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 일상의 풍경과 2022년 마카티 크리스마스 빛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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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22년 11월 20일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라고 하여 들뜨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떠드는 것을 보는 일은 분명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해마다 시끄러운 파티 풍경을 보면 좀 시들해진다. 넘쳐 나는 싸구려 선물이야 선물을 줄 사람은 많은데 가진 돈은 많이 없으니 그렇다고 이해하지만, 어질어질한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해서는 그런 것을 살 돈으로 좀 밝은 전등을 사서 일 년 내내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누가 파티에 오라고 하면 기꺼이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참치 통조림 따위를 선물로 받아오기도 하고, 라플 행사를 한다고 하면 약간의 기부를 하기도 한 것은 이런 일련의 모습 또한 필리핀의 일부이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한 가족이 폭죽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좀 진력이 나고 말았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왼손에는 2kg 남짓한 쌀과 약간의 채소가, 오른손에는 폭죽이 들려 있었는데 허름한 옷차림에서부터 싸구려 슬리퍼의 뒤축까지 가난의 흔적이 역력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폭죽을 사서 즐기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만 아빠의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을 보니 폭죽을 살 돈으로 다른 생필품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하긴,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는 빚까지 내서 성년식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필리핀이다. 도움을 주지도 않을 것이면서 타인의 삶의 태도를 놓고 뭐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난을 이기지 못하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상당히 묘하다. 당장 다음날 쌀이 떨어졌다면서 손을 벌릴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흥청망청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는 일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외출도 하지 못하고 너무나 조용한 집 안에 앉아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폭죽 소리를 들으면서 다들 무엇을 하며 12월 25일을 보낼지 궁금해해야만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텅 빈 듯이 조용했던 공원 구석구석이 잔뜩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 조명쇼도 근사했지만, 그것보다 보기 흐뭇한 것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였다. 아빠 어깨에 앉은 아이의 모습이 꼭 그림처럼 예뻤다. 마카티 아얄라 트라이앵글의 페스티벌 오브 라이트(Festival of Light)는 이미 몇 번이나 봐서 내게 전혀 새롭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일상의 풍경은 새롭고도 고맙게 느껴졌다. 호텔에서 하는 수천 페소의 크리스마스 디너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만, 이런 조명쇼라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약간의 부지런함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이 마스크나 손소독제가 아닌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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