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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카를 5세)와 펠리페 2세

⚐ 최종 업데이트:

2024년 2월 28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마닐라 마카티의 아얄라 박물관(Ayala Museum)에 전시된 범선의 모형
마닐라 마카티의 아얄라 박물관(Ayala Museum)에 전시된 범선의 모형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하다는 자리가 왕의 자리이다. 그런 왕의 자리에서 일만 아는 일벌레로 살면 장수하기 힘들 것 같지만,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하였다는 합스부르크가 왕가 출신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고희의 나이까지 살았다. 당시 평균 수명으로 보았을 때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펠리페 2세는 조선에서 연산군의 뒤를 이어 중종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시기(1527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선조 31년(1598년)에 죽었는데 왕위를 물려주기 전까지 거의 궁정에 틀어박힌 채 서류 정리에 집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최강국 스페인이 해가 지는 국가가 되어 버린 원인 중 하나로 펠리페 2세가 종교 전쟁을 위한 서류에 마구 서명을 했다는 것을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7개의 바다를 지배하며 에스파냐의 황금시대를 이끈 절대군주라고 해도 암을 이길 수는 없었다. 펠리페 2세(Philip Ⅱ)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7천 개의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아서 필리핀(Philippines)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한 뒤 엘 에스코리알 궁전에서 사망했다.


카를 5세(Karl V)

에스파냐(영어식 국명은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스페인에서의 명칭은 카를로스 1세)는 1500년에 태어나 1558년 사망했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국가의 왕관을 쓴 인물로 평가되는 카를 5세는 무려 17개나 되는 왕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근친결혼이 불러오는 유전적 결함을 이야기할 때 꼭 거론되는 이 왕은 합스부르크 왕가 가문 특유의 유전병인 주걱턱 현상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말년에는 심한 통풍으로도 고생했다고 한다. 카를 5세는 성인이 되기도 전인 1516년에 에스파냐 국왕의 자리에 올랐는데, 1556년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왕실 카를 5세가 가졌던 신성로마제국의 왕위는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에게 주어졌지만, 에스파냐의 왕위는 아들이었던 펠리페 2세(Felipe II)가 물려받았다.


펠리페 2세(Felipe II)

펠리페 2세(1527년~1598년)는 1556년에 아버지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1598년 죽기 전까지 에스파냐 왕으로 재위했는데, 그가 통치했을 당시 에스파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펠리페 2세는 로마 가톨릭을 통한 국가 통합을 추구하였는데, 하루 14시간 이상을 집무실에서 보낼 정도로 성실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실한 왕에게서 5척의 배를 지원받아 원정을 떠난 이가 바로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이다. 1565년 필리핀에 도착한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 1502년~1572년)는 세부 지역을 기반으로 필리핀 정복에 나섰다. 하지만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1571년이 되어서야 펠리페 2세에게 필리핀을 정복했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필리핀 국기
필리핀 국기

· National Quincentennial Committee: Philippines First Circumnavigation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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