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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이트래블 작성방법 | 필인러브

    필리핀 입국 시 작성해야 하는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 등록 관련 최신 안내 | 필인러브 필리핀 이트래블 작성법 eTravel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최종 업데이트: 2025.02.04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은 필리핀 입국 시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QR코드입니다. 기존에 종이로 작성하던 입국신고서와 건강상태확인서, 세관신고서를 대신하는 QR코드라서 나이나 성별, 국적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트래블 QR코드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트래블 등록 대상자 ① 필리핀을 입국하려는 모든 외국인 · 필리핀 입국신고서 용도로 사용되기에 미성년자도 반드시 등록 필요 · 외국인의 경우 필리핀 입국 시에만 작성. 필리핀을 출국할 때는 이트래블을 작성 불필요 ② 필리핀을 입국· 출국하려는 필리핀인 등록 가능 시간 · 출발 시간(항공기 탑승 시간) 기준으로 72시간 이내에 등록 · 등록 시간이 아닐 때 이트래블을 작성한 경우 QR코드 사용 불가 이트래블 등록 시 유의사항 핸드폰 번호 인증 불필요 이트래블 등록 사이트는 모바일 웹 사이트라서 PC(컴퓨터) 또는 핸드폰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 인증 과정이 없어서 본인 명의의 핸드폰 번호가 없어도 이트래블이 등록이 가능합니다. 계정 등록 시 이메일 인증 필수 필리핀 이트래블은 이메일을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으며, 계정 등록 시 이메일 주소가 유효한지 확인 인증을 받습니다. · 추후 필리핀 재방문 시 등록한 계정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계정 등록을 한 뒤 여행 일정 등을 입력하면 바로 QR코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동반가족을 위한 이트래블 계정 생성 가능 가족 1인이 대표로 이메일 인증을 받은 뒤 가족구성원의 계정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 앱 다운로드 불필요 이트래블 등록을 위해 어떠한 앱(어플)도 다운로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트래블 메인 화면에 보이는 앱(eGovPH app) 다운로드 관련 이미지는 필리핀인을 위한 앱으로 다운로드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트래블 QR코드 등록은 무료 이트래블 등록은 무료입니다. 이트래블 등록 과정에서 결제를 요구한다면 사이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이트래블 사이트가 아닌 등록 대행업체의 사이트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리핀 이트래블 eTravel · 이트래블 등록 관련 종합 안내 www.philinlove.net/etravel ·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www.philinlove.net/etravel-signin · 동반가족 이트래블 계정 생성 www.philinlove.net/etravel-family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no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yes · 이트래블 작성법 관련 FAQ www.philinlove.net/etravel-faqs 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 이트래블 등록 관련 URL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1/8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자세히 보기 ① 이트래블 웹사이트 접속 ② 계정 만들기(Create an account) 버튼 클릭 ③ 아이디로 사용할 이메일 주소 입력 ④ 이메일로 받은 OTP 보안코드 6자리 숫자 입력 ⑤ Create your password: 비밀번호 설정 ⑥ Personal Information: 개인정보 입력 ⑦ Permanent Country of Residence: 거주지 주소 입력 ⑧ Onboarding Summary: 등록된 내용 확인 ⑨ 이트래블 계정 등록 완료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1/9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Important Information: 세관신고사항 없음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Declaration Signature: 전자서명 ⑦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⑧ 등록된 내용 확인 ⑨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1/10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및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세관 규정에 대한 안내문: 세관신고사항 있음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동반가족수,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For Customs - General Declaration: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 반입규제·반입제한·반입금지 물품 소지 여부 체크 ⑦ Declaration Attachments and Signature: 전자서명 & 세관신고 관련 서류 첨부 ⑧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⑨ 등록된 내용 확인 ⑩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 위의 안내는 내용은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입국할 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 항목은 사전 예고 없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핀 관광부(DOT)나 필리핀 이민국(BI), 필리핀 BOC(Bureau of Customs)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필리핀 역사: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의 전시물 1898년 6월 12일은 필리핀 혁명정부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로 한 날이었다. 장소는 스페인 혁명 정부의 지도자였던 에밀리오 아기날도 집으로 정해졌다. 카비테 카윗에 있는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집 은 상당히 큰 저택이지만, 하나둘씩 모여든 손님으로 인해 저택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으로 꽉 찼을 것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먼저 엄숙한 분위기에서 암브로시오 리안레스 바우티스타 가 작성한 독립선언문 이 낭독되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이미 스페인의 지배라는 멍에를 지고 있는 것에 지쳐버렸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독립선언문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오후 4시 30분경, 훌리안 펠리페가 만든 필리핀 국가 행진곡(Marcha Nacional Filipina) 이 연주되는 동안 필리핀 국기가 공식적으로 처음 게양되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직접 도안한 뒤 마르셀라 아곤실로 의 도움으로 홍콩에서 만들어온 국기였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유적지: 스페인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했던 장소, 카비테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바라소라인 성당(1899년 공화국 박물관)의 전시물 필리핀 독립선언 그런데 1898년 6월 12일의 독립선언은 실제 국제사회에서는 독립국임을 인정받지 못한 독립선언 이었다. 식민통치를 받는 상황에서의 독립 선언이었으니,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집에서 98명이 서명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고 해서 필리핀이 실제 독립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7월 4일이 되어서야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즉, 1898년 6월 12일 은 광복절이 아닌 삼일절에 가까운 날이었다. 가끔 필리핀에서 6월 12일을 독립기념일로 지내는 것은 역사 왜곡을 하는 것에 불과하며 7월 4일이 진정한 독립기념일이라는 주장을 듣게 되는데, 1898년 6월 12일 당시 국제사회의 그 누구도 필리핀의 독립선언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누가 봐도 1898년 당시 필리핀은 결코 스페인 혹은 미국, 그 어떤 나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독립 선포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1898년 12월 10일 파리 조약 으로 미국은 스페인에서 필리핀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넘겨받았다. 그러니 이렇게 미국과 스페인이 만나 제멋대로국가의 통치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한 것을 놓고 진정한 국가 독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1934년의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에 대한 법)이다. 타이딩스-맥더피법을 보면 10년 후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필리핀은 완전 독립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되고, 1898년도에 필리핀이 독립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필리핀의 독립이 승인된 것은 1946년 7월 4일, 33대 미국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 시대의 일이었으니, 어찌 1898년부터 1946년까지 이어졌던 필리핀의 미국 식민지 시대를 무시한 채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독립 선언 하나만 보고 필리핀이 독립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리핀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했다는 의미 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1964년, 필리핀의 제9대 대통령이었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은 7월 4일이던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을 6월 12일로 변경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때의 모습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의 인디펜던스 발코니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카비테 카윗에 있는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집. 