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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필리핀 사람들은 왜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에게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 최종 업데이트:

2024년 9월 26일

⚑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

필리핀 사람들은 왜 산토니뇨(Santo Niño) 아기 예수상에게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산토니뇨의 기원은 무려 마젤란 시대로 올라간다. 역사에 따르면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것은 1521년 3월 16일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에서는 중종(1488~ 1544년)이 신진사림의 핵심 인물들을 몰아내어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그해,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의 후원으로 5척의 배와 270명으로 된 선단을 이끌고 스페인에서 출발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대서양을 횡단하여 필리핀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젤란의 항해는 쉽지 않았다. 거친 바다 위에서 극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1519년에 에스파냐(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은 1521년이 되어서야 필리핀에 도착했는데, 침략과 선교를 동시에 하던 당시 스페인의 방식에 따라 열심히 원주민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세부섬 토착 왕국의 지도자였던 라자 후마본(Rajah Humabon)과 손을 잡고, 후마본의 정적이었던 막탄섬 지도자 라푸라푸(Lapu-Lapu)를 죽이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필리핀에서의 지지 세력을 다져나갔다. 덕분에 라자 후마본은 필리핀에서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신하 800명까지 세례를 받게 되었다. 마젤란은 라자 후마본의 아내인 하라 아미한(Hara Amihan, 후에 후아나)에게 산토 니뇨 성상을 선물하기도 하고 제법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라푸라푸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투에 임하다가 막탄전투(Battle of Mactan)에 전사하게 되었다. 당시 후아나 여왕에게 아기 예수상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젤란이 죽고 스페인 원정대가 필리핀에서 철수하였던 동안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 신자들은 아기 예수상을 그들의 신앙의 중심으로 모셨다. ('Rajah'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막탄 전투에서 살아남은 마젤란의 부하들은 남은 배 한 척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돌아가 필리핀에 도착했었으며 마젤란은 죽었지만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계 일주를 완성했음을 왕에게 보고했지만 스페인의 왕이 먼 동양의 나라까지 다시 원정을 보낼지 결정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마젤란이 죽고 4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의 지원을 받아 필리핀 원정에 나섰다.


마젤란과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던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세부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포격했다. 그런데 불에 타서 무너진 오두막에서 기적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산토니뇨(아기 예수상)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날 원주민들은 불탄 오두막 속에서도 남아있던 아기 예수상을 위해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세부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의 기원이라고 한다. 시눌룩 축제가 생겨나기 전에도 세부 지역의 원주민은 북소리에 맞춰 영적 존재를 기리는 춤을 추었다고는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지금처럼 비바 산토니뇨(Viva El Sto. Niño)를 격렬하게 외치게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필리핀 사람들은 산토니뇨를 기적과 신앙의 상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모두 아는 바대로이다.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세부를 점령했지만 향신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부하들을 마닐라로 보내 정복하도록 했다. 1571년, 레가스피는 마닐라로 올라와 필리핀 제도는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선언한 뒤 필리핀의 초대 총독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필리핀은 1571년부터 1898년까지 긴 시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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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축제: 마닐라에서 산토 니뇨를 외치다 - 톤도 락바야 페스티벌(Lakbayaw Festival)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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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산토니뇨(Viva El Sto. Niño)
비바 산토니뇨(Viva El Sto. Ni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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