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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환경정책: 4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만 학교를 졸업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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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등록일:

2019년 12월 26일

펫트병 재활용 화분
펫트병 재활용 화분

만약 죽기 하루 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엇을 할까. 꼭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 문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 어떤 대답을 가져다 놓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멋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평소처럼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세상에는 놀랍도록 현명한 분들이 있기 마련이고,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사과나무 이야기를 처음 한 사람이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가 한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선착순 세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먼저 사과나무 이야기를 했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구 종말 전까지 내 할일을 하겠다는 그 자세만큼은 본받을만하다.


환경을 위한 졸업유산법

나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2019년 5월에 필리핀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 매우 독특한 것이 있었다. 환경을 위한 졸업유산법(Graduation Legacy For the Environment Act)이란 이름의 이 법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꼭 나무를 심어야만 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졸업할 때마다 10그루씩 나무를 심어야 하니, 대졸자가 되려면 최소 40그루의 묘목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대충하는 시늉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냥 아무 나무나 준비해서는 졸업이 되지 않는다. 지역별로 지형이나 기후에 적합한 토착종 나무로 심어야 한다.  졸업요건으로 묘목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 느껴지기는 하지만, 자연보호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시스템으로 잘 정착된다면 괜찮을듯싶기도 하다. 나무를 심는 것을 의무사항으로 두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에는 지난 100여 년간 필리핀에서 지나친 벌채 작업이 이루어졌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항상 스무 살인 줄 알고 시간을 허비해버린 인간처럼, 농지확보와 도시 개발을 위하여 나무를 마구 베어내었을 때는 몰랐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국토의 70%를 차지하던 산림지역이 20%로 크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개리 알레자노(Gary Alejano) 의원이 어째서 훼손된 삼림을 되살리는 것에 학생들을 동원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필리핀에서 매년 배출되는 졸업생 수가 무려 175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학생들이 나무를 심는다면  숲을 살리는 효과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1200만 명의 초등학생과 500만 명의 고등학생, 50만 명의 대학졸업생들이 모두 10그루씩 나무를 심으면  매년 1억7500만 그루의 나무가 새로 심어지게 된다. 30년동안 5250억 그루의 나무가 심어질 것이라는 계산에는 2050년이 되어도 아이들 수가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만약 제대로만 행해진다면 그 효과란 대단히 기대할만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졸업 요건으로 나무를 심게 하는 것에 크게 찬성하지는 않는다. 나무도 가격이 꽤 비싼데, 가난한 집의 아이들에게 공연히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를 심는 것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환경보호에 훨씬 효과적이다.  필리핀에도 생활 속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운동이 열풍을 일으켜서 플라스틱 백(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고,  플라스틱 식기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추세이다.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가게가 점점 늘고 있기도 하다.



플라스틱 사용 금지 정책

필리핀에 플라스틱 사용 금지 정책이 나온 것은 지난 2009년에 있었던 태풍의 영향이 컸다. 당시 태풍으로 마닐라는 물론 라구나 호수 주변 동네가 온통 물바다가 되었는데, 홍수피해가 발생한 원인을 조사해보니 비닐봉지가 하수구를 막아서 사태가 악화한 것 같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플라스틱 비닐봉지가 홍수 피해를 가중한다는 조사 결과는 곧 환경보호 단체에서 주장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 정책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필리핀 환경자원부(DENR)는 2000년도 초반부터 메트로 마닐라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외국 어딘가에서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를 쓰더라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고 온 마카티의 시장이 플라스틱 사용 금지 정책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2003년에 마카티 시에서는 비닐봉지 사용 금지법안(City Ordinance No.095) 발표하고, 만약 어길 경우 천 페소의 벌금 또는 최소 5일에서 최대 30일 동안 구치소에 넣겠다고 선포했다. 쇼핑몰 등 업체에는 벌금 규정이 더 강했는데, 최대 1년까지의 징역 처분이 부과된다고 해서 그런지 상당히 잘 지켜지는 모습이었다. 중국인들이 하는 슈퍼 등만은 어찌 된 영문인지 비닐봉지를 쓰지만, 중국인의 경우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 불가다. 암튼, 마카티 시티가 플라스틱 금지정책(plastic ban)으로 환경보호에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이를 따라 문틴루파(Muntinlupa), 까비테(Cavite), 라구나(Laguna) 등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도시가 점점 늘어갔다. 비닐봉지와 폴리스티렌(PS) 용기를 대신하는 종이 빨대, 종이 포장 상자가 마구 버려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환경 오염을 더 가중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종이 포장 쪽이 환경을 덜 해칠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팔라완 엘니도, 수리가오 등 필리핀 주요 관광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의 사용을 금지하는 곳도 생겼다. 바콜로드에 'Wala Usik: Tiangge + Kapehan'(Wala Usik는 타갈로그어로 플라스틱 사용금지를 의미)라는 이름의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커피숍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로빈슨 몰에서는 상품 포장에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포장법으로 바나나 잎을 이용한 청과물 포장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세부공항(MCIA. Mactan-Cebu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필리핀 최초의 플라스틱 없는 공항(first ‘plastic-free’ PH airport )을 표방하고 나서기도 했다. 공항 터미널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및 폴리스티렌(PS) 용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올해 9월 공항 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정책 시행 결과로 30% 가까이 플라스틱 폐기물이 줄었다고 한다. 2018년도만 해도 매달 평균 3,500kg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왔었는데, 플라스틱 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나니 폐기물이 1,200kg가량 감소했다는 것이다. 현재 세부 공항은 GMCAC(GMR MEGAWIDE Cebu Airport Corporation)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필리핀 정부의 공공 민간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따라 25년간 공항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한동안 관리 업체가 바뀌지 않을 터이니 세부 공항의 플라스틱 금지 정책은 계속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국제적인 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곳이 필리핀이라고 한다.



마닐라 바클라란 재래시장
마닐라 바클라란 재래시장
필리핀도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타갈로그어로 쓰레기를 바수라(BASURA)라고 한다.
필리핀도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타갈로그어로 쓰레기를 바수라(BASURA)라고 한다.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에 있는 바랑가이 홀(Pio del Pilar Barangay Hall). 버려진 물병과 시디 등을 활용해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상적이다.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에 있는 바랑가이 홀(Pio del Pilar Barangay Hall). 버려진 물병과 시디 등을 활용해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상적이다.
재활용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재활용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재활용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재활용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재활용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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