필리핀 독립선언을 했던 장소로 현재는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Republic Act No. 4166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896년, 호세 리잘의 죽음을 불러온 카티푸난(KKK) 푸가드 라윈의 통곡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896년, 호세 리잘의 죽음을 불러온 카티푸난(KKK) 푸가드 라윈의 통곡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6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티푸난의 입문 의식을 표현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1892년 7월 3일, 호세 리잘은 필리핀 민족동맹(La Liga Fulipina)이란 이름으로 스페인 식민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비폭력저항 단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호세 리잘의 비폭력 저항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매우 온건한 단체였지만, 스페인 총독부가 보았을 때는 이 단체의 설립자가 필리핀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만든 호세 리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필리핀 민족동맹을 해산시킬 이유가 충분했다. 결국 1892년 7월 7일 호세 리잘은 마닐라를 떠나 민다나오 타피탄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과 같은 필리핀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세 리잘처럼 민족의 독자성이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세 리잘이 민다나오섬으로 추방되던 그날 밤의 일이다. 데오다토 아렐라노Deodato Arellano)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호세 디존(José Dizon) 등이 모여 카티푸난(KKK)이란 이름으로 무장 혁명을 위한 비밀결사단체를 만들어 낸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무장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필리핀 민족동맹의 조직과 해산, 그리고 카티푸난(KKK)의 결성까지 이 모든 일이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셈이었다. 카티푸난(KKK) Katipunan Kataastaasang Kagalanggalangang Katipunan ng mga Anak ng Bayan (Supreme and Venerable Association of the Children of the Nation) 1892년 7월 7일 결성 민족주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 마닐라의 아테네오 대학 근처에 가면 카티푸난 애비뉴(Katipunan Avenue)라는 이름의 도로를 볼 수 있다. 필리핀의 역사 속에서 카티푸난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가 만들었다는 스페인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필리핀 독립운동 단체가 바로 카티푸난(KKK)이다. 카티푸난(Katipunan)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협회(association) 또는 '다 함께'라는 뜻의 의미가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필리핀에 있었던 비밀 혁명 단체인 카티푸난의 정식 명칭은 Kagalang-galangang Katipunan ng mga Anak ng Bayan인데, 필리핀에서 KKK라고 하면 보통 이 카티푸난을 의미한다. 카티푸난(KKK)은 필리핀 민족동맹과 다르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추구하였다. 호세 리잘의 민족주의적 비폭력 저항 운동이 실패한 것을 본 KKK 비밀결사 단원들은 온건한 방법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푸가드 라윈의 통곡 Cry of Pugad Lawin 필리핀에서 8월은 매우 무더운 시기이다. 1896년 8월 어느 날, 카티푸난은 보니파시오의 주도 아래 퀘존 발린타왁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독립 전쟁을 선언했다. 이 사건이 바로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으로 발린타왁에서 혁명을 외쳤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 혁명이 시작된 날짜와 장소에 대한 의견은 좀 분분하다. 푸가드 라윈의 통곡이 마닐라 발린타왁 쪽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도 있지만, 필리핀 혁명의 어머니로 불리는 탄당 소라(멜코라 아키노)의 아들의 집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도 있다. KKK의 은신처로 사용되던 이 집 마당에 매의 둥지가 있었기에 푸가드 라윈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그 시작 장소야 어찌 되었든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를 비롯하여 KKK의 단원들이 대거 모여 "필리핀 만세!"를 외치며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거부하고 나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보니파시오의 군대가 승리하기란 어려웠다. 독립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무기도 변변치 않은 카티푸난의 단원들이 정식 훈련을 받은 스페인의 군대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카티푸난의 독립군은 스페인 군대와의 교전에서 계속 패배했고, 마닐라를 떠나 북쪽 몬탈반으로 계속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보니파시오는 스페인 군대에 크게 패배하여 산악지역으로 후퇴하면서도 게릴라전술로 저항했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야사에 따르면 퇴각하던 보니파시오가 카비테 지역을 담당하던 에밀리오 아기날도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스페인이 카티푸난의 비밀 은신처를 색출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보니파시오의 지도력 부족을 지적하면서 전투 지원을 멈춘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보니파시오의 혁명을 끝까지 도와서 보니파시오의 신뢰를 얻고 카티푸난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기날도가 보니파시오를 무능한 지도자로 몰아가서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는 쪽의 이야기가 더 많다. 한편, 푸가드 라윈의 통곡은 호세 리잘(Jose Rizal) 이 처형당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필리핀 혁명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스페인에서 호세 리잘을 카티푸난의 푸가드 라윈의 통곡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하여 사형한 것이다. 1896년 11월 13일에 산티아고 요새에 수감된 호세 리잘은 1896년 12월 30일 바굼바얀(현재의 리잘파크) 에서 처형당했다. 국가 영웅의 날 National Heroes Day 푸가드 라윈의 통곡에서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필리핀 정부에서는 매년 8월 넷째 주 월요일을 국가 영웅의 날(National Heroes Day) 로 기념하고 있다. 보니파시오 데이나 리잘데이와 다르게 영웅의 날은 어느 특정 영웅이 아닌 필리핀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Katipuneros라고 불렸던 KKK 비밀결사 단원들 불라칸의 바라소아인 성당(Barasoain Church)에 있는 박물관 카티푸난을 상징하는 KKK 깃발 카티푸난을 상징하는 KKK 깃발 flag of Republic of Biak-na-Bato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보니파시오의 모습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호세 리잘과 KKK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NHCP( 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이사벨라주,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이사벨라주,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1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일본 점령기(1942년~1945년)를 거치며 겪었던 여러 가지 참혹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반일 감정이 없는 편이다. 이에 대해 역사 교육이 미흡해서 그렇다는 설명을 하기도 하고, 이미 스페인과 미국에 걸쳐 긴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터라 지배 계층만 바뀐 상황으로 받아들여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뚜렷한 답변은 없다. 하지만 일본 점령기가 한국처럼 길지 않아서 그렇다는 등의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필리핀 역시 일본 점령기 동안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바탄전투 와 코레히도르 전투 , 마닐라 전투 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망하고 도시가 파괴되었었단 말인가. 하지만 태평양 전쟁은 이미 1945년에 끝났고, 일본이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통해 증여한 여러 가지 시설을 이용하면 자란 필리핀의 전후세대는 한국처럼 과거의 식민지 역사에 분노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서 세웠던 허수아비 정부 역시 제2공화국으로 인정하며, 일본에 의한 괴뢰정부의 대통령이었던 호세 라우렐 대통령 역시 큰 반감 없이 받아들인다. 마닐라에서 차로 10시간 정도 달려 루손섬 위쪽에 있는 이사벨라주(Province of Isabela)에 가면 옥수수 생산량 전국 1위를 차지한다는 일라간(Ilagan)이란 이름의 동네가 있다. 일라간이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가볼 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동네를 방문하는 이들이 잊지 않고 들리는 관광명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일라간 일본 터널이란 곳이다.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일라간 일본 터널 Ilagan Japanese Tunnel ■ 주소: Ilagan, Isabela ■ 위치: 필리핀 이사벨라주, 일라간 산토 토마스 바랑가이(Barangay Sto. Tomas) ■ 입장료: 50페소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은 일본 점령기에 일본군이 방어 목적으로 만든 많은 터널 중 하나이다. 높이 3m, 길이 40m로 상당히 넓게 파인 터널로 일라간 사람들은 이 터널이 일본군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고 짐작하고 있다. 터널을 만드느냐고 강제 동원된 필리핀인의 수나 그들이 겪어야 했던 강제노동의 가혹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8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이다. 2016년 이사벨라주 지방정부에서는 터널 주변 곳곳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관광지로 만들었다. 