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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역사: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가 된 언어 천재 호세 리잘(Jose Rizal)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가 된 언어 천재 호세 리잘(Jose Rizal)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는 호세 리잘 - 칼람바에 있는 호세 리잘 박물관(Museo ni Jose Rizal) 소장품 필리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리잘을 빼놓기란 어렵다. 그는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고, 언론인이면서도 작가였다. 필리핀 생활을 하다 보면 그의 이름을 수없이 듣게 되는데, 그만큼 그가 필리핀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호세 리잘 José Protasio Rizal 1861년 6월 19일 출생 ~1896년 12월 30일 사망 필리핀 혁명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기반을 마련한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José Rizal)을 스페인식으로 발음하면 호세 리살이 되지만, 필리핀에서는 보통 리살보다는 리잘에 가깝게 발음한다. 필리핀 정부에서 배포한 독립운동가 영상에서도 호세 리잘이라고 발음되고 있다. 호세 리잘의 어린 시절 호세 리잘의 아버지는 중국계 필리핀인으로 라구나의 칼람바에서 스페인 지주가 소유하고 있던 사탕수수 농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칼람바 지역에서 유일하게 석조로 된 집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상당히 부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아버지의 재력은 11명이나 되는 아이 중 일곱째였던 아들을 마닐라에 있는 대학을 보낼 수 있게 했다. 호세 리잘의 어머니 역시 상류계층 출신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다. 호세 리잘은 어머니에게 읽고 쓰기를 배웠는데 집에 따로 서가가 마련되어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 살 때부터 책을 읽어서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총명하기로 유명했던 이 아이를 부모는 의사로 만들기로 했으니, 호세 리잘은 마닐라로 가서 아테네오 대학과 산토토마스 대학에서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일러스트라도(Ilustrado)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답게 서구식 양복을 잘 차려입고 해외 유학길에 오르는데, 안과 전문의가 되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마드리드와 유럽 등지에서 살면서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익혔고, 유럽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를 말할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호세 리잘이 몇 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느냐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면, 11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21개국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보이는데 과연 어느 자료가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최소 10개 국어 이상을 할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일러스트라도(Ilustrado)와 필리핀 민족주의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Rizal Park) 유학생활과 민족주의적 비폭력 저항 운동 그런데 해외 유학이 호세 리잘에서 가져다준 것이 다양한 언어 능력만은 아니었다. 유럽에서의 생활은 일러스트라도 상류층의 청년에게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인식하게 했다. 외국에서 겪은 차별이 민족의식과 혁명 의식을 깨우치고 필리핀의 개혁과 해방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한 셈이다. 1887년 5월 29일, 호세 리잘은 《 놀리 메 탄헤레(Noli me Tangere) 》라는 이름의 소설을 출판했다. 스페인이 필리핀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이었다. 이 책은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게 하였고, 스페인 정부에서는 불온서적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던 호세 리잘을 추방하여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했다. 1892년, 호세 리잘은 필리핀으로 귀국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필리핀 민족동맹(La Liga Fulipina) 이란 단체를 결성하여 스페인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일을 계속했다. 폭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호세 리잘의 주장이었고, 필리핀 민족동맹은 민족주의적 비폭력 저항 운동을 시도했다. 스페인 식민통치를 비판하기는 했으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무장투쟁론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 사람도 스페인 사람과 같은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의 주장은 "필리핀도 에스파냐의 한 지방으로 동등하게 인정되어 에스파냐 의회에 필리핀 지역구 의원이 진출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호세 리잘은 참정권과 시민권을 갖는 정도만을 주장했지만, 스페인 쪽에서 볼 때는 호세 리잘의 평화로운 저항도 눈엣가시였다. 아무리 온건한 움직임이라고 해도 저항의 씨앗은 일찌감치 없애야만 했다. 1892년 7월 7일, 스페인 총독은 호세 리잘을 무장 투쟁론자들의 배후로 몰아 민다나오의 다피탄City of Dapitan)까지 유배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당시로써는 마닐라에서 민다나오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지만, 다피탄에서 철창 속에 갇혀 감옥신세를 지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유배지에서 호세 리잘은 홍콩에서 만났던 조세핀 브렉켄(Josephine Bracken)과 함께 사실혼 관계를 맺고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동네 주민을 진료하기도 하고, 인근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1896년 12월 30일 호세 리잘의 처형 장면 리잘파크에서의 공개 총살형 1896년 8월, 필리핀에서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és Bonifacio)가 조직한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카티푸난(Katipunan)에 의해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이란 이름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스페인 총독부에서는 호세 리잘을 카티푸난이 일으킨 필리핀 혁명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하여 산티아고 요새에 수감시킨다. 1896년 11월 13일, 호세 리잘은 스페인 총독부의 명령에 따라 마닐라로 이감되어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의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식민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마닐라 바굼바얀(현재 리잘공원이 있는 자리)에서의 공개 총살형을 선고 했다. 반역 혐의로 처형된 뒤 호세 리잘은 파코묘지(현재의 파코공원) 에 묘비도 없이 매장되었고, 호세 리잘의 가족들은 미국 식민지 시대가 되고 난 뒤에야 정식으로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호세 리잘의 유해는 1913년에 리잘파크에 있는 호세 리잘의 기념비(Rizal Monument) 에 안장되었다. · 1896년 12월 26일: 스페인 군사 법원에서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음 · 1896년 12월 28일: 스페인 총독이 사형 선고를 확정함 · 1896년 12월 28일: 리잘의 가족들이 스페인 총독에게 호세 리잘을 살려달라고 간청함 · 1896년 12월 29일: 호세 리잘이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만남 · 1896년 12월 30일 오전 6시 30분: 산티아고 요새에서 처형장으로 이동 · 1896년 12월 30일 오전 7시 3분: 공개 총살형으로 호세 리잘 사망 후에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1896년 12월 30일 아침 호세 리잘은 조세핀 블렉켄과 결혼 서약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세 리잘은 결혼식을 마친 뒤 처형장에 올라 등에 총을 맞고 삶을 마감한 셈이다. 