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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어둠이 진한 새벽, 마닐라 톤도 렉토 애비뉴 재래시장
⚐ 작성일:
2016년 1월 19일
필리핀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공감받는 평가가 "게으르다"는 평가이다. 혹자는 이들의 월급이 적음을 내세우며 이런 월급을 받고 그 누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하겠느냐고 두둔하지만, 한국인과 비교하면 좀 게으른 것은 사실이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기억을 가진 한국인과는 생활 습관부터 다르다. 그래서 한국에서라면 돈이 아까워서 하지 않을 것들을 선뜻하기도 한다. 일당으로 500페소 남짓을 받을 뿐이지만, 매니큐어를 받고 택시를 타고 싶어 하는 식이다. 어쨌든, 새벽 이른 시간에 재래시장으로 가보면 필리핀 사람은 게으르다는 이야기가 쑥 들어간다. 해가 뜨기도 전에 거리 위를 뛰어다니는 사람이 잔뜩이니, 대체 몇 시부터 나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그 시간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참 부지런하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나에게 몇 년째 맛있는 과일을 먹게 해주는 단골 과일가게의 미라 아주머니는 과일을 차이나타운 어딘가에서 사 온다고 했다. 미라 아주머니네 가게는 아주 작은 과일 좌판이지만, 그래도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 가족이 다 함께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가족 사업인 셈이다. 그런데 아주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아주머니네는 제법 분업화가 잘 되어 있었다. 언니가 새벽 3시 정도에 시장에 가서 과일을 도매로 사 오면, 따따이가 그걸 정리하고, 미라 아주머니와 동생이 거리에서 그걸 파는 식이다. 과일 장사는 이문이 박하지는 않지만, 과일이 싱싱함을 유지할 동안 오롯이 다 판다는 보장을 할 수 없으니 장사가 쉽지 않다. 미라 아주머니가 길거리 좌판 대신 번듯한 가게를 가지는 일은 대체 언제가 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오전 5시에 톤도 디비소리아의 렉토 애비뉴(Recto Ave) 쪽에 나갔다가 아침 시장에서 파는 과일이 무척이나 싱싱하고 저렴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큼지막해서 제수용으로 써도 좋을 것 같은 사과도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격의 절반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사과를 사려고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 약간의 돈을 아끼는 것보다는 미라 아주머니네 과일 가게를 이용해주는 것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내 조심성 없는 성격 탓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과에 멍이 들 것이 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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