일본군의 은신처였던 터널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라간 일본 터널은 꽤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공간 자체만 보면 일본 점령기 필리핀인들의 비극적인 희생과 일본의 만행을 환기하는 장소이지만, 일본에 분노하는 이는 전혀 볼 수 없다. 기모노를 빌려 입고 전투기 앞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느냐고 바빠서 일본군의 총구가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겨누고 있었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일라간 시청(Ilagan City Hall) 필리핀 이사벨라주,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입구 사무실에서 기모노를 빌려주고 있다. 기모노를 입고 걸어가는 필리핀 사람들 역사의 흔적을 느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오는 곳이라 우산 등 사진 촬영용 소품도 빌려준다.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터널 입구 터널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CITY OF ILAGAN: History · CITY OF ILAGAN: Ilagan Japanese Tunnel · rappler: Travel diaries: Discovering Isabela’s rich history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 옷의 형태와 입는 방식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 옷의 형태와 입는 방식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8월 10일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는 머리부터 입는 형태의 셔츠(풀오버 셔츠)로 허리 약간 아래 길이로 꽉 끼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은 반소매로 된 것도 보이지만, 긴소매가 정식이다. 긴소매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아 입고 벗기 편하 만들어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롱을 입는 방법이다. 바롱의 디자인이나 소재는 조금씩 변천해 왔지만, 입는 방법만큼은 거의 변화가 없다. 우선 속이 비치는 얇은 직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속 안에 입을 언더 셔츠를 준비 해야 한다. 하의로는 허리띠가 있는 정장 바지를 입게 되는데, 바롱 밑단을 바지 안으로는 넣지 않고 밖으로 내놓고 입는 것이 예의 이다. 셔츠 위에 재킷은 따로 입지 않는다. 품이 약간 넉넉한 셔츠라서 매우 가볍게 착용할 수 있어 보이지만 풀오버 형태라서 혼자 입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요즘도 바롱을 사러 옷 가게에 가면 점원이 손님 옆에서 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바롱의 옷깃는 목에 딱 맞게 입는다. 손가락 하나 정도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다면 딱 맞는 칼라이다. - 소매 길이는 손목까지 내려와야 한다. - 바롱 셔츠는 엉덩이 아랫부분까지 내려오게 입는다. - 바롱 안에 입는 언더셔츠의 선택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바롱의 색깔과 비슷한 색감의 긴팔 언더셔츠( Camisa de Chino) 를 입는 것이 좋다. - 바롱의 모든 단추는 채우는 것이 예의이다. 바롱 아래에는 보통 검은색 바지를 입는다. 𖠿 관련 글 보기: 바롱 타갈로그 구매하기 - 저가형 기성품 vs 맞춤복 바롱 쿨트라 필리피노(Kultura Filipino) 쿨트라 필리피노(Kultura Filipino)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Etiquette Rules All Men Should Know About Wearing The Barong · How to Wear a Barong Tagalog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이멜다 마르코스와 마닐라 필름센터의 비극, 그리고 어메이징쇼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이멜다 마르코스와 마닐라 필름센터의 비극, 그리고 어메이징쇼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1월 1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필름 센터(Manila Film Center) 마닐라에서 살아도 마닐라 필름센터(Manila Film Center)라고 하면 대체 어떤 곳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답하지 못하는 이가 많지만, 소피텔(Sofitel) 옆에 있는 커다란 회색 건물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CCP 단지 안에 있는 "어메이징쇼를 하는 건물"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안다. 하지만 마닐라 필름센터 건물이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야만 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닐라 필름센터 Manila Film Center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무려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이라는 마이클 잭슨이 잭슨5로 데뷔하여 반짝이는 눈빛으로 인디애나 주를 분주히 돌아다녔던 그해, 필리핀에서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마르코스는 대통령의 자리를 무려 21년이나 유지했고, 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에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었다. 1972년 계엄령 선포 이후 이멜다의 정치 활동은 점점 많아졌다. '사치의 여왕'답게 개인 전용기를 이용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던 그 시절, 이멜다 마르코스는 마닐라에서 칸영화제와 같은 영화제를 열기를 원했다. 마닐라 국제영화제를 프랑스의 칸영화제에 버금가는 영화제로 만들어서 마닐라를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야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그 영화제를 개최할 극장이 문제였다. 대체 어디에서 영화제를 열 것인가? 하지만 이멜다의 지시 한마디면 미스 유니버스(Miss Universe Pageant 1974) 대회를 개최할 민속예술극장(Folk Arts Theater) 이 단 77일 만에 뚝딱 지어지던 시절이었다. 1981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영화제를 개최할 극장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곧 정부 예산이 배정되었고, 1982년 1월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극장 건립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이멜다 마르코스가 주도하여 세워졌던 이 시기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마닐라 필름센터도 2천5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지어졌다. 마닐라 필름센터가 개관했던 1982년 메트로 마닐라 지역 노동자의 최저 임금은 1일 18페소에 불과했다. 마닐라 필름센터의 설계는 당시 유명 건축가인 플로일란 홍(Froilan Hong)이 맡게 되었는데,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 로 했다고 한다. 공사 책임자가 웅장한 건물 설계도를 받고 얼마나 당황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공사를 시작했음은 틀림없다. 영화제 개막식 날짜에 맞추어 공사를 끝내기 위해 수천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고, 24시간 동안 3교대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설계도면 그대로 건물을 짓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원래보다 축소된 규모로 설계가 변경되었지만, 그래도 공사장은 쉬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멜다의 지시였다. 영화제 개막식인 1월 18일에 맞추어 어떻게든 극장을 지어야만 했다. 공사 기간을 늘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공사는 서둘러 진행되었다. 한 달 반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극장의 로비 공사를 천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고작 72시간 만에 마치는 등 부실공사를 피할 길은 없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며 제대로 공사를 하기에는 애초부터 공사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공사 현장 붕괴 사고 그러다가 1981년 11월 17일 새벽 3시경, 공사 현장에 붕괴 사고가 터졌다.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이 무너진 것이다. 영화제를 두 달 앞두고 시멘트가 마를 틈도 없이 급하게 공사를 진행한 탓이었다. 무너진 가설물 아래에서 공사장 인부들은 매몰되어 죽어갔다. 하지만 당시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스 정권에서 사건에 대한 공식 성명서를 내보낸 뒤, 그러니까 붕괴 사고 9시간 후에야 구급차가 보내졌다고 한다. 대형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구조대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점심때가 다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공사장에 대체 몇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었는지조차 잘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결국 그 새벽의 참사로 정확히 몇 명이 사망했는지조차 모른 채 구조 작업이 끝났다. 168여 명의 노동자가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다고는 하지만, 이 사망자 수는 정확하지 않다. 170명이란 이야기도 있고, 그 이상이란 이야기도 있다. 상황의 수습보다는 사고 소식을 덮기에 더 급해서 죽은 자가 대체 몇 명이었는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굳어가는 시멘트 속에서 억지로 시체를 끌어낸 뒤에도 공사 기간은 바뀌지 않았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거나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식의 으스스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사는 계속 강행되었다. 