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전통의상: 바나나와 아바카(Abaca) 섬유와 마닐라삼(Manila hemp)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2020년 8월 6일
필리핀에서 전 세계 공급량의 8할 이상을 담당하는 수출품이 있다. 바로 아바카(Abaca)이다. 천연 섬유 중에서도 질기기로 유명한 아바카 섬유는 새로운 무역로를 찾아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던 시절 가장 인기 있는 섬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합성섬유(화학섬유)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고된 노동이 필요한 천연섬유는 조금씩 자리를 잃게 되었다. 특히 1935년 미국에서 개발된 나일론은 섬유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질기기까지 한 나일론은 '기적의 실'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세탁도 쉽고, 고된 다림질이 필요 없어 가사 노동이 줄어든다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57년 대구에 한국나이론(KOrea nyLON)이란 이름의 회사가 생겼을 정도이다. 이 기업이 바로 코오롱(KOLON)의 전신으로, 당시 코오롱에서 "명주실보다 고운 나일론"이란 광고를 내보냈을 정도로 나일론은 주요 소비 품목이었다. 하지만 나일론과 아크릴과 같은 합성섬유만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등장한 것이다. 면과 같은 천연섬유 소재 의류의 품질이 더 낫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옛 방식대로 만든 천연섬유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세상사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할까.
🜹 천연섬유가 환경에 더 좋다는 것은 좀 잘못된 인식이다. 천연섬유를 만드는 것에도 엄청난 물이 들어가고, 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 전문가들은 합성섬유와 천연섬유 둘 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으니, 환경을 살리고 싶다면 소비 자체를 줄이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최대의 아바카 생산국 필리핀
아바카(Abaca)를 재배하는 국가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리고 2020년 기준으 필리핀에서 전 세계 공급량의 8할 이상을 담당한다. 에콰도르(13%), 코스타리카(2%)에서도 생산되지만, 필리핀의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높다. 에콰도르의 아바카도 필리핀에 있던 일본인이 남미로 이주하면서 전파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1800년대 후반까지 필리핀은 아바카의 재배를 장려하면서 거의 10만 톤의 달하는 아바카를 해외에 수출했고, 당시 설탕, 담배와 함께 현금성 강한 주요 수출 작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아바카를 대신할 섬유가 생산되면서, 아바카는 사람들의 관심을 잃어갔다. 그러다가 2016년 두테드테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 농업부(DA) 장관인 엠마뉴엘 피놀(Emmanuel Piñol)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바카는 그가 농무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발전 기금을 받은 최초의 작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요즘은 생섬유가 아닌 펄프 형태로 가공하여 주로 유럽, 일본 및 미국으로 수출된다.
마닐라대마(마닐라삼)와 아바카
아바카는 한국에서 마닐라대마(마닐라삼)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마닐라 항구를 통해 많이 수출되어 마닐라삼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마닐라삼(Manila hemp)은 대마(hemp)가 아니다. 오랜 기간 대마가 주요 섬유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아바카에 대마의 이름을 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대마(hemp) : 삼과의 한해살이풀의 껍질에서 뽑아낸 실을 대마라고 한다. 거칠고 긴 마 섬유가 채취되는 식물을 통틀어 삼이라고 부른다. 보통 삼이라고 하면 삼베를 짜는 데 사용하는 식물인 '대마'를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한 천연섬유
아바카로 만든 섬유는 흡습성이 매우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천연섬유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강한 섬유답게 오랫동안 침수하여도 잘 부패하지 않는다. 물과 햇볕,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커서 습식 및 건식 상태 모두에서 잘 버티는 데다가 형태가 잘 변하지 않는다. 생분해성이라 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심지어 지역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바카는 토양에서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열대 우림 지역의 산사태를 예방한다. 해안 지역의 침식 문제도 줄어들어 물고기에게도 이롭다. 폐기물은 비료로 사용된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합성 섬유가 사용되기 전까지 아바카는 고품질 섬유의 주요 공급원이 될 수 있었다.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하기 전부터 원주민들은 야생 아바카에서 섬유를 채취하여 직물로 활용했다고 전해지는데, 민다나오 등에서는 조개껍데기로 섬유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뒤 옷감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아바카는 필리핀 전통의상인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마린두케 클로쓰(medriñaque cloth)라고 불리면서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아바카로 만든 로프가 내구성이 뛰어나고 유연한 데다가 바닷물에 잘 손상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선박용 밧줄(로프)이며 어망, 낚싯줄, 마대 자루, 매트 등을 만드는 용도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마닐라지(목재 펄프에 마닐라삼을 섞어서 만든 질긴 종이)를 만드는 데도 유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로 수출되게 되었다.
하지만 아바카가 밧줄이나 종이를 만드는 것에만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기특한 식물은 두꺼운 밧줄은 물론이고 가방, 카펫, 모자, 신발, 의류, 공예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요즘은 펄프(종이)를 이용하여 티백(tea bags)이나 커피 종이필터, 담배 필터 등을 만들기도 한다. 내구성이 좋아 지폐 제조에도 사용된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의 역사
아바카 섬유(Abaca Fiber) 추출하기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아바카는 2년에서 3년 정도 키우면 다 크는데 3~8개월에 한 번씩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다 자란 아바카는 높이가 6m 정도 되는데, 뿌리는 남겨두고 수확하여 사용한다. 잎은 크고 긴 타원형인데, 바나나보다 잎이 좀 더 좁은 편이다. 식물의 원줄기에 달린 잎의 아랫부분은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싸는데, 이 잎집에 귀중한 섬유가 들어 있다. 잎자루로부터 채취된 섬유는 잘 세척하여 햇볕에 말린 뒤 작은 매듭을 묶어 연결한다. 잎자루 크기와 사용된 가공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약 14~18인치 정도 되는 지름을 가진 나무줄기를 기준으로 평균 1~3m 정도의 섬유가 나온다고 한다. 강도는 외피 부분에서 채취한 것이 가장 강하다.
바나나과(banana family)의 일종인 파초과(무사케아이. Musaceae)에 속하고, 줄기 모양이 바나나와 비슷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식용 바나나와는 다르다. 땅속줄기가 발달한 커다란 모양새가 잎 부분만 언뜻 보면 바나나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바카 열매는 먹을 수 없다. 열매는 길이 8cm 정도로 크지만, 안에 든 검은 씨앗이 너무 커서 먹을 수 없다. 게다가 바나나와 달리 아바카는 낮은 산간지역이나 구릉 지역에서 재배된다.
독특한 것은 아바카는 줄기 형성층의 바깥쪽 조직에 함유된 인피 섬유(Bast fibre)라는 점이다. 식물에서 추출하는 잎섬유는 보통 식물의 잎 부분을 이용하지만, 아바카는 다른 잎식물들과 다르게 잎의 줄기(Stalk)에서 섬유를 채취한다. 식물의 잎에서도 줄기(잎자루) 부분의 껍질을 벗겨내 만들기에 바나나의 나무줄기에서 채취한 섬유로 만든 바나나 섬유와는 다르다.
- 아바카는 바나나로 만든 천연 식물 섬유이다. (X)
- 아바카는 바나나과의 일종인 아카바로 만든 천연 식물 섬유이다. (O)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