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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물이 절반이나 남았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 제주상회의 배달 서비스
⚐ 작성일:
2020년 3월 31일
사물에 대한 긍정성이 얼마나 되는지 보려면 컵에 물을 절반 정도 담아 놓고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어."라고 보는 사람인지 "물이 절반이나 남았어."라고 보는 사람인지 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으니 물을 좀 더 구해보자."와 "물이 절반이나 남았으니 그냥 쉬자."라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람마다 상황에 대한 접근 태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나로서는 왜 필리핀 사람들이 지역사회 봉쇄‧격리조치를 'community quarantine'과 'enhanced community quarantine' 그리고 'Extreme Enhanced Community Quarantine' 등으로 세세하게 나누는지 알 수는 없지만, 락다운마저 그냥 락다운(lockdown)과 토탈 락다운(total lockdown)으로 나누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말장난이 방역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시나브로 흘러서 마닐라가 봉쇄된 지도 어느새 3주 차, 인간이란 적응하는 존재라서 이 상태에 슬그머니 적응하고 있다. 외출하지 못하여 생기는 답답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봉쇄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는 것은 걱정이다. 격리 기간이 계속되면 다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열흘 뒤의 일을 그 누가 알겠는가만은 개인적으로는 4월 13일이 된다고 봉쇄 조치가 풀릴 것이란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형편인데, 고작 열흘 만에 이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을 듯하여서 하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태에 대해 벌써 절반이 흘렀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장기전에 대비하여 채소와 과일을 좀 사기로 했다. 격리 기간이 해제된다고 하여 바로 바깥으로 뛰쳐나가 예전처럼 마닐라 곳곳을 돌아다닐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니, 계란이라도 잔뜩 사서 비축해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파사이 깔띠마시장(Cartimar Market) 내에 있는 제주상회에서는 요즘도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덕분에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마음껏 살 수 있다. 바기오에서 마닐라까지 물류 배송이 쉽지 않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가격도 오르지 않았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주문이 불가능하다는 품목도 있다. 너무 조금 주문하면 배달하러 오시기 성가실까 봐 콩나물을 두 봉지나 주문해 놓고 콩나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잔뜩 검색해두었는데, 콩나물이 없다는 답장을 받으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깟 콩나물이 무슨 대수인가. 요즘처럼 외출이 어려운 시기에 싱싱한 사과를 먹게 해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아작아작한 사과를 입안 가득 베어 물면서, 나는 문자메시지 한 번 주고받은 적 없는 제주상회 사장님이 건강하시길, 그래서 언제까지나 "뚝배기 한국인의 마음으로" 마닐라 곳곳에 초록색 채소를 배달해주시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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