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뉴스: 그린힐스(Greenhills) 쇼핑몰의 경비원 아치 파라이는 왜 인질범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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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20년 3월 3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3월의 첫 월요일이었다. 하지만 마닐라 산후안 시티 그린힐스(Greenhills)에 있는 브이몰(V-Mall)에 쇼핑을 하러 간 수백 명의 사람은 갑자기 들리는 총소리를 들어야 했다. 쇼핑객들은 총소리를 듣자마자 재빨리 쇼핑몰 바깥으로 도망쳤고 곧 쇼핑몰은 폐쇄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로널드 벨리타(Ronald Velita)가 총상을 입었지만, 바로 인근 카디널 산토스 병원(Cardinal Santos Medical Center)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세 명이 죽었느니, 네 명이 죽었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그래도 서른 명 가까운 쇼핑몰 직원들이 9시간 가까이 인질로 잡혀 있어야만 했다. 총격 사건 및 인질극의 범인은 곧 아치 파라이(Alchie Paray)라는 이름의 인물로 밝혀졌는데, 보안경비 용역업체인 SASCOR(Safeguard Armor Security Corporation)에 고용되어 2만 페소 남짓한 급여를 받고 쇼핑몰 경비원으로 근무했다고 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되고, 그가 최근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되었음이 드러난 뒤에도 인질극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슬프게도 아치 파라이가 원한 것이 돈이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억울함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계기로 총격 인질극을 통해 자신의 불만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으리라 여겼던 듯하다. 어쨌든, 그는 인질극을 시작할 때부터 경찰에게 언론을 통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오후 2시 30분경, 아치 파라이는 화상 통화를 통해 동료였던 경비원 및 신문사 기자들과의 대화를 요구했는데, 쇼핑몰 사무실에 잡아둔 인질이며 수류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요청했다. 인질 협상을 맡은 산후안 시티의 프란시스 자모라(Francis Zamora) 시장에게 아치 파라이가 요구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구체적인 목록이 전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요구한 것 중 하나는 경비업체 책임자의 사과였다. 오후 5시 즈음, 경비용역업체인 SASCOR의 책임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아치 파라이에게 그동안 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사임할 의사를 밝혔다. 이 사과를 받고 난 뒤 아치 파라이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조건으로 인질 석방에 동의했다.
아마도 우린 그냥 경비원일 수도 있습니다
(Maybe we are just security guards)
오후 8시 15분경, 아치 파라이는 인질을 석방했다. 아무리 비무장 상태라고 해도 그렇지, 인질들과 함께 우르르 쇼핑몰을 나오는 인질범의 모습은 다소 희극적이었지만 그 위에 벌어진 일만큼 기괴하지는 않았다. 인질 납치범이 범행 장소 앞에 서서 약 20여 분간에 걸쳐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도망갈 수야 없겠지만, 수갑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인질범이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걸 조건으로 인질들이 풀려날 수 있다면야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이유란 없었다. 이미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언론사에서 준비한 스포트라이트 조명은 쇼핑몰 앞을 환하게 밝혔다. 그 밝은 조명 속에서 아치 파라이는 어두운 얼굴로 그동안 그가 느꼈던 상사에 대한 불만, 근무 중 받아야만 했던 불공평한 대우, 교대 근무 체계가 바뀐 뒤 정상적으로 출근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해고당해야 했다는 것 등에 대해 토로했다. 부패한 경비용역업체에서 쇼핑몰 세입자에게 쇼핑몰 규정을 어기는 것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있다는 폭로도 빼놓지 않았다. 수많은 기자와 구경꾼들, 그리고 프란시스 자모라 시장을 앞에 두고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불만을 죄다 말할 기회가 될 인터뷰였다.
생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시간의 끝자락에서, 그는 프란시스 자모라 시장에게 이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었다. 그가 가야 할 곳은 경찰서인가? 아니면 묘지인가? 프란시스 자모라 시장은 아치 파라이에게 가족들을 생각하라고 답했지만, 아치 파라이는 차라리 묘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치 파라이의 생에서 가장 길었던 20분여분이 지나고, 파라이가 말을 멈춘 순간 8~9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우르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체포했다. 경찰에서는 그가 권총을 주머니에 숨기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과한 무력을 써야 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인질범의 주머니도 확인하지 않고 인질들과 함께 쇼핑몰에서 나오게 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인질극이라는 극단적인 방법 외에는 자신의 마음 속 응어리를 이야기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이 불운한 사나이는 현재 올티가스에 있는 경찰서로 긴급 연행되어 취조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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