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전통의상: 파인애플이 옷감이 되기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롱(Barong)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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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20년 8월 7일
파인애플 섬유의 직조 과정
옷을 만드는 일은 파인애플의 길쭉한 잎사귀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길쭉한 잎을 모아다 물에 담가 부드러워지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파인애플 잎은 강하고 억세지만, 코코넛 껍질이나 조개껍데기, 그릇의 깨진 파편 등처럼 단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겉껍질을 벗긴다. 초록색 파인애플 잎에서 겉껕질을 떼고 날카로운 것으로 밀어내면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인피 섬유(fibre)를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섬유로 바로 옷을 만들 수는 없다. 식물 올실을 추출하였으면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흰색이 될 때까지 다듬은 뒤 물기를 바짝 말려낸다. 그리고 가는 섬유를 하나하나 매듭을 지어 길고 매끄럽게 실처럼 만든다. 파인애플에서 얻은 식물성섬유는 길이가 짧아서 섬유를 묶어 연결하여야만 천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섬유의 가닥을 한 올 한 올 비벼서 연결해 실처럼 만들어 엉키지 않도록 실패에 감아두는 것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지루한 과정이지만, 여기까지는 겨우 바롱 만들기의 기초 작업 정도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는 파가보(paghaboe)라고 불리는 직립형 2단 베틀을 이용하여 천을 짜는 일이다. 올을 성기게 짠다고는 해도 필리핀처럼 더운 나라에서 발 베틀을 이용하여 천을 만드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베틀에 걸터앉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파인애플에서 채취한 가느다란 섬유의 한올 한올이 날실과 씨실로 머리를 마주하는 인고의 시간이 끝나야 드디어 반투명한 연한 베이지색 천이 완성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고난도의 기술이 들어가는 것은 마지막 옷을 만드는 단계이다. 칼라도(calado)라고 하는 필리핀 전통 손자수 작업을 거쳐 가슴 부분 가득 섬세한 문양을 만들어 낸다. 천이 얇아 수 놓기가 쉽지 않으니, 수를 놓는 사람의 창의력은 물론 인내심까지 요구된다. 바롱이 마치 예술작품과 같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화려함의 이면 그 속에 스며든 누군가의 땀 때문이 아닐까.
바롱 타갈로그의 원단
Barong Tagalog Fabric Selection
바롱의 가장 큰 특징은 속이 비치는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롱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완벽한 원단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요즘이야 실크 혼방도 있고, 면이나 리넨, 폴리에스터로 만든 기성품도 나오지만, 원래 바롱은 피냐(파인애플 섬유)나 아바카(마닐라삼), 주시 클로스 등으로 만들었다. 속이 훤히 비치는 노르스름한 천의 색상이며 풀이 빳빳하게 선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언뜻 보면 삼베나 모시와 비슷하지만, 원단의 촉감부터 디자인까지 모시와는 사뭇 다르다. 필리핀 사람들은 파인애플 직물로 만든 바롱을 최고로 치는데 착용감이나 촉감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인애플 잎 섬유로 직물을 제조하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으니, 예전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피냐(Piña) 직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소재 자체가 희귀한 데다가 품질이 우수하니 가격도 매우 고가이다. 그래서 요즘은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실크나 면, 리넨(linen), 폴리에스터 등을 섞어 만든 천을 주로 사용한다. 필리핀 사람들이 바롱 제작에 사용하는 원단은 주로 아래와 같다.
① 피냐(Piña)
피냐(Piña) 직물은 자연적으로 노란색을 띤다. 샴페인과 비슷한 연한 노란 색으로 촉감은 실크처럼 부드러운 편이다. 파인애플 잎 섬유는 두께가 고르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천을 면밀히 살펴보면 꼬인 섬유 때문에 직물에 줄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명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얇지만 보기보다 내구성이 강하고, 다른 섬유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까슬까슬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주는 우아한 느낌 때문에 최고급 직물로 평가된다. 가볍고 통풍이 잘되어서 더운 열대 기후에 적합한 옷감이 되기도 한다. 구김이 쉽게 생겨 섬세하게 관리를 해야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피냐 직물은 여전히 매우 귀하게 취급된다.
② 피냐 실크(PIÑA-SILK)
피냐 실크(PIÑA-SILK)는 파인애플과 실크(세다)를 섞어 만든 직물이다. 피냐 세다(Piña seda)또는 파인애플 실크(Pineapple-Silk)라고도 부른다. 실크가 섞여 있어서 피냐 (Piña) 직물보다 밝은색을 가진다. 피냐 원단보다 비교적 공급이 쉬워서 필리핀 곳곳 바롱 옷가게에서 볼 수 있다. 요즘 바롱 옷가게에서 피냐 천이라고 판매하는 원단 중 상당수는 피냐 실크(PIÑA-SILK)일 가능성이 높다. 피냐 만을 사용한 천은 piña-orig(original이라는 단어의 약어)라고 칭한다.
③ 주시(jusi)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아바카(Abaca)에서 추출된 마닐라삼(Manila hemp)도 바롱을 만들 때 종종 사용된다. 높이 6∼7m에 달하는 대형 초본식물인 아카바로 만든 직물은 피냐 직물보다 두껍고 덜 투명하며, 자연스러운 미색(off-white color)을 띈다. 아바카는 민다나오와 비콜 지방(Bicol Region) 등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역에 따라, 혹은 직조 방법에 따라 천의 거칠기가 좀 달라진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피냐보다 거칠고 뻣뻣한 촉감을 가진다. 느슨하게 직조된 경우 옷의 형태가 잘 손상되어서 파인애플 섬유로 만든 바롱만큼 오래 입기는 어렵다고 한다. 피냐 섬유와 아바카 섬유를 섞어 피나 주시(Piña jusi) 원단을 만들어 바롱을 해 입기도 한다.
④ 오간자(Organza)
기념품 가게 등에서 보이는 저가형 바롱은 기계로 짠 오간자(Organza)로 만든 것이 많다. 중국산 실크 또는 폴리에스터로 만든 직물이라서 번들거리는 광택이 나지만, 풍성한 느낌을 내기 쉬워 여성용 바롱인 바롯 사야(Baro't Saya)나 드레스 등에 많이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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