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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역사 유적지: 1931년, 필리핀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1931년, 필리핀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1월 1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 제1차 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후, 사람들은 직선적이거나 기하학적 형태를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로 인식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기초적인 도형의 형태를 이용한 기능미가 유행했고,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처럼 직선적이며 화려하지만 모던한 형태의 건물이 지어졌다. 연속적인 곡선을 사랑한 아르 누보 대신 나타난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의 장식 미술을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아르데코(art deco) 건축물이라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이 오는 2021년 4월 27일에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이다. 지난 1996년에 문을 닫았었으니 무려 25년 만의 재개관 이다.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NCCA)에 따르면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이브닝 쇼 및 공연도 진행될 예정인데, 막탄전투에서의 라푸라푸(Lapu-Lapu)의 승리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라고 한다. 1932년 찍은 마닐라의 풍경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Manila Metropolitan Theater 마닐라 시청에서 퀴아포 성당 가는 길에 퀘존 브릿지를 건너기 전에 우측으로 낡고 커다란 건물 하나를 볼 수 있다. 대체 누구 소유의 건물이길래 이 노른자위 땅을 활용하지 않고 방치할까 싶지만, 알고 보면 국유지로 메트로폴리탄 극장이란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닐라시청과 우체국 사이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현대식 콘도나 쇼핑몰을 지으면 인기를 끌 것 같지만 마구잡이로 철거하여 쇼핑몰 따위를 짓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은 미국 식민지 시절에 마닐라 중앙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의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후안 M. 아렐라노(Juan M. Arellano)가 설계한 건물 로 건축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어졌다. 1931년 12월 10일 개관 당시만 해도 오페라며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였던 최고의 극장이었다. 필리핀 최초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미키마우스 만화를 상영했던 극장 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전쟁 중에 지붕이며 벽 등이 파괴되어 보수가 시급했지만, 사람이 살아갈 집도 마련하기 어려운 때에 극장을 보수하는 일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 후 혼돈의 시기, 복싱경기장과 싸구려 모텔, 게이바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78년에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가 극장 복원공사를 하면서 잠시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는 듯 보였지만, 마닐라시티와 GSIS(Government Service Insurance System) 사이에서 극장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면서 1996년에 폐관하게 된다. 건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GSIS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극장을 다시 보수하여 사용하는 일은 요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2015년에 예산관리부에서 GSIS에게 극장 소유권을 사게 되면서 극장의 복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NCCA)와 필리핀 국립 박물관, 필리핀 국립 역사위원회(NHCP) 등이 함께 재건 사업을 시작했지만, 극장을 예전처럼 꾸미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일꾼이 나와 문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몇 년째 "수리 중"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문화 유적지 되살리기의 바람을 타고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복원 문제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극장 복원팀에 따르면,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복원은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1단계는 메인 극장의 복원이며, 2단계는 극장 양쪽 날개 부분, 그리고 3단계는 날개 부분의 내부 공사이다. NHCP에 따르면 메인 극장의 복원은 이미 90%가 완료된 상태이며, 곧 2단계 복원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복원된 극장에서는 아르데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식품과 함께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몬티의 작품 및 필리핀 시골 풍경을 그렸던 화가 페르난도 아모르솔로(Fernando Amorsolo)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명과 음향 시스템도 개선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바뀌었을지 기대가 크다. 퀴아포 성당을 갈 때마다 "대체 이 공사는 언제 끝날까?"를 궁금해하면서 가설 울타리를 보았던 터라 내부를 꼭 보고 싶은데, 공연 관람비가 얼마일지 궁금할 뿐이다.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중앙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기념 동상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Manila Metropolitan Theater)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n aerial view of the post office, 1932 · Manila Metropolitan Theater 내부 사진 출처 : 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 필리핀 국립역사위원회(NHCP) - 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the Philippines https://www.facebook.com/nhcp1933 · 필리핀 문화예술위원회(NCCA) - 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https://www.facebook.com/NCCAOfficial/posts/10158315582120283 · 25 years after shutdown, the Metropolitan Theater is reopening—here’s what we can expect https://news.abs-cbn.com/ancx/culture/spotlight/01/12/21/25-years-after-shutdown-the-metropolitan-theater-is-reopeningheres-what-we-can-expec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민다나오 금광개발과 부투안에서 발견된 발랑아이(바랑가이 범선)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민다나오 금광개발과 부투안에서 발견된 발랑아이(바랑가이 범선)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1년 6월 20일 The Balangay No 2 under Excavation (이미지 출처 : National Museum). 한때 필리핀을 놓고 유행하던 사기 수법 중 하나는 민다나오 금광개발에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필리핀 정부의 개발허가증 등을 내밀고 금광투자를 빌미로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착수금을 받아서 돈을 가로채는 것이다. 고대 보물이 가득한 침몰선을 인양하자며 사업자금을 받아다가 잠적하는 일도 많았다. 지금 보면 대체 누가 속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한 다단계식 사기수법이지만, 멋진 사업설명회와 그럴듯한 도장이 잔뜩 찍힌 허가증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 사실 이런 사기가 가능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민다나오에 진짜 금광이나 침몰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당시 민다나오 카라가 지방의 부투안(Butaun) 지역 마사오강(Masao River) 에는 금을 찾던 사람들에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6년의 어느 날, 이들에 의해 목재로 만든 발랑아이(Balangay. 말레이어로 범선을 의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황금빛 엘도라도를 찾던 이들에게 낡은 전통 목선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었으니, 다행히 이 발견은 필리핀 정부 쪽으로 보고될 수 있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 배에 대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실험을 했는데, 10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배 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필리핀, 특히 부투안 지역이 오래전 동남아시아 상업의 주요 중심지였다는 이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이 보트가 나무라는 것이다. 사용된 목재의 수종이 매우 단단하다고는 하지만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도 나무가 완전히 썩지 않았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제로 된 못 대신 나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의 형태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다. 필리핀 학자들은 배가 의도적으로 묻혔을 수도 있지만, 지진이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로 인해 갑자기 묻혔기에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이론일 뿐, 정답은 10세기 부투안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부투안의 배에 대한 흥미로운 상식 - 부투안의 발랑아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된 목조 선박이 되었다. 