언론에서 접근할 수 없도록 경찰에서 공사 현장을 지켜주는 동안 아직 꺼내지 못한 시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 속에서 공사는 24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드디어 마닐라 필름 센터(Manila Film Center)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인도에서 특별히 배송된 공작 깃털로 장식한 에메랄드빛 드레스를 입고, 다이아몬드 등 화려한 보석을 잔뜩 걸친 채 극장의 준공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1982년 1월 18일 있었던 제1회 마닐라 국제 영화제(Manila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전해진다. 12일의 영화제 기간에 이멜다는 환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했고, 참석자들에게 고급 와인을 선물로 내밀었으며, 언론에서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극장 건물을 칭송했다. 십여 일의 시간을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해야만 했다는 사실은 영화제의 성공 뒤로 사라졌다. 1982년 마닐라 국제 영화제 이후 하지만 화려한 영광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죽은 이들이 극장에 저주를 퍼부은 것일까, 마닐라 국제 영화제가 끝난 뒤 마닐라 필름센터 극장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고와 좋지 않은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재정적인 어려움 이었다.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프트 포르노 영화제(soft-porn. 덜 노골적인 포르노물)도 열었지만, 부채를 모두 갚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 후 마르코스가 대통령직을 사퇴한 뒤로는 더욱더 극심한 재정적 문제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마닐라에 지진이 발 생했다. 이 지진으로 건물 서쪽 하중을 지지하는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이 괴물 같은 건물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르코스가 남겨둔 독재의 흔적을 지우느냐고 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던 때이기도 했지만, 건물 자체가 꺼림직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지진으로 손상된 부분을 고치지도 못한 채, 건물은 그렇게 버려졌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극장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가 아직도 건물 아래 가득하다'는 소문만이 남았다.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우리는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시멘트를 부어서 사고 현장을 은폐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유령이 되어서 나온다는 소문은 더욱더 퍼져나갔다. 마닐라 필름센터는 저주받은 불운한 건물로 기억 되었다. 마닐라 어메이징쇼(Amazing Show) 마닐라 어메이징쇼 마닐라 필름센터 극장은 10여 년이 흐른 뒤 2001년 12월에야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주인은 바로 어메이징 쇼 제작자였다. 게이쇼로 유명한 어메이징쇼(Amazing Show) 가 열리는 동안 극장 건물 일부가 부분적으로 보수되고, 나쁜 이미지를 좀 씻어내는 듯했지만, 이 임대조차 2009년에 만료되었다. 그 후 필리핀 상원에서 건물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지만, 결국 건물은 다시 비워진 채 방치되었다. 2012년 11월에 어메이징쇼에서 건물을 다시 임대했는데, 화려한 쇼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흉흉한 소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어메이징쇼 출연자 중 하나가 살해당해 계단 위에 버려졌는데 유령이 되어서 극장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해가 지면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야 허무맹랑한 소문이지만, 이멜다 마르코스의 욕심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사실이다. 이 건물은 코코넛 팰리스(Coconut Palace)와 더불어 마르코스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다. 소피텔과 마닐라 필름 센터(Manila Film Center) 마닐라 필름 센터(Manila Film Center)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기사 사진 출처: PhilippinePatriot · The New York Times: MANILA FILM FESTIVAL PROVES ALL-OUT SPECTACULAR · Esquire Philippines: The Mysterious Curse of the Manila Film Center · ABS-CBN News : The Six Fix: "Haunted" And Mysterious Places To Explore This Halloween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연표로 보는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연표로 보는 필리핀 역사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8일 필리핀 역사 연표(Timeline of Philippine history) 1. 선사시대: 900년 이전 Prehistoric period 선사시대: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 연대 주요사건 선사시대 67,000년 전 호빗과 같은 인류가 살았던 곳, 칼라오 동굴(Callao Cave) 선사시대 팔라완의 타본동굴(Tabon Caves)과 인류학자 로버트 폭스 선사시대 신석기 시대의 예술 작품, 앙고노 암각화 선사시대 선사시대, 금속 단조와 라이스테라스 필리핀 창세신화: 대나무에서 나온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전설 2. 식민지 이전 시대: 900년~1571년 Precolonial period 연대 주요사건 900년 라구나에서 서기 900년경 만들어진 구리판 비문 발견(톤토왕국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비문) 1007년 말레이 이민자들이 바랑가이를 타고 팔라완에 도착, 바랑가이(Barangay) 부락공동체 생활 식민지 이전 시대, 발랑아이(balangay) 보트와 바랑가이(barangay) 민다나오 금광개발과 부투안에서 발견된 발랑아이(바랑가이 범선) 1300년 바이바이인 문자사용 필리핀 언어: 필리핀에 있었던 고대 토속 문자, 바이바이인(Baybayin) 1380년 이슬람의 유입, 술루 술탄국 건설 1521년 3월 16일 페르디난드 마젤란, 필리핀 도착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도착한 곳은 세부가 아닌 호몬혼섬 필리핀 사람들은 왜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에게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1521년 3월 31일 페르디난드 마젤란, 리마사와섬에서 가톨릭 미사 거행(필리핀 최초의 부활절 미사) 1521년 4월 27일 페르디난드 마젤란, 라푸라푸와의 막탄 전투에서 사망 마젤란의 죽음과 라푸라푸를 필리핀의 영웅으로 만든 막탄 전투 1543년 2월 2일 루이 로페스 데 빌라로보스가 필리핀의 이름을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Las Islas Filipinas)로 명명 필리핀의 국명을 지은 사람은 마젤란이나 레가스피가 아닌 루이 로페스 데 빌라로보스 필리핀의 공식 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1565년 2월 13일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필리핀 세부에 상륙 3. 스페인 식민지 시대: 1571년~1898년 Spanish colonial period 연대 주요사건 1571년 6월 24일 레가스피, 필리핀 제도는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음을 선언 스페인 식민지 시대(1571년~1898년)의 시작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와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필리핀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든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레가스피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의 산아구스틴 성당(성어거스틴 성당) 마닐라 마카티 시티(MAKATI CITY) 지명의 유래와 레가스피 총독 정복자 레가스피와 그의 손자 살세도, 그리고 톤도 왕국의 공주 1587년 인트라무로스의 발루아르테 데 산디에고(Baluarte de San Diego) 석조 요새 완공 1611년 4월 28일 필리핀 최초의 대학인 산토 토마스 대학(UST) 설립 1624년 필리핀의 총독 알론소 파하르도 데 텐자 사망 17세기 총독 치정사건의 장소, 인트라무로스의 산타 이사벨 공원 1637년 9월 29일 로렌조 루이즈(필리핀 최초의 성인) 순교 마닐라의 비논도 성당과 필리핀 최초의 성인 로렌조 루이스 1686년 일로코스의 파오아이 성당(Paoay Church) 건설 1762년 10월 5일 영국, 마닐라 점령(1762년~1764년) 1807년 9월 16일 일로코스 바씨 반란(Basi Revolt) 1807년, 바씨 반란 - 일로코스의 행정구역이 나뉘게 된 원인은 술 필리핀 역사 유적지: 비간의 일로코스 박물관 단지 - 바씨 갤러리(Basi Gallery) 1825년 스페인 정부에서 카사 로차(현재의 말라카냥궁) 구매 말라카냥 팰리스(Malacañan Palace)와 말라카냥(Malacañang)의 의미 스페인 귀족의 별장이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이 되기까지 역사 뒷이야기 1830년대 중반 마닐라 개항 1845년 낙칼란 지하 묘지 조성 필리핀 역사 유적지: 스페인 식민지 시대 만든 유일한 지하묘지 - Nagcarlan Underground Cemetery 1859년 12월 10일 아테네오 대학 설립 1863년 12월 20일 스페인어를 교육 언어로 사용하는 공립학교 설립 1863년, 공립학교 설립 - 왜 필리핀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할까? 