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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뉴스: 오토바이 택시업체인 앙카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작

    필리핀 뉴스와 정보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뉴스와 정보 필리핀 뉴스: 오토바이 택시업체인 앙카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작 ⚝ 저작권 안내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0년 3월 24일 앙카스(Angkas) 필리핀의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 업체인 앙카스(Angkas)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루손섬 지역사회 봉쇄‧격리조치 기간 중 생계가 어려워진 배달원을 돕기 위한 방안이다. 앙카스에서는 음식 배달은 앙카스에서 원래 하던 서비스가 아니지만 봉쇄 기간 중 바이커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앙카스 측의 수수료 없이 배달료의 100%를 바이커에게 전달 함을 강조했다. 앙카스 푸드(Angkas Food) 서비스는 이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되며, 배달료는 3km 거리 기준으로 60페소이다. 앙카스 푸드 배달 서비스 ■ 서비스 시작일: 2020년 3월 24일부터 ~ 미정 ■ 이용 가능 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 배달료: 3km 거리 내에는 60페소 / 이후 1km 거리마다 10페소 추가(최대 5km) ■ 결제 방식: 배달원에게 현금으로 지불 또는 레스토랑으로 바로 지불도 가능 ■ 서비스 이용 방법 ① 파트너 레스토랑에 연락하여 음식 주문 - 파트너 레스토랑 목록 보기 : https://bit.ly/AKSFood ② 앙카스 바이커가 배달 ③ 음식 수령 : 바이커와 신체 접촉 금지 오늘(3월 24일) 오전 마닐라 마카티 풍경. 앙카스 오토바이가 오래간만에 보여서 좀 반가웠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Angkas Food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와 1916년 존스법(필리핀 자치법)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9월 25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누엘 케손 박물관(Museo ni Manuel L. Quezon)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 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 1902년 7월 4일~1935년 11월 15일 1898년 8월 14일, 스페인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졌음을 인정하고 미국에 항복하자 미국은 필리핀에 군정을 수립했다. 그리고 군정 통치 기간, 미국의 군사령관은 미국군 총사령관으로서 필리핀을 통치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하게 되면서 미국은 필리핀에서 실시하던 군정을 도민정부(도민정청)으로 전환,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독이 필리핀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1935년까지 필리핀을 필리핀 군도에 존속한 미국의 영토로 보고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를 통해 관리했다.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의 초대 총독(Governor-General)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가 맡았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필리핀 총독의 임기(1901년 7월 4일~1903년 12월 23일)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09년에 제27대 미국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1905년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에 가서 일본 제국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한다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해 상호 확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미국의 통치가 미국의 이익 때문이 아닌 필리핀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02년 7월 4일에 필리핀-미국 전쟁(Philippine-American War)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 지배하기 시작한 미국에서 서둘러 진행한 것 또한 클락의 공군기지와 수빅의 해군기지 설립이었다. 마누엘 케손 박물관(Museo ni Manuel L. Quezon)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 시절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을 두 가지 꼽자면 1907년 의회 선거 와 필리핀 자치법(존스법) 제정 이다. 1902년 제정된 필리핀 기본법(Philippine Organic Act)에 따라 인구조사 가 시행 끝난 상황에서 1907년 직접 선거를 통해 설립된 필리핀 의회는 상원 역할의 필리핀 위원회(Philippine Commission)와 선출직인 하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1916년 8월 29일, 필리핀 자치법(Philippine Autonomy Act of 1916) 이 제정되었다. 법안 작성자인 윌리엄 존스(William Atkinson Jones)의 이름을 따서 존스법(Jones Law)이라고 불리는 필리핀 자치법은 필리핀인이 자치 능력을 증명하면 필리핀을 독립시킨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이다.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정부가 수립되는 즉시(as soon as a stable government can be established)" 필리핀이 독립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핀인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필리핀의 독립을 명확히 약속한 최초의 문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 자치법(존스법)은 1902년 제정된 필리핀 기본법을 대체하는 법으로 1934년 타이딩스-맥더피 법(필리핀 독립법이 제정될 때까지 필리핀 헌법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존스법에 따라 상원 역시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1916년 10월 3일에 상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후 1916년 10월 16일에는 완전 선출에 의한 양원제 필리핀 의회가 설립되었다. 