총 9척이 발견되었다. - 1987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이 배를 국가지정문화재(National Cultural Treasures)로 지정하고, 발굴 장소 주변을 고고학적 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 필리핀의 최소 행정단위인 바랑가이(Barangay) 는 발랑아이(Balangay)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바랑가이 배를 부투안의 배(Butuan Boat)라고 부르기도 한다. - 부투안에서는 매년 5월이면 부투안의 배(Butuan Boat)를 주제로 한 축제(Balanghai Festival)를 열기도 한다. 초기 정착민이 바랑가이 배를 타고 필리핀에 도착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축제의 핵심이다. - 부투안의 배는 길이 15미터의 배가 대부분이지만, 길이 25미터나 되는 커다란 배도 한 척 발견되었다. - 부투안 보트의 발굴이나 유물 관리, 연구 등은 부투안 박물관(Butuan National Museum)에서 담당하고 있다. -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국립박물관에는 발랑아이 보트 한 척이 보관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 레니 로브레도 필리핀 부통령의 트위터 캡처 "Parao Mercante" - illustration of a biroco merchant ship from the Philippines (1890)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GMA News : Massive balangay 'mother boat' unearthed in Butuan · A National Cultural Treasure Revisited – Re-assessing the ‘Balangay’ Boat Discoveries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 Butuan Boat · Vice President Leni : https://twitter.com/VPPilipinas/status/862642694958456834/photo/1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필리핀 여행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여행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7월 4일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그려진 것은 머리에 갓을 쓴 조선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기도하는 듯 두 손은 가지런하게 모여 있다. 필리핀에 있는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에 조선 사람이 그려진 것이 신기하여 넋을 잃고 보다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만 떠나려는데 성당 앞마당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뭔가 이야기를 해오셨다. 타갈로그어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눈치가 아무도 없는데 왜 빈 성당 안에 들어가 있느냐는 것인가 싶다. 성당을 구경 온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반가워해 주시면서 안드류 킴(Andrew Kim)을 보러 왔느냐고 물으신다. 필리핀 사람들이 알파벳 에이(A)를 '아'로 발음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주머니의 안드류 발음은 유독 또렷했다.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나를 반가워해 주셨지만, 이내 딱하다는 얼굴을 해왔다. 이곳 성당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고 근처에 있는 수원교구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에 가면 볼거리가 아주 많은데 오늘은 구경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리가 멀지 않으니 그냥 걸어가거나 10페소를 내고 트라이시클을 타면 되지만, 가봐도 지금은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렇지 않아도 본당 앞까지 갔다가 꽉 잠긴 대문만 보고 온 터라 어찌 된 일인지 여쭈었더니 간밤에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주변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겨서 그렇단다.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신부님도 오늘 아침 미사만 보고 댁으로 들어갔다면서 물이 빠질 때까지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동네가 저지대인 데다가 배수 시설이 좋지 못하니 비만 내리면 집이 침수되는 모양이었다. 허벅지까지 동네가 물에 잠기면 동네 사람들이 성당을 대피소로 쓰기도 한다는데, 이번에는 성당까지 침수되었다니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튼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안드류 김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어오셔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재밌는 일화가 많은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설명이 어렵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책을 찾아 읽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동네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나는 김대건 신부님이 대체 어떤 일화를 가졌는지 공부를 한 뒤, 비가 오지 않을 때 성당에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 아래는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가톨릭 사전과 평화 신문 등에 올라온 내용을 주로 참고했지만, 기록이 조금씩 달라서 내용 중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필리핀 불라칸 롤롬보이 김대건 성인 성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선 후기에 실학자 이중환이 만든 지리서를 보면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설명을 곁들인 동네가 있다. 요즘으로 보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일대인데,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예전에는 '솔뫼'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솔뫼에서 1821년에 태어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조선 최초의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이시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왔는데, 증조부(김진후)가 1814년 순교한 뒤로 종조부(김한현)와 부친(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모두 순교하였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이었다. 증조부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한 뒤 솔뫼를 떠나 경기도 용인시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를 하지만, 솔뫼는 천주교회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며,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평가된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야 할 길은 확실했다. 김대건 신부는 용인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은 뒤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 후 조선으로 돌아와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1년 정도 사목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학식이 워낙 출중하여 영국에서 만든 라틴어 세계지도를 우리말로 옮겨다가 세계 지리책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영의정 권돈인이 김대건이 신학 공부와 사목을 핑계로 외국인과 접촉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선에서 금지하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목을 벤 뒤 군문(軍門)에 메다는 군문효수형이었다.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이 집행되었고, 김대건 신부님은 순교했다.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Saint Andrew Kim Tae-gon 그런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가 어떻게 필리핀, 그것도 마닐라가 아닌 불라칸에 있는 것일까? 김대건 신부님이 마닐라에 온 것은 1839년도의 일이었다. 1837년, 열일곱의 나이로 신학 공부를 위해 용인에서 마카오까지 9,000리(약 3,500㎞)의 길을 걸어갔지만, 아편 수입과 판매 금지 문제로 인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으니 편안히 자리에 앉아 신학을 공부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포르투갈 식민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정치 불안이 심해졌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때,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본부에서 칼르리 신부와 데플레슈 신부를 비롯해 신학생 몇 명을 필리핀으로 피신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839년 4월 6일 마카오에서 출발한 스페인 배를 이용했는데, 필리핀 마닐라까지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닐라의 대주교가 사목 방문을 위해 출타 중이었으니, 낯선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그들을 받아 주었고, 1839년 5월 3일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의 보카우에 롤롬보이(Lolomboy)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의 농장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불라칸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마카오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들과 수사들은 매우 친절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뒤 대만가는 길에 다시 들려 열흘 정도 머물다 갔었다니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평화롭지 않았을까 짐작이 해보기도 한다. 김대건 신부님 성인 품위에 오른 것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이다. 