맞추어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이 필리핀 국기를 올렸다. 미국과 호주 등의 군함에서 필리핀의 독립을 환영하는 21방의 예포(Cannon salute)를 터트렸고, 교회 종이 울려 퍼지며 필리핀이 독립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코먼웰스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의 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시작된 것이다. 제3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된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은 1,800만 필리핀인의 독립을 알리며 "우리가 우리 운명의 주인이므로, 우리 행동의 모든 결과를 감수해야 합니다."라며 취임 연설을 했다. 하지만 이날 독립 행사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폴 맥넛이 트루먼 대통령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것이었다. 폴 맥넛이 연설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비가 그치고 폴 맥넛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미국이 필리핀의 영토와 국민에 대해 행사한 모든 권한을 철회하고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독립선언문이었다. 모든 권한은 소유권, 감독권, 관할권, 통제권 및 주권을 의미했다. * 폴 맥넛 (Paul V. McNutt)은 1945년부터 1946년 7월 4일까지 필리핀 고등판무관(U.S. High Commissioner) 자리에 있던 인물이다. 필리핀 독립 후에는 1947년까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Ambassador)로 일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 독립 기념 국기게양대 - 1946년 독립기념일 행사의 장소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Rizal Park)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 필리핀 독립 기념 국기게양대(Independence Flagpole)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Rizal Park) 1946년 7월 4일, 필리핀 독립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사진 출처: Philippine Independence, July 4 1946 · U.S. Embassy Manila: 75 Years of U.S.-Philippine Friendship · Official Gazette: Inaugural Address of President Roxas on the Independence of the Philippines (July 4, 1946) · The National WWII Museum: July 4, 1946 The Philippines Gained Independence from the United Stat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랜선여행은 이제 그만! 현재 마닐라 사람들은 보라카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랜선여행은 이제 그만! 현재 마닐라 사람들은 보라카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6월 22일 필리핀 보라카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필리핀 정부에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외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및 무비자 입국 혜택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작년 3월에 시작된 이 조치는 현재까지도 유효하여 여행 목적으로는 필리핀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이니 그린레인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 확정된 부분은 하나도 없다. 올해 여름 휴가로 보라카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 그렇다면 마닐라 사람들은 보라카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갑자기 보라카이로 떠날 수는 없다. 왕복항공권과 함께 호텔 예약확인증, RT-PCR 음성확인서, TCP(Travel Coordination Permit), Traveler QR코드 등을 준비해야만 보라카이 섬 입도가 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준비물들이다. 지난 2021년 6월 1일, 필리핀 정부에서는 여행 제한을 완화하여 메트로 마닐라 및 마닐라 근교에 있는 불라칸, 카비테, 라구나, 리잘 지역에 대해 여가 목적으로 한 이동을 허용했다. 보라카이(Boracay)도 포함되며, 어린이나 65세 이상 노인 등 모든 연령에 대해 여행이 허용된다. 그리고 이 조치는 보라카이 섬 방문객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었다. 보라카이가 있는 아클란 지방의 관광사무소(Aklan Municipal Tourism Office)에 따르면 6월 1일부터 13일까지 카티클란(Caticlan)을 통해 총 9,066명의 관광객이 보라카이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들 여행객의 나이를 보면 890명은 0~12세이고, 178명은 60세 이상이다. 지역별로 보면 메트로 마닐라 및 칼라바르손 지방의 방문객이 5,772명으로 약 64%를 차지한다. 리잘(681명), 카비테(639명), 라구나(462명) 지역에서 온 방문객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코로나19 범정부 태스크포스(IATF)에서 발표한 결의안(IATF Resolution No. 121)에 따르면 GCQ 단계를 적용하고 있는 NCR Plus 지역 내에서도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리고 GCQ 지역의 호텔은 수용 인원의 30% 용량으로 운영할 수 있다. 스테이케이션 호텔(Accredited staycation hotel)로 인증받은 호텔이라면 100%까지 운영이 가능하다.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와 같은 마이스 산업(MICE)의 기업 대상 행사나 결혼식, 생일잔치 등도 어느 정도 허용된다. 단, 필리핀 정부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조치 단계를 매우 세세하게 나눠 제한 사항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같은 GCQ 단계라고 해도 메트로 마닐라와 불라칸의 규정은 리잘, 라구나, 카비테 지역의 규정과 약간 다르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메트로 마닐라에서는 수용인원의 40%까지 식당 안에서의 식사가 가능하지만, 리잘, 라구나, 카비테 지역에서는 20%까지만 실내 영업을 허용하는 식이다. 