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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디비소리아 시장의 거울과 구슬 사이
⚐ 작성일:
2019년 10월 18일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려는 듯했지만 디비소리아 재래시장(Divisoria Market)까지 간 것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상당히 중요한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간 김에 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목적은 구슬 장난감을 사고, 디비소리아에 케이팝굿즈가 판매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덜 중요한 쪽이 케이팝굿즈였다. 하지만 덜 중요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해외통신원 활동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매월 최소 2개 이상의 글을 써야만 하는데 한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루칸 마을에 가지고 가는 물건을 사는 돈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받는 원고료로 충당하고 있는 터라, 부자가 된 기분으로 쇼핑을 하려면 글을 꼭 써야 했다. 한류스타에 대해서는 필리핀 사람들보다도 더 모르지만, 필리핀 내 한류 문화에 대해 무언가 써야만 했으니 케이팝 굿즈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구슬치기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일전에 타루칸마을에 갔을 때 꼬마 아이들에게 다음에 올 때는 졸렌(JOLEN. 타갈로그어로 '구슬'을 의미)을 사다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었으니,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아떼 앤이 구슬 사 왔다!"라고 외치려면 구슬을 꼭 사야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디비소리아의 999 쇼핑몰이며 168 쇼핑몰은 화개장터처럼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가 시장의 특징이지만, 건물 안을 한참이나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장난감 가게마다 졸렌이 있는지 물어봐도 판다는 곳이 없었다. 다들 플라스틱 로봇이며 자동차 따위만 잔뜩 파는데, 언뜻 보면 알록달록 예쁘지만, 과히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비싸기만 한 플라스틱 장난감은 타루칸 마을로 가지고 가봤자 나눠 주기도 곤란하고 며칠 뒤면 부서져 쓰레기가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졸렌 있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열 번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기껏 디비소리아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일까 싶어 마음이 울적해서 74페소를 주고 삐또이 아저씨에게 선물할 얼굴 마스크와 내 머리끈을 사서 가방 속에 집어넣고 비록 졸렌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무언가 샀으니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삽만 더 파면 금광을 발견했을 터인데 열심히 땅을 파다가 포기한 사람에 대한 우화가 생각나는 일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번만 더 물어보자고 해서 들어간 가게에 졸렌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가격도 싸다. 졸렌 한 봉지에 구슬 서른 개가 들어 있는데 30페소이다. 심지어 왕 구슬도 보이니 만세이다. 점원에게 몇 개나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서 가게에 있던 구슬 12봉지를 모두 사서 가방에 넣고 나니 급격히 행복해진다.
그런데 이날은 운이 상당히 좋은 날이었다. 졸렌을 사서 으쓱해진 마음으로 렉토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액세서리 가게를 발견했다. 시골 동네 시장이나 야시장에서 봄 직한 거울이며 빗, 머리끈 등을 묶음으로 파는 가게였다. 20페소에서 35페소 사이의 가격대를 가진 거울의 품질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색깔이 산뜻하다. 타루칸 마을에서 여자아이들이 다 깨진 손거울을 들고 보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 거울을 좀 사기로 했다. 피나투보 화산까지 들고 가는 일은 걱정이었지만, 진짜 유리가 아니라서 깨지지는 않을 터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작은 부침개만한 거울 80개와 손거울 80개, 빗 84개 등을 골랐다. 그런데 내가 고른 물건을 포장하는 일에는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플라스틱이니 무겁지는 않으리라고 무게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짐의 부피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은 상자로 6개 상자나 나온다. 그래도 액세서리 가게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외국인 여자가 왜 이렇게 거울을 많이 사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디에 쓰는 것인지 묻기에 산에 사는 아이따족 사람들에게 기부하려고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포장이 단단해야겠다고 하면서 박스에 포장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꾸야 하나가 내 짐을 붙잡고 포장에 들어갔는데, 어찌나 칭칭 테이프로 감아주는지 박스 테이프값만 20페소는 나오겠다 싶을 정도이다. 한참이나 걸려서 거울 포장을 마친 꾸야는 렉토 사거리로 가서 리베르타드역으로 가는 LRT를 탈 것이라는 내 말을 듣고 상자를 들고 길가로 나와 이트라이시클까지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팁을 놓고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양을 한다. 필리핀 사람이 팁을 사양하다니! 괜찮다고, 고마워서 그런다고 다시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팁을 받아 들고는 조심해서 가라고 이야기를 건네왔다. 나를 배웅해주는 꾸야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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