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 마카티 SM 슈퍼마켓에서 라면을 대량구매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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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19년 11월 16일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를 들으면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텀블러며 장바구니 따위야 늘 챙겨 다니고 있지만, 비닐봉지 사용을 완전히 멈추기란 쉽지 않다. 생선이며 육류를 살 때면 비닐봉지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 가게에 식료품 운반을 위한 그릇을 들고 가서 담아달라고 하면 된다고 듣기는 했지만, 언제 시장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늘 적당한 그릇을 챙겨서 다니기란 힘든 노릇이다.
개인적으로는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찬성하면서도 좀 불만이다.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매우 찬성이지만 대뜸 플라스틱 금지정책(plastic ban)부터 만들어 놓고 별다른 환경교육도 없이 벌금만으로 시행을 강제하니 하는 이야기이다. 플라스틱 금지정책 덕분에 비닐봉지가 마구 버려지는 일은 줄었지만, 대신 갈색 종이봉투(brown paper bag)의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 종이봉투가 마구 버려지고 있으니, 나무를 아까워하지 않는 환경정책이 정말 환경을 위한 정책일까 싶은 마음마저 든다. 불가피하게 비닐 포장재가 필요한 경우도 생기는데,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무조건 비닐봉지는 줄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은 전혀 쓰지 않는 분들이 들으면 언짢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상황에 맞추어서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닐이든 종이봉투이든 어떠한 형태라도 되도록 포장을 거절하는 편이지만, 비가 잔뜩 오는 날 얇은 종이봉투에 고기 따위를 담아 주면 매우 난감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요즘 필리핀에서는 상당수의 쇼핑몰에서 비닐봉지 사용 금지 정책에 따라 물건을 종이봉투에 담아주는데, 이 종이봉투가 어찌나 품질이 나쁘고 얇은지 봉투 얇게 만들기 대회라도 하는 모양이다. 집에 가지고 갈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지만, 계산대를 돌아서는 순간 쭉 찢어지는 꼴을 몇 번이나 보았으니 품질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쇼핑몰에서는 종이봉투가 싫으면 재활용이 가능한 에코백을 사라고 권유하지만, 그것도 딱히 내키지 않는 것이 에코백의 크기가 작은 데다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에코백 역시 품질이 좋지 못한데, 여러 번 쓰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한 품질이라 구매가 망설여진다. 휴대할 수 있게끔 만든 접이식 장바구니가 아니라서 들고 다니기도 힘들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부피가 좀 큰 불편함을 감수하고 들고 다니려고 쉽지 않다. 기껏해야 몇 번 쓰고 나면 버리게 생긴 에코백을 보면 이 에코백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얼마 전에는 마카티에 있는 SM 슈퍼마켓에 갔다가 물건을 대량 구매하여도 박스 포장을 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마카티 시의 규정에 따라 슈퍼마켓에서 나온 종이상자를 전부 지역 내 초등학교에 보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SM 슈퍼마켓 직원은 종이봉투 크기가 작으면 에코백을 사서 담아가라고 제안해 왔지만, 타루칸 마을에 가져다주려고 라면 등을 잔뜩 산 터라 여간 난처하지 않다. 피나투보산에 사는 아이따족 아이들에게 기부할 용도로 물건을 잔뜩 산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에코백에는 담아가기 어렵다고 통사정을 했지만, 쇼핑몰 규정을 따라야만 해서 박스 포장을 해줄 수가 없단다. 직원이 에코백을 수십 개 사기 힘들면 OFW 해외노동자를 위한 발릭바얀 박스(Balikbayan Box)를 사서 그 상자 안에 담아가면 된다고 귀띔해주었지만, 내가 산 물건을 다 담으려면 상자값으로 천 페소는 족히 나올 지경이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고 물건을 사지 않고 그냥 가려니 물건을 고른다고 허비한 시간이 아깝다. 그러다가 문득 전에 시장에서 사둔 비닐봉지 생각이 났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사둔 비닐봉지를 종이상자를 구하지 못해 이용하게 될 줄이야 몰랐지만, 그것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길쭉한 막대 빨랫비누 80개와 라면 480개, 거기에 양념까지 카트 가득 샀는데 상자에 담아줄 수 없다니 뭔가 불합리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친환경 정책'이란 단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환경보호에 반대하면 어쩐지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드니 조용히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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