필리핀 정부로부터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인증(government’s Safety Seal)을 받은 업체는 원래 기준에서 추가로 10%의 고객을 수용할 수 있다. 한편, 이 여행 관련 규정은 원래 6월 1일부터 15일까지 적용되던 규정이었으나 6월 30일까지 연장되었다. 7월에도 계속 연장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필리핀 보라카이 필리핀 NCR-plus 지역 격리단계 (적용기간 : 2021년 6월 16일 ~ 6월 30일) ① GCQ with some restrictions :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불라칸(Bulacan) ② GCQ with heightened restrictions : 리잘(Rizal), 라구나(Laguna), 카비테(Cavite) ※ GCQ : 일반 지역사회 격리조치(General community Qurantine)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klan Provincial Government : Guide to Travelers going to Aklan Mainland Only · Aklan Province : https://www.facebook.com/Aklan-Province-147121778737722/ · Philippine Airlines : Travel safely and explore the beauty of Boracay · Philippine News Agency : Leisure travel from NCR Plus to Boracay, MGCQ areas extended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대한민국 외국인주민 현황: 한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의 수는?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대한민국 외국인주민 현황: 한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의 수는?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3년 8월 21일 대한민국에는 몇 명이나 되는 필리핀 사람이 살고 있을까?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외국인주민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40,870명의 필리핀인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외국인주민으로 대한민국 국내에 거주하는 필리핀 사람의 수는 2019년과 비교하여 만 명 정도 감소했다. 유형별 현황을 보면 결혼이민자의 수는 늘었지만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5천 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눈에 띈다. 한편, 필리핀인이었으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9,715명이다. 성별을 보면 남자가 581명, 여자가 9,134명으로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의 수 - 대상자: 90일을 초과하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필리핀인(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필리핀인) - 자료 출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2021년 외국인주민 현황 유형 전체 남 여 외국인근로자 21,448명 17,946명 3,502명 결혼이민자 11,472명 522명 10,950명 유학생 480명 204명 276명 외국국적동포 5명 * * 기타 외국인 7,465명 2,765명 4,700명 전체 40,870명 21,439명 19,431명 <최근 3년간 유형별 현황> 유형 2019년 2020년 2021년 외국인근로자 26,788명 23,951명 21,448명 결혼이민자 10,913명 11,085명 11,472명 유학생 603명 461명 480명 외국국적동포 * 7명 5명 기타 외국인 11,910명 7,951명 7,465명 전체 50,217명 43,455명 40,870명 한국 국적 취득자 필리인인이었으나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의 수 - 대상자: 외국인이었으나 한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전 국적이 필리핀인이었던 경우 - 단위: 명 - 자료 출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2021년 외국인주민 현황 필리핀인 전체 필리핀인 남 필리핀인 여 비고 한국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주민 전체 전국 9,715 581 9,134 210,880 서울특별시 770 96 674 44,768 부산광역시 382 15 367 6,700 대구광역시 244 18 226 4,902 인천광역시 469 43 426 17,363 광주광역시 397 11 386 3,675 대전광역시 306 16 290 3,420 울산광역시 166 10 156 3,494 세종특별자치시 52 5 47 803 경기도 2,080 206 1,874 70,768 강원도 469 12 457 4,367 충청북도 504 13 491 6,212 충청남도 736 27 709 9,801 전라북도 748 23 725 6,272 전라남도 915 25 890 6,769 경상북도 595 30 565 8,377 경상남도 700 27 673 10,721 제주특별자치도 182 * 178 2,468 - 개인정보 누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인구수 5명 미만의 항목은 블라인드(*) 처리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법무부 출입국통계 : 체류외국인 · 행정안전부: 2021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 (2021. 11. 1. 기준) · KOSIS 국가통계포털: 시군구별 연령별 외국인 주민현황(계)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정치: 필리핀 기초자치단체, 바랑가이 캡틴의 권한