마지막 인사로 《 나의 마지막 작별(Mi Ultimo Adios) 》라는 이름의 시를 남기고 총살 당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다섯 살이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호세리잘의 나의 마지막 작별(Mi Ultimo Adios) 한글 번역본 호세 리잘의 죽음 이후 호세 리잘의 안타까운 죽음은 필리핀의 청년들을 필리핀 무장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의 행적을 비판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의 일부 역사학자들은 호세 리잘에 대해 미국 식민지 시절에 미국 정부로부터 지명받아 만들어진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300년 가까이 집에 있던 도둑들에게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 주인의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운동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호세 리잘의 죽음을 보고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니, 필리핀 독립에 불러온 여파가 컸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Rizal Park) 필리핀 마닐라,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 필리핀 마닐라,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의 Jose Rizal Monument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NHCP(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 Official Gazette: Celebrating Rizal and the National Language · https://www.joserizal.com/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뉴스: 오토바이 택시업체인 앙카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작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오토바이 택시업체인 앙카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작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3월 24일 앙카스(Angkas) 필리핀의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 업체인 앙카스(Angkas)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루손섬 지역사회 봉쇄‧격리조치 기간 중 생계가 어려워진 배달원을 돕기 위한 방안이다. 앙카스에서는 음식 배달은 앙카스에서 원래 하던 서비스가 아니지만 봉쇄 기간 중 바이커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앙카스 측의 수수료 없이 배달료의 100%를 바이커에게 전달 함을 강조했다. 앙카스 푸드(Angkas Food) 서비스는 이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되며, 배달료는 3km 거리 기준으로 60페소이다. 앙카스 푸드 배달 서비스 ■ 서비스 시작일: 2020년 3월 24일부터 ~ 미정 ■ 이용 가능 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 배달료: 3km 거리 내에는 60페소 / 이후 1km 거리마다 10페소 추가(최대 5km) ■ 결제 방식: 배달원에게 현금으로 지불 또는 레스토랑으로 바로 지불도 가능 ■ 서비스 이용 방법 ① 파트너 레스토랑에 연락하여 음식 주문 - 파트너 레스토랑 목록 보기 : https://bit.ly/AKSFood ② 앙카스 바이커가 배달 ③ 음식 수령 : 바이커와 신체 접촉 금지 오늘(3월 24일) 오전 마닐라 마카티 풍경. 앙카스 오토바이가 오래간만에 보여서 좀 반가웠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ngkas Food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5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누엘 케손 박물관(Museo ni Manuel L. Quezon)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 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 1902년 7월 4일~1935년 11월 15일 1898년 8월 14일, 스페인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졌음을 인정하고 미국에 항복하자 미국은 필리핀에 군정을 수립했다. 그리고 군정 통치 기간, 미국의 군사령관은 미국군 총사령관으로서 필리핀을 통치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하게 되면서 미국은 필리핀에서 실시하던 군정을 도민정부(도민정청)으로 전환,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독이 필리핀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1935년까지 필리핀을 필리핀 군도에 존속한 미국의 영토로 보고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를 통해 관리했다.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의 초대 총독(Governor-General)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가 맡았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필리핀 총독의 임기(1901년 7월 4일~1903년 12월 23일)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09년에 제27대 미국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1905년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에 가서 일본 제국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한다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해 상호 확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미국의 통치가 미국의 이익 때문이 아닌 필리핀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02년 7월 4일에 필리핀-미국 전쟁(Philippine-American War)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하기 시작한 미국에서 서둘러 진행한 것 또한 클락의 공군기지와 수빅의 해군기지 설립이었다. 마누엘 케손 박물관(Museo ni Manuel L. Quezon)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 시절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을 두 가지 꼽자면 1907년 의회 선거 와 필리핀 자치법(존스법) 제정 이다. 1902년 제정된 필리핀 기본법(Philippine Organic Act)에 따라 인구조사 가 시행 끝난 상황에서 1907년 직접 선거를 통해 설립된 필리핀 의회는 상원 역할의 필리핀 위원회(Philippine Commission)와 선출직인 하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1916년 8월 29일, 필리핀 자치법(Philippine Autonomy Act of 1916) 이 제정되었다. 법안 작성자인 윌리엄 존스(William Atkinson Jones)의 이름을 따서 존스법(Jones Law)이라고 불리는 필리핀 자치법은 필리핀인이 자치 능력을 증명하면 필리핀을 독립시킨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이다.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정부가 수립되는 즉시(as soon as a stable government can be established)" 필리핀이 독립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핀인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필리핀의 독립을 명확히 약속한 최초의 문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 자치법(존스법)은 1902년 제정된 필리핀 기본법을 대체하는 법으로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 법(필리핀 독립법이 제정될 때까지 필리핀 헌법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존스법에 따라 상원 역시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1916년 10월 3일에 상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후 1916년 10월 16일에는 완전 선출에 의한 양원제 필리핀 의회가 설립되었다. 