일루스트라도스 엘리트 계층과 필리핀 민족주의 1872년 1월 20일 카비테 반란(1872 Cavite mutiny) 1872년 2월 17일 곰부르자(GOMBURZA) 신부 처형 1872년, 곰부르자(GOMBURZA) 신부의 공개 처형과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 호세 부르고스 신부와 마카티 피불고스 거리 지명의 유래 1887년 5월 29일 호세 리잘, 놀리 메 탄헤레(Noli me Tangere) 출판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가 된 언어 천재 호세 리잘(Jose Rizal) 필리핀 역사 유적지: 호세 리잘이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호세 리잘 박물관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인트라무로스의 중국 화교 박물관, 바하이 치노이(Bahay Tsinoy) 필리핀 역사 유적지: 콜레라와 호세 리잘, 그리고 마닐라 파코공원(Paco Park) 필리핀 역사 유적지: 평화로운 작은 공원, 투게가라오의 리잘파크(Rizal Park) 1892년 7월 3일 호세 리잘, 필리핀 민족동맹(La Liga Fulipina) 결성 1892년 7월 7일 호세 리잘이 민다나오로 추방된 뒤 혁명세력이 무장 독립운동단체 카티푸난(KKK) 결성 1896년 8월 29일 카티푸난(KKK),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이란 이름으로 무장봉기 1896년, 호세 리잘의 죽음을 불러온 카티푸난(KKK) 푸가드 라윈의 통곡 1896년 11월 13일 호세 리잘,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에 수감 1896년 12월 30일 호세 리잘, 리잘파크에서 처형 마닐라 리잘파크(리잘공원)와 호세 리잘 기념비의 의미 마닐라 여행 중 리잘파크(리잘공원)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호세리잘의 나의 마지막 작별(Mi Ultimo Adios) 한글 번역본 1897년 5월 10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분티스 산에서 처형 톤도 출신의 위대한 평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5페소 동전에서부터 보니파시오 데이까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흔적 필리핀 역사 유적지: 보니파시오가 카티푸난(KKK)에게 재판을 받았던 장소 필리핀 역사 유적지: 1897년,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장소 - 분티스 산의 에코파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보니파시오, 32번가에 세워진 예술 작품 Ang Supremo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시청 옆, 보니파시오와 카티푸난 혁명 기념물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중앙우체국 옆 보니파시오 광장(Liwasang Bonifacio)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파식시티,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조각상 1897년 11월 1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비악나바토 공화국 설립 친일파가 되었던 독립운동가, 필리핀의 제1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 5페소 지폐와 캠프 아기날도까지,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흔적 1897년 12월 14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스페인 식민지 총독과 휴전 협정 체결(비악나바토 조약) 1897년 비악나바토 조약 - 스페인 식민지 총독과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체결한 휴전 협정 1898년 4월 21일 미국-스페인 전쟁 시작(1898년 4월 21일~1898년 7월 17일)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과 마닐라만 전투 1898년 5월 1일 미군-스페인군, 마닐라만 전투(미군 승리) 1898년 5월 19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홍콩에서 카비테로 귀국 1898년 5월 28일 알라판 전투(Alapan battle) 필리핀 국기의 날(National Flag Days)이 5월 28일부터 시작되는 이유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실질적으로 독립국이 된 것이 아님)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필리핀 독립선언서의 작성자,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필리핀 역사 유적지: 스페인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했던 장소, 카비테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 전쟁 시 국기의 붉은색이 위로 가는 이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 시 사용되었던 필리핀 국기를 만든 사람, 마르셀라 아곤실로 1898년 이후 현재까지 필리핀 국기의 규격과 색상의 변화 필리핀의 국가 - 선택된 땅, 루팡 히니랑(Lupang Hinirang) 1898년 8월 14일 스페인, 미국에 항복 / 미국, 필리핀에 군정 수립 1898년 9월 15일 혁명정부, 불라칸에서 말로로스 의회(Malolos Congress) 설립 제헌의회 소집과 바라소아인 성당에서의 말로로스 헌법 비준 필리핀 역사 유적지: 불라칸 말로로스의 바라소아인 성당과 필리핀 제1공화국 박물관 필리핀 제1공화국의 존속 시기(1899년 1월 21일~1901년 3월 23일) 필리핀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5공화국까지 구분 1898년 9월 29일 말로로스 의회, 필리핀 독립선언서 비준 4. 미국 식민지 시대: 1898년~1946년 American colonial period 4-1. 필리핀-미국 전쟁 : 1899년~1902년 7월 4일 4-2.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 : 1902년 7월 4일~1935년 11월 15일 4-3.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 1935년 11월 15일~1946년 7월 4일 연대 주요사건 1898년 12월 10일 미국-스페인, 파리조약(미국-스페인 강화조약) 체결 1898년 파리조약(미국-스페인 강화조약)으로 미국 식민지 시대 시작 1899년 1월 21일 혁명정부, 바라소아인 성당에서 말로로스 헌법 공포 1899년 1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필리핀 제1공화국(필리핀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 취임 당시는 필리핀이 독립하기 전이지만, 필리핀의 제1대 대통령으로 평가됨 1899년~1902년 7월 4일 필리핀-미국 전쟁(Philippine-American War) 필리핀-미국 전쟁(1899년~1902년) - 독립을 위한 필리핀 혁명군의 저항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미국 전쟁의 영웅 안토니오 루나 장군과 마닐라 비논도의 집 1899년 6월 5일 안토니오 루나(제너널 루나) 사망 1899년 11월 13일 말로로스 의회 해산 1901년 3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미군에게 체포되어 포로가 됨 1901년 4월 1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미국에 충성선서 1901년 마닐라에 포트 윌리엄 맥킨리(현재의 포트 보니파시오) 조성 시작 미군 기지, 필리핀 최고의 상업지역인 보니파시오로 개발되다 1902년 7월 4일 루스벨트 대통령, 필리핀-미국 전쟁 종식 선언 1901년 8월 28일 미국인 교육기관으로 두마게티 실리만 연구소(실리만 대학교) 설립 1902년 7월 4일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1903년 9월 1일 미군 클락공군기지 설립 1904년 11월 16일 팔라완 이와힉 교도소(Iwahig Prison) 설립 승인 1907년 6월 30일 최초의 의회선거 실시: 미국 통치하에 선출된 필리핀 의회가 개원함 1908년 6월 18일 필리핀 대학(UP대학교) 설립 1916년 8월 29일 필리핀 자치법(존스법) 제정: 필리핀인이 자치 능력을 증명하면 미국 의회가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하는 법 1916년 10월 16일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 설립 1920년대 마닐라 퀘존시티의 길모어와 뉴마닐라 지명의 유래 1931년 12월 10일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개관 1931년, 필리핀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1934년 3월 24일 타이딩스-맥더피법(필리핀 독립법) 통과: 필리핀 내 자치정부 수립과 10년 후 완전한 독립을 약속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법으로 10년 후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 1935년 1935년, 필리핀 최초의 상업용 공항 개항 1935년 11월 15일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출범 1935년 11월 15일,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Commonwealth) 출범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 시기 필리핀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는 이유 1935년 11월 15일 마누엘 케손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2대 대통령) 1935년, 마누엘 케손 대통령 취임- 미국 식민지 시대 필리핀 자치령(코먼웰스)의 대통령 20페소 지폐부터 퀘존시티까지, 마누엘 루이스 케손 대통령의 흔적 필리핀 역사유적지: 퀘존 메모리얼 서클에 있는 마누엘 케손 추모 기념관(마누엘 케손 박물관) 필리핀 역사유적지: 퀘존 메모리얼 서클에 있는 마누엘 케손 대통령 묘지 필리핀 역사 유적지: 퀘존 메모리얼 서클 - 마누엘 케손 헤리티지 하우스(Quezon Heritage House) 1937년 1937년, 마카티 닐슨공항이 문을 열다 1948년, 닐슨공항 이전과 마카티 시티의 개발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1940년 EDSA 도로 완공 마닐라의 EDSA 이름의 유래가 된 천재 학자 에피파니오 델 로스 산토스 1941년 3월 15일 필리핀항공, 마닐라(마카티)-바기오 사이 노선 운항 시작 1941년, 필리핀항공이 상업 비행을 바기오 노선부터 시작한 이유 5. 일본 점령기: 1942년~1945년 Japanese occupation 연대 주요사건 1941년 12월 2일 클락 비행장 상공에서 일본 정찰기 발견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1941년 12월 7일~1945년 9월 2일) 1941년 12월 8일 일본군, 필리핀 내 미군 기지 공습 1942년 1월 2일 일본군, 마닐라 입성 1942년 1월 7일~4월 9일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1942년, 바탄 반도를 피로 물들인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1942년 3월 29일 후크발라합(Hukbalahap) 항일인민의용군 결성 후크발라합 공산주의 게릴라 조직과 마누엘 케손 대통령 미망인의 죽음 1942년 4월 9일~4월 17일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잔인한 4월,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필리핀 역사 유적지: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과 캠프 오도넬 포로수용소 필리핀 역사 유적지: 바탄 죽음의 행진과 사맛산 십자가(Mount Samat National Shrine)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에 있는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1942년 5월 6일 코레히도르 전투(Battle of Corregidor)로 코레히도르섬 일본군에 함락 마닐라베이의 코레히도르섬이 군사요충지가 된 이유 1910년, 코레히도르 요새(포트 밀스) 미군 군사시설 건설 1942년, 코레히도르 전투와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 1943년 10월 14일 호세 라우렐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3대 대통령) - 필리핀 제2공화국(일본에 의한 괴뢰정부)의 대통령 일본 점령기(1942년~1945년)에 세워진 필리핀 제2공화국 1943년, 호세 라우렐 대통령 취임 - 일본 괴뢰국이었던 필리핀 제2공화국의 꼭두각시 대통령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파코에 있는 호세 라우렐 대통령의 집 1944년 8월 1일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4대 대통령) 1944년,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 취임 - 50페소 지폐의 인물 1944년 10월 20일 맥아더 장군, 레이테섬 상륙(레이테 상륙 작전) 1944년, 필리핀 상륙작전 - 맥아더 장군 레이테 상륙 1944년 10월 20일~12월 26일 레이테 전투(Battle of Leyte) 1945년 1월 31일~2월 21일 바탄을 되찾기 위한 전투(Battle for the Recapture of Bataan) 1945년 2월 3일~3월 3일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 1945년,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로 10만 명의 민간인 사망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인트라무로스의 마닐라전투 기념비(마닐라 학살의 희생자 추모 동상)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마닐라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마닐라 해방 기념비 1945년 9월 2일 일본 항복: 일본에서 공식 항복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미국에 항복 필리핀 역사 유적지: 보니파시오에 있는 마닐라 미군 묘지 추모 공원(Manila American Cemetery)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이사벨라주, 일라간 일본 터널(Ilagan Japanese Tunnel) 필리핀 역사 유적지: 참전용사가 만든 두마게티의 카타알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 필리핀 역사 유적지: 밤반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Bamban WWII Museum) 1946년 4월 23일 대통령 선거에서 마누엘 로하스 당선 1946년 5월 28일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5대 대통령) 1946년,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취임 - 100페소 지폐의 인물 6. 