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멈춤을 아는 만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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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19년 8월 18일
내가 타루칸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는 까닭에 대해 굳이 적어보자면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웃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족을 배신할 만큼의 돈이나 돈을 버릴 만큼의 가족이 없는 데다가 절세 미인도 아니고 무엇인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단한 일로 기뻐하려면 기뻐할 일이 너무 띄엄띄엄할 인생을 사는 터라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타루칸 마을에 머물 때만큼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울 것도 많다. 타루칸 마을 사람들이 식빵 80개를 세는 일에도 한참 걸리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빵 80개를 나눌 때는 10개씩 8줄로 만들어 세면 편하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는 해도, 어떤 바나나가 맛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안다. 빵을 세어볼 일은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바나나는 매일 먹는 것이니 살면서 좀 더 중요한 것을 잘 아는 셈이다. 그뿐인가. 물건 귀한 줄 모르던 내게 종이 상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도 알려준다. 때로는 내게 "멈춤을 아는 만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해주기도 한다.
타루칸 마을에는 백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고, 아이따족 아이들 이름은 발음하기가 쉽지 않아서 머리가 나쁜 나는 좀처럼 아이들 이름을 외우지 못하지만, 엄브렐라라고 애칭으로 부르는 아이가 있다. 작년인가, 우산과 아이를 바꾸자는 농담을 나눈 뒤부터 우산(Umbrella)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엄브렐라는 요즘 낯가림이 더 심해져서 엄마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매우 가난한 편이라서 타루칸 마을로 가지고 갈 무언가를 사기 위해 KOFICE에 글 쓰는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따로 구해야 했을 정도이지만, 엄브렐라 엄마가 그런 내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한국인이고 매번 무언가 한가득 가지고 가니 나를 상당히 부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엄마 얼굴에는 딸내미가 내게 안기면 좋겠다는 마음이 역력히 보였지만, 이제 3살 된 아이가 엄마 마음을 알 리가 없었으니 매번 무척 비협조적으로 나서서 엄마를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브렐라 엄마가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내가 아이를 안아보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아기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이가 울거나 칭얼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만 좋아한다. 그러니 한 발자국 옆에 서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편을 나로서는 더 안심이다. 그래서 아이가 내 품에 안기지 않아도 나는 엄브렐라가 참으로 귀여웠다. 좀 괜찮은 것이 생기면 엄브렐라부터 챙겨주는 것이 공평하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못한 편이고, 누군가에게 마음이 좀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엄브렐라 엄마는 만족이라는 감정을 충족하기가 매우 쉬운 편이고, 그 감정이 충족되면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우산을 받은 날도 그랬고, 신발을 받은 날도 그랬지만, 무언가 좀 멋진 것을 하나 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나면 추가로 다른 물건을 탐내는 법이 없다. 타루칸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라고 D가 기부한 옷더미 속에는 선명한 주황색 긴 소매 옷이 들어 있었다. 두어 번 입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지 아주 새것이라 따로 챙겨두었다가 엄브렐라의 엄마 팔에 끼워주었다. 산속에서는 보기 힘든 예쁜 옷을 받은 엄브렐라의 엄마는 매우 흐뭇한 얼굴로 환하게 웃더니, 그것으로 매우 만족을 했는지 내가 가지고 간 다른 물건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멀리서 보니 다른 아주머니가 상자를 받으러 가자고 이야기를 해도 이미 옷을 받았다면서 사양하는 눈치이다. 자신이 상당히 좋은 것을 가졌으니, 다른 사람들도 무언가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엄브렐라 엄마를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에 세상이 더 재밌다는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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