상원과 하원 모두 필리핀인으로만 구성된 의회였다. 한편, 이 시기 미국에서는 실로 재빠르게 영어를 교육하는 학교 시스템을 필리핀에 도입 했다. 미국 정부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필리핀 곳곳에 학교를 세웠는데, 미국 육군 수송선 토마스호까지 이용하여 600명의 교사를 필리핀으로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 시절 필리핀에 온 미국인 교사들(Thomasites) 중에는 두마게테 실리만 대학교 설립자인 호러스 실리만도 포함되어 있다. 1901년 7월 4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총독 취임식 마닐라 시티와 파사이 시티를 연결하는 태프트 애비뉴(Taft Avenue) 도로. 이 도로의 이름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S-Philippines Society: Remembering the Centennial of the Jones Law that Paved the Way for Philippine Independence · Encyclopedia Britannica: Jones Act · Esquire Philippines: These Old Photos Reveal What Philippine Education Was Like Before the War · Governor William Howard Taft delivering his inaugural address as the first American Governor-General of the Philippine Islands, on July 4, 1901.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에 있는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에 있는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참 재밌는 일이지만, 정부기관에서 쓰는 휘장(seal)이나 깃발(City flag)만 봐도 필리핀인과 한국인의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 차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필리핀 관광부의 러브 더 필리핀(LOVE THE PHILIPPINES) 캠페인 로고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에서는 CI(City Identity)나 로고와 같은 시각 상징물에 대해 최대한 간결한 것이 좋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내 유명한 것을 최대한 많이 로고 휘장(심벌마크)에 담는다. 로고만 봐도 해당 지역 내 주요 생산물이나 역사적인 주요 사건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피나투보 화산으로 유명한 카파스의 휘장만 봐도 그렇다. 휘장을 자세히 보는 것만으로도 카파스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카파스 지역을 나타내는 씰(seal) 카파스(Municipality of Capas)의 휘장(seal) 가장 위에 적힌 1710이란 숫자는 마을이 건립된 해인 1710년을 의미한다. 숫자 아래 그려진 방패 모양의 선은 딸락 지방(Province of Tarlac)의 휘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지역이 딸락에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방패 아래에 그려진 초록색 풀은 이 지역의 주요 생산물이 사탕수수와 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위쪽에 있는 길쭉한 세모 모양의 조형물은 무엇을 뜻할까? 휘장 이미지 중앙에 그려진 조형물은 바탄 죽음의 행진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이다. 이 기념물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카파스의 맥아더 하이웨이를 지나다 보면 볼 수 있다. 그런데 카파스 지방정부에서는 왜 저 한적한 도로 위에 바탄 죽음의 행진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어 두었을까?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 카파스 데스 마치 모뉴멘트 Capas Death March Monument 바탄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던 지점 ■ 주소: MacArthur Hwy, Capas, Tarlac ■ 위치: 필리핀 딸락 카파스, Susuba Elementary School 근처 ■ 입장료: 무료 (2024년 10월 13일 현재)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때 일본의 전쟁포로가 된 군인들이 바탄 마리벨레스에서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까지 전 구간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스카(Boxcar)라고 불리는 화물 수송용 열차에 수십 명의 인원을 마구 몰아넣는 식이긴 했지만, 산페르난도에서 카파스(Capas)까지는 열차를 이용했다. 현재 카파스 지역에는 2차 대전 당시의 선로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1942년 당시 군인들이 대체 어디에서 열차를 내렸다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이 세워진 장소가 바로 열차에서 내렸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까지 가기 위한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 내에는 이 시설이 어떤 시설인지 알려주는 안내문 하나 변변히 세워져 있지 않다. 문은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직원은커녕 안내문 하나 보이지 않으니 방문객으로서는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알 방법이 없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봐도 바탄 죽음의 행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시설이며 이곳에서 행진의 마지막 단계를 시작했다는 식의 간략한 안내문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기념물이 언제 세워졌는지, 혹은 기념물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입구에서 이곳이 필리핀 환경천연자원부(DENR)에서 관리하는 시설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과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Mount Samat National Shrine) 은 필리핀 재향군인회(PVAO)에서 관리하고 있다. 필리핀 딸락, 카파스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카파스 컷컷 바랑가이(Barangay Cut-Cut 1st)에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이 세워진 까닭은 이곳이 바탄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1942년 4월 중순, 일본의 전쟁포로가 된 군인들은 이곳에 도착한 뒤 캠프 오도델까지는 다시 약 13km의 악몽 같은 도보 행군을 해야만 했다.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unicipality of Capas, Province of Tarlac: Capas Death March Monument · Municipality of Capas, Province of Tarlac: BAYAN NG CAPAS LALAWIGAN NG TARLAC · Capas Tourism Office: Capas Death March Monumen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1897년,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장소 - 분티스 산의 에코파크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1897년,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장소 - 분티스 산의 에코파크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10월 26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1896년 12월 30일,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은 반식민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마닐라의 루네타 공원(Luneta Park)에서 처형당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호세 리잘을 기리기 위해 그가 처형당한 곳의 이름을 리잘 공원(Rizal Park)이라고 바꾸고 호세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하는 동상을 세웠다. 