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 즐거운 한 시간, 필리핀 말라카냥궁 대통령 박물관 투어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2019년 10월 23일
"그래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곳에 살아요?"
"아뇨. 너무 넓다고 이곳에서 살기 싫어하세요. 두테르테 대통령은 파식강 건너 말라카냥 공원 안에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라카냥궁의 박물관 안내원은 척 봐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났다. 에어컨 잘 나오는 시원한 방에 있다가 왔는지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매우 친절하게 박물관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데, 방문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나 자랑거리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안내를 해준다는 기분이 살짝 들었던 것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 마르코스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모두 잘 아시는 분이죠?"라는 식으로 대충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라몬 막사이사 대통령이 재임했던 1950년대 중반만 해도 말라카냥궁의 정원에서 시민들이 모여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다고 크게 자랑했다. 외국인은 필리핀 대통령이라고는 마르코스밖에 알지 못하지만, 필리핀 역대 대통령 중에도 괜찮은 대통령이 있었다고 전하고 싶은 눈치이다. 하지만 박물관 안내원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내가 최근 몇 달 사이에 필리핀 역사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공부했다는 것이다. 잘 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마누엘 케손 대통령의 초상화를 보고 바로 누군지 알 정도는 공부했으니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보기 드물게 좋은 인물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진행되는 단체 투어라서 전시물을 원하는 만큼 오래 볼 수 있지는 못하여 아쉬웠지만, 그래도 책에서만 보았던 필리핀 역대 대통령의 실제 흔적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거웠다.
각설하고, 안내원의 자랑대로 막사이사이 대통령 시절처럼 말라카냥궁이 계속 국민을 위한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1957년 세부에서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부통령이던 카를로스 가르시아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업적은 보이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1961년 대선에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이 당선된다. 하지만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은 1965년 선거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패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1965년에서 1986년까지 무려 21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바쁘던 그 시절, 말라카냥궁은 베일에 싸인 채 일반인들에게 비공개되었다. 나중에 1986년에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취임한 뒤 말라카냥궁의 시설 일부를 개방했지만,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때처럼 방문객이 궁전의 잔디밭에서 소풍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개방한 것은 아니다. 2019년인 현재도 말라카냥궁에서는 칼라야안홀(Kalayaan Hall)의 대통령 박물관 일부 공간만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칼라야안홀
Kalayaan Hall
넓고 넓은 말라카냥 팰리스 단지(Malacañang Palace complex) 안에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칼라야안홀(Kalayaan Hall)이라는 건물이다. 칼라야안홀은 1920년에 건축된 건물로 말라카냥궁 최초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칼라야안홀은 필리핀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Fine Arts)과 마닐라 중앙 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 등의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 랄프 해링턴 도안(Ralph Harrington Doane)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미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공공 건축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건물로 평가된다.
아무튼, 여행사 사이트에서 가끔 말라카냥궁 박물관(Malacañang Museum) 투어를 하면 스페인 식민지 시기 건축한 건물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보게 되는데, 사실 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칼라야안홀은 미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데다가, 말리카냥궁 박물관 투어 중에는 칼라야안홀 외 다른 건물을 볼 수 없다. 건물 내에서 박물관 안내원과 함께 관람 중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칼라야안홀이 있는 6번 게이트 바깥으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있으며 다른 구역으로 가서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 신청 방법
Malacañan Palace Museum and Library
■ 주소 :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 2/F Kalayaan Hall, Malacañang. J.P. Laurel Street, San Miguel, Manila
■ 위치 : 필리핀 마닐라 산미구엘, 말라카냥궁 6번 게이트(Gate 6) 앞 - 칼라야안홀(Kalayaan Hall)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의 대통령 박물관(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은 의외로 견학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한번 방문해 볼 만하다. 박물관 안내원의 설명이 정확하고 세밀하여 듣기가 좋은 데다가 관람료도 무료이다. 단,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에 참여하려면 박물관으로 이메일을 보내어 방문 예약을 해야 한다. SOP(REQUEST FORM and Standard Operating Procedure)라는 이름의 투어신청서를 작성하여 여권 사본과 함께 이메일을 보내면 말라카냥궁 측에서 방문 날짜를 확인하는 이메일을 보내준다. 이 이메일을 받은 뒤에 신청 날짜에 박물관을 방문하면 된다. 복장 규정(드레스 코드)이 있지만 엄격하지는 않고, 그저 반바지에 슬리퍼, 민소매옷 등만 입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는 일반 미술관처럼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아니라 박물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칼라야안홀(Kalayaan Hall) 1층에서부터 별관 2층까지 관람하게 되는데, 관람 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일부 전시실만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요즘은 마누엘 케손 대통령,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 그리고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전시실과 두테르테 대통령 전시실을 중심으로 박물관 투어가 진행되는데, 관람 동선이나 전시품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듯하다. 박물관 안내원에게 마르셀라 아곤실로가 최초의 필리핀 국기를 만들 때 사용하던 골무가 말라카냥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을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그 골무를 볼 수 있냐고 요청했지만, 비공개 보관되고 있어서 박물관 관람객은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입었던 옷이나 시각 장애인용으로 제작된 두테르테 대통령의 초상화 등을 보는 일은 퍽 인상적이다.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이 하와이로 도망가기 전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었다는 발코니가 어딘지도 볼 수 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