그리고 2년 뒤, 1986년 5월 22일 김대건 신부님이 머물던 불라칸의 성당이 김대건 성인 성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 오기선 신부의 지도하에 마닐라 한인 천주교회 신자들과 한국의 신자들이 뜻을 모아 김대건 성인상 동상을 세우고 성지로 선포한 것이다. 당시 동상 축복식엔 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등이 참석했다고 하며, 이후 롤롬보이 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게 됐다. 그러다가 성당 규모가 커진 것은 2002년 즈음 한국 교회에서 부지 매입을 하면서이다. 원래 이곳 성당 부지는 멘도사(Mendosa) 집안의 땅이었는데, 2000년도에 멘도사 집안에서 땅을 팔려고 내놓은 것을 한국 교회에서 매입하여 필리핀 정부와 현지 교구청 인가를 받아 성당을 세우고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는 성지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수원교구 소속 성 안드레아 수녀회에서 성지를 관리하면서 예수성심상, 김대건 성인 유골이 모셔진 봉헌소, 성모당, 7궁방(7층탑)을 차례로 건립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으로 성지순례 온 신자들을 위해 순례 투어 프로그램 및 피정의 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망향의 망고나무 불라칸 롤롬보이(Lolomboy)에 방치되어 있던 터를 다듬어 성지로 만들고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생긴 신기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부터 자정만 되면 개들이 시끄럽게 짖기 시작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개 짖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밤 벌어지는 이 소동에 동네 사람들이 이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동네 유지였던 멘도사 가문의 식모가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문 바깥으로 확인하러 나갔다가 목 없는 유령을 보고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식모는 재빨리 그 집을 도망쳐 나왔고, 온 동네에 목 없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밤이면 목 없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네는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도착한 날부터 개 짖는 소리가 사라졌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김대건 신부가 목이 잘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인의 영혼이 나타났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본당의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에 있는 커다란 망고나무에 대한 일화도 있다. '망향의 망고나무'라는 이름의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좀 더 슬프다. 어린 아들을 멀리 타국으로 보내놓고 걱정하지 않을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고향에서 아버지가 인편으로 보낸 편지가 중국을 거쳐 필리핀까지 온 것은 무려 사 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 반가운 편지를 받고 망고나무 옆에 서서 집안 모두 무사하다는 글을 읽은 김대건 신부는 반가움과 그리움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아버지가 천주교 박해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때였다고 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간 편지는 아버지가 이역만리 떨어진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성당에 가기 전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필리핀에서 가본 맥도날드 중 가장 손님이 없는 맥도날드였다. 가만히 보니 맥도날드 바로 앞에 졸리비와 망이나살이 보였다. 맥도날드에 손님이 뜸할 수 밖에 없다. 성당 입구 주차비가 적혀 있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이곳 성당 주차장 또는 맥도날드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한다. (본당에는 주차 공간이 없음)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나이에 필리핀에 왔을 터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 뭔가 어색하지만, 필리핀 사람들 생각에는 김대건 신부님이 이렇게 생겼나 보다. 간단한 안내문이 있지만, 타갈로그어로 적혀 있다. 듣기로는 본당 쪽에 가면 한글로도 적혀 있다고 한다.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The Parish of Sto. Cristo and St. Andrew Kim Tae-gon New Church) 성당 내부 성당 왼쪽으로는 배 모형도 있다. Diocesan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 주소 : Project Pangarap, Lolomboy, Bocaue, 3018 Bulacan Province, Philippines ■ 위치 : 필리핀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 보카우에 롤롬보이 ■ 비고 - 차를 가지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으로 가려면 구글이나 웨이즈에서 'McDonald's Lolomboy'로 검색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 주차는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있는 새로 지은 성당 쪽에 해야 한다. 롤롬보이 본당 쪽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본당 정문 앞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라서 차를 돌리기도 어려우니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 롤롬보이 본당으로 간다면 구글맵에서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로 검색하고 걸어가면 된다. [주의]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는 롤롬보이 본당(기존 성당)과 성 십자가와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새로 지은 성당) 두 곳으로 장소가 나뉜다. ① 수원교구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Bulacan’s Korean Temple(Shrine of Saint Andrew Kim) www.philinlove.net 필리핀 성지순례: 불라칸의 성 김대건 신부 성지 - 성안드레아 수녀회 롤롬보이 본당 필리핀 여행 | 필인러브 ②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Nuestro Señor Jesucristo Parish - Diocesan 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 불라칸 김대건 성인 성지 - 성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필리핀 현지 사정에 의해 수시로 내용이 변동될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2024년 필리핀 공휴일 목록 - 정규휴일과 특별휴일
필리핀 공휴일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공휴일 2024년 필리핀 공휴일 목록 - 정규휴일과 특별휴일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8일 마닐라 리잘파크의 호세 리잘 기념탑(Jose Rizal Monument) 지난 2023년 10월 13일, 말라카냥궁에서는 내년 2024년도의 공휴일 목록을 발표했다. 그런데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이 서명한 휴일 관련 선언문(Proclamation 368)을 보면 EDSA 혁명 기념일(EDSA People Power Revolution anniversary)이 보이지 않는다. EDSA 혁명 기념일은 지난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몰아냈던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현 필리핀 대통령인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버지가 바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다. 2024년 2월 25일은 일요일 물론 늘 EDSA 혁명 기념일이 공휴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1987년에 처음으로 EDSA 혁명 기념일을 공휴일로 삼은 이후 올해까지 8번을 제외하고는 2월 25일은 늘 공휴일로 지정되어 왔었다. 그러니 왜 올해에는 공휴일 목록에 EDSA 혁명 기념일이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이 의문에 말라카냥궁은 답변을 했는데, 그 답변이라는 것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 2024년 2월 25일이 공휴일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일요일이라서 대부분 근로자가 쉬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적어서 특별히 공휴일에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변명인데, 크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동정 마리아 대축일 인 12월 8일 역시 일요일이지만, 2024년 공휴일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EDSA 혁명 기념일은 2월 25일 토요일이 아닌 2월 24일 금요일로 지정되었었다. 당시 말라카냥궁은 휴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휴일 날짜를 바꿨다고 설명한 바 있다. 2024년 필리핀 공휴일 목록 2024년 필리핀 공휴일 목록 2024년 필리핀의 공휴일은 아래와 같다. 올해와 다르게 설날(2월 10일)과 크리스마스이브(12월 24일)가 특별휴일이 되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공휴일이 정규휴일(Regular holiday)인지 아니면 특별휴일(Special Non-Working Day)인지 따지는 것은 휴일의 형태에 따라 근무 시 급여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규휴일은 유급휴일이라서 근무하지 않아도 100% 급여를 받게 되지만, 특별휴일은 무노동 무보수(no work, no pay) 원칙이 적용되어서 쉬는 경우 급여를 받을 수 없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노동법: 공휴일을 정규휴일과 특별휴일(근무휴일과 비근무휴일)로 구분하는 이유 1. 