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 부활절과 돈가스, 그리고 곰 계란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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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21년 4월 3일
온 세계가 서서히 잠이라도 드는 것처럼 시나브로 불이 꺼지면서 어둠이 도시를 덮었다. 공기마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올해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운되어 버렸지만, 원래 부활절은 필리핀에서 해외여행 최고 성수기이다.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게 될 정도로 날씨가 더울 때인 데다가 초·중·고 학생들의 여름방학이라 징검다리 휴일을 만들어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 여행도 많이 떠나서 부활절 전후한 기간이면 고속도로 톨게이트 주변으로 차가 꽉 막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메트로 마닐라의 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집에서 머물게 했다. 3월 29일부터 시작된 야간통행 금지는 무려 오후 6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해가 질 즈음만 되어도 주변이 온통 조용해진다. 다소 번잡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복작복작 활기찬 것이 필리핀의 매력 중 하나인데, 나에게는 이 조용함이 다소 기묘하게까지 여겨진다.
휴일의 의미가 상실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달력 숫자가 붉게 칠해진 날은 좀 기분이 달라진다. 하지만 부활절이라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에피소드가 긴 드라마를 보면 시간이 즐겁게 휙 지나간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드라마 시청에는 영 취미가 없다. 길고 긴 휴일 동안 내가 한 것은 단 두 가지. 나중에 어떤 백신을 맞을까 백신의 종류에 관한 공부를 한 것과 평소와 다르게 좀 더 신경을 써서 밥을 해 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좀 더 힘든 것은 후자였다. 세상에는 남이 할 때만 쉬워 보이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요리도 그중 하나이다. 그럭저럭 10분이면 될 저녁 준비를 상당히 길게 오랫동안 준비하고, 나로서는 좀 특별하게, 마치 외식을 한다는 느낌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이야 대충 아무것이나 먹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주의이지만, 이걸 한다고 잡념 없이 하루가 후다닥 지나간 느낌이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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