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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다그다그(dagdag)가 있는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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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등록일:

2019년 12월 28일

필리핀 빵집 판데살

"안녕! 나 왔어!"

"어, 앤이다!"


한 달 만의 방문이었지만, 아이는 내 이름을 정겹게 불러주었다.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안에서 빵을 굽던 꾸야가 바깥으로 나와 나를 보면서 빙글빙글 웃는 것을 봐서는 나처럼 매달 와서 빵을 모두 사 가버리는 외국인 손님이 또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갓 구운 판데살 빵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빵을 많이 사려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스스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신통하게 여겨질 정도로 어린 꼬마 녀석들까지 기꺼이 어른들 일을 돕는 곳이 산타 줄리아나 마을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또 크면 큰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두 집안일을 돕는다. 모두 군소리 하나 없이 기꺼이 잔심부름을 나서서 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가 빵집을 하면 가게 일을 돕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가게 안쪽에서 아버지와 삼촌들이 빵을 만드는 동안 손님에게 빵을 파는 일은 오롯이 아이 몫이 되었다. 그러니 나와 같은 손님이 등장하여 가게 안의 빵을 다 팔아주는 것은 아이에게 기쁜 일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색다른 광경이니 구경거리가 되는 데다가 빵을 다 팔아버리면 가게 보는 일을 쉬어도 된다. 나는 아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타루칸 꼬마 녀석들의 작은 입가에 달콤한 설탕을 잔뜩 묻혀주기 위해 진열대의 빵을 모두 사겠다고 말해주었다. 아이가 기쁜 얼굴로 가게 안쪽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러왔고, 진열대의 빵을 모두 비닐봉지에 담느냐고 잠시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빵 가게 주인아저씨는 학교 다닐 때 뛰어난 학생이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빵집을 차린 것만 해도 그렇다. 마을에 빵집이 없으니 빵 가게를 열면 좋겠다고 사업을 구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성적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님이 빵을 잔뜩 살 때 어떻게 포장하는 것이 편한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던 것만은 분명했다. 만날 마구잡이로 빵을 담아놓고 나중에 몇 개였는지 세어보느냐고 애를 먹더니, 갑자기 비닐봉지 하나에 100페소 어치씩 빵을 담는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빵 가격을 계산하는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100페소짜리 빵 봉지가 18개가 되자 진열대에는 빵 몇 개만이 남았을 뿐이다. 아저씨에게 몇 개 남은 빵까지 모두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이가 가게 안쪽에서 빵이 잔뜩 담긴 쟁반을 가지고 나와서는 이것도 사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매우 호탕한 모습으로 그것까지 다 사겠다고 아이에게 답을 했다. 빵집의 진열대를 완전히 싹 비우고, 셈을 치르려고 지갑을 꺼내는데 아이 엄마가 빵이 잔뜩 담긴 봉지 하나를 흔들어 보이면서 내게 "다그다그(dagdag)!"라고 말을 해주었다. '다그다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영어로는 '프리(공짜)'라는 뜻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빵을 게스트하우스 방에 가져다 놓고, 타루칸 마을에 가져다주려고 산 비누를 두 개 꺼내 다시 빵집에 갔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비누를 내밀면서 '다그다그'라고 외쳤다. 향이 진한 비누 두 개에 아이와 아이 엄마와 아이 아빠까지 모두가 방글방글 웃었다. '다그다니'라니, 세상에 이보다 멋진 말이 있을까 싶었다.



필리핀 빵집 판데살
진열대에 있는 빵 대부분은 5페소이다. 가장 비싼 빵은 치즈가 든 빵인데 7페소이다. 정확히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열대 안에 있는 빵을 모두 사면 대략 2천 페소 정도가 든다.
필리핀 빵집 판데살
진열대가 모두 비워지면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다. 평소에는 가난뱅이지만, 타루칸 마을에 갈 때만은 만수르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필리핀 빵집 판데살
빵 가격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시간, 엄숙하고도 진지한 시간이다.
필리핀 빵집 판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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