정규휴일(Regular Holiday) 날짜 요일 정규휴일(Regular Holiday) 2024년 1월 1일 월요일 새해 첫 날(New Year’s Day) 2024년 3월 28일 목요일 부활절 성목요일(Maundy Thursday)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부활절 성금요일(Good Friday) 2024년 4월 9일 화요일 용사의 날(Araw ng Kagitingan) 2024년 5월 1일 수요일 근로자의 날(Labor Day)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2024년 8월 26일 월요일 영웅의 날(National Heroes Day) 2024년 11월 30일 토요일 보니파시오 데이(Bonifacio Day) 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크리스마스(Christmas Day) 2024년 12월 30일 월요일 리잘 데이(Rizal Day) 필리핀 리잘주의 레지나 리카(REGINA RICA) 성지 2. 특별휴일 2-1. 비근무휴일: Special Non-Working Day 날짜 요일 Special non-working holidays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니노이 아키노 데이(Ninoy Aquino Day)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만성절(All Saints’ Day) 2024년 12월 8일 일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Feas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연말(Last day of the year) 2-2. 추가 비근무휴일: Additional Special Non-Working Day 날짜 요일 Additional Special Non-Working Day 2024년 2월 10일 토요일 설날(Lunar New Year’s Day)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부활절 성토요일(Black Saturday) 2024년 11월 2일 토요일 위령의 날(All Souls’ Day)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크리스마스 이브(Christmas Eve) 필리핀의 이슬람 공휴일 이슬람 공휴일은 이슬람력에 따르기 때문에 매해 날짜가 달라진다. 필리핀에서는 이슬람 공휴일인 이드 알피트르(Eid-al-Fitr)와 이드 알아드하(Eid Al Adha)를 공휴일로 삼고 있지만,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은 터라 추후 별도의 선언문을 통해 날짜를 발표한다. 이드 알피트르(Eid-al-Fitr) : 이슬람력 10월, 라마단이 끝나는 날.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이슬람력 8번째 달이 되면 필리피노 무슬림 국가위원회(NCMF)와 민다나오 방사모로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BARMM)에서 전문가단을 구성하고 달을 관측하기 시작하였다가 무슬림 최고 지도자가 음력 초하루에 뜨는 초승달의 모양을 직접 보고 라마단 시작 날짜를 알리고 있다. 2024년 라마단 기간은 2024년 3월 9일 토요일에 시작하여 2024년 4월 8일 요일에 끝나리라 예상된다. 이드 알아드하(Eid Al Adha): 이슬람력 제12월 10일에 지내는 이슬람의 축제. 이드 알 아드하(이슬람 희생제)는 일생에 한 번 이상 메카 순례를 떠나는 것이 의무인 무슬림들이 메카(Mecca) 성지순례가 끝나고 여는 축제이다. 마닐라 포트 산티아고(Fort Santiago) In memory of the Victims at Fort Santiago Historical Marker Benigno S. Aquino Jr. Historical Marker & Monument 호세 리잘(Jose Rizal) 마닐라 리잘파크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Proclamation 368 · Philippine News Agency: Palace bares list of holidays for 2024 · Rappler: Time for a law for EDSA anniversary holiday · The Philippine Star: EDSA revolt anniversary not a 2024 holiday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1공화국의 존속 시기(1899년 1월 21일~1901년 3월 23일)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1공화국의 존속 시기(1899년 1월 21일~1901년 3월 23일)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3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제1공화국 - 필리핀 제1공화국 박물관(Museo ng Republika ng 1899) 전시물 필리핀 제1공화국 First Philippine Republic 필리핀 제1공화국은 1899년 1월 21일 말로로스 헌법에 의해 설립되어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지만, 1901년 3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에게 체포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런데 필리핀 제1공화국이 출범한 시기는 필리핀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시기이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는 필리핀 제1공화국에 대해 '1899년 1월 21일부터 1901년 3월 23일까지 존재했던 정권'으로 보고 있다. 말롤로스 헌법을 선언한 것과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음에 의미를 둔 것이다. 필리핀 제1공화국(말로로스 공화국)의 설립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말로로스 헌법을 공포한 날을 시작으로 보기도 하고, 아기날도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해체 날짜 역시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필리핀-미국 전쟁 중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군에게 잡힌 필리핀 제1공화국의 해체 날짜로 보기도 하지만, 미국에 충성선서를 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 1899년 1월 21일: 혁명정부, 바라소아인 성당에서 말로로스 헌법 공포 · 1899년 1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필리핀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 1901년 3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미군에게 체포 · 1901년 4월 1일: 에밀리오 아기날도, 미국에 충성선서 🜹 필인러브의 역사 관련 자료에서 필리핀 제1공화국의 존속 날짜에 대해 1899년 1월 21일부터 1901년 3월 23일까지 존재했다고 표기한 것은 지난 2024년 1월 필리핀 상원에서 필리핀 제1공화국 건국 125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배포한 자료를 근거로 한다. 당시 상원에서는 말로로스 공화국(Malolos Republic)에 대해 "1899년 1월 21일 불라칸에서 말로로스 헌법이 선포되면서 수립되었으며, 1901년 3월 23일 필리핀-미국 전쟁 중 미국군이 아기날도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해체되었다"라고 아래와 같은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The first Philippine Republic is also famously known as the Malolos Republic. This government was established with the proclamation of the Malolos Constitution on 21 January 1899 in Malolos, Bulacan, replacing the revolutionary government formed by President Emilio Aguinaldo. It was dissolved by the capture of President Aguinaldo by the American forces during the Philippine-American War on 23 March 1901 in Palanan, Isabela. 참고로 말라카냥궁 투어 중 테우스 맨션(Teus Mansion)의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에 가면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대통령 재임 기간을 1899년 1월 23일부터 1901년 3월 23일까지라고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말라카냥궁의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Senate of the Philippines : Senator Mark Villar Joins 125th Anniversary Celebration of First Philippine Republic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한국 내 필리핀인 유학생 현황: 필리핀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은?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한국 내 필리핀인 유학생 현황: 필리핀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은?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1월 24일 UNIVERSITY OF SAN AGUSTIN 필리핀인 유학생은 주로 어느 대학을 다닐까? 필리핀인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학교는 서울 관악구에 있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29명)와 영남신학대학교(16명)이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은 9명이다. 𖠿 관련 글 보기: 2021년 한국에서 공부 중인 유학 생활 중인 필리핀인의 수는 519명 -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2021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 현황 학교명 시도 총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서울 29 영남신학대학교 경북 16 공주대학교대학원 충남 15 금오공과대학교대학원 경북 15 한국과학기술원 일반대학원 대전 14 삼육대학교 대학원 서울 12 한국과학기술원 대전 12 경남대학교 경남 11 경북대학교 대구 10 서울대학교 서울 9 연세대학교 서울 9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울 7 동아대학교 대학원 부산 7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대전 7 세종대학교일반대학원 서울 6 연세대학교 대학원 서울 6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 6 경북대학교 일반대학원 대구 5 순천대학교일반대학원 전남 5 대구대학교 경북 5 동서대학교 부산 5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서울 5 영남대학교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경북 5 중앙대학교 대학원 서울 5 한동대학교 경북 5 광주과학기술원 일반대학원 광주 5 강원대학교 강원 4 경상국립대학교 대학원 경남 4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서울 4 충남대학교 대전 4 충북대학교 대학원 충북 4 계명대학교 대구 4 고려대학교 서울 4 광운대학교대학원 서울 4 케이씨대학교일반대학원 서울 4 명지대학교 대학원 경기 4 서강대학교 서울 4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강원 4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서울 4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4 울산과학기술원 울산 4 한국개발연구원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 