요즘 리잘파크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외국인들도 종종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국민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1863년 11월 30일 ~ 1897년 5월 10일)의 처형 장소는 대체 어디일까? 마라돈곤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는 1897년 5월10일에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반역죄라는 억울한 죄명을 쓰고 총살된 현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필리핀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보니파시오가 카비테에서 에밀리오 아기날도에 의해 체포된 뒤 마라곤돈 시내의 로데리코 레예스의 집(Roderico Reyes Ancestral House)에서 카티푸난(KKK)의 재판을 받고 분티스 산(Mt. Buntis) 으로 끌려가서 총살당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 에코파코가 바로 그 분티스 산인 셈이다. 하지만 정말 이곳에서 총살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그 어떤 인물보다 돋보이는 국가 영웅이지만, 처형당한 후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였다. 총살당했다는 장소도 명확하지 않고, 시체가 어딨는지조차 오리무중이다. 보니파시오가 총살된 후 그의 아내였던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Gregoria de Jesus)가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산 속을 한 달여나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처형장이었다고 특정 짓는 것은 여기서 보니파시오가 처형 명령서를 소리 내 읽었다는 기록이 발견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판소로 쓰였던 집에서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분티스 산은 꽤 큰산이고, 필리핀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보니파시오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처령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보는 편이라서 처형 장소가 확실히 이 장소라고 단언하기는 좀 어렵다. 어쨌든, 2004년에 마라곤돈(Municipality of Maragondon)에서는 자신의 동네를 역사적인 고장으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이곳을 관광명소로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4헥타르(약 12,100평)가 넘는 부지에 역사유적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개발에 들어갔는데, 공원을 비롯하여 클럽하우스며 수영장, 기념품 가게 등을 만들고, KKK(독립운동단체 카티푸난을 의미)와 Bayani(타갈로그어로 영웅이라는 뜻)라는 글자를 조각한 청동 조각상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곤돈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이 사업은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역사유적지 개발 사업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마라곤돈에서 역사유적지의 개발을 흐지부지 중단하기는 했어도 시설은 계속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던 모양이다. 에코파크까지 가는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콘크리트 한 줌 뿌리지 않은 비포장도로인 데다가 폭이 좁기까지 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마라곤돈 타운홀(Maragondon Town Hall)에서 트라이시클을 빌려 타고 가면 100페소에서 150페소 정도는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이렇게 비싼가 싶은 생각을 잠깐 했었건만 길 상태나 거리를 보니 왜 그것밖에 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마저 든다. 이렇게 도로 상태가 나쁘다면 오토바이가 온통 지저분해질 것이 당연한데 세차비라도 좀 더 받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런데 길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럭저럭 유적지에 도착해서 깨달은 것은 이곳이 이미 한참 전부터 버려졌다는 것이다. 시설 운영을 중단했다면 산자락 아래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한 아저씨가 안내했었을 터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 의아하다. 하지만 입구의 아저씨가 내게 한 이야기는 1km 정도 더 가야만 된다는 것뿐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힘겹게 와서 그냥 돌아가기란 아쉬우니 매표소 혹은 안내소였다고 짐작되는 곳을 통해 잠깐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넓은 유적지 안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검은 카라바오 물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공원 안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고요할 정도로 조용했다. 방문객은 물론이고 직원 하나 없는 공원이 어찌나 깨끗해 보이는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잘 관리하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방치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필리핀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비단 이것 하나뿐이더냐. 나는 남의 나라 역사 공부는 그만 접고 서둘러 마닐라로 돌아가기로 했다. 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 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 주소 : Brgy. Pinagsanhan B, Municipality of Maragondon, Cavite City. Philippines ■ 위치 : 필리핀 카비테, 마라곤돈 ■ 비고 - 도로 사정이 열악하여 유적지 시설까지 접근성이 좋지 못함 - 원래 20페소 입장료를 받고 공원처럼 운영했었다고 하지만 2019년 현재는 시설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보임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유적지: 보니파시오가 카티푸난(KKK)에게 재판을 받았던 장소 필리핀 카비테 도로 상태가 이렇다. 사진 속 도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이곳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안내받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에코파크가 나온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입구. 관리인이나 직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KKK는 필리핀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을 의미한다. 필리핀 국가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조각이 어떤 의미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다. 바닥에는 돌을 이용하여 KKK를 써두었다. KKK는 필리핀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을 의미한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영장도 있다. 달력을 봐서 9월 혹은 10월까지는 이곳에 누군가 있었던 듯하다. 카라바오 물소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NHCP(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국기의 상징: 별과 태양의 의미와 색상에 담긴 뜻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국기의 상징: 별과 태양의 의미와 색상에 담긴 뜻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국기를 처음으로 사용했던 알라판 전투가 있었던 장소 필리핀이 스페인에 대항하여 무장 독립운동을 했을 때는 국기라는 것이 없었다. 