필리핀 정치·법률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정치·법률 필리핀 정치: 필리핀 기초자치단체, 바랑가이 캡틴의 권한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3년 9월 18일 필리핀에서 가장 큰 행정구역 단위는 지방(Region)으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를 포함하여 총 17개 지방(Region)으로 나뉜다. 그리고 지방은 다시 주(Province)로, 주(Province)는 시(City)와 구(Municipality)로 세분된다. 그리고 시와 구는 다시 바랑가이(Barangay)로 나뉜다. 바랑가이를 이끄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바랑가이 캡틴(Barangay captain)이라고 부르는데,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바랑가이 캡틴의 임기는 3년이지만 3회에 걸쳐서 중임이 가능하다. Balangay 필리핀의 바랑가이(Barangay) 바랑가이(Barangay)는 필리핀의 최소 행정단위이다. 한국의 동(洞)이나 면(面)에 해당하는 필리핀에서 가장 작은 지방 정부 단위로 2023년 현재 필리핀에는 42,001개의 바랑가이가 있다. 바랑가이(Barangay)라는 단어는 16세기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보트를 타고 필리핀으로 이주했을 때 탔던 범선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어로 범선을 바랑가이(Balangay)라고 하는데 이 범선을 타고 필리핀으로 이주했던 사람이 함께 모여 산 것이 바로 바랑가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바랑가이(Barangay)를 Brgy 또는 Bgy로 줄여서 적기도 한다. Balangay 바랑가이 캡틴의 권한 주지사(Provincial Governor)나 시장(Mayor) 등과 비교하여 바랑가이 캡틴 자리가 별것 아닌 자리로 보여도 경쟁자를 피살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것은 실권이 많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일단 바랑가이 캡틴은 해당 자치 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일정한 행정적 권한 및 사법적 권 한을 가진다. 아키노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1991년 지방정부법(Republic Act No. 7160)을 보면 바랑가이 캡틴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조항을 볼 수 있는데 가장 위쪽에 있는 항목이 중앙정부에서 정한 법률과 조례를 집행하고, 바랑가이를 대신하여 계약을 협상 체결 한다는 것이다.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비상 단체를 조직하고 지휘할 수 있는 권 한도 있다. 지역의 공익을 위한 업무들을 처리한다는 명목하에 지역 내 시설 개보수는 물론 교통정리와 의료지원, 교육지원 등을 담당하기도 한다. 실제 바랑가이홀(한국의 행정복지센터에 해당하는 곳)에 가보면 거주사실증명서를 발급하는 일에서부터 비즈니스 퍼밋 처리까지 담당업무가 상당히 많은데, 한국의 주민센터와 다르게 지역 내 거주민들의 민사 문제를 직접 나서 처리하기도 한다. 바랑가이에서 바랑가이 폴리스(경찰)를 운영하면서 사건, 사고 등에 개입하여 민원을 중재하는 일도 흔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는 힘들지 몰라도 해를 끼치는 것은 손쉬워지는 자리라고 할까. 동네마다 그 영향력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지역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이다. 𖠿 관련 글 보기: 우리 동네 바랑가이 캡틴은 월급을 얼마나 받을까? DUTIES AND RESPONSIBILITIES OF BARANGAY CHAIRMAN(Republic Act No. 7160)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Local Government Code of 1991 (Republic Act No. 7160) · Rappler: Perks of barangay official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35년, 마누엘 케손 대통령 취임- 미국 식민지 시대 필리핀 자치령(코먼웰스)의 대통령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35년, 마누엘 케손 대통령 취임- 미국 식민지 시대 필리핀 자치령(코먼웰스)의 대통령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누엘 케손 대통령의 취임식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는 바쁘지 않았던 해가 있었겠느냐만 1935년, 그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80만이라는 우리의 농민이 일본 척무성의 결정에 따라 만주로 보내지는 등 식민지의 고통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민족 말살 통치를 하던 그 억센 시련의 시기에도 손기정이 경성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14초로 비공인 세계신기록 수립했고, 소설가 심훈이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브나로드 운동을 실천하던 농촌 운동가들의 삶을 '상록수'라는 제목의 소설로 그려 그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 당시 필리핀에서는 마누엘 루이스 케손이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마누엘 루이스 케손 · 본명: Manuel Luis Quezon y Molina · 1878년 8월 19일 출생~1944년 8월 1일 사망(65세) · 필리핀 제2대 대통령 · 대통령 재임 기간: 1935년 11월 15일~1944년 8월 1일(8년 260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용례'에 따르면 'Quezon'은 '케손'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퀘존'에 가깝게 발음한다. - 미국의 보호 아래 수립된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의 초대 대통령 - 타갈로그어를 필리핀 국어로 채택하여 '필리핀 국어의 아버지'라고 불림 - 20페소 지폐의 인물 어린 시절 마누엘 케손 대통령은 역대 필리핀 대통령 중에서 단연 좀 돋보이는 인물이다. 미국 식민지 시대의 대통령이라 그런지 언뜻 사진을 보면 미국계 혼혈이 아닐까 싶지만, 어머니가 스페인계 혼혈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 스페인에 대한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마누엘 케손은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산토 토마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청년 마누엘 케손은 학업도 포기하고 에밀리오 아기날도 가 이끄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필리핀-미국 전쟁 중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에 체포되어 충성선서를 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1903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정치판에 뛰어들게 된다. 1906년에 타야바스 주(현재의 퀘존주)의 주지사가 된 마누엘 퀘손은 하원과 상원을 두루 거치며 정치 경력을 쌓는다. 