세종 4 군산대학교대학원 전북 3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서울 3 안동대학교대학원 경북 3 충남대학교대학원 대전 3 한경대학교 일반대학원 경기 3 서울시립대학교 국제도시과학대학원 서울 3 건양대학교 충남 3 배재대학교 대전 3 부산외국어대학교 부산 3 서경대학교 서울 3 선문대학교 충남 3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울 3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경기 3 아주대학교국제대학원 경기 3 연세대학교 정경·창업대학원 강원 3 인하대학교대학원 인천 3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경기 3 포항공과대학교 대학원 경북 3 한양대학교대학원 서울 3 금강대학교 충남 3 남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충남 3 신한대학교 경기 3 제주한라대학교 제주 3 부경대학교 세계수산대학원 부산 2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부산 2 순천대학교 전남 2 전남대학교 광주 2 전남대학교대학원 광주 2 전북대학교 대학원 전북 2 제주대학교 제주 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울 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서울 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 2 경희대학교대학원 서울 2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원 대구 2 고려대학교 대학원 서울 2 서울기독대학교 대학원 서울 2 덕성여자대학교 서울 2 동국대학교 대학원 서울 2 동서대학교일반대학원 부산 2 성균관대학교 서울 2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서울 2 신라대학교 부산 2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경북 2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서울 2 인하대학교 인천 2 중앙대학교 대학원 경기 2 백석대학교 충남 2 한림대학교대학원 강원 2 울산과학기술원 일반대학원 울산 2 전북과학대학교 전북 2 제주관광대학교 제주 2 세종사이버대학교 서울 2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2 한국학대학원 경기 2 부경대학교 부산 1 부경대학교대학원 부산 1 부산대학교 부산 1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부산 1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서울 1 전북대학교 전북 1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남 1 한국체육대학교 서울 1 서울시립대학교대학원 서울 1 가톨릭대학교 서울 1 가톨릭대학교대학원 경기 1 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울 1 건국대학교일반대학원 서울 1 건양대학교 일반대학원 대전 1 경기대학교 서울 1 대구한의대학교 경북 1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경기 1 경일대학교 경북 1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경기 1 고신대학교 대학원 부산 1 고신대학교신학대학원 충남 1 국민대학교 서울 1 나사렛대학교 충남 1 나사렛대학교 일반대학원 충남 1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충남 1 대구대학교대학원 경북 1 대전대학교 대전 1 대진대학교 경기 1 상명대학교 서울 1 상명대학교 대학원 서울 1 상지대학교대학원 강원 1 서강대학교국제대학원 서울 1 성공회대학교대학원 서울 1 성균관대학교 수자원전문대학원 경기 1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서울 1 세명대학교 충북 1 세종대학교 서울 1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울 1 숙명여자대학교 TESOL∙국제학대학원 서울 1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 경기 1 아주대학교대학원 경기 1 안양대학교 경기 1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서울 1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서울 1 영남대학교 경북 1 울산대학교 울산 1 울산대학교 대학원 울산 1 울산대학교 경영대학원 울산 1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1 인제대학교 일반대학원 경남 1 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전북 1 조선대학교대학원 광주 1 중앙대학교 서울 1 중앙대학교 경기 1 중앙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서울 1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울 1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서울 1 한남대학교대학원 대전 1 한남대학교교육대학원 대전 1 한동대학교 일반대학원 경북 1 한동대학교 국제개발협력대학원 경북 1 한양대학교국제학대학원 서울 1 서울한영대학교 신학대학원 서울 1 예원예술대학교 전북 1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경기 1 동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부산 1 우송대학교 글로벌외식조리대학원 대전 1 호원대학교 전북 1 청운대학교 충남 1 계명문화대학교 대구 1 구미대학교 경북 1 동양미래대학교 서울 1 영진전문대학교 대구 1 전주비전대학교 전북 1 영진사이버대학교 대구 1 경희사이버대학교 서울 1 숭실사이버대학교 서울 1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충남 1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경기 1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전 1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경기 1 예명대학원대학교 서울 1 선학유피대학원대학교 경기 1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대학교 경기 1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일반대학원 대구 1 한국폴리텍 Ⅵ 대학 영주캠퍼스 경북 1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2021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 현황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관광부: 2020년 1분기 필리핀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 급감
필리핀 관광부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관광부(DOT) 필리핀 관광부: 2020년 1분기 필리핀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 급감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5월 4일 필리핀 시아르가오(Siargao)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라 1~6단계의 경보 단계를 설정한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6단계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다.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전세계 코로나19 감염자가 12만 명을 넘어서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으니, 더이상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는 않고, 대규모 질병 발생이나 사망도 관찰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하자 전 세계 곳곳에서 여행 제한을 서둘러 발표하기 시작했다. 3월 당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는 올해 여객수송량이 38% 정도 감소하리라 전망했지만 4월이 되면서 감소 수치를 늘려야만 했다. 실제 지난 4월, 인천공항은 출국자 수보다 많은 입국자 수를 기록했다. 5월 현재 한국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점차 안정되고 있지만, 필리핀에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쯤 필리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2019년 필리핀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826만 명에 달한다. 외국인 방문객의 국적을 보면 한국(198만 명)이 1위로 필리핀 방문 관광객의 23.9%를 차지한다. 2위는 중국(174만 명)이지만 여행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한 방문이 상당수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106만 명), 일본 (68만2000명), 대만(32만7000명)에서도 필리핀을 많이 방문했다. 필리핀 통계청(Philippine Statistics Authority)에 따르면 관광업은 필리핀 국내총생산의 12.7%를 차지(2018년 기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 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여행이 제한(Travel ban)되면서 여행업계에 위기가 올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냥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실제 숫자로 듣는 것은 다르다. 지난달 필리핀 관광부(DOT-Department of Tourism)에서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필리핀을 방문한 관광객 수가 88만여 명이나 줄어들었다고 발표를 해야 했다. 2019년 1분기 관광객이 220만 명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무려 40.2% 줄어든 숫자였다. 