독립 이후: 1946년 7월 4일~현재 Post-independence 연대 주요사건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날 리잘파크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 독립 기념 국기게양대 - 1946년 독립기념일 행사의 장소 1948년 4월 17일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6대 대통령) 1948년,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 취임 - 한국전쟁 때 필리핀 한국 원정군 파병 필리핀 역사 유적지: 비간 역사 마을의 일로코스 박물관 단지 1949년 10월 12일 퀘존시티를 필리핀의 수도로 선언 1950년 9월 19일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부산항에 도착 1950년,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한국전쟁에 참전 필리핀 역사 유적지: 타귁시티의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한국전 참전기념관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의 국립묘지, 보니파시오 근처에 있는 국립 영웅묘지(Heroes Cemetery)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 영웅묘지(마닐라 국립묘지)의 한국전 참전비 1953년 10월 23일 필리핀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 시작 1953년, 필리핀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은 가든파티 소개 1953년 12월 30일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7대 대통령) 1953년,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취임 - '아시아 노벨상' 막사이사이상 1954년 5월 17일 후크발라합 반란(Hukbalahap Rebellion) 진압 1957년 3월 18일 카를로스 가르시아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8대 대통령) 1961년 12월 30일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 취임(필리핀의 제9대 대통령) 1962년 5월 12일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필리핀 독립 기념일을 6월 12일로 변경 1965년 12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필리핀의 제10대 대통령)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이멜다 마르코스의 3천 켤레의 구두는 어떻게 되었을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21년 동안 필리핀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모을 수 있는 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시절은 정말 필리핀 경제의 황금시대였을까? 필리핀 법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득한 예술품에 대해 몰수 판결 필리핀 역사 유적지: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와 마리키나 구두박물관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일로코스 파오아이 호수의 마르코스 박물관 - 북쪽의 말라카냥 필리핀 역사 유적지: 일로코스 바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센터의 마르코스 박물관 1969년 9월 8일 필리핀 문화센터(CCP) 국립극장(Tanghalang Pambansa) 개관 파사이의 CCP 콤플렉스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이멜다 마르코스와 마닐라 필름센터의 비극, 그리고 어메이징쇼 1972년 9월 2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 선포 1973년 1월 17일 헌법개정(1973 Constitution) 1975년 1월 17일 바롱 타갈로그를 민족의상으로 지정 마르코스 대통령과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그리고 필리핀항공의 승무원복 1975년 11월 7일 메트로 마닐라 행정구역 신설 1975년,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행정구역 신설과 이멜다 마르코스 1976년 6월 24일 마닐라시티로 수도를 이전 1976년, 퀘존시티에서 마닐라시티(City of Manila)로 수도 이전 1981년 1월 17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을 해제하는 선언문 발표 필리핀 제4공화국의 존속시기(1981년~1986년) 1981년 2월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필리핀 방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머물기를 거절한 곳, 코코넛 팰리스(Coconut Palace) 1982년 3월 4일 마닐라국제공항관리국(MIAA) 설립 마닐라공항(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의 역사 1983년 8월 21일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 마닐라공항에서 암살 1983년, 마닐라공항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 사망 니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2세)와 코라손 아키노, 노이노이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의 아키노 센터 박물관(Aquino Center And Museum) 1986년 2월 7일 1986년 필리핀 대선 1986년 2월 22일~25일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1986년, 마르코스의 독재를 몰아낸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마닐라의 EDSA 피플 파워 혁명 기념조형물 1986년 2월 25일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1대 대통령) 1986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취임 -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 1986년 2월 2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으로 망명 1987년 2월 2일 1987년 필리핀공화국 헌법 제정 -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 1987년 10월 18일 로렌조 루이스(필리핀 최초의 순교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됨 1987년 11월 27일 1987년, 마닐라공항의 이름을 MIA에서 NAIA(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로 변경 마닐라공항(NAIA) 이름에 대한 두테르테 대통령 아들의 생각 1989년 9월 28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에서 사망 1991년 6월 12일 피나투보 화산 폭발 1991년 11월 26일 미군, 클락공군기지 철수 1992년 6월 30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2대 대통령) 1992년, 피델 라모스 대통령 취임 -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 대통령 1992년 9월 30일 미군, 수빅해군기지 철수 1994년 3월 29일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서비스 시작 19954년 3월 1일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의 창설 1995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 창설 - MMDA의 주요 업무 1996년 9월 2일 모로민족해방전선(MNLF)과 평화협정 체결 1998년 6월 30일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3대 대통령) 1998년,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 - 제2차 에드사 혁명으로 물러난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2000년 7월 4일 전자상거래법(Electronic Commerce Act) 제정 2001년 1월 16일 2차 EDSA 혁명으로 에스트라다 대통령 축출 2001년, 제2차 에드사 혁명 -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낸 2차 피플 파워 혁명 올티가스 로빈슨몰 앞의 커다란 황금색 EDSA 성모상에 대한 이야기 2001년 1월 20일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4대 대통령) 2004년 12월 8일 마닐라의 타귁, 시(City)로 승격 마닐라 타귁시티(Taguig City) 지명의 유래 2010년 6월 30일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5대 대통령)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감염병 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IATF-EID) 2013년 1월 18일 가사근로자 보호와 복지를 위한 정책 제정에 관한 법률 제정 2014년 7월 27일 세계 12번째로 인구 1억 명 공식 돌파 2016년 11월 8일 필리핀 대법원에서 국립묘지(Libingan ng mga Bayani)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안장하는 것을 승인하는 판결을 내림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묘지는 어디에? 2016년 6월 30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6대 대통령)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체 몇 대 필리핀 대통령일까? 