상원과 하원 모두 필리핀인으로만 구성된 의회였다. 한편, 이 시기 미국에서는 실로 재빠르게 영어를 교육하는 학교 시스템을 필리핀에 도입 했다. 미국 정부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필리핀 곳곳에 학교를 세웠는데, 미국 육군 수송선 토마스호까지 이용하여 600명의 교사를 필리핀으로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 시절 필리핀에 온 미국인 교사들(Thomasites) 중에는 두마게테 실리만 대학교 설립자인 호러스 실리만도 포함되어 있다. 1901년 7월 4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총독 취임식 마닐라 시티와 파사이 시티를 연결하는 태프트 애비뉴(Taft Avenue) 도로. 이 도로의 이름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US-Philippines Society: Remembering the Centennial of the Jones Law that Paved the Way for Philippine Independence · Encyclopedia Britannica: Jones Act · Esquire Philippines: These Old Photos Reveal What Philippine Education Was Like Before the War · Governor William Howard Taft delivering his inaugural address as the first American Governor-General of the Philippine Islands, on July 4, 1901.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에 있는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딸락에 있는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27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참 재밌는 일이지만, 정부기관에서 쓰는 휘장(seal)이나 깃발(City flag)만 봐도 필리핀인과 한국인의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 차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필리핀 관광부의 러브 더 필리핀(LOVE THE PHILIPPINES) 캠페인 로고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에서는 CI(City Identity)나 로고와 같은 시각 상징물에 대해 최대한 간결한 것이 좋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내 유명한 것을 최대한 많이 로고 휘장(심벌마크)에 담는다. 로고만 봐도 해당 지역 내 주요 생산물이나 역사적인 주요 사건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피나투보 화산으로 유명한 카파스의 휘장만 봐도 그렇다. 휘장을 자세히 보는 것만으로도 카파스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카파스 지역을 나타내는 씰(seal) 카파스(Municipality of Capas)의 휘장(seal) 가장 위에 적힌 1710이란 숫자는 마을이 건립된 해인 1710년을 의미한다. 숫자 아래 그려진 방패 모양의 선은 딸락 지방(Province of Tarlac)의 휘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지역이 딸락에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방패 아래에 그려진 초록색 풀은 이 지역의 주요 생산물이 사탕수수와 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위쪽에 있는 길쭉한 세모 모양의 조형물은 무엇을 뜻할까? 휘장 이미지 중앙에 그려진 조형물은 바탄 죽음의 행진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이다. 이 기념물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카파스의 맥아더 하이웨이를 지나다 보면 볼 수 있다. 그런데 카파스 지방정부에서는 왜 저 한적한 도로 위에 바탄 죽음의 행진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어 두었을까?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 카파스 데스 마치 모뉴멘트 Capas Death March Monument 바탄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던 지점 ■ 주소: MacArthur Hwy, Capas, Tarlac ■ 위치: 필리핀 딸락 카파스, Susuba Elementary School 근처 ■ 입장료: 무료 (2024년 10월 13일 현재)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때 일본의 전쟁포로가 된 군인들이 바탄 마리벨레스에서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까지 전 구간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스카(Boxcar)라고 불리는 화물 수송용 열차에 수십 명의 인원을 마구 몰아넣는 식이긴 했지만, 산페르난도에서 카파스(Capas)까지는 열차를 이용했다. 현재 카파스 지역에는 2차 대전 당시의 선로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1942년 당시 군인들이 대체 어디에서 열차를 내렸다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이 세워진 장소가 바로 열차에서 내렸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캠프 오도넬의 포로수용소까지 가기 위한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 내에는 이 시설이 어떤 시설인지 알려주는 안내문 하나 변변히 세워져 있지 않다. 문은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직원은커녕 안내문 하나 보이지 않으니 방문객으로서는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알 방법이 없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봐도 바탄 죽음의 행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시설이며 이곳에서 행진의 마지막 단계를 시작했다는 식의 간략한 안내문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기념물이 언제 세워졌는지, 혹은 기념물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입구에서 이곳이 필리핀 환경천연자원부(DENR)에서 관리하는 시설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카파스 내셔널 쉬라인(Capas National Shrine) 과 사맛산 바탄 전투 전쟁기념관(Mount Samat National Shrine) 은 필리핀 재향군인회(PVAO)에서 관리하고 있다. 