이 시기 그는 존스법 과 타이딩스-맥더피법 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미국과 협상하는 것만이 필리핀이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35년 대선 결과표 -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칼라야안홀(Kalayaan Hall)에 있던 마누엘 L. 케손 대통령 전시실 필리핀 국어의 아버지 1901년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필리핀 제1공화국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후 필리핀은 미국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총독이 통치했다. 그러다가 1935년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가 시작되면서 총독 대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취임했다. 미국의 보호 아래 수립된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의 초대 대통령이 된 사람은 바로 마누엘 L.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 이다. 1935년 9월 17일 선거에서 에밀리오 아기날도 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마누엘 케손은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 교육을 개혁하고자 했다. 마누엘 케손 대통령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공정한 정치를 하려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든 국민이 자신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경호원이 없어도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마누엘 케손 대통령은 그 어떤 시기보다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필리핀의 독립과 개혁을 위해 힘썼다. 타갈로그어를 국가 언어(국어)로 선언 하기도 하고, 수도 이전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누엘 케손은 필리핀의 제2대 대통령으로 1935년 선거와 1941년 선거에서 모두 당선되었다. 그의 임기는 1943년 12월 30일에 끝났지만, 일본과의 전쟁으로 미국에 망명 정부를 수립했던 상황인 터라 1943년 11월 15일 미국에서 세 번째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퀘존시티의 개발 1930년대, 마누엘 케손 대통령은 마닐라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매우 넓고, 평화로워 보이는 토지를 발견했다. 필리핀이 10년 뒤에 독립하게 되면 오랜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던 마닐라가 아닌 새로운 행정 수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누엘 케손은 1939년에 이 땅을 매입했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퀘손시티(퀘존시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의 뜻을 펼치기 힘든 시절이었다. 1942년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 하자 그는 필리핀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으로 망명한 마누엘 케손은 미국 워싱턴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태평양 전쟁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필리핀의 독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1944년 8월 1일에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퀘존시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다. 마누엘 루이스 케손 대통령의 유해는 마닐라에 있는 퀘존 메모리얼 서클에 안장되어 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935년 11월 15일,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출범 필리핀 역사: 20페소 지폐부터 퀘존시티까지, 마누엘 루이스 케손 대통령의 흔적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 Quezon)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의 초대 대통령인 마누엘 케손 대통령의 취임식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Inauguration of Quezon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Encyclopedia Britannica: Manuel Quezon · 유네스코와 유산: 마누엘 L. 케손 대통령의 문헌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마닐라 생활: 마닐라시티의 치안 개선을 위해 마닐라시청 앞에서 무료 분수쇼 시작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마닐라 생활: 마닐라시티의 치안 개선을 위해 마닐라시청 앞에서 무료 분수쇼 시작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2월 22일 소매치기를 줄이려면 경찰보다 가로등을 늘려라? 가로등이나 보안등과 같은 조명 시설이 늘어나면 강도나 소매치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야간에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고 치안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을 환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을 좋게 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가로등만 촘촘하게 세운다고 갑자기 치안이 좋아지고 야간 범죄 문제가 모두 해결될 리가 없다. 도시의 조명이 어둠을 밝히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시민의 것으로 돌아가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2월 12일, 마닐라 시(Manila City)에서 분수쇼라는 조금 색다른 행사를 했다. 