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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식민지 이전 시대, 발랑아이(balangay) 보트와 바랑가이(barangay)
⚐ 최종 업데이트:
2024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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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족 구성을 보면 말레이계가 주종이며 중국·미국·스페인계 혼혈 다수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이민족이 있지만, 인구의 다수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오스트로네시아족)이다. 그런데 필리핀의 원주민이 된 말레이계 사람들은 무엇을 타고 필리핀까지 왔을까?
발랑아이 보트
Balangay boat
보르네오의 말레이계 사람들은 발랑아이(바랑가이)라는 이름의 범선을 타고 필리핀에 도착했다. 12㎝~19㎝ 크기의 목각을 조합하여 나무로 만든 전통 목선이었다. 나무는 장거리 항해를 견딜 수 있도록 헤리티에라 리토랄리스(Heritiera littoralis)라는 나무를 사용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Dungon(looking-glass mangrove)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단단할뿐더러 바닷물에 대한 저항성(resistance to saltwater)도 강해서 당시 해적도 이 배를 사용했다고 한다. 민다나오의 부투안에서 발견된 부투안 보트(Butuan Boat)는 25명 정도 탑승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60~90명이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든 범선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무역선으로 즐겨 사용되던 커다란 배라고 해도 장시간 배를 타고 필리핀까지 오는 과정이 쉬웠을 리가 없다. 생사가 오가는 항해를 이끌었던 우두머리 다투(Datu)의 권한은 막강했고, 배 안에서의 이동 시간과 낯선 땅에서 정착해야 하는 괴로움을 함께 이겨낸 사람들의 관계는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 중심의 부락 공동체 생활
발랑아이(바랑가이) 배를 타고 필리핀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정착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필리핀 도착 후에도 함께 집단을 이루며 모여 살았다. 여전히 다투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중심의 부락공동체 생활이었다. 초기 정착민들은 대부분 바닷가나 강가 주변에서 머물며 낚시에 의존하는 생활을 했다. 식수 보급이나 어업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상인과의 교역에도 해안가에서 생활하는 편이 유용했다. 초창기 정착 생활의 험난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거주했었던 해안과 강가를 따라 여행하며 세력을 넓히기도 했지만, 섬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세력을 크게 확장하지는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이전 시대의 초기 필리핀인들의 주거지는 50~100가구가 사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부락 공동체가 대부분이었지만 15~16세기에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거주지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30가구 미만의 작은 규모의 마을도 있었지만, 수백 혹은 수천 명에 이르는 주민을 거느린 거주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락 공동체가 특정 국가의 지배를 아래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필리핀은 통일된 중앙정부를 가진 하나의 국가가 성립된 적이 없었다. 식민지 이전 시대 주변 바랑가이나 이웃 나라와 상호 교역 활동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랑가이 캡틴에 의해 운영 관리되는 공동체 내지는 소규모 영토국가에 불과했다. 14세기 이후에 무슬림이 민다나오 일대에 정착하면서 형성했다는 이슬람 왕국 역시 술탄이나 왕(Raja)이 지배하는 소규모 영토국가였다. 1521년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했을 당시 인구는 약 5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루손섬에는 6천여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바랑가이가 존재했다고 한다.
필리핀 바랑가이의 뜻
필리핀 최소 행정단위를 바랑가이(Barangay)라고 한다. 바랑가이는 지방행정의 최일선 기관으로 정부 정책을 실행하고, 바랑가이 내에서 공공질서를 유지하며, 주민들이 행정시책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한국의 동사무소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동(洞)이나 면(面)에 해당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바랑가이홀(Barangay Hall)은 한국의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바랑가이(Barangay) 이름의 유래가 바로 발랑아이 범선(Balangay boat)이다. 필리핀으로 이주했을 때 탔던 발랑아이 보트에서 바랑가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에서 짐작되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바랑가이 캡틴의 지위는 견고하게 유지된다. 해마다 바랑가이 선거철이면 입후보자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총격 사고가 일어날 정도이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선거 기간 중 총기 휴대금지(gun-ban)와 금주령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행정구역: 바랑가이(Barangay)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 Official Gazette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 Presidential Decree No. 557, s. 1974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 Barangay
· The Philippine Star: Balangay boat as symbol of ancient Filipino ingenuity
· cebudailynews: Balangay and the Filipino seafaring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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