관광객 수 급감으로 관광 수입이 40.62%나 줄어들었지만, 외국인 입국 자체가 불가능해진 터라 사태 해결은 요원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백신이 개발되기만 기다릴 수 없었으니, 필리핀 관광부(DOT)에서는 관광산업 회복을 위해 '관광 대응 및 회복 계획(TRRP:Tourism Response and Recovery Plan)' 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TRRP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관광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저금리 장기 대출, 신규 사업자에 부과하던 인가료와 기존 사업자의 갱신 수수료 지불 유예 조치, 무이자 대출 연장, 고용 유지 보조금 지급, 해고된 노동자에 대한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숙박시설 및 관광용 차량의 정기적인 위생 점검과 방역, 관광업 종사자에 대한 위생 교육, 업계 종사자들의 건강을 위한 개인 보호 장비 지급, 감염방지용 자료 제공 등과 같은 권고 내용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프로그램만으로 관광 산업이 예전처럼 다시 부흥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필리핀 관광부(DOT) 차관인 베니토 벤존 주니어(Benito Bengzon, Jr)가 향후 필리핀 여행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언론 브리핑에서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필리핀 관광산업이 "올해 말"이나 "내년에"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각국의 여행 제한 조치를 보았을 때 필리핀 사람이 올해 안에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예상되기에 국내 여행 중심으로 관광산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니토 벤존 차관은 필리핀 내 지역사회 격리 조치가 모두 해제된다고 해도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시하고 관광산업의 새로운 표준(뉴노멀)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언제부터 외국인의 입국이 가능할지는 언급하지 못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관광산업 현황: 2012년~2018년 관광업에 종사하는 필리핀 사람의 수 필리핀 관광산업 현황: 2012년~2018년 필리핀 외국인 관광객 분야별 소비 현황 필리핀 시아르가오(Siargao) 필리핀 시아르가오(Siargao)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Department of Tourism · Growth in tourist arrivals slows down in 1st quarter 2019 to 7.6% · PH tourism revenues, arrivals halved in first trimester of 2020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입국서류: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 요령 - 2022년 기준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입국서류: 필리핀 세관신고서 작성 요령 - 2022년 기준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2년 9월 29일 클락공항의 세관 신고사항 있음(Goods to Declare) 통로 필리핀 세관신고서(CBDF)는 무려 4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적기가 귀찮은 느낌을 주지만, 2페이지 는 여행자 휴대품 면세 범위(필리핀 면세한도) 와 필리핀 입국 시 반입이 규제·제한·금지되는 물품 에 대한 안내문이고, 4페이지 는 세관원이 기재하는 부분이라서 실질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필리핀 입국 시 세관신고서 작성 요령은 아래와 같다. 필리핀 세관신고서는 입국신고서처럼 입국 시 필수로 작성해야만 되는 서류가 아니다. 비행기 기내에서 승무원이 세관신고서 종이를 준다면 작성해 두는 것이 좋지만, 승무원이 종이를 주지 않았고 신고할 물품이 없다면 굳이 작성할 필요가 없다. 1페이지 Personal Information 항목 작성 요령 Surname 성 First Name 이름 Middle Name 중간 이름(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 빈칸 처리) Gender 성별 - MALE(남자) - FEMALE(여자) Birthdate 생년월일 Citizenship 국적 : Korean Place Issued (Country) 여권번호 여권 발행국 : Republic of Korea Date Issued 여권 발급일 Occupation / Profession 직업 (예) 사업가 Businessman 회사원 office worker 주부 Housewife Contact No. 전화번호 Address in the Philippines 필리핀 내 체류 주소 Date of Last Departure from the Philippines 최근 필리핀 출국일(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 NA 표기) Country of Origin 출발국가(KOREA) Date of Arrival 도착일 Airline/Flight No. or Vessel Name/Voyage No. 항공편명 No. of accompanying members of the family 동반 가족수 - Below 18 yrs. old : 18세 미만 - 18 yrs. old and above : 18세 이상 No. of Baggage - Checked-in (pcs) : 위탁수하물 개수 - Hand-carried (pcs) : 기내수하물 개수 Type of Traveler/s 여행자 유형 - 여행 시 VISITOR/TOURIST 선택 Purpose of Travel 방문 목적 - BUSINESS : 사업 - VACATION : 휴가 - STUDY : 학업 - VISIT RELATIVES : 친지 방문 3페이지 General Declaration 필리핀 화폐로 5만 페소를 초과하여 반입하거나 미화로 환산하여 총합계가 1만 달러를 초과하는 화폐(현금, 수표, 유가증권 등을 모두 합산)를 가지고 오는 경우 필리핀 중앙은행 또는 세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를 위반 시 압수 및 행정조치, 벌금, 형사처분이 가능하다. 항목 작성요령 Total amount of goods purchased and/or acquired abroad? Philippine Peso/US Dollar 해외에서 구입/취득한 물품의 총액 Are you bringing in any of the following? 세관신고사항 - 있음(YES) - 없음(NO) ※ 입국 시 반입이 규제·제한·금지되는 물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모두 NO에 체크 Signature over printed name 신고인 이름과 서명 DATE 날짜 세관신고사항 1. 50,000페소(PhP 50,000)를 초과하는 페소화 Philippine Currency and/or any Philippine Monetary Instrument in excess of PhP 50,000.00; (i.e. Check, Bank, Draft , etc); (If YES, please submit the original copy of prior authorization from the Bangko Sentral ng Pilipinas at the Bureau of Customs Arrival Area) 2. 20,000달러(USD 10,000)를 초과하는 외화 Foreign Currency and/or Foreign Monetary Instrument in excess of USD 10,000.00 or its equivalent; (If YES, please fill out the Foreign Currency and Other Foreign Exchange Denominated Bearer Monetary Instruments Declaration Form at the Bureau of Customs Arrival Area) 3. 도박용품 Gambling Paraphernalia; (If YES, please submit prior import permit/clearance from the Philippine Amusement and Gaming Corporation) 4. 개인 사용 용도를 벗어난 상업적 수량의 화장품, 스킨케어제품, 식품보충제, 의약품 Cosmetics, skin care products, food supplements and medicines in excess of quantities for personal use; (If YES, please submit prior important permit/clearance from the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5. 모르핀, 마리화나, 아편, 양귀비 등 마약류 또는 마약성분을 함유한 합성약 Dangerous drugs such as morphine, marijuana, opium, poppies or synthetic drugs; (If YES, please submit import permit/clearance from the Philippine Drug Enforcement Agency) 6. 총기, 폭발물과 부속품, 모조 총기 Firearms, ammunitions and explosives; (If YES, please submit the import permit/clearance from Firearms and Explosives Office, Philippine National Police) 7. 상업적 수량의 주류 또는 담배 제품 Alcohol and/or tobacco products in commercial quantities; (If YES, please submit the import permit/clearance from the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or alcohol or National Tobacco Administration for tobacco products) 8. 농축수산물(식품, 과일, 채소, 육류, 수산물 등)과 식물 종류 Foodstuff(s), fruit(s), vegetable(s), live animal(s) (i.e. meat,eggs etc.), marine and aquatic products(s), plant(s) and/or the product(s) and their by product(s); (If YES, please submit the import permit/clearance from the National Plant Quarantine Services/National Veterinary Quarantine Services) 9. 개인 사용 용도를 벗어난 상업적 수량의 핸드폰 등 통신장비 Mobile phones, hand held radios and similar gadgets in excess of quantities for personal use, and radio commumication equipments; (If YES, please submit the import permit/clearance from the National Telecommunications Commission) 10. 유골, 인체 장기나 조직 Cremains (human ashes), human organs or tissues; (If YES, please secure clearance from the Bureau of Quarantine) 11. 보석, 금, 귀금속 Jewelry, gold, precious metals or gems 12. 위에 언급되지 않은 그 밖의 물품 Yes 인 경우, 아래에 물품 기재 Other goods, not mentioned above; (If YES, please enumerate) 필리핀 세관신고서(Customs Baggage Declaration Form) 클락국제공항 - Clark International Airport(CRK)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Bureau of Custom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공휴일: 2021년 필리핀 공휴일 날짜와 징검다리 휴일 가능일
