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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2001년, 제2차 에드사 혁명 -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낸 2차 피플 파워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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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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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플 파워 혁명
제2차 EDSA 혁명(2차 에드사 혁명)
Second People Power Revolution
Second EDSA Revolution
부패 혐의에 연루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여 일어난 민주화 운동
기간: 2001년 1월 17일~2001년 1월 20일
2000년 10월의 일이다. 필리핀 사람들을 모두 TV 앞으로 모을만한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루이스 차빗 싱손 일로코스 주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도박업자에게 받은 뇌물과 담뱃세 리베이트 등을 비밀 은행 계좌를 통해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에게 전달했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불법도박 이익금 배당에서 제외된 데다가 암살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라서 이 일을 폭로하게 되었다는 일로코스 주지사의 발언은 큰 파문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에랍(친구를 의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지지했던 이들은 800만 달러나 되는 불법도박 자금과 260만 달러의 담뱃세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에 분노했다. 그리고 필리핀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서의 탄핵 절차가 시작되었다. 뇌물 수수와 부정부패, 국민 기만, 헌법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탄핵 재판은 필리핀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조셉 에스트라다의 뇌물수수 혐의는 점점 사실로 밝혀졌지만, 그의 부정부패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있는 봉투를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다시 EDSA 도로로 나갔다. 마닐라 올티가스의 로빈슨몰 앞 EDSA 쉬라인(EDSA Shrine)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986년에 마르코스 대통령을 몰아냈던 그 기세로 조셉 에스트라다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2차 피플 파워 혁명(제2차 EDSA 혁명)의 불은 거세게 번져나갔고, 시민단체의 참여가 이어졌다.
사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자 조셉 에스트라다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EDSA 혁명 마지막 날인 2001년 1월 20일, 조셉 에스트라다는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퇴진압력의 강도가 높아지자 탄핵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물러난 뒤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부통령이었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였다.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2차 피플 파워 혁명을 주도한 뒤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녀 역시 나중에 뇌물수수 및 부정부패 혐의를 받았다.)
2차 피플 파워 혁명 이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40억 페소를 횡령하고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에스트라다는 약 6년 동안 자택에 연금되었다. 2004년 부패감시 국제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세계부패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축재액은 7800만~8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1000억 원 정도에 해당)로 평가됐다. 조셉 에스트라다는 1998년 6월 30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 936일 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었으니, 거의 매일 1억 원의 국가 재산을 빼돌린 셈이다.
2007년 9월 12일, 필리핀 산디간바얀 반부패 특별법원에서는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종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6주 후, 에스트라다는 향후 정치 활동을 안 하겠다는 조건으로 아로요 대통령에게 특별 사면을 받았다. 특별 사면의 이유로는 70세라는 나이와 긴 가택 연금 기간을 고려하여 사면·석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식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이 일을 놓고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에스트라다의 지지자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면에 대한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 여론을 보면 다소 기묘하게 흘러갔음을 볼 수 있다. 뇌물수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 뒤에도 필리핀 국민들은 조셉 에스트라다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2007년 당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필리핀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더라도 아로요 대통령이 관용을 베풀어 에스트라다를 사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자체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시기 필리핀 국민들의 행동을 보면 정치의식 수준이 매우 낮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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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ppler: Looking back at EDSA II: The political paths of Estrada and Arroyo
· The Philippine Star: People Power II, a period of ‘liberation’
· Inquirer: Edsa 1 and Edsa 2 comp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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