2017년 4월 18일 BBB(Build! Build! Build! Infrastructure Program) 시작 2017년 5월 16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흡연 금지 명령 서명 2020년 3월 16일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조치 시행 2022년 6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마르코스),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 필리핀 현대사와 함께하는 장소, 말라카냥궁의 칼라야안홀(Kalayaan Hall)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과 탄두아이 럼주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홍보관, 말라카냥궁의 바하이 웅나얀(Bahay Ugnayan)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 신청 방법(무료 가이드 투어) 필리핀 역사 연표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 Diary Project: Timeline of World War II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생활: 톤도 출신의 이스코 모레노 마닐라 시장과 차이나타운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생활: 톤도 출신의 이스코 모레노 마닐라 시장과 차이나타운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7월 14일 요즘 필리핀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치인을 이야기하자면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Isko Moreno Domagoso) 를 빼놓기 어렵다. 마닐라 시장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는 톤도(마닐라의 대표적인 빈민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상당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젊었을 적 그는 메이 미나마할(May minamahal. 1993), 도동 스카 페이스(Dodong Scarface.1995) 등 영화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활동했었는데,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기간에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텔레비전을 볼 필요도 없이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하다. 이스코 모레노는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가장 치안이 좋지 않다는 지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이스코 오레노가 어릴 적 동네 쓰레기를 주워서 생활했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만든 팍팍(pagpag)을 먹으면서 버텼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도무지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이스코 모레노는 쓰레기를 주워 파는 것으로 스스로 학비를 벌어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원래 선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3년에 이웃의 장례식에 갔다가 배우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역 출연이 고작이었지만, 곧 버라이어티 쇼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스코 모레노는 TV 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방송에서 얻은 유명세를 기반으로 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부유한 정치인 가문 출신도 아닌 고졸 출신의 배우 경력이 전부였던 이스코 모레노의 정치 활동이 쉬웠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시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했고, 마닐라시의 부시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올해 5월 13일에 있었던 '2019 필리핀 중간선거(상·하원 의원과 지자체 대표 등을 선출하는 선거)' 에 출마하여 마닐라 시장이 되었다. 올해 마흔여섯 살, 톤도 출신의 그가 경쟁자보다 무려 15만 표 가깝게 득표하면서 마닐라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마닐라에서 생활한다고 하여도 남의 나라 시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크게 관심거리가 되지는 않지만, 이스코 모레노가 내 시선을 끈 것은 마닐라 시청 앞에 있는 보니파시오 기념비(Andres Bonifacio Shrine)를 청소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노상 방뇨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시청 앞에 갈 때마다 이런 역사기념물 앞까지 왜 이렇게 소변 냄새가 가득할까 싶었는데 그걸 청소한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씁쓸했다. 깨끗하게 물청소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동안 얼마나 청소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신문의 기삿거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튼 며칠 뒤 신문에서는 깨끗하게 치운 보니파시오 기념비 앞에서 시민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스코 모레노가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마닐라 시장으로 당선되면 환경정화 작업(clearing operations)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는 했었지만, 정말 굉장히 의욕적으로 공약을 지키고 있다는 건 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닐라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마닐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기습 점검을 하더니, 그 점검한 결과를 과감히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그가 매우 의욕적으로 진행한 일이 바로 마닐라 대청소인데, 연일 신문 기사에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이스코 모레노는 차이나타운과 디비소리아(Divisoria) 등과 같은 혼잡한 지역의 정리에 집중했는데, 쓰레기를 치우고 물청소를 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도는 물론이고 차도까지, 거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던 노점상까지 싹 정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그의 이 활동은 확실히 뚜렷한 결과를 달성했다. 마닐라의 고질적인 혼란 지역이 정말 확연히 깨끗해졌으니, 투투반 센터 몰 앞의 거리가 이렇게까지 넓은 곳이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환경 정화 작업이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는 없었다. 거리를 치우는 과정에서 노점상 상인들의 생계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스코 모네노가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거나, 5밀리언 페소나 되는 뇌물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이스코 모레노는 이 모든 것이 직업적인 위험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마닐라의 거리를 마닐라 시민들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다" 고 인터뷰했다. 그리고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뒤 마닐라의 주민인 사람들만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신문 기사에 따르면, 새로운 시장이 환경정화 작업만큼이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마닐라를 그린시티(GREEN CITY)로 만드는 일 이라고 한다. 이스코 모레노의 그린시티 계획안에 따르면, 장차 마닐라 시민센터(Manila civic center)를 건설하고, 공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보행자를 위한 길을 만들며,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임기 초기의 의욕으로 그냥 해보는 소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Freedom park, Bonifacio Shrine park, Arroceros Entrance Plaza라는 공원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좀 색다른 마닐라의 시장에 대해 마닐라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도 있고, 그가 한 행동이 서민의 삶을 더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도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임기를 보내던 기존 시장과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다. 2019년 7월 18일 현재 1,288,613명이 마닐라 시장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고 있다. 신문에서 마닐라 비논도의 투투반 센터 몰(Tutuban Center Mall) 앞이 깨끗해졌다고 하기에 정말인지 궁금하여 차이나타운에 다녀왔다. 마닐라 디비소리아에서 비논도 차이나타운을 거쳐 투투반 센터 몰까지 거리가 상당히 깨끗해졌다. 오토바이 하나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혼잡했던 골목 안으로 승용차가 드나들 정도이다. 장사할 공간을 뺏긴 상인들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거리가 깨끗해지고 치안이 좀 더 좋아지면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스코 모레노가 장차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이런저런 활동을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목표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번 기회에 마닐라가 좀 더 발전한다면 좋겠다는 의견이 더 강한 듯하다. 차이나타운과 디비소리아가 깨끗해졌다고 하여서 보니파시오나 마카티처럼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래 어떤 모습인지 기억하고 있다면,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보니파시오와 카티푸난 혁명 기념물 마닐라 톤도(Tondo). 마닐라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인트라무로스 위쪽으로 항구에서부터 차이니스 묘지 근처까지 지역이 모두 톤도 지역이다. 투투반 센터 몰은 톤도 지역이지만, 차이나타운과 디비소리아는 비논도 지역에 속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Isko Moreno Domagoso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법 | 필리핀 이트래블

