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 중에 부꼬파이(Buko Pie)라는 것이 있다. 부꼬(코코넛)의 흰색 과육을 저며서 만드는 파이인데, 부꼬의 과육 자체는 단맛이 거의 없지만 연유 등을 넣어 단맛을 더한다. 바삭한 파이 반죽에 코코넛 과육 특유의 식감, 거기에 달콤함이 더해져 겉바속촉의 맛을 보여주는데, 갓 구웠을 때 먹으면 특히 맛이 좋다.

하지만 필리핀에 산다고 부꼬파이를 자주 먹게 되지는 않는다. 파이 자체를 즐기지 않는 터라 평소 부꼬파이를 먹는 일이란 거의 없다. 하지만 누에바 비스카야(Nueva Vizcaya)나 라구나(Laguna) 쪽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떻게 해서든 꼭 부꼬파이 가게에 들러서 잔뜩 욕심을 내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부꼬파이라는 음식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든 부꼬파이"를 먹기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에바 비스카야의 부꼬파이 가게는 거리가 워낙 멀어서 일 년에 한 번 가기도 벅차지만, 라구나의 부꼬파이 가게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웨이즈가 다른 길이 더 빠르다고 알려줘도 무시하고 어떻게든 부꼬파이 가게에 들린 뒤 마닐라로 돌아가곤 한다. 이름도 멋지게, '더 오리지널 부꼬파이 베이크샵(The ORIGINAL Buko Pie Bakeshop)'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게는 그야말로 동네의 명물. 라스바뇨스하면 이 집 부꼬파이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으니, 한국과 비교하면 성심당 비슷한 느낌을 주는 그런 가게이다. 이 가게는 가격 대비 훌륭한 그 맛 하나로 필리핀의 부꼬파이 시장을 평정했는데, 코로나19가 한참이었을 때는 예약까지 받으면서 마닐라까지 배송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좋아서 마닐라 데이투어로 팍상한 폭포를 다녀오면 꼭 들리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요즘 더 오리지널 부꼬파이의 가격은 270페소. 예전과 비교하여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파이 하나를 사면 여러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270페소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항상 부꼬파이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라구나의 매장까지 가서 부꼬파이 대신 파인애플 파이를 사서 나오는 것은 결코 부꼬파이가 싫다는 이유가 아니다. 오후 늦게 가면 다 팔려서 없기 때문이다. 1인당 5박스로 부꼬파이 판매량을 제한하는데도 불구하고 가게 직원이 "오늘은 부꼬파이가 다 팔렸어요!"라는 이야기를 하니, 이 가게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필리핀에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서 뭔가 아쉽다면 가게 입구에 있는 아저씨를 찾으면 된다. 단, 이런 아저씨에게 살 때 가격 흥정은 필수이다. 부지런히 오전에 가게에 가서 부꼬파이를 사다가 나처럼 오후에 오는 손님에게 웃돈을 얹어 파는 것이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음은 알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좀 과하다 싶은 가격을 요구하기도 하니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