작년 연말인가, 갑자기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보니파시오 기념비 앞 가득 울타리를 세우고 공사를 해서 대체 무슨 공사를 할까 궁금해했더니 그 공간에 분수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웬 분수쇼일까 싶지만, 이 분수야말로 도시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Isko Moreno Domagoso) 마닐라 시장의 야심 찬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년 7월에 시장(mayor)으로 취임했을 당시 마닐라 시청 앞 광장에 나선 그의 발에 밟힌 것은 바로 거리에 사는 빈민들이 남기고 간 대소변이었다.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길바닥에 볼일을 보고 싶었겠느냐만은 시청 앞 광장이 오물로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었다. 변변한 가로등 하나 보기 어려우니, 해가 지고 나면 가기 꺼려지는 찜찜한 곳이기도 했다.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는 마닐라 시장으로 취임한 뒤 매우 의욕적으로 마닐라 시내 청소에 나섰다. 그리고 마닐라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아니면 실제 성과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시가 꽤 깨끗해진 것은 사실이다. 청소하는 모습으로 연일 신문 앞면을 채우더니, 도시 가득 넘쳐나던 쓰레기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치안 좋은 한국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를 해서 그런지 마닐라 거리 치안은 여전히 좋지 못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로등도 늘어나고, 도시 전체적으로 밝기의 단계가 좀 올라간 느낌이다. 참, 최근 인트라무로스의 포트 산티아고도 야간 개방을 시작했다. 마닐라 시청의 이야기에 따르면 올해 5월에는 우체국 맞은편에 있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이 극장은 워낙 개보수를 오래 하여서 거의 폐허가 된 상태였는데, 대체 어떻게 변모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닐라 시장이 약속한 대로 마닐라 시티(Manila City)가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지 못할 수도 있고, 관광객들에게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장소로 느껴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청 앞에서 분수 쇼를 보았다는 추억만큼은 가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추억이 모이고 모일 때 비로소 도시의 치안이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성과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는 것이다.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시청(Manila City Hall) 마닐라시청 분수쇼 보니파시오 분수 광장(리와상 보니파시오 댄싱 파운턴 - Liwasang Bonifacio Dancing Fountain)에서 진행되고 있는 뮤지컬 댄싱 분수쇼는 마닐라 시(Manila City)에서 시민들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라서 관람료가 무료이다.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분수 쇼인데 입이 쩍 벌어지게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지만 꽤 흥겨움을 준다. 분수 쇼 시간은 매일 저녁 6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1시간에 1번씩 15분 정도 진행된다. Piliin Mo Ang Pilipinas 라는 제목의 노래 등 타갈로그어로 된 노래가 3~4곡 정도 나온다. 참고로 분수대 모양은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인데, 필리핀 국기 모양을 구현하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보니파시오 기념비를 마주 보고 섰을 때 우측 노란색 분수가 별 모양을 그리고, 시청 방향으로 길게 만들어진 푸른색과 붉은색 조명이 나머지 국기 모양을 만든다는 것이다. 위에서 볼 때 필리핀 국기처럼 보이는 것이라서 분수대 옆에서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다. ■ 관람료 : 무료 ■ 시간 : 6시 30분 / 7시 30분 / 8시 30분 / 9시 30분 / 10시 30분 / 11시 30분 ■ 주소: Liwasang Bonifacio Dancing Fountain, 1000 Taft Ave, Ermita, Manila, 1000 Metro Manila, Philippines ■ 위치: 마닐라 시청(Manila City Hall) 옆 / 보니파시오 기념비(Bonifacio Shrine) 바로 앞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시청(Manila City Hall) William A. Jones Memorial Bridge 다리를 지나 마닐라 시청으로 가는 길 보니파시오와 카티푸난 혁명 기념물 Bonifacio and the Katipunan Revolution Monument 분수쇼를 기다리는 시민들 보니파시오와 카티푸난 혁명 기념물 뛰쪽으로 SM마닐라 방향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와이파이도 무료로 30분 동안 쓸 수 있다. 이 장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에 걷기 무척 찜찜한 장소였지만, 요즘은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보니파시오 분수 광장(Liwasang Bonifacio Dancing Fountain). 리와상은 광장 또는 공원을 의미하는 타갈로그어이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본인 경험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사진] 필리핀 축제: 타클로반 시티 Santa Cruz de Mayo
필리핀 축제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축제 [사진] 필리핀 축제: 타클로반 시티 Santa Cruz de Mayo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7년 4월 22일 Santa Cruz de Mayo - 축제장소: 필리핀 레이테, 타클로반(City of Tacloban) - 촬영장소: 필리핀 마닐라 알리완 축제(Aliwan Fiesta 2017) - 촬영날짜: 2017년 4월 22일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관광부: 2022년 필리핀 방문 관광객 수와 2023년 목표