필리핀 딸락, 카파스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카파스 컷컷 바랑가이(Barangay Cut-Cut 1st)에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이 세워진 까닭은 이곳이 바탄 죽음의 행진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1942년 4월 중순, 일본의 전쟁포로가 된 군인들은 이곳에 도착한 뒤 캠프 오도델까지는 다시 약 13km의 악몽 같은 도보 행군을 해야만 했다.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카파스 죽음의 행진 기념물(Capas Death March Monument)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unicipality of Capas, Province of Tarlac: Capas Death March Monument · Municipality of Capas, Province of Tarlac: BAYAN NG CAPAS LALAWIGAN NG TARLAC · Capas Tourism Office: Capas Death March Monument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역사 유적지: 1897년,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장소 - 분티스 산의 에코파크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역사 유적지: 1897년,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장소 - 분티스 산의 에코파크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19년 10월 26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1896년 12월 30일,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은 반식민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마닐라의 루네타 공원(Luneta Park)에서 처형당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호세 리잘을 기리기 위해 그가 처형당한 곳의 이름을 리잘 공원(Rizal Park)이라고 바꾸고 호세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하는 동상을 세웠다. 요즘 리잘파크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외국인들도 종종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국민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1863년 11월 30일 ~ 1897년 5월 10일)의 처형 장소는 대체 어디일까? 마라돈곤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는 1897년 5월10일에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반역죄라는 억울한 죄명을 쓰고 총살된 현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필리핀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보니파시오가 카비테에서 에밀리오 아기날도에 의해 체포된 뒤 마라곤돈 시내의 로데리코 레예스의 집(Roderico Reyes Ancestral House)에서 카티푸난(KKK)의 재판을 받고 분티스 산(Mt. Buntis) 으로 끌려가서 총살당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 에코파코가 바로 그 분티스 산인 셈이다. 하지만 정말 이곳에서 총살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그 어떤 인물보다 돋보이는 국가 영웅이지만, 처형당한 후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였다. 총살당했다는 장소도 명확하지 않고, 시체가 어딨는지조차 오리무중이다. 보니파시오가 총살된 후 그의 아내였던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Gregoria de Jesus)가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산 속을 한 달여나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처형장이었다고 특정 짓는 것은 여기서 보니파시오가 처형 명령서를 소리 내 읽었다는 기록이 발견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판소로 쓰였던 집에서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분티스 산은 꽤 큰산이고, 필리핀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보니파시오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처령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보는 편이라서 처형 장소가 확실히 이 장소라고 단언하기는 좀 어렵다. 어쨌든, 2004년에 마라곤돈(Municipality of Maragondon)에서는 자신의 동네를 역사적인 고장으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이곳을 관광명소로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4헥타르(약 12,100평)가 넘는 부지에 역사유적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개발에 들어갔는데, 공원을 비롯하여 클럽하우스며 수영장, 기념품 가게 등을 만들고, KKK(독립운동단체 카티푸난을 의미)와 Bayani(타갈로그어로 영웅이라는 뜻)라는 글자를 조각한 청동 조각상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곤돈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이 사업은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역사유적지 개발 사업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마라곤돈에서 역사유적지의 개발을 흐지부지 중단하기는 했어도 시설은 계속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던 모양이다. 에코파크까지 가는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콘크리트 한 줌 뿌리지 않은 비포장도로인 데다가 폭이 좁기까지 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마라곤돈 타운홀(Maragondon Town Hall)에서 트라이시클을 빌려 타고 가면 100페소에서 150페소 정도는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이렇게 비싼가 싶은 생각을 잠깐 했었건만 길 상태나 거리를 보니 왜 그것밖에 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마저 든다. 이렇게 도로 상태가 나쁘다면 오토바이가 온통 지저분해질 것이 당연한데 세차비라도 좀 더 받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런데 길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럭저럭 유적지에 도착해서 깨달은 것은 이곳이 이미 한참 전부터 버려졌다는 것이다. 