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산타 줄리아나 마을의 작은 빵 가게
⚝ 저작권 안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필인러브에 있으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를 금지합니다.
⚐ 콘텐츠 등록일:
2019년 9월 7일
필리핀 시골 마을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작은 빵 가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힘을 합해 빵을 굽고, 어린아이들까지 가족들이 모두 합세하여 돌아가며 가게를 지키는 빵 가게 말이다. 온종일 가게 문을 열어도 5페소 또는 6페소짜리 빵을 팔아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겠지만, 가족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소박하게 살아갈 정도는 될 것이었다. 아직 가게 간판조차 갖추지 못한 작은 빵 가게였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산타 줄리아나 마을과 같은 작은 마을에 새로 가게가 생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서 간판이 없어도 가게 홍보는 저절로 된다. 나와 같은 여행객도 빵 가게가 새로 생겼음을 알아챌 정도이니 마을 사람 모두 알 것이 틀림없었다.
대도시 마닐라였다면 사람들이 한창 바쁘게 움직일 저녁 시간이었지만, 산타 줄리아나 마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도시와 좀 다르다. 해가 지면 마을 전체에 검은 도화지를 덮은 것처럼 어둠이 가득해지고, 별이 정수리 위에 올라오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게 된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려서 그런지 동네에 비 냄새가 가득했다. 흙냄새와 나무 냄새에 가까운 비 냄새였다. 그리고 그런 비 냄새를 가득 품고 어두워진 저녁 시간에 빵 가게를 지키고 있던 것은 상큼하게 단발머리를 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진열대에 놓인 빵을 한꺼번에 다 사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자기 집 가게에 외국인이 손님으로 와서 빵을 전부 사겠다고 하는 일은 처음이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동네 사람들이 10페소를 쥐고 와서 빵 두 개를 집어 가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는 손님이 진열장 위 칸에 놓인 빵을 모두 사겠다고 말을 한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이는 내가 아무리 "전부"라고 말해도 믿지 못하고는 빵을 몇 개나 살 것이냐고 거듭 물어왔다. 내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동네 청년 셋이 빵을 사러 와서 내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에게 내가 정말 빵을 다 사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 시켜 주었다. 청년들은 가게에 서서 내가 빵을 사는 것을 텔레비전 보듯 구경하면서 웃었다. 빵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집에 가지도 않고 옆에 서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런 재밌는 구경거리는 좀처럼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는 빵 세는 일에 도무지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친구 도움까지 받아 빵을 담으면서도 몇 개까지 숫자를 세었는지 잊었는지, 기껏 봉지에 담아둔 빵을 쟁반에 쏟아붓고 다시 세기 시작한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가까스로 빵을 다 담기는 했지만, 다 합해서 가격이 얼마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고 제 엄마를 불러왔다. 엄마가 계산기를 꺼내 심각한 얼굴로 계산을 시작했고, 가게에 색다른 손님이 왔다는 소문이 났는지 가게 안쪽에 있던 아이 아버지까지 바깥으로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저 아이가 수줍어하는 것이 귀여워서 나와 청년들과 아버지까지 모두 다 함께 빙글빙글 웃는 와중에 계산을 마친 아이 엄마가 내게 활짝 웃어왔다. 아이 엄마는 어려운 계산을 해낸 것에 스스로 대견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빵값을 치르면서 아이가 빵 개수를 정확히 세었는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빵 개수를 덜 받았을지에 대해 걱정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5페소짜리 빵을 많이 팔아봤자 재룟값을 빼고 나면 이문이 빤할 터인데, 아이가 빵을 더 주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는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