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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예외적인 경제활동과 예외적인 깔띠마시장의 갈치

⚐ 작성일:

2021년 12월 12일

아마 모르긴 몰라도 농수산물 시장 내에서 가장 시원한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에어컨이 있는 모양인지 정육점 안은 깨끗하고도 시원했다.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냉장고 안에는 부위별로 다듬어진 고기가 가득 빼곡하게 누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살까 잠깐 망설이다가 삼겹살과 돈가스용 고기를 각각 한 팩씩 사기로 마음먹었다. 동원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사고, 무려 1.8kg이나 되는 아주 큼지막한 문어를 540페소라는 좋은 가격에 샀음에도 불구하고 수산물 코너 쪽을 떠나지 못한 것은 슈퍼마켓에서는 보기 힘든 커다란 갈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바다에서 갓 잡아낸 것처럼 싱싱한 갈치가 특유의 은빛 색감을 뽐내며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런 갈치를 보았는데 지갑이 열리지 않을 수 없다. 서둘러 700페소를 내고 묵직한 갈치를 손에 넣고, 제주상회 야채가게에 가서 오이며 피망 같은 야채를 잔뜩 산 뒤 과일 가게에 가서 바나나를 한 송이 사는 것으로 장보기를 마쳤다.


나의 절친인 완완딩 씨의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셨다. 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 설명에 알겠다고는 답을 해주셨지만, 정말 이해하신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언가 사서 보낼 때마다 돈도 없을 터인데 쓸데없는 헛돈을 쓴다는 말씀을 빼놓지 않고 하셨다. 가끔 취직자리를 알아보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다. 어머니 생각처럼 집에 있다고 하여 온종일 놀고먹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아침의 시작이 다른 이들보다 좀 늦을 뿐이다. 9시 시간에 맞추어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나로서는 아침 일찍 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기도 했다.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하는 터라 아침 시간의 움직임이 한 박자 정도 늦게 흘러가기는 해도 나는 제법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시간 흐름을 깨고 다른 때보다 좀 더 서둘러 움직인 것은 깔띠마 시장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시로 심심하면 들리던 곳이건만, 작년 3월 이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시장 가는 일에서조차 용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 안타깝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도 2차까지 끝냈고, 문어도 먹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나와는 좀 맞지 않는 생활이지만, 식탐이 내 게으름을 이겼다. 제주상회에서는 단돈 10페소의 수수료만 주면 생선 구매 대행까지 해주지만, 제주상회 꾸야가 문어까지 잘 사다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직접 장보기에 나선 것이다. 다행히 한 끼에 먹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큰 문어를 손에 넣고, 기대하지도 않던 갈치까지 살 수 있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침대를 벗어나 시장에 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예외적인 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커다란 갈치는 700페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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