    필리핀 세관신고서 용도로 사용되는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 QR코드 등록법 최신 안내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법 Customs Declaration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최종 업데이트: 2025.02.04 필리핀 전자입국신고 제도 필리핀 정부에서 원스톱 전자 여행 신고 시스템(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을 입국 시스템에 도입함에 따라 2024년 현재 필리핀에서는 종이로 된 입국서류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이트래블 큐알코드가 필리핀 입국신고서 용도로 사용됩니다. - 이트래블의 전자 세관신고서(Philippine Custom's Declaration ) 페이지가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Customs Baggage Declaration Form)와 외환신고서(Currencies Declaration Form) 용도로 사용됩니다. Q. 세관 신고 사항이 없는데, 이트래블을 등록해야 하나요? 네. 필요합니다. 이트래블 큐알코드가 입국신고서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필리핀 입국 전 반드시 이트래블(eTravel)을 등록해야 합니다. -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을 통해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없음을 보고 - 세관에 신고할 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를 통해 세관신고서(CBDF) 작성 Q. 공항 도착 후 종이로 된 세관신고서를 써도 됩니까? 필리핀 정부의 입국 시스템이 페이퍼리스 시스템(Paperless system)으로 전환됨에 따라 현재 필리핀에서는 종이로 된 세관신고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Q. 필리핀 면세 한도를 알려주세요. 필리핀 입국 시 면세 한도는 1만 페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필리핀 세관: 필리핀 입국 시 면세 한도는 1만 페소. 담배 2보루는 별도 면세 가능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1/9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Important Information: 세관신고사항 없음(NO)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Declaration Signature: 전자서명 ⑦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⑧ 등록된 내용 확인 ⑨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이트래블 등록 방법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1/10 이트래블 등록 방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자세히 보기 필리핀 입국신고서 작성 ① Travel Registration: 등록 대상자와 입국/출국 유형 선택 ② Travel Details: 필리핀 여행 목적 및 이용 항공사, 필리핀 내 체류 주소 등에 대한 정보 입력 ③ Health Declaration: 건강상태확인서 작성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④ 세관 규정에 대한 안내문: 세관신고사항 있음(Yes)에 체크 ⑤ Other Travel Details: 동반가족수, 수하물 개수, 필리핀 방문 경험 입력 ⑥ For Customs - General Declaration: 전자 세관신고서 작성 - 반입규제·반입제한·반입금지 물품 소지 여부 체크 ⑦ Declaration Attachments and Signature: 전자서명 & 세관신고 관련 서류 첨부 ⑧ Family Member(s): 동반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선택 ⑨ 등록된 내용 확인 ⑩ 이트래블 QR코드 발급 완료 필리핀 입국 시 세관 신고 대상 - 신고할 물품이 있는 경우 - 면세 한도를 초과한 물품을 소지한 경우 - 반입규제·반입제한·반입금지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필리핀 입국 시 반입이 규제·제한·금지되는 물품 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 위의 안내는 내용은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입국할 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 항목은 사전 예고 없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핀 관광부(DOT)나 필리핀 이민국(BI), 필리핀 BOC(Bureau of Customs)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트래블 작성방법 | 동반가족 계정 생성

    함께 여행하는 가족을 위해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 계정 등록하기 | 필리핀 이트래블(eTravel)을 등록법 최신 안내 필리핀 이트래블 작성법: 가족 계정 만들기 Add Family Member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최종 업데이트: 2025.02.04 - 이트래블 계정 등록을 위해서는 이메일 인증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가족 중 대표자 1인이 이트래블 계정을 만들면 다른 가족구성원은 이메일 인증을 받지 않고 계정 등록이 가능합니다. - 이메일 인증(OTP 보안코드 6자리 숫자 입력)이 생략되는 것 외에는 본인의 계정을 등록할 때와 등록 사항이 같습니다. - 이메일 인증 과정이 생략되는 대신에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를 입력해야 합니다. - 이트래블 사이트 대시보드 화면 바로 가기: https://etravel.gov.ph/en/dashboard 이트래블 가족 계정 만들기 ① 이트래블 웹사이트의 대시보드에 접속 ② 개인정보 입력 ③ 거주지 주소 입력 ④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⑤ 등록된 내용 확인 ① 이트래블 웹사이트의 대시보드에 접속 · 이트래블 사이트에 로그인한 상태에서 대시보드에서 Add Family Member라고 적힌 버튼 클릭 후 가족을 위한 계정 등록 ② 개인정보 입력 Family Member - Personal Information · 이름, 성별, 생년월일, 국적, 여권번호, 여권발급일 등 개인정보 입력 Take a photo or upload a file. 사진 등록: 아무 사진이나 등록 가능(여권과 동일할 필요 없음) 내국인/외국인 선택 □ PHILIPPINE PASSPORT HOLDER : 필리핀 여권 소지자 □ FOREIGN PASSPORT HOLDER : 외국인(한국인) First Name : 이름 Middle Name (optional) : 입력 불필요 Last Name (optional) : 성 Suffix (optional) : 입력 불필요 Sex : 성별 □ MALE 남자 □ FEMALE 여자 Birth Date : 생년월일- 월/일/년 Mobile Number : 핸드폰 번호 입력 □ 전화번호 국가번호: 한국 +82 / 필리핀 +63 Citizenship : 국적 □ 한국인: South Korean Country of Birth : 출생국가 □ 대한민국: South Korea Passport Number : 여권번호 Passport Issued Country: 여권 발급국가 □ 대한민국: South Korea Passport Issued Date: 여권발급일 Occupation : 직업 □ Agriculture: 농업 □ Airline Crew: 승무원 □ Clerical/Sales: 사무직, 영업직 □ Diplomat: 외교관 □ Domestic Helper: 가사도우미 □ Entertainer: 연예인 □ Housewife: 주부 □ Military/Government Personnel: 군인, 공무원 □ Professional/Technical/Administrative: 전문직, 기술직, 관리직 □ Retired/Pensioner: 퇴직자, 연금수령자 □ Seaman: 선원 □ Student/Minor: 학생, 미성년자 □ Unemployed: 실업자, 휴직자 □ Worker/Laborer: 직장인, 근로자 ③ 거주지 주소 입력 Family Member - Permanent Country of Residence 계정 소유자 본인과 주소지가 같은 경우 Copy account owner address 부분 클릭 Country : 거주지 국가 입력 □ 한국: South Korea No./Bldg./City/State/Province : 영문 주소 입력 · 네이버에서 영문주소 검색하기 ④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Relationship to account owner 계정 소유자 본인과의 관계 입력 □ MOTHER: 어머니 □ FATHER: 아버지 □ DAUGHTER: 딸 □ SON: 아들 □ SISTER: 언니, 누나, 여동생 □ BROTHER: 형, 오빠, 남동생 □ HUSBAND: 남편 □ WIFE: 아내 * 이트래블에 입력한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제출 불필요. 단, 15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필리핀 이민국의 미성년자 입국 규정에 따라 실제 가족관계가 있는지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음. ⑤ 등록된 내용 확인 Family Member Summary · 등록된 내용 확인: 입력한 내용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최종 확인 · 이트래블 대시보드 에서 등록 여부 확인 가능 Philippine One-Stop Electronic Travel Declaration System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 등록을 할 경우 Travel Registration에서 FOR OTHER(Family Member) 선택 후 입력 진행 Travel Registration · 등록 대상자와 필리핀 입국 유형 선택 · 계정 소유자 본인 및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 등록 가능 등록 대상자 선택 □ FOR ME(Current User): 본인을 위해 이트래블을 등록할 경우 ☑ FOR OTHER(Family Member): 가족을 위해 이트래블을 등록할 경우 항공/선박 선택 ☑ AIR: 항공편 이용 시 ☐ SEA: 선박 이용 시 입국/출국 선택 ☑ ARRIVAL: 필리핀 입국 시 ☐ DEPARTURE: 필리핀 출국 시 · 외국인(한국인)은 필리핀 출국(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트래블 등록 불필요 Special Flight: 특별기나 전세기 항공편 이용 시 선택 필리핀 이트래블 eTravel · 이트래블 등록 관련 종합 안내 www.philinlove.net/etravel · 필리핀 이트래블 계정 만들기 www.philinlove.net/etravel-signin · 동반가족 이트래블 계정 생성 www.philinlove.net/etravel-family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없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no · 이트래블 등록법: 세관신고사항이 있는 경우 www.philinlove.net/etravel-customs-yes · 이트래블 작성법 관련 FAQ www.philinlove.net/etravel-faq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 위의 안내는 내용은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입국할 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필리핀 이트래블 등록 항목은 사전 예고 없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핀 관광부(DOT)나 필리핀 이민국(BI), 필리핀 BOC(Bureau of Customs)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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