카티푸난을 비롯하여 각 혁명 단체는 자신의 깃발을 가지고 사용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깃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족주의 무장 투쟁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KKK)은 직사각형에 "K.K.K"가 적힌 깃발을 만들었지만, '필리핀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가 1896년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특별히 깃발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898년부터였다. 현재 필리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기는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가 홍콩에 망명했을 때 도안한 국기에서 유래한다.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1897년 스페인 식민지 총독과 비악나바토 조약이란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이 조약에 따라 1898년 홍콩으로 망명했다. 홍콩 망명 중 국기를 도안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 에게 주고 깃발 제작을 맡겼다고 한다. 마르셀라 아곤실로는 결혼 전 수녀원에서 생활할 때 익혔던 양재 기술을 십분 발휘하여 국기를 만들었고, 1898년 5월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마닐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 직전에 아기날도를 만나 국기를 전달했다. 마르셀라 아곤실로가 정성껏 만든 필리핀 국기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98년 5월 28일 알라판 전투(Battle of Alapan) 에서 승리했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1898년 6월 12일,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고향인 카비테 카윗의 집에서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 국기를 정식으로 게양했다. 한편, 필리핀 독립 선언 시 사용했던 국기는 전쟁 중 분실되고 없다.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과 말롤로스 의회 개회식에서도 이 깃발을 사용했지만, 전쟁 중에 분실했다고 한다. 국기의 행방에 대한 부분은 1925년에 아기날도가 Baja 대위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필리핀-미국 전쟁 중 미군에게 쫓겨 루손섬 북부로 후퇴했을 때 팡가시난(Pangasinan) 지역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Symbols in the Philippine Flag 1898년에 있었던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확실한 승리였다. 마닐라만 전투에서 스페인이 진 것을 본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1898년 6월 12일 그의 고향 카윗의 집에서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날, 필리핀의 국기가 처음 정식으로 게양되었다. 그런데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어떤 의미를 담아 필리핀 국기를 도안했을까?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노란색으로 의인화된 태양을 그리고, 깃발 앞에는 Fuerzas Expeditionarias del Norte de Luzon(북부 루손의 원정군을 의미), 뒤에는 Libertad Justicia e Ygualdad(자유, 정의, 평등을 의미)라는 문구를 적어 국기를 디자인했다. 당시만 해도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 믿었던 시기였던 터라 미국의 국기 색상과 같은 색으로 국기를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평화, 평등, 진실, 용기, 자유 등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의미를 모두 디자인에 담았다. 그런데 필리핀에서 국기의 노란색 별이 무엇을 상징하느냐는 꾸준한 논란 대상이었다. 3개의 별 이 혁명 운동이 시작된 3개의 섬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섬이 어떤 섬이냐에 대해서는 루손섬, 민다나오섬, 파나이섬을 루손, 민다나오, 비사야 아일랜드 그룹 을 나타낸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뉜다. 필리핀 국기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자료는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했을 때 사용된 필리핀 독립선언문 이다. 독립선언문의 작성자인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는 필리핀 독립선언문에 필리핀 국기의 의미를 제법 상세하게 적어두었는데, 이 세 개의 섬이 루손섬, 민다나오섬, 파나이섬을 나타낸다고 적었다. 하지만 파나이섬이 비사야에 있기 때문에 파나이가 비사야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고, 세 개의 별이 루손, 민다나오, 비사야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태양의 여덟 갈래 빛 이 나타내는 지역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좀 다르다. 마닐라, 카비테, 불라칸, 팜팡가, 누에바에시하, 딸락(Tarlac), 라구나, 바탕가스라고 안내하는 자료가 많지만,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며 혁명을 일으켰을 때 가장 먼저 참여했던 마닐라, 카비테, 불라칸, 팜팡가, 누에바에시하, 바탄(Bataan), 라구나, 바탕가스라고 적혀 있다. 별과 태양의 의미 ■ 3개의 노란색 별: 혁명이 시작된 3개의 섬인 루손섬(LUZON), 민다나오섬(MINDANAO), 파나이섬(Panay)을 의미 ■ 태양의 여덟 갈래 빛: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는 혁명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참여했던 8개의 지역 (Province)인 마닐라(Manila), 카비테(Cavite), 불라칸(Bulacan), 팜팡가(Pampanga), 누에바에시하(Nueva Ecija), 바탄(Bataan), 라구나(Laguna), 바탕가스(Batangas)을 의미 ■ 하얀색 삼각형: 혁명을 주도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KKK)을 의미 색상에 담긴 뜻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는 필리핀 독립선언문에 "위대한 국가인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 보호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미국 국기의 색을 사용했다"고만 밝히고 국기에 사용된 색깔이 각각 의미하는 바는 기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관보(Official Gazette)에 따르면 국기의 파란색은 평화와 진실, 정의를 빨간색은 애국심과 용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필리핀의 학교에서는 역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빨간색이 독립을 이루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 파란색: 평화, 진실, 정의 ■ 빨간색: 애국심, 용맹, 용기 ■ 흰색: 평등에 대한 필리핀인의 희망 The white triangle stood for the Filipinos’ hope for equality; the blue color stood for peace, truth and justice; and the red stood for patriotism and valor. The sunburst of eight rays represented the first eight provinces to take up arms against Spain, and the three stars symbolized Luzon, Visayas and Mindanao.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전쟁 중 국기의 사용 필리핀 국기는 필리핀은 전쟁 시 국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위치가 바뀐다.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 대신 애국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부분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즉, 국기의 붉은 색이 위쪽 또는 왼쪽으로 게양되어 있다면 필리핀이 전쟁 중임을 의미한다. 대통령 등 국가 주요 인물이 사망한 경우 조의를 표하기 위해 깃대 중앙에 반기 게양한다. - 평화 시기(Times of Peace):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위쪽 또는 왼쪽 - 전쟁 시기(Times of War): 애국심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위쪽 또는 왼쪽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대통령 전시관에 있는 일본 점령기 때의 필리핀 국기. 