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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일로일로에서 온 디낙양 축제의 드럼 연주자 제이크 이야기

⚐ 작성일:

2017년 4월 22일


"그렇다면 공연을 위해 연습을 얼마나 오래 하는 거야?'

"거의 일 년 내내 하는데 두 달 정도는 집중 연습을 해."


Tribu Salognon에 소속되어 디낙양 축제(디나기앙 축제)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제이크는 벌써 6년째 드럼을 치고 있다고 했다. 연습은 고되지만 그래도 드럼을 치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은 맑고도 밝았다. 그리고 그는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말투가 상냥했다. 알리완 축제 시작 전 잠깐의 대기 시간 동안 그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악기들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 알려주고, 악보 읽는 법까지 알려주었는데 악보가 흡사 암호문 같았다. 막대기 기호투성이의 악보를 어떻게 읽는지는 두 번이나 들어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다른 이야기는 입을 쩍 벌리고 경청했다. 일로일로에서 마닐라까지 그의 여행 이야기가 마치 해피 앤딩의 동화처럼 들렸다.


그는 알리완 축제(Aliwan Fiesta)에 참석하려고 일로일로에서 마닐라까지 배를 타고 왔다고 했다. 공연을 위한 악기와 의상, 그리고 무대 장치까지 모두 들고 삼백 명 가까운 인원이 배를 타고 왔다고 하는데, 그 많은 인원이 어떻게 움직였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배 안 좁은 다인실 침대 위에 몸을 뉘어 고생스러웠겠지만,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았다. 상상해 보라. "마닐라에 가서 공연하고 올게요!"라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어깨가 으쓱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공연 연습하느냐고 흘렸던 땀방울이 무척이나 보람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열정적인 눈빛을 빛내며 제이크가 해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축제 준비를 위해 다 함께 모여 두 달을 꼬박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연습을 했단다. 이백 명이 넘는다는 퍼포먼스 참여자들이 대체 일로일로 어디에서 모여 두 달 동안이나 연습을 하는지는 몰라도 어딘지 모를 그곳에 가서 이들이 땀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제이크만큼이나 열정적인 모습이라면, 분명 연습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멋질 것이다.


필리핀에는 수많은 축제가 있지만, 그래도 축제 이야기를 하며 일로일로의 디낙양 축제(디나기앙 축제)를 빼놓기는 힘들다. 산토니뇨(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아에타족과 말레이족의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로 시작했다는 이 축제는 필리핀 전 지역에서도 손꼽히게 뛰어난 축제로 평가받는다. 필리핀 사람들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축제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축제의 기획력이나 홍보력이 다른 축제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일단 축제 규모 자체부터 다른 지역보다 큰 편으로, 해마다 이런저런 부대 행사가 기획되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모두 풍부한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축제 일정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을 꼽으라면 역시 거리 댄스 퍼레이드(Street Dance Parade)이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댄서들의 보여주는 군무는 정말 멋져서 축제 한참 전부터 공연 좌석을 꽤 비싼 가격에 사전 판매할 정도이다. 실제 디낙양 축제 퍼포먼스는 공연의 기획력에서부터 안무, 의상, 음악 등 모든 항목에서 최상위의 평점을 받고 있는데, 그 공연성을 인정받아 뉴욕, 일본, 홍콩 등에 초청 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한국에도 와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서 공연하기도 했다는데, 제이크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 올해도 한국 어딘가로 공연 초청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해가 지려는 시간, 바람이 선선해지자 알리완(Aliwan) 축제가 시작되었고, 13개나 되는 팀이 나와 각자의 춤을 뽐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가장 힘찬 박수를 받은 것은 역시 디낙양 팀이었다. 그리고 알리완 시상식에서 올해에도 일로일로 디낙양 축제가 거리 댄스 경연대회(Street Dance Competition)에서 1등을 해서 상금으로 100만 페소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디낙양 축제가 긴 수상목록에 한 줄을 더한 것이다. 제이크와 그의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겠구나 싶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일로일로에 꽤 오래 살았지만, 일로일로를 대표하는 축제 이름 하나 제대로 적지 못한다. 일로일로 사람들을 붙잡고 디낙양 축제(Dinagyang Festival)를 어떻게 발음하면 좋으냐고 물어봐도 그걸 한글로 디낙양으로 적어야 하는지 디나기앙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니면 디냐걍으로 적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디나양, 디낙앙, 디냐걍, 디나강, 디나기앙, 디나그양, 디나그앙 등 다양하게 표기된다.


이것이 악보이다.

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필리핀 현지 사정에 의해 수시로 내용이 변동될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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