필리핀 관광부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관광부(DOT) 필리핀 관광부: 2022년 필리핀 방문 관광객 수와 2023년 목표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12월 20일 2,462,140 Million 은 2,462,140,000,000이다. 2.46밀리언(246만)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미지 출처: 필리핀 관광부) 크리스티나 가르시아-프라스코 필리핀 관광부 장관이 최근 발표한 <2022 DOT year-end report>에 따르면 필리핀관광부에서는 2023년에 48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 로 삼고 있다고 한다. 2023년에는 관광 수입을 두 배로 늘리고, 48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필리핀 관광부(DOT)의 목표 수익은 58억 달러(약 7조 5천억 원에 해당)에 달한다. 필리핀 관광부에서는 이를 위해 국내 여행객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고, 여행객을 위한 다양한 휴식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비자 신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크루즈 여행지로 필리핀을 홍보하겠다는 계획도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민다나오 지역을 타깃으로 할랄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치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민다나오 여행이야 쉽지 않겠지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중동 등에서 필리핀 여행을 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비자 신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관련하여 이미 필리핀이민국(BI)에서 온라인으로 비자 신청을 할 수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조만간 시행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편, 필리핀관광부 장관이 2025년 이전에 팬데믹 이전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마르코스 정부에서 여행에 대한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방문객 수는 목표 인원인 170만 명을 이미 달성하여 246만 2,140명을 기록했다. 올해 관광 수입은 2022년 11월 20일을 기준으로 1490억 페소(약 3조 5천억 원에 해당)로 집계되었다. 2022년 필리핀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 : 국적별 방문객 순위 아래는 필리핀 관광부의 <2022 DOT year-end report>의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한 통계 자료이다. 올해 연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추후 약간의 변동이 예상된다. 한국인 관광객 수는 387,780명으로 집계되었다. 국적 관광객 수 점유율 1 미국 461,967 18.76% 2 한국 387,780 15.74% 3 호주 122,971 4.99% 4 캐나다 112,015 4.54% 5 영국 93,440 3.79% 6 일본 91,557 3.71% 7 싱가포르 50,964 2.06% 8 인도 49,330 2.00% 9 말레이시아 44,357 1.80% 10 베트남 37,028 1.50% 11 기타 1,010,731 41.05% 합계 2,462,140 100% 필리핀 비간, Ilocos Sur Provincial Toursim Office 필리핀 비간, Ilocos Sur Provincial Toursim Office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의 안전 여행 스탬프(Safe Travels Stamp) 필리핀 일로코스 파오아이(Paoay, Ilocos Norte)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 News Agency · Philippine News Agency : PH targets 4.8M visitor arrivals, $5.8-B tourism revenue in 2023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의 역사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의 역사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8월 8일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 필리핀 대통령의 연례 국정연설(SONA) 과 같은 중요 행사를 보면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 관료들이 속이 훤히 비칠 정도로 얇은 천으로 만든 연한 베이지 컬러의 셔츠를 입고 행사에 참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독특한 의상은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라는 이름의 필리핀 전통의상이다.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 는 남성용 자수 긴소매 정장 셔츠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축제 등 중요한 자리에서 입는 필리핀 민족의상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격식을 갖추기 위해 착용하는 예장용 셔츠 정장이라고 보면 된다. 바롱은 대부분 남성이 입지만 여성이 입을 때도 있다. 남성용과 구별하기 위해 여성용은 바롯 사야(Baro't Saya) 라고 부르는데, 상의(Baro)와 치마(Saya)의 준말이다. 치마가 길고 어깨선이 봉긋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롱 타갈로그나 바롯 사야라는 말 대신 보통은 줄여서 바롱(Barong)이라고 부른다. 바롱 타갈로그 Barong Tagalog 필리핀어(타갈로그어)에서 바롱(barong)은 옷(clothing)이나 차림새(outfit)를 의미한다. 그러니 바롱 타갈로그어(barong tagalog)란 말은 "타갈로그 지방의 옷(Baro ng Tagalog)"이란 말 정도로 번역된다. 타갈로그 지방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지명으로 마닐라 아래쪽으로 바탕가스, 라구나, 케손 등의 지역이 이곳에 해당한다. 하지만 바롱이 타갈로그 지역 사람들만이 입는 복장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바롱은 필리핀 전역에서 입던 옷이었다.