필리핀 국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위치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필리핀 국기의 규격과 색상 2:3의 비율을 갖는 태극기와 다르게 필리핀의 국기는 1:2의 비율을 갖는다. 국기 안에 그려진 흰색 삼각형은 정삼각형으로, 정삼각형 변의 길이는 세로의 길이와 일치한다. 또한 세 개의 별의 꼭짓점은 별의 중앙을 향해 있다. 국기의 파란색이 얼마나 진한 파란색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필리핀 독립 100주년이었던 1998년 제정된 필리핀 공화국법 제8491호(Republic Act No. 8491)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국기의 색이 지정되었다. 색상 색 번호 웹 색상 RGB 파란색(blue color) Cable No. 80173 0038A8 0-56-168 빨간색(red color) Cable No. 80108 CE1126 206-17-38 노란색(golden yellow) Cable No. 80068 FCD116 252-209-22 하얀색(white color) Cable No. 80001 FFFFFF 255-255-255 1946년 7월 4일, 필리핀 독립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실제 필리핀 독립 선언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집 -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Republic Act No. 8491 · Official Gazette: The Philippine flag · Official Gazette: Speech of President Aquino at the celebration of Independence Day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Controversial Philippine National Flag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Philippine Flag: Symbol of our Sovereignty and Solidarity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Philippine Flag: Symbol of Filipino Unity, Love of Country And National Pride · National Commission on Indigenous Peoples: National Flag Day in the Philippines · Rappler: FAST FACTS: Philippine flag misconceptions and other trivi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경제: 필리핀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부유한 도시(City)는?
필리핀 경제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경제 필리핀 경제: 필리핀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부유한 도시(City)는?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3월 5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티 필리핀의 지자체 중에서는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 필리핀 감사위원회(COA, Commission on Audit)의 연례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가장 자산(Assets)이 많은 시티(City)는 퀘존 시티(Quezon City) 이다. 2위는 마카티 시티(Makati City) , 3위는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 시티(Manila City) 이다. 4위는 올티가스 비즈니스 센터가 있는 파식시티(Pasig City) , 5위는 타귁시티(Taguig City) 가 차지했다. 가장 부유한 도시 상위 10개 도시 중 7개가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지역에 있다. 메트로 마닐라의 자산 규모 메트로 마닐라 Assets (in thousand pesos) 인구(2020년) 퀘존(Quezon City) 443,405,946 2,960,048 마카티(Makati City) 239,477,812 629,616 마닐라(Manila City) 77,506,037 1,846,513 파식(Pasig City) 52,152,221 803,159 타귁(Taguig City) 40,839,788 886,722 만달루용(Mandaluyong City) 32,549,876 425,758 파라냐케(Paranaque City) 27,375,987 689,992 칼로오칸(Caloocan City) 27,204,747 1,661,584 문틴루파(Muntinlupa City) 18,999,688 543,445 파사이(Pasay City) 17,979,004 440,656 발렌수엘라(Valenzuela City) 13,322,840 714,978 라스피냐스(Las Pinas City) 13,229,466 606,293 마리키나(Marikina City) 10,389,771 456,059 산후안(San Juan City) 7,440,675 126,347 말라본(Malabon City) 5,051,262 380,522 나보타스(Navotas City) 4,732,207 247,543 파테로스(Municipality of Pateros) 589,092 65,227 메트로 마닐라 전체 1,032,246,419 13,484,462 출처 Philippine Statistics Authority, 2020 Census of Population and Housing Commission on Audit's 2022 Annual Financial Report · 퀘존 시티(Quezon City) 는 1930년대 마닐라의 주택 부족 및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고자 계획된 도시답게 면적이 166.2km²에 달한다. 메트로 마닐라의 전체 면적이 636km²임을 생각해 보면 퀘존 시티가 얼마나 거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퀘존시티는 필리핀에 있는 시티(City)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 마카티 시티(Makati City) 의 재정자립도가 높은 까닭은 이 지역이 1950년대 이후 새롭게 개발되며 필리핀 금융의 중심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타귁시티에 많이 자리를 뺏기기는 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필리핀 비즈니스의 중심지 라고 불린다. 보니파시오로 많이 옮겨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요 기업의 본사와 은행, 외국 대사관 등이 대거 마카티 지역에 몰려 있다. 필리핀 상업의 핵심 지역답게 필리핀에서 가장 건물 임대료가 비싼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 타귁 시티(Taguig City) :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릿이 있기 때문인지 타귁시티가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타귁시티 전체 면적에서 하이스트릿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에 불과하다.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부유한 시티 (Richest cities) 시티(City) Assets 1 퀘존(Quezon City) 443.41 billion 2 마카티(Makati City) 239.48 billion 3 마닐라(Manila City) 77.51 billion 4 파식(Pasig City) 52.15 billion 5 타귁(Taguig City) 40.84 billion 6 만다웨 시티(Mandaue City) 34.23 billion 7 만달루용(Mandaluyong City) 32.55 billion 8 세부 시티(Cebu City) 30.55 billion 9 다바오 시티(Davao City) 29.7 billion 10 파라냐케(Paranaque City) 27.38 billion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부유한 주 (Richest provinces)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한 주는 세부 주(Province of Cebu)이다. 2위인 리잘이나 3위인 바탕가스와 비교하여 자산 규모의 차이가 큰 편이다 주(Province) Assets 1 Cebu 235.738 billion 2 Rizal 35.594 billion 3 Batangas 31.999 billion 4 Davao de Oro 23.107 billion 5 Ilocos Sur 21.562 billion 6 Bukidnon 21.058 billion 7 Iloilo 19.977 billion 8 Negros Occidental 19.419 billion 9 Cavite 19.342 billion 10 Pampanga 19.127 billion Binangonan, Rizal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부유한 구 (Richest municipalities) 구(Municipality) Assets 1 Carmona, Cavite 6.522 billion 2 Limay, Bataan 5.791 billion 3 Silang, Cavite 4.454 billion 4 Caluya, Antique 3.822 billion 5 Cabugao, Ilocos Sur 3.805 billion 6 Cainta, Rizal 3.766 billion 7 Taytay, Rizal 3.670 billion 8 Binangonan, Rizal 3.489 billion 9 Sta. Maria, Ilocos Sur 3.267 billion 10 Sta. Cruz, Ilocos Sur 3.215 billion 마닐라 올티가스 공원(Ortigas Park) COA의 연례 회계 보고서 필리핀 감사위원회(COA)에서는 매년 연례 회계 보고서(Annual Financial Report)를 통해 필리핀 정부 및 산하기관의 재무 상태 및 자금 및 자산에 대한 운영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자료는 2023년 자료로 2022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를 기준으로 147개의 시(City)와 1,487개의 구(Municipality)로 행정구역이 기재되어 있다. 2024년 현재 필리핀의 행정구역은 17개의 지방(Region), 82개의 주(Province), 149개의 시(City), 1,485개의 구(Municipality), 42,001개의 바랑가이(Barangay)로 구성된다. 