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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1953년, 필리핀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은 가든파티 소개

⚐ 최종 업데이트:

2020년 7월 25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1953년 10월 23일 필리핀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방영된 첫 번째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케존에 있는 퀴리노 레지던스(Quirino residence)에서 열렸던 가든파티 소개였다. 프로그램 끝에는 DZAQ-TV라고 적힌 로고가 달려 있었다. 이후 DZAQ-TV에서는 저녁 6시에서 10시까지 하루 4시간 일정으로 외국 대사관에서 가져온 영화나 각종 행사에 대한 보도로 정규 방송을 시작했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없어도 TV는 꼭 가지고 싶다는 사람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요즘은 유튜브며 넷플릭스의 시청이 늘어났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인의 일일 평균 TV 시청 시간을 조사해 보면 5시간 이상이라고 조사되었다. 하지만 필리핀 텔레비전 방송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TV 방송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살던 "필리핀 텔레비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린덴버그(James Lindenberg)가 필리핀으로 이주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1940년대 필리핀으로 이주한 인물로 팡가시난(Pangasinan) 지방 볼리나오(Bolinao) 출신인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였고, 아내의 고향 이름을 따서 볼리나오 전자 회사(BEC: Bolinao Electronics Corporation)를 설립하였다. 1946년 6월 13일의 일이었다.


DZAQ-TV

하지만 안토니오 키리노(Antonio Quirino) 판사가 함께했음에도 정부에서 방송국 개설 허가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 제6대 대통령이었던 엘피디오 키리노 전 대통령의 형제인 안토니오 키리노가 관여하였으니, 방송국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방송국 개설 허가를 받지 못한 까닭에 BEC는 라디오 방송으로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1953년 10월 23일에 DZAQ-TV라는 이름으로 TV 방송을 개시함으로써 필리핀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 송출을 시작했다는 영광을 얻게 된다. 볼리나오 전자 회사는 TV 방송을 개시하면서 아시아 최초의 민영 방송사가 되었다. 그리고 방송 시작 전 120대의 텔레비전을 수입한 뒤 텔레비전 판매권을 최초로 부여받고, 회사명을 알토 방송(ABS-Alto Broadcasting System)이라고 바꾸었다.


전쟁 후 복구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방송국이 조금씩 생길 시기였다. 종군기자로 필리핀에 온 미국 아리조나 출신의 로버트 스튜어트(Robert Stewart)가 필리핀에 머물기로 하면서 시작한 일은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그는 1950년에 GMA Network 네트워크란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사를 설립했다. 1956년에는 유제니오 로페즈(Eugenio Lopez Sr.)가 크로니클 방송(CBN-Chronicle Broadcasting Network)이란 이름으로 방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알토 방송의 TV 인쇄 광고와 ABS 건물 (출처 : Video48 / Lou Gopal of Manila Nostalgia. )
ABS-CBN과 로페즈 가문

ABS-CBN 그룹 창업자인 유제니오 로페즈는 필리핀 10대 거부 중 하나인 로페즈 가문의 일원이다. 로페즈 가문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비사야 지방의 대표적인 가문이었다. 국왕과의 친분을 논할 정도의 명망 있는 가문인데, 1920년대 설탕 사업을 해서 더 큰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일로일로 주지사였던 아버지 아래서 필리핀에서 가장 유서 깊은 스페인계 부호 가문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유제니오는 마닐라에서 대학에 다녔다. 아테네오 대학과 UP대학, 그리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버스 운송사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방송국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계기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이 시기 그는 필리핀 근대사에 있어 기록될 만한 일을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가 1961년 전기회사인 메랄코(MERALCO)를 인수한 것이다. 2차대전 중 일본군이 일본이 통제하는 대만 전력 회사에 강제로 양도했었던 메랄코를 다시 필리핀인 소유가 되게 한 것이다. 그리고 1966년 CBN 방송국은 필리핀 최초이자 동남아시아 최초로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반대해서 도입이 늦어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1980년이 되어서야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빠른 도입이었다.


1967년, CBN 방송국은 1953년에 개국한 ABS 방송국과 합병했고 방송국 이름을 ABS-CBN이라고 바꾸게 된다. 필리핀 최초의 방송국이 당시 필리핀 대통령의 동생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거나 필리핀의 민영 방송사인 ABS-CBN이 필리핀 최초의 방송국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볼리나오 전자 회사가 ABS-CBN의 전신이 되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계엄령 시절

하지만 1965년 대선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가 51.9%나 되는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필리핀 방송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1972년 ABS-CBN 방송사에서는 필리핀 최초로 전국 방송 도입에 성공했지만, 같은 해 9월 21일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폐국되게 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21년간의 장기 집권하면서 마르코스 정권 산하의 괴뢰 공영방송국이 텔레비전 화면을 차지했으니, 필리핀의 방송 산업은 암흑시대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언론 매체가 통제 및 격리되고, 언론인이 투옥되는 상황에서 TV 방송국은 정부의 선전 수단으로 전락했다. 1969년에 바기오 시티(Baguio City)에 국내 최초 케이블 회사가 설립되었지만, 1977년부터 약 10년 동안이나 정부가 지정한 업체에 의해 TV 방송이 독점 운영되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86년 2월 22일이 왔다.


1986년 2월 7일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부정 선거의 흔적은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마닐라 EDSA 거리에 모이게 했다. 피플 파워 민주화 혁명은 나흘 동안 계속되었고, 21년간이나 장기집권한 독재 정권을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1986년 2월 25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후 필리핀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마닐라공항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만든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2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이다. 코라손 아키노가 제11대 대통령이 되면 ABS-CBN은 다시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방송국 문을 닫은 지 14년이나 지난 뒤였다.


 



지나 로페즈

Regina Paz “Gina” Lopez


ABS-CBN 그룹 창업자인 유제니오 로페즈 시니어 (Eugenio Lopez Sr.)의 아들인 유제니오 로페즈 주니어 (Eugenio Lopez, Jr.)는 중국계 거부 라오(La’O) 가문 출신이자 마르코스의 인척인 치타 로페즈(Conchita La’O)와 결혼하여 7남매를 낳았는데, 그중 둘째이자 장녀가 지나 로페즈(Gina Lopez)이다. 지나 로페즈는 1994년 ABS-CBN 그룹 재단의 이사장이 된 후 재단 내 환경재단을 설립하고 필리핀 환경운동에 힘썼다. 지나 로페즈는 탄광 개발을 막고, 강 살리기 운동을 해온 환경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6년 필리핀 환경천연자원부(DENR) 장관의 자리에 올랐지만, 취임 10개월 만인 2017년 5월 해임되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ABS-CBN그룹 창업자인 유제니오 로페즈이다.
로페즈 가문의 가족 사진
로페즈 가문의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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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인러브에 적힌 글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글 작성 시점에서만 유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필리핀 현지 사정에 의해 수시로 내용이 변동될 수 있으니 작성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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