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라는 이름은 스페인인과 원주민을 구별하기 위해 붙인 것으로 파악 된다.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 바롱 타갈로그의 역사 18세기에 필리핀에서 멋쟁이 소리를 들으려면 무릎 가까이 올 정도로 긴 바롱 마하바(Barong mahaba) 셔츠를 입어야 했다. 헐렁한 통바지에 섬세하게 자수가 놓인 높은 컬러의 셔츠를 입고, 새시(sash) 띠를 두르는 것이다. 차양이 좁고 운두가 높은 모자를 쓰고, 자수가 놓인 가죽 구두까지 신으면 완벽한 멋쟁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어가면서 바롱의 칼라(Collar)는 작아졌고, 모자 크기도 작아졌다. 당시 사람들은 큰 줄무늬가 있는 폭이 좁은 바지를 멋지다고 생각했고, 유럽의 넥타이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 실크 손수건 장식이 유행했다. 서구화된 복장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바지 색상도 흰색이나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로 다채로워졌다. 상류층에서는 흰색 실크 바지가 유행했다. 필리핀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인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가 190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을 보면 흰색 바롱에 흰색 바지, 흰색 구두를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유행을 완벽히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가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스페인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지원으로 항해를 떠나 1521년에 사마르의 호몬혼 섬(Homonhon Island)에 상륙했던 시기만 해도 바롱(Barong)은 볼 수 없는 옷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루손섬의 원주민들도 바로(baro)라는 이름의 옷을 입었다고 하지만, 16세기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 원주민들 대부분이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막탄섬을 지배했었던 라푸라푸만 봐도 상의를 벗고, 하의만 간신히 가린 차림새를 하고 있다. 바롱의 역사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은 스페인 사람들은 17세기에 필리핀에 좀 특별한 파인애플 품종의 재배를 시작했다. 바로 레드 스패니시 파인애플(red Spanish pineapple) 이라는 품종이었다. 무게가 1~2kg 정도되는 이 파인애플은 붉은빛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꽃처럼 보이는데 다른 파인애플 품종보다 잎이 매우 길쭉한 것이 특징이다. 그 길쭉한 잎에서 추출한 섬유로 피냐 직물(piña fibers)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원주민들은 천연 식물 섬유를 사용한 직물 직조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파인애플에서 섬유를 추출하여 천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직물로 완성되기까지 길고 지루한 노동집약적 공정을 거쳐야 했는데, 손이 매우 많이 갈뿐더러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직공의 평균 생산량은 하루에 약 0.5 미터밖에 되지 않았고, 파인애플 잎에서 천을 만들어 내기까기 넉 달 정도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제직 기술을 가진 여성도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류 지배 계층에게 피냐(PIÑA) 섬유의 높은 품질이 인정받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냐는 아바카 직물을 대신할 고급 직물로 유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희소성을 인정받아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었다. 생산 공정이 까다로워서 직물을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오히려 제값을 받게 해준 셈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레드 스패니시 파인애플이 필리핀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면서 필리핀 섬유산업(textile industry)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귀족들에게 수출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한가롭게 파인애플을 키워 손으로 직접 천을 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피냐는 수제 직물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중 파인애플 섬유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다가 현대식 기계 직조 직물이 나오면서 저가형 바롱의 제작이 가능해졌다. 대량으로 빠르게 판매할 수 있는 저렴한 합성섬유를 비롯하여 다양한 옷감이 등장하면서 바롱의 디자인은 물론 색상까지 좀 더 다양해졌다. 필리핀 패션계에서는 바롱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현대적인 감각의 옷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피냐 직물은 중상류층을 위한 고급 의류 제조를 위해 일부 지역에서만 소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정교한 수가 잔뜩 놓인 전통적인 형태의 바롱은 여전히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아무리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도 진짜의 가치는 알아챌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𖠿 관련 글 보기 바나나와 아바카(Abaca) 섬유와 마닐라삼(Manila hemp) 파인애플이 옷감이 되기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롱(Barong) 만들기 바롱 타갈로그 구매하기 - 저가형 기성품 vs 맞춤복 바롱 바롱 타갈로그 옷의 형태와 입는 방식 요즘에는 이런 디자인의 바롱이 유행이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History of Barong Tagalog · The Weird and Wonderful History of the Barong Tagalog · Piña (Pineapple) Cloth,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전통 음식: 달콤한 따뜻함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순두부 따호(Taho)
