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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1986년, 마르코스의 독재를 몰아낸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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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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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에게 EDSA 도로의 의미가 각별한 것은 자유를 목 놓아 외치며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대사에 있어 EDSA 도로는 피플 파워(시민혁명)의 상징물이었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몰아내기 위한 시위도, 부패 혐의에 연루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도 모두 EDSA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1986년 피플 파워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은 자발적인 민중의 봉기를 통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를 비폭력으로 전복시킨 혁명이다. 시위가 일어났던 도로의 이름을 따서 EDSA 혁명(에드사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플 파워 혁명
EDSA 혁명
People Power Revolution
EDSA Revolution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주화 운동
기간: 1986년 2월 22일~1986년 2월 25일
대한민국에서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유행하던 1983년의 일이다. 1983년 8월 21일은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다가 미국에 망명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가 조국인 필리핀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는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마닐라공항에서 암살당한 것이다. 그리고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죽음이 필리핀 민주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죽음
한국 전쟁(6.25 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는 필리핀의 명문가 출신으로 22살에 고향인 딸락 주의 콘셉시온에서 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불과 35세의 나이에 상원의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니노이 아키노는 반마르코스 투쟁을 주도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그런 니노이 아키노가 고국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했다는 소식에 필리핀의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사망은 필리핀 전역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장례식에는 수백만 군중이 몰려들었고, 장례식 이후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이었던 코라손 아키노(코리 아키노)를 중심으로 한 반마르코스 시위가 필리핀 전역에서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1986년 대통령 선거를 강행했다. 코라손 아키노는 야당 단일 후보로 출마했지만, 1986년 대선은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1986년 2월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는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발표했다.
EDSA 혁명(에드사 혁명)
1986년 2월 22일, 그날 마닐라의 EDSA 도로 위를 가득 채운 것은 코라손 아키노를 지지하는 의미로 노란색 리본을 든 사람들이었다.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21년간 장기집권한 마르코스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와 부정부패, 인권탄압에 지친 필리핀 국민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거리로 나와 마르코스가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가난과 부패를 이겨내고 싶었던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 피플 파워(민중의 힘)를 보여주었고, 마닐라 대교구장이었던 하이메 신 추기경이 민중의 편에 서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비폭력 평화 시위가 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은 1986년 2월 25일까지 나흘 동안 계속되었다. 1986년 2월 25일 오후 9시 52분, 마르코스의 가족이 떠났다는 보고가 DZRH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육촌지간인 피델 라모스마저 마르코스에게 등을 돌리고 코라손 아키노 편에 선 상황이 되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황급히 대통령직을 내놓고 이멜다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한 것이다. 21년이나 계속되었던 지독한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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