파라냐케(Paranaque City) 파사이(Pasay City)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COA(Commission on Audit): 2022 Annual Financial Report for the Local Government · GMA Network: The 10 richest cities in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95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 창설 - MMDA의 주요 업무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95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 창설 - MMDA의 주요 업무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일 MMDA EDSA 혁명으로 마르코스가 물러난 뒤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를 관리하던 메트로폴리탄 마닐라 위원회(MMC)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르코스의 뒤를 이어 제11대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취임 후 1990년 메트로폴리탄 마닐라 위원회(MMC)를 폐지했다. 그리고 MMA라고 불리는 메트로 마닐라청(Metropolitan Manila Authority) 을 설립했는데, 이 MMA가 1995년 창설된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 의 전신이다.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의 의장은 여전히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MMDA는 자문기관의 역할을 할 뿐 마르코스 시절의 MMC만큼 막강한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메트로 마닐라 내의 시(City)와 구(Municipality)는 자율적으로 자신의 행정구역 내에 적용되는 정책을 정할 수 있다. MMDA에서 교통이나 하수도 시스템, 폐기물 처리 등의 관리와 같이 메트로 마닐라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정책을 조율하지만, 메트로 마닐라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조례를 제정하거나 프로젝트의 시행을 강제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MMDA는 MMC와 별개의 다른 기관이라는 주장도 있다. MMDA라는 명칭은 1995년에 통과된 공화국법 제7924호(Republic Act No. 7924)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MMC와는 그 형태 및 권한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MMDA에서는 MMC 설립일을 기준으로 1975년을 설립일로 보고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974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 Metropolitan Manila Development Authority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은 메트로 마닐라의 도시계획 및 개발을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행정기관이다.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의 16개 시(City)와 1개의 구(Municipality) 전체 지역을 대상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하는 일이 상당히 광범위한 편이다. 교통관리는 물론 쓰레기 처리관리에서부터 홍수 통제, 하수도 관리, 재난 시 구호작업 등까지 담당하고 있다. 마닐라 생활 중 가장 많이 접하는 MMDA의 직원은 아마도 트래픽 인폴서(Traffic Enforcer)일 것이다. 도로청소 및 녹지관리를 하고 있는 직원도 상당히 쉽게 볼 수 있다. ■ 홈페이지: http://www.mmda.gov.ph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MDAPH ■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의 주요 업무 - 교통 및 교통 관리(Transport and Traffic Management) - 개발 기획(Development Planning) - 고체 폐기물 처리 및 관리(Solid Waste Disposal and Management) - 홍수 통제 및 하수도 관리(Flood Control and Sewerage Management) - 도시 재개발, 구역 및 토지 이용 계획 및 피난처 서비스(Urban Renewal, Zoning and Land Use Planning and Shelter Services) - 건강과 위생(Health and Sanitation) - 도시 보호 및 공해 관리(Urban Protection and Pollution Control) - 공공 안전(Public Safety) MMDA MMDA Worker's Inn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MDA: Republic Act No. 7924 · MMDA(Metropolitan Manila Development Authority) · The Philippine Star: MMDA is NOT MMC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법 | 필리핀 이트래블
필리핀 세관신고서 용도로 사용되는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 QR코드 등록법 최신 안내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법 Customs Declaration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최종 업데이트: 2025.02.04 필리핀 전자입국신고 제도 필리핀 정부에서 원스톱 전자 여행 신고 시스템(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을 입국 시스템에 도입함에 따라 2024년 현재 필리핀에서는 종이로 된 입국서류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이트래블 큐알코드가 필리핀 입국신고서 용도로 사용됩니다. - 이트래블의 전자 세관신고서(Philippine Custom's Declaration ) 페이지가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Customs Baggage Declaration Form)와 외환신고서(Currencies Declaration Form) 용도로 사용됩니다. Q. 세관 신고 사항이 없는데, 이트래블을 등록해야 하나요? 네. 필요합니다. 이트래블 큐알코드가 입국신고서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필리핀 입국 전 반드시 이트래블(eTravel)을 등록해야 합니다. -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을 통해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없음을 보고 -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를 통해 세관신고서(CBDF) 작성 Q. 공항 도착 후 종이로 된 세관신고서를 써도 됩니까? 필리핀 정부의 입국 시스템이 페이퍼리스 시스템(Paperless system)으로 전환됨에 따라 현재 필리핀에서는 종이로 된 세관신고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Q. 필리핀 면세 한도를 알려주세요. 필리핀 입국 시 면세 한도는 1만 페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필리핀 세관: 필리핀 입국 시 면세 한도는 1만 페소. 