필리핀 공휴일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공휴일 필리핀 공휴일: 2021년 필리핀 공휴일 날짜와 징검다리 휴일 가능일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11월 18일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의 공휴일은 그 의미를 상당히 상실했지만, 그래도 내년 2021년 공휴일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31일 금요일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한 선언문(Proclamation No. 986, s. 2020)에 따르면 2021년의 공휴일은 정규휴일(Regular Holiday)과 특별휴일(Special Non-Working Day)을 더해 총 19일이다. 금요일 혹은 월요일인 날이 많아서 코로나19 사태만 해결되면 제법 긴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 어떤 공휴일을 보내게 될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2021년 공휴일은 총 64일이다. 관공서 공휴일은 52일의 일요일과 국경일, 설날 등 법정공휴일 15일을 더해 67일이 있지만 현충일(6.6)과 광복절(8.15), 개천절(10.3)이 일요일과 겹쳐 총 공휴일 수는 64일로 줄어든다. 주요 전통 명절은 설날(음 1월 1일)이 2월 12일 금요일이고, 추석(음 8월 15일)은 9월 21일 화요일이다. 2021년 2월 26일 내용 추가 2021년 공휴일 중 11월 2일(위령의 날), 12월 24일(크리스마스 이브), 12월 31일(연말)을 특별휴일(Special Non-Working Days)에서 특별 근무휴일(special working days)로 변경됨. 2021년 필리핀 공휴일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Malacañan Palace)에서 발표한 2021년 공휴일 목록은 아래와 같다. 필리핀에서 공휴일을 정규휴일(Regular holiday)과 특별휴일(Special Non-Working Day)로 열심히 구분하는 것은 휴일 급여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규휴일에는 근무하지 않아도 급여를 받지만, 특별 휴일에는 무노동, 무보수(no work, no pay) 원칙이 적용된다. 근무 시 임금 계산도 달라진다. 정규휴일(Regular Holiday) 2021년 1월 1일 금요일 New Year’s Day (새해 첫 날) 2021년 4월 1일 목요일 Maundy Thursday (부활절 연휴 기간) 2021년 4월 2일 금요일 Good Friday (부활절 연휴 기간) 2021년 4월 9일 금요일 Araw ng Kagitingan (용사의 날) 2021년 5월 1일 토요일 Labor Day (근로자의 날) 2021년 6월 12일 토요일 Independence Day (독립기념일) 2021년 8월 30일 월요일 National Heroes Day (영웅의 날)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Bonifacio Day (보니파시오 데이) 2021년 12월 25일 토요일 Christmas Day (크리스마스) 2021년 12월 30일 목요일 Rizal Day (리잘 데이) 특별휴일(Special Non-Working Day) 2021년 2월 12일 금요일 Chinese New Year (설날)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EDSA People Power Revolution Anniversary (EDSA 혁명 기념일) 2021년 4월 3일 토요일 Black Saturday (부활절)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Ninoy Aquino Day (니노이 아키노 데이)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All Saints’ Day (만성절) 2021년 12월 8일 수요일 Feas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성모마리아 축일) 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Last Day of the Year (연말) Additional Special Non-Working Holiday 2021년 11월 2일 화요일 All Souls’ Day (위령의 날) 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Christmas Eve (크리스마스 이브) 필리핀 국기 라마단 공휴일 필리핀 정부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라마단(Ramadan)이 끝나는 이드 알피트르(Eid-al-Fitr) 축제일을 필리핀의 공식적인 국가 공휴일로 삼고 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글로리아 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가 종교 간 평화와 친선을 키운다는 이유로 무슬림의 최대 종교행사 중 하나인 이드 알피트르를 공식적인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 발표한 공휴일 목록을 보면 라마단 휴일에 대해서는 날짜가 확정되면 별도의 선언문을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음을 볼수 있다. 라마단 시작일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 첫날부터 시작하여 한 달 가량 진행되는데, 이 날짜는 이슬람력에 따라 해마다 바뀐다. 게다가 이슬람국가라고 모두 같은 날에 라마단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또는 교리에 따라, 하루 이틀 정도 시작일이 달라질 수 있다.필리핀에서는 해마다 이슬람력 8번째 달이 되면 필리피노 무슬림 국가위원회(NCMF)와 민다나오 방사모로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BARMM)에서 전문가단을 구성하고 달을 관측하기 시작하였다가 무슬림 최고 지도자가 음력 초하루에 뜨는 초승달의 모양을 직접 보고 라마단 시작 날짜를 알리게 된다. 내년 라마단 기간은 2021년 4월 21일에 시작하여 2021년 5월 11일 즈음에 끝나리라 예상된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roclamation No. 986 s. 2020 Signed on July 30, 2020 https://www.officialgazette.gov.ph/2020/07/30/proclamation-no-986-s-2020/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아주 짧게, 혹은 아주 길게도 가능하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그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1년간을 집권한 독재자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마르코스 시절에는 인권탄압과 부정부패가 극심했다"라고 가볍게 요약하기는 피해자가 너무 많다. 마르코스가 부정 축재한 100억 달러의 재산 역시 아직 절반 이상 마르코스 가족의 소유로 남아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본명: Ferdinand Emmanuel Edralin Marcos Sr. · 1917년 9월 11일 출생~1989년 9월 28일 사망(72세) · 필리핀 제10대 대통령 · 대통령 재임 기간: 1965년 12월 30일 ~ 1986년 2월 25일(21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부패정치의 주범 - 필리핀 제3공화국 마지막 대통령, 필리핀 제4공화국 대통령 - 계엄령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하여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 - EDSA 혁명으로 축출된 후 하와이로 망명 - 배우자: 이멜다 마르코스 / 아들: 봉봉 마르코스(제17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관련된 주요 사건 타임라인 날짜 주요 사건 1965년 12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필리핀의 제10대 대통령) 1972년 9월 2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 선포 1973년 1월 17일 헌법개정(1973 Constitution) 1981년 1월 17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을 해제하는 선언문을 발표 1983년 8월 21일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 마닐라공항에 암살 1986년 2월 7일 1986년 필리핀 대선 1986년 2월 22일~25일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1986년 2월 25일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1대 대통령) 1986년 2월 2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으로 망명 1987년 2월 2일 1987년 필리핀공화국 헌법 제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 1989년 9월 28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에서 사망 2022년 6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마르코스),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사진 어린 시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는 일로코스 노르테의 사랏트(Sarrat)에서 태어났다. 그는 변호사이자 하원의원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버지인 마리아노 마르코스는 일본점령기 일본의 협력자라는 이유로 필리핀 게릴라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마르코스 본인은 일본에 저항하다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마르코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특별히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안토니오 루나 장군 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바 있지만 이 주장 역시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마닐라로 올라와 법학을 공부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39년 변호사 시험에서 최고 득점자로 합격한다. 이즈음 그는 1933년에 아버지의 정적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받았던 유죄 선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의 사건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일본점령기 때 허수아비 대통령 노릇을 한 호세 라우렐 이라는 것이다. 호세 라우렐은 마르코스의 사건에 대해 꽤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장교로 군에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군 복무 경력은 추후 그가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라며 자신을 알리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미군의 군사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는 마르코스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부정확하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전쟁이 끝난 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46년부터 1947년까지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의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1949년 일로코스 노르테 지역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상원의원, 상원의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여담이지만 정치적 기반을 쌓은 이 시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카르멘 오르테가(Carmen Ortega)란 여성과 사실혼 관계로 살며 세 명의 아이까지 낳고 마닐라 산후안에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954년 마르코스는 이멜다 마르코스와 결혼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10대 대통령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국가의 위대함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마르코스는 대통령 당선 초기만 해도 정부 개혁과 경제발전, 부정부패 척결 등을 추구했다고 한다. 