필리핀 음식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전통음식과 열대과일 필리핀 전통 음식: 달콤한 따뜻함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순두부 따호(Taho)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3년 11월 3일 필리핀 사람들의 아침 식사를 이야기하면서 따호(Taho)를 빼놓기 어렵다. 따호는 커스터드 크림처럼 부드럽게 만든 연두부를 주재료로 하여서 만드는 필리핀 음식이다. 그런데 두부가 주재료이건만 따호의 맛은 담백함보다는 달콤함에 가깝다. 단 음식을 즐겨 먹는 필리핀 사람들은 두부에 사탕수수즙이나 시럽 등을 담뿍 넣어서 단맛을 더한다. 팜트리(palm tree)에서 얻은 전분가루를 이용하여 구슬처럼 동글동글하게 만든 사고(Sago)를 설탕에 달게 조려낸 뒤 따호 위에 잔뜩 올려서 먹기도 한다. 사고는 버블티에 넣는 타피오카 펄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좀 더 작아서 좀 더 재밌는 식감을 낸다. 콩을 주재료로 만들었으니 건강에 좋을 듯도 하지만 단맛이 강해서 건강에 좋지 않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음식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따호를 먹으면서 한국의 연두부와 같은 맛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애초 필리핀 사람들이 따호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 자체가 필리핀으로 이민 온 호키엔족(Hokkien) 중국인 이민자들이 두화(Douhua)라는 이름의 달콤한 중국식 푸딩을 소개하면서부터였다고 하니, 따호는 콩 자체가 주는 담백한 맛보다는 단맛으로 먹는 음식인 셈이다. 필리핀에서 맛있는 따호를 사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이른 아침에 주택가 골목에서 따호 행상인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서민들이 사는 주택가라면 어디에서나 이른 아침이면 독특한 억양으로 연신 "따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따호 행상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따호 행상인은 어깨에 놓을 수 있게끔 만든 길쭉한 막대 양쪽 끝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양동이 두 개를 연결하여 따호를 들고 다니면서 파는데 통을 열어보면 한쪽에는 두부가, 다른 한쪽에는 시럽이며 사고(Sago) 따위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호 행상인을 손짓하여 세우면 양동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얇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꺼내 따호와 달달한 시럽을 함께 담아 주는데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터라 음료수 마시듯 호로록 먹을 수 있어서 숟가락은 따로 주지 않는다. 오후 간식으로 따호를 먹기도 하지만, 아침에 먹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보통 밤사이 연두부를 만든 뒤 식히지 않고 바로 장사를 나오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따호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물가상승은 따호의 가격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따호 가격이야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5년 정도 전만 해도 10페소 동전이면 충분히 한 컵을 살 수 있는데 요즘은 20페소를 주어야만 한 컵을 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에 쥘 수 있는 중간 크기의 컵을 기준으로 요즘 마닐라의 따호 가격은 대략 20페소. 올티가스나 마카티 등과 같은 동네로 가면 30페소~40페소를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민 음식이었던 따호가 화려한 포장을 갖추고 몇 백 페소에 판매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니, 가끔은 따호를 놓고 서민 음식이란 표현을 써도 될까 망설여질 정도이다. 부디 따호가 한국의 떡볶이와 같은 길을 걷지 말고 값싸고 맛있는 음식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를. 따호오오오~! 필리핀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 따호 위에 올려진 동그란 알갱이가 바로 사고(Sago)이다. 따호를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따호 행상인 따호 가격은 컵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고양이와 따호 따호 행상인 자세히 보면 양동이 크기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길쭉한 양동이에 두부가 담겨 있다. 따호~ 따호~ 가끔 쇼핑몰에서도 따호 가게를 만날 수 있다.따호 하나만 봐도 몇 년 동안 필리핀 물가가 얼마나 급격히 올랐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따호 한 컵 주세요! 마닐라 만달루용의 거리 필리핀 전통음식: 달콤한 따뜻함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연두부 따호(Taho) 필리핀 사람들은 아침식사 대용으로 따호(Taho)를 많이 먹는다. 하지만 따호는 주식이라기보다는 간식이나 디저트에 가까운 필리핀 음식이다. 단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면 시럽의 양을 줄여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필리핀 전통음식: 달콤한 따뜻함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연두부 따호(Taho)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사진] 필리핀 축제: 타클로반 시티 Santa Cruz de Mayo](https://static.wixstatic.com/media/f22ddd_1b20f508c79347b4a0e1f12c55ba2b3a~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f22ddd_1b20f508c79347b4a0e1f12c55ba2b3a~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