담배 2보루는 별도 면세 가능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1/9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Important Information: 세관신고사항 없음(NO)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Declaration Signature: 전자서명 ⑦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⑧ 등록된 내용 확인 ⑨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1/10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및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세관 규정에 대한 안내문: 세관신고사항 있음(Yes)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동반가족수,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For Customs - General Declaration: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 반입규제·반입제한·반입금지 물품 소지 여부 체크 ⑦ Declaration Attachments and Signature: 전자서명 & 세관신고 관련 서류 첨부 ⑧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⑨ 등록된 내용 확인 ⑩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필리핀 입국 시 세관 신고 대상 - 신고할 물품이 있는 경우 - 면세 한도를 초과한 물품을 소지한 경우 - 반입규제·반입제한·반입금지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필리핀 입국 시 반입이 규제·제한·금지되는 물품 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 위의 안내는 내용은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입국할 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 항목은 사전 예고 없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핀 관광부(DOT)나 필리핀 이민국(BI), 필리핀 BOC(Bureau of Customs)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트래블 작성방법 | 동반가족 계정 생성
함께 여행하는 가족을 위해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 계정 등록하기 |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을 등록법 최신 안내 필리핀 이트래블 작성법: 가족 계정 만들기 Add Family Member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최종 업데이트: 2025.02.04 - 이트래블 계정 등록을 위해서는 이메일 인증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가족 중 대표자 1인이 이트래블 계정을 만들면 다른 가족구성원은 이메일 인증을 받지 않고 계정 등록이 가능합니다. - 이메일 인증(OTP 보안코드 6자리 숫자 입력)이 생략되는 것 외에는 본인의 계정을 등록할 때와 등록 사항이 같습니다. - 이메일 인증 과정이 생략되는 대신에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를 입력해야 합니다. - 이트래블 사이트 대시보드 화면 바로 가기: https://etravel.gov.ph/en/dashboard 이트래블 가족 계정 만들기 ① 이트래블 웹사이트의 대시보드에 접속 ② 개인정보 입력 ③ 거주지 주소 입력 ④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⑤ 등록된 내용 확인 ① 이트래블 웹사이트의 대시보드에 접속 · 이트래블 사이트에 로그인한 상태에서 대시보드에서 Add Family Member라고 적힌 버튼 클릭 후 가족을 위한 계정 등록 ② 개인정보 입력 Family Member - Personal Information · 이름, 성별, 생년월일, 국적, 여권번호, 여권발급일 등 개인정보 입력 Take a photo or upload a file. 사진 등록: 아무 사진이나 등록 가능(여권과 동일할 필요 없음) 내국인/외국인 선택 □ PHILIPPINE PASSPORT HOLDER : 필리핀 여권 소지자 □ FOREIGN PASSPORT HOLDER : 외국인(한국인) First Name : 이름 Middle Name (optional) : 입력 불필요 Last Name (optional) : 성 Suffix (optional) : 입력 불필요 Sex : 성별 □ MALE 남자 □ FEMALE 여자 Birth Date : 생년월일- 월/일/년 Mobile Number : 핸드폰 번호 입력 □ 전화번호 국가번호: 한국 +82 / 필리핀 +63 Citizenship : 국적 □ 한국인: South Korean Country of Birth : 출생국가 □ 대한민국: South Korea Passport Number : 여권번호 Passport Issued Country: 여권 발급국가 □ 대한민국: South Korea Passport Issued Date: 여권발급일 Occupation : 직업 □ Agriculture: 농업 □ Airline Crew: 승무원 □ Clerical/Sales: 사무직, 영업직 □ Diplomat: 외교관 □ Domestic Helper: 가사도우미 □ Entertainer: 연예인 □ Housewife: 주부 □ Military/Government Personnel: 군인, 공무원 □ Professional/Technical/Administrative: 전문직, 기술직, 관리직 □ Retired/Pensioner: 퇴직자, 연금수령자 □ Seaman: 선원 □ Student/Minor: 학생, 미성년자 □ Unemployed: 실업자, 휴직자 □ Worker/Laborer: 직장인, 근로자 ③ 거주지 주소 입력 Family Member - Permanent Country of Residence 계정 소유자 본인과 주소지가 같은 경우 Copy account owner address 부분 클릭 Country : 거주지 국가 입력 □ 한국: South Korea No./Bldg./City/State/Province : 영문 주소 입력 · 네이버에서 영문주소 검색하기 ④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Relationship to account owner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 MOTHER: 어머니 □ FATHER: 아버지 □ DAUGHTER: 딸 □ SON: 아들 □ SISTER: 언니, 누나, 여동생 □ BROTHER: 형, 오빠, 남동생 □ HUSBAND: 남편 □ WIFE: 아내 * 이트래블에 입력한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제출 불필요. 단, 15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필리핀 이민국의 미성년자 입국 규정에 따라 실제 가족관계가 있는지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음. ⑤ 등록된 내용 확인 Family Member Summary · 등록된 내용 확인: 입력한 내용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최종 확인 · 이트래블 대시보드 에서 등록 여부 확인 가능 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 등록을 할 경우 Travel Registration에서 FOR OTHER(Family Member) 선택 후 입력 진행 Travel Registration · 등록 대상자와 필리핀 입국 유형 선택 · 계정 소유자 본인 및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 등록 가능 등록 대상자 선택 □ FOR ME(Current User): 본인을 위해 이트래블을 등록할 경우 ☑ FOR OTHER(Family Member):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을 등록할 경우 항공/선박 선택 ☑ AIR: 항공편 이용 시 ☐ SEA: 선박 이용 시 입국/출국 선택 ☑ ARRIVAL: 필리핀 입국 시 ☐ DEPARTURE: 필리핀 출국 시 · 외국인(한국인)은 필리핀 출국(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트래블 등록 불필요 Special Flight: 특별기나 전세기 항공편 이용 시 선택 필리핀 이트래블 eTravel · 이트래블 등록 관련 종합 안내 www.philinlove.net/etravel ·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www.philinlove.net/etravel-signin · 동반가족 이트래블 계정 생성 www.philinlove.net/etravel-family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no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yes · 이트래블 작성법 관련 FAQ www.philinlove.net/etravel-faq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 위의 안내는 내용은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입국할 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 항목은 사전 예고 없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핀 관광부(DOT)나 필리핀 이민국(BI), 필리핀 BOC(Bureau of Customs)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