효율적인 세제 개편과 대외 차관 유치로 국가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고, 인프라 투자로 국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집권한 초기에 추진한 경제개혁으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으며 첫 번째 임기(1965-1969)를 마쳤다. 그런데 필리핀 대통령의 임기가 6년 단임제가 된 것 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이다. 즉, 1969년 당시만 해도 1935년 헌법에 따라 필리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이 가능했다. 연임을 노리며 196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부채로 조달된 자금을 캠페인 선거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대통령에 재선되며 두 번째 임기(1969-1972)를 시작했는데, 두 번째 임기가 끝나기 전인 1972년 9월 21일 퇴임 대신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과 1973년 헌법개정은 대통령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기반이 되었다. 자신이 원했던 바에 따라 작성된 헌법으로 행정권은 물론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는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1981년 2월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필리핀 방문 을 앞두고 1981년 1월 17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해제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계엄령 시절 그가 누렸던 주요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유지하고 독재를 계속 강행하였다. 1972년 계엄령 선포 1972년 마닐라에서는 약 20회나 되는 크고 작은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폭탄 테러가 공산주의자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었지만, 마르코스는 이 일을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돌렸다. 그리고 1972년 9월 2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공산주의 반란 위협과 학생 시위, 이슬람 반군 등으로 인해 발생한 무질서 등에 대처한다는 이유였다. 국가 전복 세력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문으로 시작된 계엄령 선포는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어졌고,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바닥으로 내몰렸다. 필리핀 내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의회를 해산시킨 뒤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언론의 자유를 금지 하면서 ABS-CBN 등과 같은 민영 방송사는 물론 신문사까지 대부분이 사라졌다. 언론, 집회, 이동의 자유가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치안은 붕괴했고, 계엄령을 반대하는 정치지도자와 언론인은 물론 지식인과 학생까지 예외 없이 모두 반정부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수천 명의 반대파 정적 야당 정치인이 체포되고, 군과 경찰은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마르코스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절대 권력 아래 인권 유린과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한 시절이었지만 국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음을 알릴 신문조차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마르코스가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 하와이로 도망친 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납치 및 고문, 처형 등을 당한 피해자의 수를 조사했는데 실종자로 처리된 사람의 수만 해도 엄청났다. 자료마다 그 숫자가 다르지만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약 7만 명이 투옥되었고, 3만 4천 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사망자도 최소 3,200명으로 추정된다. 1983년 니노이 아키노의 죽음 1983년 마르코스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던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 이 마닐라공항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르코스의 정치적 적수였던 아키노의 암살 사건은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키노의 죽음으로 필리핀 내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점점 최악의 침체 상황으로 빠졌다. 1985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의 목록이 폭로되며 탄핵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나왔지만 부결되었다. 1986년 피플 파워 혁명 1986년 2월 7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의 직원이 선거 결과를 조작했음을 폭로하는 등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었지만,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는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마르코스가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르코스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 경제 불안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결국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이라고 불리는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 1986년 피플 파워혁명(EDSA 혁명)은 자발적인 민중의 봉기를 통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를 비폭력으로 전복시킨 혁명이다. 마닐라 대교구장이었던 하이메 신 추기경이 민중의 편에 서고 마르코스와 육촌지간인 피델 라모스마저 마르코스에게 등을 돌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21년 동안의 장기독재를 접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민들이 EDSA 거리로 나와 마르코스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피플 파워(민중의 힘)를 보여준 것이다. 마르코스가 물러난 뒤 필리핀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사람은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의 아내였던 코라손 아키노 였다. 미국으로 망명 1986년 2월 2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21년 동안 지속해 온 독재정치에서 물러나 미국 정부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망명한다. 당시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클락의 공군기지로 이동한 뒤 클락에서 미 공군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이동했다고 하는데, 빈손이 아니었다. 미군 세관 기록이 23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함께였다. 약 80명의 측근과 함께 수십 개의 현금 상자와 금괴, 귀금속 보석상자 등을 가지고 하와이에 간 마르코스의 가족은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고급 주택지에서 호화롭게 살며 필리핀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피플 파워 혁명 당시만 해도 마르코스 가문은 정치적으로 몰락한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멜다 마르코스에게는 21년에 걸쳐 부정 축재한 거액의 재산과 맹목적인 지지자가 있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1991년 필리핀으로 귀국했고,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갔지만, 당선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2022년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9년 9월 28일 향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하와이에서 사망한 남편의 시신을 필리핀으로 운구하여 국립 영웅묘지(마닐라 국립묘지) 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계엄령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독재자인 마르코스가 영웅처럼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3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시신을 하와이에서 일로코스 노르테에 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센터(Ferdinand E. Marcos Presidential Center) 로 옮겼다. 그리고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을 위해 방부처리를 한 시신을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 이후 2016년 두테르테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멜다 마르코스는 마르코스의 시신을 국립 영웅묘지에 안장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래도 국민들의 반대 시위를 모두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묘지이장이 진행되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묘지는 어디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흉상.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 소장품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 필리핀 대통령 전시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초상화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The Fall of the Dictatorship · Official Gazette: Infographic: The day Marcos declared Martial Law · Official Gazette: Martial Law · Presidents of the Philippines: ERDINAND EMMANUEL E. MARCOS SR. · GMA News: PCGG: No new cases against the Marcoses expected over ill-gotten wealth · Official Gazette : 1973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