시설 운영을 중단했다면 산자락 아래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한 아저씨가 안내했었을 터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 의아하다. 하지만 입구의 아저씨가 내게 한 이야기는 1km 정도 더 가야만 된다는 것뿐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힘겹게 와서 그냥 돌아가기란 아쉬우니 매표소 혹은 안내소였다고 짐작되는 곳을 통해 잠깐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넓은 유적지 안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검은 카라바오 물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공원 안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고요할 정도로 조용했다. 방문객은 물론이고 직원 하나 없는 공원이 어찌나 깨끗해 보이는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잘 관리하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방치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필리핀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비단 이것 하나뿐이더냐. 나는 남의 나라 역사 공부는 그만 접고 서둘러 마닐라로 돌아가기로 했다. 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 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 주소 : Brgy. Pinagsanhan B, Municipality of Maragondon, Cavite City. Philippines ■ 위치 : 필리핀 카비테, 마라곤돈 ■ 비고 - 도로 사정이 열악하여 유적지 시설까지 접근성이 좋지 못함 - 원래 20페소 입장료를 받고 공원처럼 운영했었다고 하지만 2019년 현재는 시설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보임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유적지: 보니파시오가 카티푸난(KKK)에게 재판을 받았던 장소 필리핀 카비테 도로 상태가 이렇다. 사진 속 도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이곳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안내받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에코파크가 나온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입구. 관리인이나 직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KKK는 필리핀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을 의미한다. 필리핀 국가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조각이 어떤 의미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다. 바닥에는 돌을 이용하여 KKK를 써두었다. KKK는 필리핀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을 의미한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영장도 있다. 달력을 봐서 9월 혹은 10월까지는 이곳에 누군가 있었던 듯하다. 카라바오 물소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NHCP(National Historical Commission of Philippines)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국기의 상징: 별과 태양의 의미와 색상에 담긴 뜻

    필리핀 역사 | 필인러브 HOME > 필리핀 정보 > 필리핀 역사 필리핀 국기의 상징: 별과 태양의 의미와 색상에 담긴 뜻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 콘텐츠 등록일 : 2024년 10월 1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필리핀 국기를 처음으로 사용했던 알라판 전투가 있었던 장소 필리핀이 스페인에 대항하여 무장 독립운동을 했을 때는 국기라는 것이 없었다. 카티푸난을 비롯하여 각 혁명 단체는 자신의 깃발을 가지고 사용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깃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족주의 무장 투쟁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KKK)은 직사각형에 "K.K.K"가 적힌 깃발을 만들었지만, '필리핀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가 1896년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특별히 깃발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898년부터였다. 현재 필리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기는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가 홍콩에 망명했을 때 도안한 국기에서 유래한다.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1897년 스페인 식민지 총독과 비악나바토 조약이란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이 조약에 따라 1898년 홍콩으로 망명했다. 홍콩 망명 중 국기를 도안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 에게 주고 깃발 제작을 맡겼다고 한다. 마르셀라 아곤실로는 결혼 전 수녀원에서 생활할 때 익혔던 양재 기술을 십분 발휘하여 국기를 만들었고, 1898년 5월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마닐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 직전에 아기날도를 만나 국기를 전달했다. 마르셀라 아곤실로가 정성껏 만든 필리핀 국기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98년 5월 28일 알라판 전투(Battle of Alapan) 에서 승리했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1898년 6월 12일,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고향인 카비테 카윗의 집에서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 국기를 정식으로 게양했다. 한편, 필리핀 독립 선언 시 사용했던 국기는 전쟁 중 분실되고 없다.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과 말롤로스 의회 개회식에서도 이 깃발을 사용했지만, 전쟁 중에 분실했다고 한다. 국기의 행방에 대한 부분은 1925년에 아기날도가 Baja 대위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필리핀-미국 전쟁 중 미군에게 쫓겨 루손섬 북부로 후퇴했을 때 팡가시난(Pangasinan) 지역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Symbols in the Philippine Flag 1898년에 있었던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확실한 승리였다. 마닐라만 전투에서 스페인이 진 것을 본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1898년 6월 12일 그의 고향 카윗의 집에서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날, 필리핀의 국기가 처음 정식으로 게양되었다. 그런데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어떤 의미를 담아 필리핀 국기를 도안했을까?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노란색으로 의인화된 태양을 그리고, 깃발 앞에는 Fuerzas Expeditionarias del Norte de Luzon(북부 루손의 원정군을 의미), 뒤에는 Libertad Justicia e Ygualdad(자유, 정의, 평등을 의미)라는 문구를 적어 국기를 디자인했다. 당시만 해도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 믿었던 시기였던 터라 미국의 국기 색상과 같은 색으로 국기를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평화, 평등, 진실, 용기, 자유 등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의미를 모두 디자인에 담았다. 그런데 필리핀에서 국기의 노란색 별이 무엇을 상징하느냐는 꾸준한 논란 대상이었다. 3개의 별 이 혁명 운동이 시작된 3개의 섬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섬이 어떤 섬이냐에 대해서는 루손섬, 민다나오섬, 파나이섬을 루손, 민다나오, 비사야 아일랜드 그룹 을 나타낸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뉜다. 필리핀 국기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자료는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했을 때 사용된 필리핀 독립선언문 이다. 독립선언문의 작성자인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 는 필리핀 독립선언문에 필리핀 국기의 의미를 제법 상세하게 적어두었는데, 이 세 개의 섬이 루손섬, 민다나오섬, 파나이섬을 나타낸다고 적었다. 하지만 파나이섬이 비사야에 있기 때문에 파나이가 비사야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고, 세 개의 별이 루손, 민다나오, 비사야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태양의 여덟 갈래 빛 이 나타내는 지역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좀 다르다. 마닐라, 카비테, 불라칸, 팜팡가, 누에바에시하, 딸락(Tarlac), 라구나, 바탕가스라고 안내하는 자료가 많지만,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며 혁명을 일으켰을 때 가장 먼저 참여했던 마닐라, 카비테, 불라칸, 팜팡가, 누에바에시하, 바탄(Bataan), 라구나, 바탕가스라고 적혀 있다. 별과 태양의 의미 ■ 3개의 노란색 별: 혁명이 시작된 3개의 섬인 루손섬(LUZON), 민다나오섬(MINDANAO), 파나이섬(Panay)을 의미 ■ 태양의 여덟 갈래 빛: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는 혁명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참여했던 8개의 지역 (Province)인 마닐라(Manila), 카비테(Cavite), 불라칸(Bulacan), 팜팡가(Pampanga), 누에바에시하(Nueva Ecija), 바탄(Bataan), 라구나(Laguna), 바탕가스(Batangas)을 의미 ■ 하얀색 삼각형: 혁명을 주도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KKK)을 의미 색상에 담긴 뜻 암브로시오 바우티스타는 필리핀 독립선언문에 "위대한 국가인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 보호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미국 국기의 색을 사용했다"고만 밝히고 국기에 사용된 색깔이 각각 의미하는 바는 기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관보(Official Gazette)에 따르면 국기의 파란색은 평화와 진실, 정의를 빨간색은 애국심과 용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필리핀의 학교에서는 역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빨간색이 독립을 이루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 파란색: 평화, 진실, 정의 ■ 빨간색: 애국심, 용맹, 용기 ■ 흰색: 평등에 대한 필리핀인의 희망 The white triangle stood for the Filipinos’ hope for equality; the blue color stood for peace, truth and justice; and the red stood for patriotism and valor. The sunburst of eight rays represented the first eight provinces to take up arms against Spain, and the three stars symbolized Luzon, Visayas and Mindanao.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필리핀 독립기념일) 필리핀 역사: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리핀 독립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필리핀 국기에 담긴 뜻 전쟁 중 국기의 사용 필리핀 국기는 필리핀은 전쟁 시 국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위치가 바뀐다.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 대신 애국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부분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즉, 국기의 붉은 색이 위쪽 또는 왼쪽으로 게양되어 있다면 필리핀이 전쟁 중임을 의미한다. 대통령 등 국가 주요 인물이 사망한 경우 조의를 표하기 위해 깃대 중앙에 반기 게양한다. - 평화 시기(Times of Peace):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위쪽 또는 왼쪽 - 전쟁 시기(Times of War): 애국심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위쪽 또는 왼쪽 필리핀 말라카냥궁의 대통령 전시관에 있는 일본 점령기 때의 필리핀 국기. 필리핀 국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위치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필리핀 국기의 규격과 색상 2:3의 비율을 갖는 태극기와 다르게 필리핀의 국기는 1:2의 비율을 갖는다. 국기 안에 그려진 흰색 삼각형은 정삼각형으로, 정삼각형 변의 길이는 세로의 길이와 일치한다. 또한 세 개의 별의 꼭짓점은 별의 중앙을 향해 있다. 국기의 파란색이 얼마나 진한 파란색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필리핀 독립 100주년이었던 1998년 제정된 필리핀 공화국법 제8491호(Republic Act No. 8491)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국기의 색이 지정되었다. 색상 색 번호 웹 색상 RGB 파란색(blue color) Cable No. 80173 0038A8 0-56-168 빨간색(red color) Cable No. 80108 CE1126 206-17-38 노란색(golden yellow) Cable No. 80068 FCD116 252-209-22 하얀색(white color) Cable No. 80001 FFFFFF 255-255-255 1946년 7월 4일, 필리핀 독립을 묘사한 디오라마 - 야얄라 뮤지엄(Ayala Museum) 소장품 실제 필리핀 독립 선언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집 - 카비테 카윗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Republic Act No. 8491 · Official Gazette: The Philippine flag · Official Gazette: Speech of President Aquino at the celebration of Independence Day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Controversial Philippine National Flag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Philippine Flag: Symbol of our Sovereignty and Solidarity ·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NHCP): The Philippine Flag: Symbol of Filipino Unity, Love of Country And National Pride · National Commission on Indigenous Peoples: National Flag Day in the Philippines · Rappler: FAST FACTS: Philippine flag misconceptions and other trivia Facebook X (Twitter) 링크 복사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 글 다음 글 >

  • 필리핀 관광부 뉴스 | 필인러브

    필리핀 관광에 대한 통계자료 및 필리핀 관광부(DOT)의 최신 소식 필리핀 관광부 Department of Tourism - Philippines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Filter by Tags 관광부 뉴스 관광슬로건 여행박람회 통계자료 검색결과: 81 2024년 1월 8일 필리핀 관광부: 방문객 1위 한국, 한국인이 필리핀 여행을 가장 많이 떠나는 달은? 2024년 1월 8일 필리핀 관광부: 2023년 필리핀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와 국적별 통계 2023년 12월 28일 필리핀 관광산업 GDP 기여도: 코로나 이후 필리핀 GDP에서 관광산업의 비중은 어떻게 변했을까? 2023년 12월 28일 필리핀 관광산업 고용규모: 필리핀 사람 100명 중 11명은 관광업 종사자 2023년 12월 28일 필리핀 관광산업: 필리핀은 정말 동남아 관광대국일까? 2023년 12월 28일 필리핀 관광산업의 GDP 기여도가 24.6%인 동시에 12.9%인 이유 2023년 12월 28일 세계 최대 관광대국은?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 순위 2023년 12월 27일 필리핀 관광부: 2023년 보라카이를 방문한 관광객 수와 외국인의 비율 2023년 12월 27일 필리핀 관광부: 2000년~2022년 필리핀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 추이 2023년 12월 15일 필리핀 관광부: 2023년 134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한 해외 여행지 2023년 11월 10일 필리핀 관광부: 2023년 보라카이를 방문한 관광객 수 182만 명 돌파 2023년 9월 3일 [사진] 필리핀 여행박람회: 2023년 필리핀 트래블마트(Philippine Travel Mart 2023) 1 2 3 4 5 1 ... 1 2 3 4 5 6 7 ... 7 Department of Tourism 필리핀관광부 DOT-Korea 필리핀관광부 한국사무소

  • ​​필리핀 여행 | 필인러브

    필리핀에서 가볼 만한 곳은 어디일까? 필인러브에서 지역 여행지와 여행 ​​관광명소를 확인해 보세요. 필리핀 여행 LOVE THE PHILIPPINES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어떤 여행을 원하시나요? 공원 농장투어 묘지 문화시설 성지순례 실내여행지 액티비티 검색결과: 11 농장투어 필리핀 딸락: 보어 염소와 도퍼 양을 키우는 대규모 염소농장 농장투어 공원 필리핀 마닐라: 퀘존 메모리얼 서클 공원에 가면 뭘 볼 수 있나요? 묘지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최고의 초호화 럭셔리 묘지, 헤리티지 메모리얼 파크(Heritage Memorial Park) 액티비티, 실내여행지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의 실내 롤러스케이트장 - Rolyo Sk8House 1 2 3 1 ... 1 2 3 ... 3 필리핀 역사유적지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 신청 방법(무료 가이드 투어)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역사 유적지: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홍보관, 말라카냥궁의 바하이 웅나얀(Bahay Ugnayan)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역사 유적지: 말라카냥궁의 테우스 맨션(Teus Mansion)과 탄두아이 럼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역사 유적지: 필리핀 현대사와 함께하는 장소, 말라카냥궁의 칼라야안홀(Kalayaan Hall) 1 2 3 4 5 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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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의 맛있는 이야기, 필리핀 전통음식과 열대과일 소개 필리핀 전통음식·열대과일 Filipino cuisine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태그 danggit 전통음식 검색결과: 3 danggit 필리핀 음식: 강력한 냄새의 맛! 말린 생선 당깃(danggit) Taho 필리핀 전통 음식: 달콤한 따뜻함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순두부 따호(Taho) Piaya 필리핀 전통 음식: 바콜로드의 마스코바도 설탕과 피아야(Piaya) 1 1 ... 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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